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라면서 왜 자기 몸은 그렇게 가부장처럼 대해요?”
상담 선생님의 말을 들은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30대 중반까지 나는 몸에게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니까 너는 잔말 말고 따라오라’는 식의 태도를 취했다. 그리고 30대 후반 아프기 시작한 이후로는 골골대며 무언가를 성취해 내지 못하는 몸을 끊임없이 타박했다. 그게 가부장의 태도였구나. 다른 가족들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추구하는 것만 중요하게 여기며 무조건 따라오라고 명령하는 가부장 말이다.
고백하자면, 몸과 불화한 시간이 길었다. 지금은 그 덕분에 〈자기 이해 글쓰기〉 프로그램 중 몸 파트를 만들고 내가 쌓아 온 지혜를 나누고 있지만, 지난 십 년은 참 힘든 시간이었다.
통증과 질병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나의 통증 연대기는 서른일곱 살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정도로 심각한 허리 통증이 찾아오면서 시작됐다. 그때를 기점으로 다양한 병증이 발현됐다. 술이나 커피는 물론 초콜릿을 먹어도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카페인에 민감해졌다. 고춧가루가 든 음식을 먹으면 밤에 잘 때 땀을 많이 흘리는 바람에(한의학에서는 이를 ‘도한(盜汗)’이라고 한다. 도둑맞듯 새어나가는 땀이라는 뜻이다.) 김치나 라면도 먹을 수가 없었다.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피부에서 진물이 나거나 두통이 생기곤 했다. 햇볕을 많이 쬔 날, 조금이라도 무리를 한 날이면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만일 40대 중후반에 몸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30대 중반이었던 나는 그걸 받아들이기엔 아직 젊었다. 한창 자기 분야에서 입지를 쌓아가고 있는 친구들이나 옛 동료들을 보면 부러움과 질투심에 속이 시끄러웠다. 몸, 몸, 몸. 이놈의 몸이 원흉이었다. 그때까지 내 인생에서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이 ‘몸’이라는 녀석. 당시 나에게 ‘몸’은 내 인생의 걸림돌이었다.
지난 십 년간 먹고 싶은 음식과 하고 싶었던 많은 일, 일에서의 성취에 다가가지 못하고 몸과 엎치락뒤치락하며 수행을 해야 했다. 그때 만난 책이 바로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북드라망)이다. 이 책은 고전 평론가인 고미숙이 그 유명한 허준의 『동의보감』을 리라이팅(rewriting)한 것이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자신이 어떻게 병과 몸을 탐구하게 되었는지 말한다.
“40대 초반,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몸속에 작은 종양이 생겼다. 악성은 아닌데 그냥 버티기에는 상당히 불편한 것이었다. (...) 병처럼 낯설고 병처럼 친숙한 존재가 있을까. 병이 없는 일상은 생각하기 어렵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 역시 살아오면서 수많은 병을 앓았다. 하지만 한 번도 병에 대해 궁금한 적이 없었다. 다만 얼른 떠나보내기에만 급급해했을 뿐. 마치 어느 먼 곳에서 실수로 들이닥친 불청객을 대하듯 말이다. 이 불편한 동거에 마침내 종지부가 찍혔다. ‘탐색본능’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 왜 느닷없이 이런 병이 찾아왔을까? (...) 그리고 차츰 깨닫게 되었다. 병은 저 먼 곳에서 우연히, 실수로 들이닥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한 메시지를 들고 찾아오는 전령사라는 것을. 하지만 이제껏 나는 그 봉인조차 뜯어 보지 않고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다는 것을.”
‘건강’이라는 판타지
병을 빨리 제거하려고 하는 우리의 습성은 아마 건강-질병을 이분법으로 보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우리는 건강할 땐 질병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며 건강을 목표로 몸을 관리하고, 질병이 생기면 그 질병을 제거하고 다시 건강해지기 위해 치료를 받는 것에 익숙하다.
그런데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에서 고미숙은 근대 이전에는 ‘건강’이라는 말이 아예 없었다고 말한다.(세상에... 상상이 되는가?) 건강-질병의 이분법 역시 근대에 들어와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건강은 근대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환상이다. ‘그에 따르면 건강은 생명체와 환경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인 적응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균형일 뿐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다.’”
“근대 이전에는 건강이라는 말이 없었을뿐더러 ‘영어 단어 헬스의 어원은 신성함, 전체성, 치유의 뜻에 있어 종교적 뉘앙스가 강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 해부병리학이 확립되면서 ‘질병을 신체의 부분적 현상으로 축소시켰다. 그리고 세균을 발견하여 병의 실체를 확인한 18~19세기, 항생제와 각종 첨단장비를 발명해 병의 실체에 직접 접근할 수 있게 된 20세기를 거치면서 건강은 점차 ‘질병의 부재’를 뜻하게 되었다.”
이렇게 근대에 들어서면서 건강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질병은 제거하고 뿌리 뽑아야 할 어떤 것이 되었다고 한다. “마치 완벽하게 건강한 신체가 가능하다”는 환상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그 건강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가두고 낚는 어마어마한 의료 산업과 의약품 산업, 건강보조식품 산업까지......
과거에 내가 나의 병을 보는 방식도 건강-질병 이분법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나는 아프기 전의 몸으로 돌아가는 게 회복이라고 생각했다. 아픈 것은 ‘비정상’이었기에, 아프면 일단 몸을 ‘정상’(건강)으로 되돌려 놓는 게 급선무였고, 그래서 몸에 열중했다. 이건 내 몸의 상태를 인정하고 몸에 정성을 들이는 차원이 아니었다. 아프면 급속도로 병과 동일시되면서 우울해하고, 빨리 낫기를 바라며 전전긍긍했다.
이렇듯 질병을 적으로 여겼기 때문에 질병을 앓는 동안 나의 일상은 불완전한 것, 과도기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나는 건강해져야만 무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 나으면’, ‘~을 하게 되면’이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그럴수록 병이 나에게 주려는 메시지는 놓치기 마련이었다.
몸에게 말 걸기, 몸의 메시지 듣기
〈자기 이해 글쓰기〉 프로그램에서는 질병/통증과 글쓰기로 대화를 나눈다.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그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나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은지 대화를 나누며 병이 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본다.
그리고 ‘몸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 본다. 이렇게 몸의 공로를 인정하고 몸에게 말을 거는 것만으로도 몸과의 관계가 훨씬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몸과 병에 대한 관점이 서서히 변했다. 알고 보니 몸에 대한 관점이 변하는 건 삶의 태도, 세상에 대한 태도가 변하는 것이었다.(그래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나 보다.) 몸은 나에게 이 세계가 카오스 그 자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선생이었다. 네가 바라는 그런 ‘안정적인 상태’란 건 없다고, 이 세계의 기본값은 카오스이며 단지 일시적이고 찰나적인 균형만 있을 뿐이라고.
30대 중반까지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추구하며 열정적으로 살아오는 동안, 내 몸은 늘 전시체제인 것처럼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을 거라는 자각이 들었다. 이제는 무엇보다도 몸을 먼저 안심시켜야 한다는 걸, 무엇을 하든 지금 내 몸의 상태와 협상하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다.
내 몸이 가진 한계 안에서, 나의 병 그리고 때때로 찾아오는 통증과 공존하며, 나의 속도와 리듬에 맞게 에너지를 쓰는 법을 익혔다. 차차 이 몸으로도 살만해졌다. 물론 타고 나기를 약하게 태어난 신체 부위는 여전히 약할 것이고, 나이 들면서 또 다른 낯선 병이 찾아올 것이다. 그때는 또 그가 들고 온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에게 말을 건넨다. 오늘 하루 안전할 거라고, 네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일만 하겠다고. 혹시나 한계에 다다를 만큼 일을 한다면 그다음엔 반드시 충분한 휴식을 취하겠다고. 몸이 좋아라하며 히죽히죽 웃는다.
*홍보합니다! -[원데이 클래스] 몸에 찾아온 병/통증에 말을 거는 글쓰기 https://blog.naver.com/meetme_writing/223609967010
[필자 소개] 나랑. 치유하는 글쓰기 안내자. 전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기자. 14년차 인터뷰 작가. 활동가로, 페미니스트로 살아오면서 늘 한 켠에서는 마음공부를 하고 있었다. 뒤늦게 상담 심리 석사 과정에 들어섰다. 여성과 소수자들의 의식 성장을 도우며 그 길에서 나도 함께 성장하기를 꿈꾼다. 인스타그램 @hello.writing.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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