아트콜렉티브 서울퀴어세제션이 주최한 <2020 퀴어돌로지>의 첫 세미나 “케이팝과 퀴어의 만남”에서 또 다른 발제자 상근과 지미는 여돌(여성아이돌)을 ‘착즙’하는 게이와 남돌(남성아이돌)을 ‘착즙’하는 레즈비언의 욕망과 소비 패턴, 그리고 이들이 젠더 경계를 흐리는 방식에 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디바가 되고 싶은 게이’의 여돌 바라보기
“케이팝, 게이팝의Diva-ness”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한 상근(직장인 겸 유투버)은 게이가 케이팝 여돌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이유를 분석했다.
“케이팝이 이만큼 성장하기 전에는, 소위 국내에서 말하는 ‘게이디바’는 미국 팝가수가 대표적이었다”고 설명하며 “마돈나, 카일리 미노그, 머라이어 캐리,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제니퍼 로페즈, 그웬 스테파니 등”을 꼽았다.
이들이 ‘게이디바’로 불린 건 “그들의 노래, 의상, 무대, 뮤직비디오가 보여 주는 이미지가 어떤 게이들에게는 자신이 되고자 하는, 혹은 소비하고자 하는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팬덤이 아이돌을 응원하고 개별 멤버의 성격이나 비주얼, 행보, 멤버 간의 관계성을 소비”하는 것에 반해, 게이 팬덤은 “노래, 의상, 무대, 뮤직비디오가 만들어 내는 컨셉과 서사를 ‘되고 싶은 나’ 혹은 ‘내가 이입할 수 있는 다른 주인공’으로 치환해 소비한다”는 거다.
그렇다면 왜 하필 여성일까? 상근은 게이가 남성이 아닌 여성 가수를 디바로 소비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분석했다.
1) 여성은 남성중심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온전한 남성’이 아니라고 느끼는 게이들이 성소수자인 자신과 여성의 위치를 동일시하는 것. 2) 시스젠더 남성 게이는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존재다. 성별이분법 구조 상에서 ‘남성을 사랑하는 성별’이 여성이므로, 자신을 여성의 시선에 대입시키는 것. 3) 기존의 남성상은 이른바 ‘마초성’을 강하게 보여주는 면이 강하므로 남성을 롤모델로 삼기 어렵다. 스스로가 알고 있는 ‘현실의 위치’와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모습’ 간의 괴리를 강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마초가 될 수 없음+되고 싶지 않음), 남성만큼 강한 이미지를 풍기는(하지만 마초적이지 않은) 여성의 모습을 이상적인 디바로 여기는 것.
상근은 이 지점이 “‘여성에게 덧씌워진 이미지를 소비한다’는 점에서 여성혐오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게이디바를 향한 게이들의 숭상을 ‘여성의 예쁨을 따라 하는 것’으로만 해석한다면, 결국 게이는 ‘남성되기를 실패한, 여성성의 밈(Meme)만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얘긴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상근은 게이들이 “여성아이돌을 디바로 삼으면서 자신을 디바로 체화하는 것은 단순히 ‘남성의 여성되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성역할을 가지고 논다는 점에서 젠더 균열적”이라고 주장했다. “남성성, 여성성이라는 이미지를 고정적으로 사유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 ‘남성이 걸그룹 춤을 추는 것에 대해 여성을 따라 하는, 남성스럽지 못한 행동으로만 여길 수 있는가?’ 라고.”
게이디바 현상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짚은 상근은 “케이팝 산업과 게이 팬덤이 소소한 변화를 이뤄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디바를 소비한다’는 한계를 지나 다음 단계로 나아갈 날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돌 좋아하면 ‘가짜’ 레즈비언?
“게이 남성은 여돌을 좋아해도 ‘너 여돌 좋아하니까 게이 아닌 거 아냐?’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 오히려 ‘너는 정말 게이답구나…’라는 반응을 받게 될 확률이 더 높다.”
이렇게 말한 지미는 “그런데 왜 레즈비언이 남돌을 사랑하고, 남돌이 되고 싶어하고, 남돌 콘서트 가서 응원봉을 흔들면, 왜 그들에 대해 레즈비언답지 않다고 비난하고, 그들의 레즈비언 정체성을 부정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남성아이돌을 사랑하는 레즈비언’을 위한 변론-레즈비언 커뮤니티 안에서 경계 받는, ‘지극히 레즈비언적인’ 욕망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발제를 한 지미(서울퀴어세제션 객원 멤버)는 케이팝 1세대 ‘팬픽이반’ 때부터 계속되어 온 ‘패션레즈’, ‘가짜레즈’ 등의 논란을 소개했다. 그리고 배제되는 어떤 레즈비언들의 욕망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어갔다.
“NCT 중 비교적 더 중성적이고 무성적인 느낌, 혹은 여성적인 느낌을 주는 몇 멤버들을 레즈비언 부치 등으로 해석하면서 일명 ‘부치착즙’을 하곤 했다. 그 멤버들이 사회적으로 남성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레즈비언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여 그렇게 사랑하는 거다. 가상적 이미지를 사랑하고 소비하며 위안받는 것이다.”
지미는 이 ‘부치착즙’을 “어떤 존재에게서 레즈비언 부치스러움(Butchness)과 여성의 남성성을 읽어내고 그것을 즐기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케이팝 ‘남성’ 아이돌에게서 부치니스를 읽는 행위를 ‘남성’에게서 ‘여성의 남성성’을 ‘착즙’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묘하게 느끼거나, 혐오감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남성과 부치니스를 연결하는 것에 불편함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지미는 “남성에게만 ‘남성성’이 연결되고 발견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반기를 들고, 여성에게도 얼마든지 ‘남성성’이 수월하게 연결될 수 있으며 발견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레즈비언이 좋아하는 ‘남성성’은 남성과 연결되지 않는 여성의 ‘남성성’”이며, “레즈비언이 좋아하는 케이팝 남돌의 남성성은, 여성의 ‘남성성’인 부치니스에 더 가깝다”는 주장이다. 레즈비언이 남돌을 욕망하는 건, ‘남성’을 욕망하는 것과 분명 차이가 있다는 것.
지미는 이것이 “지극히 레즈비언적인 욕망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후조시 문화를 연구하며 ‘남성성을 가지고 노는 것은 레즈비언 실천’이라고 한 퀴어문예창작집단 ‘물체주머니’의 해석에 동의한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화분시점의 즐거움, 정말인가요?” 일다 2017년 5월 25일자)
레즈비언의 세계를 조금 더 풍성하게
그러나 남돌을 좋아하는 레즈비언의 욕망과 실천은 여전히 커뮤니티 내에서 경계의 대상이 된다. 말하자면 ‘정상적 레즈비언’에서 탈락되는 거다. 지미는 이렇게 “서로의 진정성에 집착하며 정상성을 욕망”하지 말고, 이 실천을 “조금 더 퀴어하게 해석해보자”고 제안했다.
“애슐리 마델은 책 <LGBT+ 첫걸음>(팀 이르다 옮김, 봄알람, 2017)에서 레즈비언을 이렇게 정의했다. ‘레즈비언은 흔히 다른 여성에게 끌리는 여성을 지칭한다. 그러나 스스로가 여성(womanhood)과 관련되어 있다고 느끼며 여성에게 끌리는 논바이너리(non-binary) 혹은 젠더퀴어(genderqueer)인 사람들 또한 이 용어로 스스로를 정체화한다.’”
지미는 “시스젠더 여성,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등의 규정을 넘어, 스스로가 여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이 설명을 다시 한 번 넓힌다면, ‘여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여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끌린다면 그것 또한 레즈비언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더불어 지미는 “무시되고 배제되어 왔던, 이러한 수많은 퀴어한 욕망들에 대하여 더 주목해 보는 일”에 관심을 가져보자고 제안했다. “레즈비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괴상하고 이상한 욕망을 가진 여성들. 나는 이런 여성들을 우리 레즈비언 문화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세계를 더 풍성하게 만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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