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성폭력 생존자가 말한다

상처를 드러내는 이유

꽃섬 | 기사입력 2003/11/10 [00:52]

[기고] 성폭력 생존자가 말한다

상처를 드러내는 이유

꽃섬 | 입력 : 2003/11/10 [00:52]
‘그 곳에 가면 성폭력을 이야기한다!’(이하 ‘그 곳에…’)는 성폭력 경험을 자유로이 얘기할 수 있는 자리다. 그 곳은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시간에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해서 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성폭력 생존자들과 성폭력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 자리를 통해 참가자들은 일상 속에서 가져왔던 생각들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 그물로 만들고 있다. 그 그물은 한동안 우리 눈과 귀를 가렸던 편견을 깨고 성폭력에 관한 우리의 깨달음을 하나하나 잡아낸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성폭력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펼쳐내며 그 속에서 우리의 생각을 정리해낸다. 그러면 성폭력에 관한 우리의 무거움은 그 무게를 덜어나갈 수 있으리라.

“나도 그런 공포에 시달렸어요.”

처음 이 모임을 생각하게 된 건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다. 어떤 모임을 준비하기 위한 자리였는데 삼십대 중반이었던 한 언니가 밥을 먹다 불쑥 “난 저렇게 유리로 된 새시문을 보면 금방이라도 뭐가 깨고 들어올 것 같아. 좀 긴장돼”라고 말했다. 같이 밥을 먹던 이들은 별 생각을 다한다며 핀잔을 줬지만, 그 순간 다가오는 어떤 느낌이 나중에 그 언니와 더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실은 나도 한동안 그런 공포에 시달렸던 적이 있어요. 집에 혼자 있을 때 외판원이나 낯선 사람이 와서 ‘계세요?’하고 물으면 숨을 죽이고 마치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예요. 갑자기 심장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느낌도 들고. 사람이 갔다고 판단되면 안심이 되는데 내가 왜 이러나 싶은 거예요. 실은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성폭행을 당했거든요. 그 뒤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아지긴 했는데 한 때는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내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그 언니가 나직이 말했다. “나도 그런 경험 있어. 열다섯인가? 열여섯인가?”, “그래요. 아까 언니가 얘기하는데 느낌이 와 닿더라니…. 그래서 그랬구나!”, “아직 한번도 남한테 얘기한 적 없어. 울 엄마도, 식구들도 아무도 몰라.”, “어머나, 한 이십 년 정도 되가나? 근데도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단 말예요?”, “뭐 그런 일을….” “얘기하고 나면 훨씬 가벼워지고 홀가분해지는데. 그게 내 잘못이 아니잖아요. 근데 마치 죄 지은 것처럼 우리가 말 못하고 살잖아요. 근데 막상 말해 보면 훨씬 나아지던데….”

그 언니와 친분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신뢰가 높은 사이도 아니건만 이십년 가까이 꽁꽁 묶어 두었던 이야기를 내게만 하는 걸 보고, 이건 이 사람이 얘기를 안 하고 싶어서 안 한 게 아니라 얘기를 못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폭력에 관한 진실을 왜곡하는 사회

성폭력 범죄는 100% 가해자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성폭력 생존자로 하여금 이렇게 입을 다물게 만드는 사회, 이게 바로 우리 사회이며, 반드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하지만 사회의 변화는 몹시도 더디기에 피해를 겪어 낸 생존자들이 우선 먼저 자신의 경험을 자유로이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단 생각을 이 언니를 보면서 갖게 됐다.

한편으로 성폭력 생존자 국가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지원하고 있는 ‘성폭력 생존자 국가소송을 지지하는 사람들(이하 ‘지지하는 사람들’)’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밝힌 다른 생존자들과 만나게 됐다. 2000년 경찰청 통계자료에 의하면 1시간 17분당 한 번꼴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고, 여성단체들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성폭력 사건 신고율이 2~3%에 그치는 우리나라. 이런 현실을 감안한다면 얼마나 많은 성폭력 사건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성폭력 생존자들의 생존담을 들어 보면 정말이지 다양한 형태로 성폭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성폭력은 말 그대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사회의 가치와 분위기는 성폭력에 관한 진실을 알 수 없도록 하고 있으며, 무언가 그럴 만한 사유가 있어야 성폭력이 일어나는 것처럼, 그래서 지극히 평범한 여성인 내게는 성폭력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환상을 갖도록 조장한다. 그런 환상 속에 있다가 성폭력을 당하면 자기 모멸감에서 헤어 나오기가 더욱 힘들다. 그래서 더욱 성폭력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 곳에…’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지난 9월부터 ‘지지하는 사람들’의 지지자들과 함께 ‘그 곳에…’를 열어 온 것이 이제 3회를 맞이하고 있다.

무엇을 부끄러워했나

‘그 곳에…’에 참여했던 한 구성원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니 생각이 끊이질 않아서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그게 말이 되어 나와지지 않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며, “왜 내가 말을 못하는지 그 문제에 접근해 보고 싶다” 했다. 그런데 왜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은 말하기를 꺼리는가?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싶은 욕구가 목까지 차올라왔는데 그것이 왜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것일까?

나 또한 성폭행 사건 이후 그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괜히 말했다가 쓸데없는 취급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하고 싶을 때조차 말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 순간, 나는 곤혹스러웠다. 그러다 20대 후반에 한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처음 하게 됐고 후련하단 느낌을 받았다.

내가 몇 번의 ‘드러내기’ 경험을 하고 나서 깨달은 게 있다. 내가 성폭력 경험을 말하지 못했던 이유는 나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나 자신을 지켜내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고, 죽을까봐 저항하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순결을 잃었다거나 엄청난 일을 겪었다는 그런 것보단, 폭력 앞에 무릎 꿇었던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런 나를 다시 본다는 게 두려웠다. 그러나 이것도 거듭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니 부끄러워할 이유가 전혀 없단 생각이 들었고, 지금껏 괜한 책망으로 나를 줄곧 할퀴어왔단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이것이 비단 나, 개인의 문제였단 말인가?

상처를 분명히 봐야 치유할 수 있다

돌아보면 성장기엔 순결 이데올로기 때문에 세상에서 ‘흠’이라 말하니, 밖으로 얘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성폭력 사건이 생기면 피해 생존자에게서 그 원인을 먼저 찾으려 하는 세상인데, 생존자들이 입을 다물게 되는 건 당연하지 않나? 그러나 순결 이데올로기나 피해자 책임론은 극복해야 한다. 성폭력에 대한 사회 편견임이 분명하니까. 이렇게 보면 성폭력은 본인에겐 자신만의 문제로 보일지 몰라도 결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성폭력은 개인의 성향이나 기질, 경험의 문제가 아닌 그것을 바라보고 방조하는 사회의 문제다.

심각한 것은 자신의 경험을 말 못하게 하는 사회, 나아가 자신의 몸이 겪은 경험과 자기 스스로를 분리시키게 만드는 사회, 그래서 성폭력이 치명적인 상처를 남겨도 그것 따로 이것 따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떨어져 있는 섬처럼 그 문제만 오롯이 나와 분리되어 있다고 여기게 만들고, 자아분열을 일으키게 만드는 것, 이것이 더욱 치명적인 상처가 아닐까?

성폭력 생존자가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는 것은 치유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경험과 자신을 하나로 통일되게 하는 것, 그래서 분명히 바라보게 하는 것, 그것이 치유의 과정이다. 분명 상처는 났다. 그게 크든 작든. 상처를 바라봐야 어떤 상처인지, 연고를 발라야 하는지, 빨간약을 발라야 하는지, 찢어 고름을 내야 하는지 알 수 있지 않겠나? 성폭력 생존자의 ‘말하기’는 바로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그러나 ‘말하기’를 강제할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그것이 말이든 글이든 혼자 일기를 쓰든 내 안에서 정리하고, 스스로 부딪혀 싸울 수 있다면 좋다. 그렇지 않아도 상처 난 자신을 들볶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 스스로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 곳에…’를 통해 생존자들의 경험이 말이 되어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깨닫는다. ‘말하는 것이 치유니까 말해야 한다’는 당위론 그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다. 말할 수 있을 때 들어주는 것 또한 말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 곳에…’와 같은 소그룹 모임은 정말 소중하다.

다양한 답을 찾아 나선 ‘그 곳에…’

“내가 며칠 전에 오빠를 만나서 밥 먹었거든. 근데 오빠가 오빠친구 00 얘기를 하는 거야. 밥 먹다 말고 내가 오빠 눈 똑바로 보면서 얘기했어. ‘오빠, 나 그 오빠 싫어. 언젠지 기억 안 나는데 어릴 때 그 오빠가 내 치마 속으로 손 넣고 이상한 짓 하고 해서, 나 그 오빠 싫어해. 오빠 몰랐지?’ 오십 줄에 접어든 울 오빠가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도 눈 똑바로 보면서 얘기하니까 숟가락 들고 빤히 쳐다보는 거야. 내가 한마디 더 했어. ‘그 오빠가 어디 나한테만 그랬겠어? 안 그래?’ 그랬더니 울 오빠가 나보고 ‘그래. 그래.’ 그게 위로라도 된다는 듯이 그러는 거야. 근데 막 통쾌한 거 있지? 마치 가해자랑 대면한 것 같은 기분이야. 내가 처음 얘기했거든. ‘그 곳에…’서 내가 그런 얘기들을 안했으면 아마 말도 못 꺼냈을 거야. 참 소중해, 그 모임. 그지?” (모임 참가자, 40대 초반)

“아무데서나 얘기 할 수 없지만 이 모임에선 걸림 없이 다 얘기할 수 있어서 제일 좋은 것 같아. 듣는 사람이 이해하든 못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나 자신이 다 쏟아낼 수 있다는 게 좋아. 얘기를 하면서 다시 한번 돌아보고 그런 과정 속에서 치유된다는 느낌이야. 일단 성폭력에 집중해서 얘기하고 모임 구성원들이 성폭력에 대해 치유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약속들이 되어 있잖아. 그러니까 술술 얘기가 나오는 것 같아. 우리가 나 그런 경험 있소, 하고 얘기하고 다닐 필요 없잖아? 그냥 약속된 사람들과 약속된 이야기를 하니까 시원한 것 같아.” (모임 참가자, 30대 후반)

“살면서 성희롱이나 성추행이나 뭐 아무튼 성폭력을 많이 당하잖아요. 근데 그걸 무시했거든요. 기분 나쁘지만 귀찮다고 그냥 지나친 것도 있고, 분위기상 그냥 지나친 것도 있고. 내 달력 보면 매달 셋째 주 목요일에 빨간 동그라미를 쳐 뒀어요. 다른 일정보다 이걸 먼저 챙겨요. 뭐가 뭔지도 모르고 살다가 ‘그 곳에…’ 가서 사람들 얘기 듣다보면 저런 생각도 하는구나 정신이 번쩍 들어요. 그리고 그런 성폭력들이 내 성행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난 그게 궁금해요. 아직 딱히 정리된 생각은 없지만 정리되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모임 참가자, 30대 중반)

‘그 곳에…’를 통해 성폭력에 대한 우리들의 기억을, 경험을, 생각을 한 가닥 한 가닥 붙잡는 길 찾기를 시작했다. ‘그 곳에…’는 한 사람, 한 사람 성폭력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가졌거나, 성폭력 없는 세상을 바라는 공통의 바램을 가진 이들이 서로를 아우르고 치유하며 성장하도록 할 것이다. 그 길 찾기에 어떤 이야기들과 어떤 그림들이 쌓이게 될지, 또 어떤 사람들이 함께 할지 모르지만, ‘그 곳에…’는 굳건한 버팀목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고 희망이 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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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nnon 2003/11/12 [10:07] 수정 | 삭제
  • 여성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모임이었는데 20대 초반부터 중후반까지 여성들의 모임이었죠. 여성문제에 관심은 있는데 다들 모르는 게 많아서요. 몇 번 만나면서 여성으로 겪어온 이야기를 나누는 걸로 했어요.

    처음엔 성폭력에 대해 얘기했던 게 아니었죠.
    그러다가 그 모임에서 10명 정도 모인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자기가 겪어온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의 경험을 이야기하게 됐어요. 프로그램 준비하신 분이 진행을 잘 하셔서, 어려운 분위기는 아니었고 편안하게 말이 나왔던 것 같아요.
    그 때 저는 한 번도 얘기 안 해봤던 성추행을 경험을 그 자리에선 얘기할 수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도 그랬던 것 같아요.그리고 다양하게 모인 사람들 중에 성폭력 경험이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놀랐구요.

    기사를 보다가 그 모임이 생각이 났어요.

    몇 년 전의 일인데 그 날이 자주 생각이 나요. 술도 안 먹고 밤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죠. 서로 잘 아는 사람들도 아니었는데 저는 그런 기회를 통해서 마음이 후련해졌어요.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이랄까요. 여성문제에 대해서도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것 같구요.
  • 꽃섬 2003/11/12 [01:23] 수정 | 삭제
  • 전에 써 두었던 글인데 '생존자'란 낱말에 대해 의견 쓰신 분에 대한 글에
    답하려다 낱말에 대한 문제를 고민한 적이 있어 여기 옮겨 놓습니다.

    .............................................
    '우리에겐 낱말이 없다!'

    '강간'이라는 말은 구체적 장면이 우선 떠오르면서
    폭력이라는 의미를 묻어 버리는 단점이 있다.
    이미 우리 사회가 쓰고 있는 '강간'이라는 낱말의 의미에선
    지금의 가치관-강간을 난폭한 성행위라고 여기니까-이 녹아있고

    '성폭력'은 광범위한 의미로 쓰여 '강간'을 집약해서 나타내지 못하고
    '성폭행'이란 낱말이 있긴 한데 '강간'보다
    그 선명성이 떨어져 전달되는 의미의 약함이 있다.

    지금 우리에겐 강간의 폭력성과
    성적 자기 결정권의 심각한 침해를 적절히 담을 낱말이 필요한데
    표현하고자 하는 고민을 담을 낱말이 없는 것이 우리의 고민이다.

    우리에게 언어가 없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에 우리에게 알맞은 낱말이 나서기 전까지는
    폭력의 의미가 들어날 수 있는 성폭행이라는 낱말을 쓰고자 한다.
    때로는 낱말의 사회성 획득 또한 귀중한 의미를 띄기도 하며
    여성계에서 성폭력 추방 운동을 하며
    그런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여성에게 필요한 여성의 언어가 없는 것은
    통탄할 우리의 현실이라
    강간의 기억을 여성의 입장에서 표현할 낱말을 찾아야 하며
    없으면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알맞은 낱말을 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
    국어 사전을 찾아 보면...
    )강간
    강간(强姦)[명사][하다형 타동사] 폭행·협박 그 밖의 불법 수단으로 부녀의 몸을
    뺏는 일. 강 음(强淫). 겁간(劫姦). 겁탈(劫奪). (참고)화간.

    강ː음(强淫)[명사][하다형 타동사] ☞강간(强姦)

    간ː음(姦淫·姦)[명사][하다형 자동사] 부부가 아닌 남녀가 서로 성적(性的) 관계
    를 맺는 일. (참고)간통.
    겁간(劫姦)[―깐][명사][하다형 타동사] 부녀자를 강제로 간음(姦淫)함.
    강간(强 姦).

    겁탈(劫奪)[명사][하다형 타동사][되다형 자동사] 1.남을 위협하여 그 사람의 것
    을 함부로 빼앗음.
    2.☞강간(强姦).
    부녀(婦女)[명사][‘부인과 여
    자’라는 뜻으로] ‘여성’을 뜻
    함. 부녀자.

    *** 종합해 보면, 강간은 폭행·협박 그 밖의 불법 수단으로 부부가 아닌 남녀 중 남이 다른 부 녀자와 함부로 성적 관계를 맺는 일(몸을 뺏는 일)이 된다.


    2) 성폭행ː―폭행(性暴行)[―포캥][명사] [하다형 타동사]
    ‘강간(强姦)'을 에둘러서 이르는 말.

    에ː―두르다[∼두르니·∼둘러][타동사] [르 불규칙 활용]
    1.둘러막다. ¶ 주위를 에두르다.
    2.바로 말하지 않고, 짐작하여 알 수 있도록 둘러서 말하다.
    ¶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에둘러 타이르다.

    3) 성ː―폭력(性暴力)[―퐁녁][명사]
    성적인 행위로 남에게 육체적 손상 및 정신적·심리적 압박을 주는 물리적 강제력.
  • 파 초 2003/11/11 [19:52] 수정 | 삭제
  • 모임에 참여하여 받은 좋은 경험을 나누고, 널리 알려서 함께하고픈 마음에 ...

    '성폭력'을 당한것을 빌미로
    온갖 협박과 학대를 당하다가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여성단체의 도움으로
    법적인 처리를 마치고
    보통의 생활인으로 살아가고 있던 나에게
    모임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하였을 때
    나는 무조건 찬성이였다.

    왜?

    '성폭력'을 당할 대 느꼈던 황당함, 수치심, 모멸감, 좌절감, 절망감 ...

    '성폭력'을 당한 후 당했던 온갖 협박, 학대, 죽음의 공포...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법정에 서기까지 힘겨웠던 상황들(그 곳에서 다시한번 당했던 수치심, 모멸감, 또 다른 분노감 ...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 상처, 분노...

    나름대로 씩씩하게 활발한 생활을 하였지만 늘 혼자일 때 나를 일깨우는 기억, 분노...

    하지만 이 모임을 몇번 하면서 변화되는 내 모습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모임 속에서 나는 더이상 '혼자가 아닌 나'를 발견하였고 강한 연대감을 통한 '자매애'속에서 서서히 편안해져갔다.

    이제는 한달에 달랑 한번뿐인 모임을 기다림은 물론 내 안의 나에 머무르지 않고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상담'관련 공부를 하는 재미에 푹 빠져서 산다.

    다만 '드러냄'이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자발적인 선택과 또 건강한 관계를 통해서라면 적극적으로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마지막으로 모임을 함께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
  • 생존자 2003/11/11 [16:29] 수정 | 삭제
  • 그런데...
    성폭력 생존자라는...
    생존자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전쟁, 비행기, 열차사고 생존자도 아니고..
    살아 남은 자라는 의미인가요?
    죽을 수도...있다는 뜻을 포함하는 듯해서..
  • 영신 2003/11/10 [20:03] 수정 | 삭제
  • 기사 잘 보았습니다. 보면서,
    성폭력 생존자가 상처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이유는,
    다른 생존자에게 살아갈 용기를 주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노를 삭이고있지 않는 생존자들에게,
    저도 용기를 얻어봅니다.
  • 소다수 2003/11/10 [15:47] 수정 | 삭제
  • 일다 처음 생기고 놀란 맘으로 들어와 구경했었어요.
    왜 놀랐나면 이런 사이버 저널이 생긴다는 거 자체가 놀라왔거든요.
    그 때 공개수배 기사에 낙태수술을 한 여자 얘기가 있었어요.
    그 기사도 참 마음 아프고 공개적으로 수배를 해서 후련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리플로 달린 독자들의 의견을 보니까요.
    정말 그런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또 충격을 받았어요.
    답답하고 억울하고 아픈 경험을 겪으면서 말 못하고 지내고 있는 여자들이 많고,
    저도 그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 일다에 들어오면 자꾸만 또 알게되요.
    성폭력 생존자가 상처를 드러내는 이유에 대한 기사도 그런 충격을 주네요.
    성폭력 당한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친구한테도 말 못할만큼 부끄러운 일은 아닌데.
    저는 아직도 머리로는 아니지만 가슴으로는 부끄럽네요.
    성폭력 생존자에게 억지도 말하게 하는 것만큼이나 더 안 좋은 것이요.
    억지로 경험을 지우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 mani 2003/11/10 [10:35] 수정 | 삭제
  • 전 어릴 때부터 예민하다는 말을 듣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 때 일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아서... 영향을 계속 받고 있는 게 인정할 수가 없어서요.. 너무 무서운 일이었고 그 후로 심장을 앓았죠.. 병원에선 해결할 수 없는 병에 걸린 거였어요..

    제가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던 것은.. 돌이켜보는 게 너무 무서워서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무서운 느낌은 다른 때 받은 적이 없어요. 저는 아직도 그 때 일을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의 성폭력 경험을 듣는 것도 너무 아파요. 그런 사건들을 뉴스에서 볼 때마다 다시 무서워져요. 피해당한 사람을 생각하면 잠도 못 자게 되요...

    그렇지만 내 안의 벽을 허물고 싶어요.. 나 자신한테 그 때 일을 돌이켜보고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영향을 받아왔다는 걸 인정하고... 그래야겠어요. 용기있게 얘기를 꺼내주셔서 고마와요. 기사도 읽어보기가 겁났는데.. 성폭력을 어떻게 당했는지에 대한 얘기가 나올까봐요.. 근데 그게 아니라서 저는 더 용기를 얻었어요. 고마와요.
  • 항해 2003/11/10 [03:01] 수정 | 삭제
  • 정말 힘이 되는 기사네요. 저도 최근에 다른 생존자를 만나 말문을 트기 시작했답니다. 십년 가까이 혼자 묵혀왔던 경험을 이제야 풀어내게 되었습니다. 잊는 듯 잊혀지지 않고 자꾸만 괴롭히는 기억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습니다. 모든 성폭력 생존자들이 상처를 치유하게 되는 날을 꿈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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