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진이 하나 있다. 이곳을 당신 집이라고 상상해보자. 당신은 지금 당신 집의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서 있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천천히 계단을 밟고 내려가 지하실에 들어선다. 그곳에 들어섰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지하실 풍경은 어떤가? 그곳엔 무엇이 있는가? 지하실에서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자기 이해 글쓰기〉 프로그램에서는 내 집의 지하실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쓰는 시간이 있다. 참가자들은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몰라 두려워서 문을 열지 말지 망설이고 있다는 참가자, 리모델링이 필요한 허름한 지하실에서 방석을 깔고 명상을 했다는 참가자,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장난감과 책이 가득한 그곳에서 푹신한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는 참가자, 밧줄에 묶인 큰 궤짝을 하나 발견했다는 참가자...
당신의 집 지하실에 무엇이 있나요?
지하실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당신의 무의식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나 카를 융 같은 심층 심리학자들은 ‘우리의 의식은 빙산의 일각이며, 의식 밑에 커다란 무의식의 세계가 있다’고 말했다.
무의식에는 충격적인 기억, 이루지 못한 소망, 허용되지 못하는 충동이나 욕망, 질투심이나 이기심 같은 ‘부정적’인 감정 등이 들어있다. 심층 심리학자들은 인간 의식의 성장은 이러한 무의식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의식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두운 무의식에 의식의 빛을 비춰 무의식에 있는 것들을 내 것으로 더 많이 통합할수록 온전한 인격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하실에 대한 태도는 무의식에 대한 나의 태도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지하실에 들어서기 무섭다면 무의식에 대해 알 수 없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무의식은 괴물에 비유되기도 하고 보물상자에 비유되기도 한다. 〈자기 이해 글쓰기〉에서는 무의식을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괴물이 아닌 보물상자로 여겨보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다양한 상황 설정과 주제를 가지고 내 무의식을 엿볼 수 있는 글쓰기를 한다.
무의식은 여러 경로를 통해 드러난다. 매일 밤 꾸는 꿈은 무의식이 보내는 선물이다. 프로이트는 우리가 하는 ‘실수’도 무의식이 발현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반복되는 불운이나 인생에서의 큰 사건, 사고도 무의식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다. 내 무의식을 엿보기 쉬운 방법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내가 어떤 사람을 싫어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내가 못 견뎌서 타인에게 ‘투사’해버린 나의 그림자
당신은 어떤 사람을 못 견디게 싫어하는가? 게으르고 불성실한 사람? 예의 없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 잘난 척하는 사람? 나한테 어떤 큰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을 볼 때 강한 불쾌감이 올라오는가? 왜 저러고 사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격렬하게 비난하고 싶은가? 합리적인 이유를 대 보려고 해도 잘 안 되는데 어떻게든 그를 깎아내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거기에 나의 무의식의 한 조각이 숨어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당신이 싫어하는 그 모습은 당신 안에 있는 것이다. 내 안에 없는 것은 상대방에게서 발견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당신은 당신 안의 ‘그림자’를 상대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라면서 이 사회나 공동체가 수용하지 못하는 속성들을 무의식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는다. 내가 싫어하는 어떤 속성,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속성, 달리 말하면 내가 그렇게 될까 봐 두려운 그 속성이 우리의 ‘그림자’가 된다.
‘투사’(Projection)란 ‘영사기를 통해서 나오는 스크린의 영상을 보고 그 영상이 스크린에 있다고 믿는 심리적 현상’(이부영, 『분석심리학 이야기』, 집문당)이다. 영화 필름은 영사기 안에 들어있는데, 우리는 스크린을 보면서 영화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내가 내 것으로 인정하기 힘든 내 안의 어떤 요소를 상대에게 돌리고, 그에게 그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림자 투사다.
“우리는 모두 그림자를 지니고 있다. 우리 모두 어떤 사람이 되고자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목표를 향한 노력은 ‘일방’이므로 그 일방성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억압되기 마련이다. (...) 추구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그림자’가 있다.” (이부영, 『분석심리학 이야기』)
분석심리학자 이부영의 말처럼, 그림자가 생기는 건 우리가 살아있으며 또 무언가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선을 추구하면 내 안의 악한 측면은 억압된다. 그리고 우리는 악한 사람을 보면서 인간말종이라고 욕한다. 부지런함을 일방적으로 추구하면 내 안의 게으르고 싶은 욕구, 띵가띵가 놀고 싶은 욕구는 억압된다. 그러면 그런 사람을 볼 때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고상함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천박하다고 여기는 인간의 모습은 억압된다. 그리고 천박한 사람을 보면서 손가락질하게 된다.
낭만적 사랑에 빠지는 것도 투사라고?!
부정적인 측면만 투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내 안에 깊숙이 숨겨둔 긍정적인 측면들도 타인에게 투사하고 그를 선망한다. 오랫동안 누군가의 팬이라면 아마 내 안에 숨겨져 있는 어떤 측면을 그에게 투사하면서 그를 찬양하거나 선망하고 있을 것이다. 내 안에는 그게 없다고 철석같이 믿으면서.
낭만적 사랑에 빠지는 것도 투사다. 내 안에 그런 측면이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상대에게서 좋은 점을 발견하고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계속 기대하고 요구한다.
“(심리학자) 융은 타인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그로 인한 인간관계의 불화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 내면에 이상적인 면모가 존재함을 발견하고 상대에게 투사했던 그 이미지를 거둬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머니나 연인에게 성모 마리아로 살기를 강요하지 말고, 자기 내면의 모성성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에게도 모성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 이상 모성에 갈증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박미라, 『상처 입은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 그래도봄)
사랑까지 투사라면 ‘도대체 투사가 아닌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아득해진 적이 있었다. 나의 투사로 인한 과한 기대를 거두어들이고 그의 좋은 점을 내 안에서 찾는다면, 그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할 준비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무의식이 보내는 사인, 이제는 그림자를 들여다보라고
투사를 해서라도 그림자가 해소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오랜 시간 그림자를 외면하면 그림자는 무의식에서 점점 힘을 키우게 된다. 힘이 커진 그림자는 의식의 억압을 뚫고 뛰쳐나올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특히 30대 후반~ 40대 초반쯤 되어 인생의 중반기에 접어들었다면 이제 슬슬 억압하는 의식의 힘이 약해지고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사람은 부지런하고 성실해야 한다’는 원칙이 강하고 한평생 그렇게 살아왔으며 게으른 사람을 너무 싫어한다면, 옮기는 직장마다 게으른 사람을 동료나 상사로 만날 수 있다. 나와는 다른, 느긋한 성격의 상대가 좋아서 연애를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그의 느긋함이 게으름으로 여겨져 끔찍하다면 자꾸 싸우게 될 것이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무의식이 당신에게 보내는 사인이다. 당신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라고, 외면했던 그 속성들을 당신의 것으로 끌어안으라고.
내 안에도 저런 악한 측면, 이기적인 측면이 있다는 걸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싫고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걸 인정한다고 해서 내가 바로 악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이 될까 봐 걱정하지는 않아도 된다. 무의식에 있던 그림자에 의식의 빛을 비추면 그림자는 힘을 잃고 순해진다. 오히려 내 안에 다양한 측면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림자까지 통합하면서 더 확장되고 풍성한 내가 될 수 있다.
‘~해야 한다’라는 일방적 추구에서 벗어나면 삶이 덜 경직되고 더 다채로워진다. 무의식은 어찌 보면 내가 ‘살지 못한 삶’이다. 이제는 때로는 게으르게, 조금은 이기적으로, 잘난 척도 좀 하면서 살아보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타인에게 관대해지는 한편, 나 또한 남의 평판에 그리 신경 쓰지 않게 된다. 나를 좋게 보는 것도 나를 나쁘게 보는 것도, 어차피 상대의 투사이기 때문이다.
투사가 일어나는 건, 융의 말처럼 “무의식이 언제나 자신을 표현할 방식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카를 융, 『The Symbolic Life』 -제임스 홀리스, 김현철 옮김, 더퀘스트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에서 재인용) 지금 누군가가 너무너무 밉고 싫은가? 그렇다면 내 무의식의 한 조각을 탐구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 셈이다. 상대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내 마음을 살펴보자. 내 안에 무엇이 있길래 그가 그토록 싫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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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나랑. 치유하는 글쓰기 안내자. 전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기자. 14년차 인터뷰 작가. 활동가로, 페미니스트로 살아오면서 늘 한 켠에서는 마음공부를 하고 있었다. 뒤늦게 상담 심리 석사 과정에 들어섰다. 여성과 소수자들의 의식 성장을 도우며 그 길에서 나도 함께 성장하기를 꿈꾼다. 인스타그램 @hello.writing.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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