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젠더의 경계를 넘어라

<2020퀴어돌로지>⑤ 팬덤이 아이돌을 젠더퀴어하게 만든다?!

박주연 | 기사입력 2020/08/10 [18:28]

케이팝, 젠더의 경계를 넘어라

<2020퀴어돌로지>⑤ 팬덤이 아이돌을 젠더퀴어하게 만든다?!

박주연 | 입력 : 2020/08/10 [18:28]

몇 년 전, 남성아이돌 그룹 샤이니 멤버인 태민의 솔로곡 “Move”(무브)가 공개되었을 때를 기억하는가? 아마도 퀴어 ‘케이팝 처돌이’라면 그 때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태민의 춤과 움직임, 그의 신체가 내뿜는 에너지는 완전히 남성의 것이라고 하기 어려웠고, 그렇다고 해서 여성의 것도 아니었다. 어딘가 경계에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또한 케이팝 내 대표 ‘톰보이’로 꼽히는, 여성아이돌 그룹 f(x) 멤버인 엠버의 솔로곡 “Borders”(보더스)는 가사를 통해, 두려워하지 말고 Borders(‘경계’ 혹은 ‘한계’)를 넘으라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던진다. 

 

▲ 엠버 솔로곡 Borders 뮤직비디오 중   ©출처: https://youtu.be/bNT-zFJKifI


케이팝의 ‘젠더퀴어한’ 이미지는 케이팝 산업의 변화 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아직 이에 대한 해석과 논의는 많지 않다. (관련 기사: 케이팝과 퀴어가 무슨 관계냐고요?, 일다 2020년 6월 28일자 http://ildaro.com/8770)

 

아트콜렉티브 서울퀴어세제션이 주최한 행사 <2020 퀴어돌로지>의 세 번째 세미나는 8월 1일 “케이팝의 젠더퀴어한 신체, 이미지, 수행”을 주제로 열렸다.

 

세미나 기획자이며 서울퀴어세제션 멤버인 연혜원 씨는 “기존에 우리가 이분법적 틀 안에서 이해하던 젠더를 분석적으로 해체하고,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서 새롭게 의미를 부여해 보자는 의미로 젠더퀴어한 몸의 이미지를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했다.

 

젠더퀴어라고 하면 보통 ‘성별 이분법을 벗어난 사람, 여성과 남성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여성과 남성에 모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나 연혜원 씨의 발제에서는 ‘젠더교란적인, 젠더 경계를 흩트리는’의 의미로 쓰였다.

 

남성아이돌과 비(非)남성 팬덤의 ‘젠더 위계’ 역전 현상

 

“케이팝은 가사와 춤뿐만 아니라 패션 그리고 아이돌그룹 멤버 간의 다양한 관계성이 드러나면서, 장르를 넘어서 ‘매체’로써 기능하고 있다. 이런 매체적 특성을 통해 케이팝은 젠더퀴어한 이미지를, 복잡한 맥락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도 보다 효과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

 

이렇게 설명하며 연혜원 씨는 “케이팝은 이미지 산업인 동시에 섹슈얼리티 산업이라는 점에서, 케이팝에서 팬덤과 아이돌은 필연적으로 섹슈얼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고 짚었다.

 

그런 점에서 케이팝 산업은 다분히 성별 이분법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케이팝 산업이 10, 20대 여성층을 타겟팅하면서, 이들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 흔히 말하는 ‘미소년’, ‘소년미’를 강조하고 (남성아이돌의) 이미지에서 ‘마초성’을 소거해나가기 시작했다.”

 

▲ 8월 1일 <퀴어돌로지> 마지막 세미나가 “케이팝의 젠더퀴어한 신체, 이미지, 수행”을 주제로 서울시NPO지원센터 1층 대강당에서 열렸다. 서울퀴어세제션이 주최하고 서울문화재단 후원으로 열린 행사에서, 연혜원 씨가 “케이팝의 젠더 허물기: 팬덤은 어떻게 아이돌을 젠더퀴어하게 만드는가”에 관해 발제하는 모습.


또한 “비(非)남성 팬들이 주요 소비자라는 권력을 쥐게 되고, 남성의 기호였던 ‘능동성’을 획득”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남성아이돌은 그런 소비자를 만족시켜주기 위한 대상이 됨으로써 기존의 젠더 위계가 역전된 산업구조가 형성”된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연혜원 씨는 “여성의 대상이 된 남성은 기존의 남성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었던 마초성을 제거해나가고 오히려 ‘무해함’을 내세우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남성이 아닌 존재’가 된 측면”을 주목했다. “이렇게 되면서 케이팝 시장이 원래 타겟으로 하고 있었던 걸 넘어서서, 레즈비언의 욕망과 젠더퀴어의 욕망까지 재현하게 되는 파급력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최근엔 남성아이돌에게도 화장을 하는 것이 어필 요소로 작동하며 팬들이 ‘제모’에 집착하는 경향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화장과 제모 모두 남성아이돌에게 의무사항”이 되었고, 그만큼 “남성아이돌은 사회적으로 ‘남성성’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미지와는 멀어지고 있”다.

 

“샤이니의 ‘View’(뷰) 뮤직비디오나 태민의 ‘Move’(무브) 뮤직비디오에서는 이 남성아이돌이 여성의 시선에 머무는 존재로 대상화”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카메라/관객의 시선 주체가 남성이라는 인식을 깨뜨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렇듯 남성아이돌이 팬덤을 위해 “전략적으로 대상화되고 상대의 능동적인 욕망에 내맡겨진 대상을 연기하는 몸짓을 선보일 때, 이런 이미지는 ‘남성성의 균열’을 보여준다. 또한 이 같은 남성아이돌의 이미지를 더 이상 ‘남성’이라는 젠더로 한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연혜원 씨는 이처럼 “남성아이돌과 팬덤의 젠더퀴어한 ‘관계’ 속에서 젠더퀴어한 이미지가 생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성아이돌에게서 젠더퀴어한 이미지 찾기

 

하지만 연혜원 씨는 “이런 젠더퀴어한 이미지가 남성아이돌에게 보편화되고 있는 반면, 여성아이돌에게는 매우 드물게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여성아이돌의 팬덤은 당연히 ‘남성’일거라는 통념 속에서, 여성아이돌의 ‘남성성’은 적극적으로 재생산되지 못하고 있다.”

 

데뷔한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케이팝의 (거의 유일한) ‘톰보이’로 에프엑스의 엠버가 소환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점이다. 최근엔 공원소녀의 미야도 그 계보의 한 명으로 불리고 있지만, 겨우 한 손에 꼽을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말 드물게 남성성을 드러내는 여성가수들이 있지만, 언제나 이들에겐 ‘머리는 언제 기를 것이냐’, ‘이상형(남자)은 누구냐’ 등의 질문이 따라다닌다. 사회는 이들을 ‘지금은 톰보이지만 언젠가는 ‘여성’이 될 미성숙한 존재’로 해석하는데 그쳐왔다.”

 

▲ 올해 발표된 마마무 멤버 문별의 솔로곡 “Eclipse”(달이 태양을 가릴 때)에선 흔히 남성아이돌에게 볼 수 있는 퍼포먼스와 이미지를 보여준다. “너를 지킬 Moonstar”(문별은 문스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라는 가사도 이러한 메시지를 던진다.   ©출처: https://youtu.be/oCTqcTe1lIA


연 씨는 ‘짧은 머리’로 대표되는 외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전유물과 같은 ‘너(여성)를 구해준다’라는 구원서사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남성성’을 드러내는 마마무의 문별에 대한 해석도 덧붙였다.

 

“그런 구원서사를 표현할 때, 남성아이돌의 퍼포먼스 핵심을 이루는 것 중 하나가 소위 ‘꾸러기’ 표정이다. 이 꾸러기라는 건, 쿨한 반항기를 내포하는 악동 같은 성격을 재현하는 것으로 이 같은 반사회적인 기질은 남성이 독식해오다시피 했다. 동시에 남성아이돌이 구현하는 꾸러기는, 아무리 반항기를 보여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 표현 양식으로 과잉된 자의식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문별은 이 ‘꾸러기’ 표현 양식을 전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남성성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문별이 자신의 방식대로 남성성을 전유하고 있다는 해석인데, 그동안 대중문화가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언니부대’ 이끈 한국의 여성가수

 

사실 지금은 겨우 한 손에 꼽을 정도지만, 한국 대중가요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톰보이’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으며 이들의 역사가 분명 존재하고 이를 다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는 “어떤 ‘전형성’을 벗어난 존재들이 어떻게 나타나고 어떻게 사라졌으며, 당시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를 돌이켜보며 우리가 놓친 해석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전형적 여성성’을 벗어난 여성 가수의 계보로 “안경을 쓴 가수”, “톰보이 스타일의 가수”, “퀴어함이 드러났던 가수”로 분류해 설명을 이어갔다. 안경을 쓴 가수는 전영-박은옥-신형원-이선희-황소윤(밴드 새소년), 톰보이 스타일의 가수는 이선희-이상은-임주연-이정희(그룹 유피)-카사 앤 노바(여성듀오)-엠버(에프엑스)-미야(공원소녀), 그리고 퀴어함이 드러났던 가수는 윤시내-박경서(그룹 미스미스터)-리아-마야-서문탁-춘자-황소윤을 꼽았다.

 

안경을 쓰면 ‘여성스럽지 않고, 예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버릇없어 보이거나, 너무 똑똑해 보인다’ 등등의 이유로, 매스컴에서 안경 쓴 여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최근에 숏커트를 한 여성가수를 보는 건 정말 드문 일이 되었다. 

 

▲ 1991년 KBS <젊음의 행진>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가수 이상은, 김완선, 이선희, 변진섭(왼쪽부터) 무대. 놀랍게도(?) 네 사람 다 숏커트 머리 스타일이다.  ©출처: https://youtu.be/O7UZakTzgI8


그런 지점에서 이선희는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한채윤 이사는 “1980년대부터 이선희가 바지를 입고, 화장을 하지 않고, 안경을 썼다는 건 어떤 의미이며, 이 스타일을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회가 이선희에게 ‘여성다움’을 강요했던 것과, 한편으로 이선희를 ‘성인이 되지 않은, 소년 혹은 소녀의 이미지’로 읽어내고자 했던 방식에 대해서도 말이다.

 

케이팝에서 남성아이돌과 비남성팬덤의 관계가 젠더 위계를 전복하는 측면에서 흥미롭다면, 당시 가요계에서 이선희와 여성팬들의 ‘관계’도 흥미롭다. “이선희는 여성팬과 여덕을 양성하고 ‘언니부대’를 이끈 장본인”으로 유명하다. 여성은 당연히 남성 스타를 좋아할 것이라는 전제를 깨고, 많은 여성 팬들이 이선희에게 열광했는데, 한채윤 씨는 이를 ‘젠더퀴어한’ 장면으로 다시 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여성성’의 경계에 의문을 갖자

 

과거 한국가요계에 등장했던 여성가수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오히려 현재의 ‘여성성’에 의문을 갖게 된다. 왜 지금은 이런 다양한 모습을 보기가 더 힘든 걸까? 한채윤 이사도 “사실 1980년대와 1990년대 숏커트 스타일의 여성 가수는 많았다”고 말했다.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들의 머리카락 길이는 성별 혼란을 가져오지도 않았고, 대중으로부터 거부당하지도 않았다.” 한채윤 씨는 지금과의 차이는 과연 무엇인지 질문을 던졌다.

 

또한 “톰보이의 계보가 끊어질 듯 하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긴 하지만, 누군가 한 명이 그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걸그룹에서 '보이쉬’ 컨셉 혹은 ‘톰보이’는 왜 늘 한 명인 건가에 대해서다.

 

한채윤 이사는 무엇보다 “남성만이 남성성에 연결되고 여성만이 여성성에 연결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남성성’에 대해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발제문 제목에 ‘여성성의 거부인가, 여성성의 확장인가’라는 말을 썼지만 사실 둘 다 아니다. 사회가 정해놓은 성역할을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여성성의 거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여성성 자체를 비하하거나 버린다는 얘기가 아니다. 여성성이 정말 그래야 하는 것인가? 여성성의 확장이라는 표현도 우리의 상상력을 넓히자는 말이다. 여성성은 늘 확장되어 있었지, 부족하거나 편협하지 않았다.”

 

<2020 퀴어돌로지>에서는 세 번의 세미나를 통해 케이팝과 남성성, 여성성, 퀴어니스, 트랜스서사, 젠더퀴어함 등이 논의되었다. “어떻게 해석을 확장해내고,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며, 자신의 위치를 새롭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인가”는 퀴어팬덤의 몫으로 남았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이러한 논의가 지속되고 새로운 담론을 만들며 변화를 불러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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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monade 2020/08/14 [15:13] 수정 | 삭제
  • 맞아, 젠더 경계를 좀 흐릿하게 해줘~ 젠더 이분법 짜증나. 촌스러워.
  • 독자 2020/08/11 [13:31] 수정 | 삭제
  • 기사 읽다가 뮤비보느라 정신없었넹. 재밌게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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