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공백으로 남은 재일(在日)여성 서사를 찾아서

새로운 연결과 장소를 기다리는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②

신지영 | 기사입력 2020/11/22 [20:28]

해방 후, 공백으로 남은 재일(在日)여성 서사를 찾아서

새로운 연결과 장소를 기다리는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②

신지영 | 입력 : 2020/11/22 [20:28]

※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 발굴한 여성의 역사. 이 연재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정신대, 위안부, 매춘부…여성을 속박하고 단절시킨 ‘공동체’

 

공동체 없이 살 수 없지만 공동체가 자신을 죽일 수 있음을, 집 없이 살 수 없지만 집이 자신을 죽일 수 있음을, 더 나아가 그/녀들이 속한 공동체나 집이 그/녀들 사이를 얼마나 깊이 단절시키는지를,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만큼 잘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그러므로 그/녀들은 공동체와 집 깊숙한 곳에서, 그 어둠의 깊이만큼 간절하게 떠나기를 갈망한다. 그것은 떠남에 대한 갈망이자 또 다른 공동체에 대한 열망을 향해 열려 있다.

 

먼저, 떠나오고 싶은 ‘공동체’가 그/녀들에게 부여한 단절을 살펴보자. 나이가 들어 겨우 총련 혹은 민단의 야간학교에서 글을 배우고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거나 구술하거나 쓰는 그/녀들의 말·글은, 떠나오고 싶었던 공동체의 규범과 권력의 경계를 따라 단절된다.

 

일본 가와사키에서 30년간 재일조선인 여성 및 재일외국인 권리를 위한 활동을 해온 야마다 다카오는 이렇게 말한다. “이분들이(재일여성이) 많이 하는 말이 있는데 ‘도둑질과 매춘 말고는 뭐든지 했다’고 한다.”(권숙인, 「일하고 일하고 또 일했어요.: 재일한인 1세 여성의 노동 경험과 그 의미」, 『재일 한인 1세들의 공간, 노동, 젠더: 일과 생활세계』, 김백영, 정진성, 권숙인 지음, 한울, 2020년, 179쪽) 뭐든지 했다고 할 때 떨어져 내리는 존재의 느낌이 ‘도둑질과 매춘 말고는’이라는 말로 가까스로 부상하지만, 그 순간 다시금 떨어져 내리는 ‘도둑년과 매춘부’가 있다.

 

근로정신대(조선여자근로정신대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동원된 태평양전쟁 지원 조직으로, 일제점령기 주로 군수공장에서 일한 여성들을 칭함)로 1944년 5월 아이치현 미쓰비시 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로 강제동원되었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박해옥은, 격앙된 목소리와 몸짓으로 이렇게 말한다.(이 부분은 읽히기보다 들린다).

 

“우리 정신대원들은. 그러니까 위안부가 아니여요. (테이블을 두드리고 목소리가 커지며) 위안부들은 정신대를 붙일 수가 없어요. 종군위안부지, 우리는 근로정신대라는 것이 그것밖에 정신대가 없었어요. 그 당시에는. 근로정신대. 정신대 한문이 몸을 바치라는 것인데, 천황폐하에 몸을 바쳐서 일해라, 그 뜻이에요. 그러는데 그거를 엄한 데다 붙여가지고.”(「우리 근로정신대는 그러니까 위안부가 아니여요」, 『조선여자근로정신대, 그 경험과 기억』,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2008년, 145쪽)

 

재일조선인 여성은 도둑년이나 ‘매춘부’와 구별되려고 하고, 근로정신대 여성은 ‘위안부’와 구별되려고 한다면, 그 반대는 없을까? 아니다. 이용수는 지난 5월에 있었던 제2차 기자회견에서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하고 위안부, 아주 더럽고 듣기 싫은 위안부하고는 많이 다릅니다”라고 말한다.(강재구 기자, 「[전문] 이용수 할머니 2차 기자회견문 “그동안 일궈온 투쟁 성과 훼손되면 안된다”」, 한겨레, 2020년 5월 25일자)

 

초기에 ‘위안부’라는 용어 대신 ‘근로정신대’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생긴 혼동이지만, 두 용어 모두 식민주의 권력을 미화하는 외부에서 주어진 말이란 점에서 그/녀들의 경험을 표현할 수 없다.(박정애, 「전시성폭력피해자를 위한 언어는 없다」, 주간경향 1380호, 2020년 6월 8일자) 그런데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당사자가 스스로를 “아주 더럽고 듣기 싫은 위안부”라고 일컬음으로써, 즉 스스로를 하대함으로써만 정체화하는 것이 가능한 상태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용수의 기자회견은 위안부의 말·글을 듣고 표현할 ‘여성들의 말·글’에서 시작되는 공통장을 요청한다.

 

물론 정신대 여성과 ‘위안부’를 섬세하게 구별하는 것은, 제국주의 전쟁에서 식민화된 성노예 제도 및 현재까지 지속되는 전시 성폭력의 책임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 중요하다. 그러나 이 용어들은 내재적이라기보다 외재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뿌리 깊은 가부장제는 ‘위안부’의 경험을 수치심으로 만들고, 국민국가는 ‘위안부’를 한국의 피해로 포섭하며, 그/녀들 사이를 갈라놓는다. 재일조선인 여성은 도둑년이나 ‘매춘부’가 아니(어야 하)며, 근로정신대는 ‘위안부’가 아니(어야 하)며, ‘위안부’는 미군 기지촌 여성이 아니(어야 할) 때, 이 각각의 여성들은 만날 수 없다.

 

국가주의, 자본주의, 식민주의, 가부장제, 제국주의 속에서 ‘여성’이 살기 위해 속해야 했던 공동체가, ‘여성들’을 속박하고 단절시키고 있음을, 그/녀들의 말·글을 통해 아프게 깨닫는다.

 

불가능한 ‘해방’과 ‘전후’: 여성노동의 ‘반복된 겹쳐짐’

 

그러나 이 단절은 적어도 ‘여성’들의 현실과 다르다. 여성의 노동이나 삶의 상태는 단절적이지 않다. 구술 증언집을 보면, 정신대로 갔다가 위안부가 되거나, 위안부로 있으면서 정신대가 하는 노동을 하며, ‘해방 후/전후’에는 파출부, 매춘, 막노동 등이 이어진다. 특히 재일조선여성의 말·글은 이런 반복된 겹쳐짐을 국가와 ‘불화’하는 형태로 마주하게 한다.

 

1975년 영주권 신청 과정에서 위안부였음을 드러내야 했던 오키나와의 배봉기는, ‘우리’에게 김학순보다 먼저 증언한 ‘위안부’로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오세종에 따르면 배봉기는 먼저 ‘정신대’로 갔다가 다시 위안부로 강제동원되었다.(오세종 지음, 손지연 옮김, 『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 소명출판, 2019년, 266쪽)

 

또한 1910~1920년경 일본의 조선요리집으로 집안 빚에 팔려오거나 속아서 온 조선여성은 잡일뿐 아니라 매춘을 해야 했고, 조선요리집은 ‘조선유곽’, ‘반카페’, ‘조선빠’, ‘삐야’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조선 요리점·산업 ‘위안부’와 조선의 여성들-묻힌 기억에 빛을>, 고려박물관 2017년 기획전 2017년 8월 30일~12월 28일, 2쪽) 1942년 이후 탄광으로 강제동원된 조선인을 상대로 하는 산업위안소가 탄광 주변에 생기자, 조선요리집의 그/녀들은 산업위안부가 되거나(관련 기사: 신지영, 「강제동원 역사에서 ‘보이지 않았던 여성’들을 찾아서」, 일다, 2019년 9월 4일자 http://ildaro.com/8541) 정신대가 되었다.(가와다 후미코 지음, 오근영 옮김, 『빨간 기와집』, 꿈교출판사, 2014년, 65쪽)

 

그/녀들이 처했던 여러 상태의 겹쳐짐과 반복을 볼 때, 한 여성의 경험은 하나의 명명으로 대표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출판된 구술·증언집이 ‘위안부’ 혹은 ‘근로정신대’ 등의 제목을 달고 있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었으나 한계도 지닌다. 반면 재일조선인 여성의 구술·증언집은 식민지 시기 및 태평양 전쟁기를 관통해 온 다양한 ‘여성’의 상태를 한데 묶는다. 또한 ‘재일조선인’이라는 아이덴티티가 형성된 ‘전후’의 삶에 초점이 찍혀 있어, 보다 적극적으로 생애 전체를 포괄한다.

 

재일여성 1세의 구술·증언집은 여러 형태가 있지만, 2014년에 일본에서 출판되고 2016년인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한국에 번역된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식민지 전쟁 시대를 살아낸 할머니들의 노래)』(가와다 후미코 저, 안해룡 외 1명 역, 바다출판사, 2016년)를 살펴보자.

 

▲ 가와다 후미코,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 한국어판(2016), 일본판(2014)

 

이 책은 가와다 후미코가 2012년 6월부터 잡지 『세카이』에 연재한 ‘할머니의 노래’를 묶은 것이다. 가와다 후미코는 배봉기와 송신도와의 만남을 통해 “일본군 성폭력 문제”를 필생의 작업으로 삼게 되었으며, 나아가 “다른 재일 여성들이 어떤 인생을 걸어왔는지 알고 싶어졌다”고 집필 동기를 적고 있다.(가와다/11쪽)

 

“음식을 제공받는 정도이거나, 임금이 지급된다 해도 극히 낮은 임금 조건에서 어린 나이부터 노동을 시작했기에, 재일 할머니들은 전쟁 전부터 여성 노동자의 선구자였다. 할머니들은 언제나 일을 하고 있었다. -중략- 새처럼 불안정한 상태에서 일을 해왔으며 때론 자영을 하기도 했다.”(가와다/14~16쪽)

 

‘재일 할머니’라는 호명, 구술과 증언에 가해진 편집 등을 볼 때, 이 책은 비판적인 분석을 요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은 근로정신대, 위안부, 재일조선인의 아내, 한센병 여성, 빈곤여성 등 다양한 상태의 재일여성의 노동과 삶이 “새처럼” 불안정한 상태로 겹쳐지고 반복되는 양상을 생애 전반에 걸쳐 증언한다.

 

재일여성인 송신도의 구술을 바탕으로 한 「전쟁도 쓰나미도 삶을 빼앗지는 못해」를 보자. 송신도는 열여섯 살인 1938년에 끌려가 중국의 여러 위안소를 전전하며 성적 착취 이외에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군대 전체가 작전 수행을 하러 가면 “철모 쓰고 여자 둘이 한 조가 되어 보초”를 서거나, “피로 얼룩진 전투복을 빨 물”을 찾아 세탁을 했다.(가와다-송신도/245~246쪽)

 

성폭력과 강간, 재생산 노동, 군속 역할에 더해, 송신도는 5번의 임신 경험을 갖고 있다. 몇 번은 낙태를 했고, 태어난 아이는 기를 수 없어 주변 마을의 조선 여성에게 맡기기도 한다.(가와다-송신도/242~243) 위안부로서의 시간은 성노예 경험으로만 수렴될 수 없는 한 존재의 몸과 마음 전체를 ‘전유’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제이슨 S. 무어 저, 김효진 옮김,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 갈무리, 2020년, 100~101쪽) 삶 전체를 ‘전유’당한 여성 신체 위에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전쟁과 자본주의는 작동했다.

 

‘해방/전후’라고 해서 다를 리 없다. 성착취와 노동착취가 겹겹이 삶을 저당잡고 있는 상황은 여전하여, 식민지기인지 해방 후인지 일본인지 한국인지 헷갈린다. 그녀들의 불가능한 ‘해방/전후’를 잠시 엿보자. 해방 직후 송신도는 일본군인 이다 킨사쿠의 꾐으로 ‘혼인임시증명서’를 받아 일본 본토로 오지만, 도착한 즉시 버려진다.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그녀를 재일조선인이 많은 오사카 쓰루하시에 버리며 이다가 한 말, “진주한 미군의 매춘부라도 해”는 해방되지도 전쟁 이후의 삶을 맞지도 못하는 그/녀들의 상태를 역설한다.(가와다-송신도/246~247쪽)

 

송신도는 장화공장에서 번 돈으로 이다를 찾아가지만, 다시 강간당하고 짐은 도둑맞아, 절망 끝에 자살을 시도한다. 겨우 목숨을 건진 송신도는 조선인 하재은의 함바에서 밥하며 함께 살지만, 그 삶은 다시 온갖 노동으로 채워진다. 돌 깨는 막노동, 땔나무, 막걸리 제조, 통조림 공장일, 바지락과 미역 채집, 텃밭 채소 장사 등이다.(가와다-송신도/248쪽)

 

해방과 전쟁 이후를 맞이할 수 없었다는 점은, 위안부나 정신대의 직접적인 경험이 없는 재일여성 1세의 삶과도 비슷하다. 재일조선인 여성 1세 43명의 노동을 연구한 권숙인은 그 특징을 이렇게 정리한다.(「일하고 일하고 또 일했어요」) 가사노동 외에 가족부양 노동을 한다. 남편이 재일조선인 단체 일로 바쁘거나, 병에 걸리거나, 술·노름·여자에 빠진 경우다. 7-8살 때 아이 돌보기 등으로 시작해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평생 이어진다. 분류 불가능한 온갖 종류의 노동을 한다. 남의집살이, 막걸리 소주 엿 만들어 팔기, 가축사육, 넝마주이, 고물상, 함바 일, 행상, 술집, 식당, 사금 채취, 새끼줄 장사, 분뇨처리, 재봉과 수선, 김치가게, 신발 제조, 양복일, 한복 만들기, 하숙, 고철, 파친코, 공장노동, 탄광일….

 

특히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에 수록된 재일조선 여성의 노동은, 조선인에게 높은 발병율을 보인 한센병과 히로시마 피폭 경험이, 한일 양쪽에서 겪은 민족차별과 섞여 있어, 그/녀들의 고통을 ‘한국’의 피해로 환원할 수 없게 한다.

 

송신도, 윤순만, 강덕경, 김복동…겹쳐지는 무수한 그/녀들

 

재일조선인 여성 1세의 말·글을 읽은 감각을 갖고, 한국에서 출간된 위안부 및 정신대 구술 증언집을 다시 보자.

 

위안부 증언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시리즈 중에서도 2000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의 경험을 배경으로 한 4권은, 증언을 편집하지 않고, 욕설이나 사투리까지 그대로 옮겼다. 또한 증언자와 녹취자의 관계가 나타나 있다는 점에서,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의 풍부함을 볼 수 있다.

 

윤순만은 1941년 13살이던 때 고모와 함께 규슈 하카다의 수용소로 끌려가고 나이가 어려 방직회사에서 강제노동을 하다가, 1943년인 15살 때 히로시마 근처 위안소로 가게 된다. 해방 뒤에는 부산에서 남의집살이를 하다가 결혼하고 아들딸을 낳지만, 남편 사망 후 정신이상이 되었다가 치유된다.(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00년 일본군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한국위원회 증언팀,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4: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 풀빛, 2001년. 이하 인용은 (증언-구술자명/쪽)으로 표시.)

 

김복동은 위안소 생활을 증언하면서 “군인들 안 올 때는, 안 올 때는, 빨래, 양말, 군인들 거, 내복(산 모양을 만들며) 이렇게 갔다 놔요. 대나무 통에다가. 그거 하구, 빨래, 빨래 뭐 이렇게 한 통씩 가져와. 빨래하고, 부대 옆에 부대 옆에만 따라다니잖아. 부대가 이동하면 다 따라가고 그랬는데.”(증언-김복동/245쪽)라고 말해, 위안소에서 강제노동도 이뤄졌음을 증명한다.

 

이처럼 송신도의 삶은 윤순만의 삶으로, 다시 강덕경의 삶으로, 김복동의 삶으로, 그리고 재일조선 여성 1세의 삶으로 또 무수한 그/녀들의 삶으로 포개진다. 여성들이 처해 있는 각 상태의 차이가 있지만, 동시에 선명해지는 것은 삶 전체를 전유당한 존재들의 겹쳐지고 반복된 성적 착취와 노동의 경험이다. 어떻게 하면 이 각 상태의 차이를 무화시키거나 고통의 무게를 비교하지 않으면서, 자기서사 공통장이라는 장소를 발명해 낼 수 있을까?

 

노래와 환상들, 동물들이 출현하는 ‘자기서사 공통장’

 

그/녀들이 생존을 위해 속했던 공동체가 그/녀들의 말·글을 단절시켰다면,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는 그/녀들의 삶이 겹쳐지고 반복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다. 더 나아가 그/녀들의 말·글을 듣고 쓰고 출판하고 번역하는 관계도 담고 있다.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는 가와다 후미코와 재일조선인 여성과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며,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은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을 만든 전지구적 여성 연대를 기반으로 한다.

 

▲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며 도쿄 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한 재일여성 ‘위안부’ 경험자 송신도와 지원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안해룡 감독, 2009) 중에서.

 

송신도는 1993년 4월 5일,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는 소송을 도쿄 지방재판소에 제기한 유일한 재일여성 ‘위안부’ 경험자이다. 가와다는 「전쟁도 쓰나미도…」에서 다큐멘터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안해룡 감독, 2009)에 찍힌 고등법원 판결 이후 집회를 언급한다. 청구가 기각된 판결 결과로 모든 사람들이 침통해 있을 때, 갑자기 송신도는 “노래 한 곡 할래”하며 즉흥 노래를 한다. “나는야 에헤- 진 재판 괜찮아 좋아 그렇지만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으니…”

 

가와다는 송신도의 노래에 맞춰 하나둘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침울한 분위기가 밝아졌다고 하면서 “노래를 불러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고 믿었음이 분명하다”고 쓴다. 가와다의 해석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지만, 당사자(송신도)가 지원자에게 기대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당사자가 열어젖힌 공통장에서 위로를 받는 지원자들의 모습을 본다.

 

윤순만의 증언을 기록한 경험을 적은 김수진과 양현아의 「우리가 보고 듣고 이해한 윤순만」에는 증언하는 윤순만의 신체 상태나 언어표현이 자세히 적혀 있다. 윤순만은 “분명하고 장단이 있으며 재미있”게 몸 전체를 움직이면서 말했고, 증언 전체에 “강한 행위성”과 “신비한 힘” 혹은 “설화구조”가 느껴진다는 것이다.(증언-윤순만/237쪽) 특히 이 글의 압권은 윤순만이 자신의 증언을 번복하거나 흔들리는 지점까지 솔직히 적은 부분이다.

 

‘정신없이 끌려갔다고 해서 정신대여.’라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 그녀는 ‘팔 이렇게 된 사람은 나 하나뿐’일 뿐 아니라 ‘그런 데(위안소)’를 가지 않았다고도 말씀한다. -중략- 이러한 마음의 동요는 윤순만 할머니 개인의 것만은 아니며, 또한 그것을 단순히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적 역사적 지평을 넘어 할머니와 생애는 할머니만의 영혼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이러한 집합적이지만 개성적인 할머니의 목소리를 이 증언에 담아내고자 했다. 거기에 우리 면접자의 목소리가 용해되었다면 좋겠다.(증언-윤순만/239쪽)

 

이 언급은 위안부 증언에 대한 온갖 상식들과 불화한다. 위안부 증언은 법적 증언으로 효력을 가지기 위해 ‘사실’만이어야 한다든가, 일관된 진술이 유지되어야 한다든가, 당사자 구술에 녹취자 의견은 완전히 배제되어야 한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사투리와 욕까지 그대로 살린 모순되고 변화하는 윤순만의 증언 뒤에 붙은 이 후기는 ‘증언을 듣는 자의 증언’, 즉 또 하나의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다. 그리고 이 글은 독자들에게 다시금 증언자가 되길 요청하며 자기서사 공통장의 확장을 예감한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 내부에서 환상과 비인간 존재들이 출몰하며 또 다른 내적 공통장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하나는, 사실에 기반한 일인칭 말·글이어야 할 ‘자기서사’에 갑자기 끼어드는 ‘환상’이다! 윤순만은 삶이 고달파 못에 빠져 죽으려는 순간, 물속에서 솟아오르는 시커먼 소를 만나 죽음을 면한다.

 

“실컨 울구서루 빠져 죽을라구, 가서 다리를 이렇게 걸치고 앉아 실컨 퍼대리고 앉아서 울구서루, 이렇게 빠져 죽을라고 들어갈라 카니까, 시커먼 소가, 내 눈에요, 물에요, 시커먼 소가요, 막 뻐-삭 솟아올라요, 꺼먹 소가. 꺼먹 소가 머-삭 솟아올르면서, ‘순만아---.’ 그래요, 꺼먹 소가. 그 꺼먹 소가 뻐썩 솟아올르는데 그러니까 그만 놀래가지고 뒤로 버쩍 자빠졌어. 자빠져 가지고 마-악 자갈밭을 기어가지고 얼마를 도망질을 해가지고 갔어요.”(증언-윤순만/203쪽)

 

다른 하나는,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에 끼어든 비인간 동물들이다! 송신도는 해변에서 바지락이나 미역을 채집해 팔 때를 회상한다. “갈매기 녀석들이 가가 소리를 내. 내 바구니만 따라다녀. 오늘도 또 왔네 하는 것처럼. 에- 에, 에-에 거리면서. 귀여워, 그 갈매기들. 살아 있는 바지락을 먹어.”(가와다-송신도/248쪽)

 

2011년 동일본 대지지·쓰나미·원전 사고 당시 동북지방에 거주하던 송신도는 재난을 피해 도망칠 때 애견 마리꼬와 꼭 붙어 있다. 송신자는 대피소에 동물을 데려왔다고 비난하는 남자에게 “동물이지만 심장이 멈추지 않았으면 살아있는 생명이야”라고 대들고, 피난소 밖에 머물러야 하는 마리꼬를 보며 눈물 흘린다.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 깊이에서 반짝이는 환상과 비인간을 만나면서, 비로소 ‘공백’이라는 말이 공허하지 않다. 몸과 삶을 거대한 것들에 전유당한 그/녀들의 말·글은, 기존 역사에 기입되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부’한다. 그/녀들의 생애는 해방, 한국전쟁, 재난 등의 거대 역사에 ‘공백’으로 남아 있지만, 그 공백 속에서 자라난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는 죽음의 고통을 걷어차는 환상과 인간종의 폭력을 넘어선 비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역사를 기입하는 다른 말·글을 보여준다. 자살을 막아준 시커먼 소의 압도적인 등장, 살기 위해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 들린 에-에, 에-에 하는 갈매기의 소리로 말이다.

 

다시 김삼순의 말·글로 돌아가 보자. 이것은 어떤 언어로 쓰여졌을까? 이 책이 일본 로쿠인쇼보에서 출판된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이 글의 원본은 한글이다. 따라서 여러 상식들과 불화한다. 재일조선인 문학은 일본어일 것이며, 한국어 텍스트는 한국에서 출판되었을 것이고, 하나의 글이 하나의 언어로만 되어 있을 것이라는 상식 등 말이다.

 

두 국가어 사이의 교환과정으로 이해되어 버린 ‘번역’은, 한국어도 일본어도 문어도 구어도 환상도 사실도 어쩌면 인간의 언어도 아닌, 그러한 말·글을 상상하지 못한다. 이 공백 사이로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이 끼어든다. 일본어 속에 갑자기 등장하는 ‘어머니, 아버지’라는 한글로 된 의성어, 가족을 지칭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소리와 형태’로 불려지고 쓰여진다는 점에서 이물감을 담은 외마디 소리 말이다.

 

▲ 玄五生, 「글자를 배우고(字をおぼえて)」 (송혜원 편저, 『재일조선여성작품집: 1945~84. 1』 27쪽) ‘어머니, 아버지’만이 한글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 자연스레 입술이 움직여진다.

 

본성으로 회귀하지 않되 공통의 장소를 만드는 것,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은 이러한 연결과 장소와 표현을 기다리며 계속해서 ‘우리’의 ‘상식’과 불화하며 출현 중이다. 현실을 구성하는 환상으로, 인간을 구성하는 비인간으로, 공동체의 속박을 파열시키는 공통장으로.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는 그/녀들이 도망쳐 나와 갈망하는 또 다른 집이다.

 

※이 글은 「트랜스내셔널 여성문학의 공백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로서의 재일조선여성문학」(『여성문학연구』 48호, 한국여성문학학회, 2019년, 87-133쪽) 논문의 일부에서 언급한 소재와 주제를 가져와 전체적으로 새로운 소재를 넣어 구성했다.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의 개념에 대한 보다 심화된 논의는 이 논문에 자세하다.

 

*필자 소개: 신지영. 한국근현대문학과 동아시아근현대문학·사상·역사 전공.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조교수. 「한국 근대의 연설·좌담회 연구」(2010)로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 「비교에 반하여: 1945년 전후의 조선·대만·일본의 접촉사상과 대화적 텍스트」(2018)로 히토쓰바시대학대학원에서 두 번째 박사학위를 받았다. 생성 중인 코뮌 활동에 참여하면서, 1945년 전후 한국과 동아시아의 마이너리티 코뮌의 형성·변화를 이동·접촉의 사건 및 동아시아 기록문학에 초점을 맞춰 연구하고 있다.

 

<난민*현장> 프로젝트 및 <수요평화모임>을 통해 만난 연구활동가들과 함께, 현재의 난민운동과 소수자 운동을 접점을 모색하고 있으며, 이를 다시금 역사 속 동아시아의 난민과 연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不부/在재의 시대』(2012), 『마이너리티 코뮌』(2016), 『동아시아 속 전후일본』(일본어, 공저, 2018), 『난민, 난민화되는 삶』(2020), 『동아시아 혁명의 밤에 한국학의 현재를 묻다』(2020), Pandemic Solidarity(20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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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20/11/29 [09:57] 수정 | 삭제
  • 나도 좀 감동했습니다.. 처음에는 잘 이해를 못했던 글인데 여러번 읽으니까 뜻이 다가오네요.
  • 바람 2020/11/27 [11:32] 수정 | 삭제
  • 비인간동물의 출현 서사는 진짜 생각도 못했는데 충격적인 전개였습니다~~
  • qltwkfn 2020/11/25 [19:31] 수정 | 삭제
  • 감동적이네요. 자기서사에 등장하는 비인간 동물이라니! 새로운 말글 그리고 공통의 장소까지 다양한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 Linus 2020/11/23 [11:02] 수정 | 삭제
  • 오랜만에 독서다운 독서를 한 느낌입니다. 기사 뒷부분 읽을 때 갑자기 눈물이 나서 왜 그럴까 생각하며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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