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주택 방문기

‘롯코위민즈하우스’ 설립한 위민즈넷 고베의 대표 마사이 레이코

샤노 요코 | 기사입력 2024/10/15 [11:18]

여성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주택 방문기

‘롯코위민즈하우스’ 설립한 위민즈넷 고베의 대표 마사이 레이코

샤노 요코 | 입력 : 2024/10/15 [11:18]

2024년 6월, 일본 효고현 고베시에 여성의 자립을 지원하는 민간임대주택 ‘롯코(六甲)위민즈하우스’가 오픈했다.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들을 지원해온 ‘여성과 어린이지원센터 위민즈넷 고베’가 학생과 유학생을 지원하는 ‘고베학생청년센터’와 공동으로 운영한다. 위민즈넷 고베의 대표 마사이 레이코(正井禮子) 씨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 지난 6월 일본 효고현 고베시에 문을 연, 여성의 자립을 지원하는 민간임대주택 ‘롯코(六甲)위민즈하우스’ 내부 거실 모습. 가구가 잘 갖춰져 있어 편안하게 쉴 수 있다. (촬영: 에리구치 아키코)


창문으로 들어오는 초여름 바람이 뺨을 스친다. 널찍한 공유공간에 새 가구들이 여유있게 배치되어 있다. 모든 방은 나무 바닥이며, 디자인과 기능성을 겸비한 어린이용 책상과 침대, 컬러풀한 카펫과 침대 시트, 최신형 부엌. 방문자도 들어갈 수 있는 공유공간과 프라이빗 공간이 완전히 구분되어 있다.

 

여기에서 비혼/독신 여성, 싱글맘과 그 자녀, 그리고 유학생들의 새로운 일상이 시작된다.

 

“나에겐 돌아갈 집이 없다”…폭력피해 여성들의 호소

 

마사이 레이코 씨는 1992년에 여성의 인권을 지키고 젠더 평등한 사회 실현을 위한 ‘위민즈넷 고베’를 설립했다. 그리고 1994년에 여성들이 동료를 만나 속내를 털어놓고 활기를 되찾는 장인 ‘여자들의 집’을 열었다.

 

‘여자들의 집’ 개소 소식이 신문 각지에 소개되니, 사무국 전화가 끊임없이 울렸다. 그 대부분은 “나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많은 여성들이 그곳에 모이고, 대화하고, 힘을 얻었다.

 

하지만, 이듬해 한신‧아와지 대지진이 일어나 ‘여자들의 집’은 사라졌다.

 

그 후 ‘여성지원네트워크’를 설립, 많은 상담을 했는데 성폭력과 가정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워낙 ‘여자/아이들’을 경시하는 사회는 자연재해 등 비상시에 순식간에 포악성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통감하였다. 마사이 씨는 이후 싱글맘과 어린이 지원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 ‘여성과 어린이지원센터 위민즈넷 고베’의 대표 마사이 레이코(正井禮子) 씨. (촬영: 에리구치 아키코)


남편의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폭력에 고통받고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입은 여성이 회복하는 데는 안심과 시간이 필수적이다. 많은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온 마사이 씨는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주거 공간과 신뢰할 수 있는 타인과의 관계가 생겨야 비로소 회복이 시작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통감하고 있었다.

 

안전한 ‘집’과 타인과의 ‘관계’가 회복의 기반

 

위민즈넷 고베는 2019년에 주거지원 법인 자격을 얻은 후에, 여성들의 집을 찾아주는 일도 하나의 활동으로 삼기 시작했다. 주거지 상담은 전국에서 들어왔다. 그 다수는 가정폭력과 학대로 고통받는 여성들로부터였다. 상담 건수는 1년차에 40건, 2년차 76건, 3년차에는 100건을 넘었다.

 

“여성들의 대다수는 집을 빌리기 위한 보증인도 없고, 저소득이며, 저축액도 적다. 심지어 아이까지 있으면 빌릴 수 있는 집은 극히 적으며, 그나마도 굉장히 열악한 곳들이다. 그 사실이 너무도 괴로웠다.”

 

2010년에 주거복지 연구자와 함께 덴마크로 시찰을 가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낡은 외관을 보고 순간 실망했지만, 문을 열자 밝고 구석구석까지 배려와 고민이 느껴지는 방이 펼쳐졌다. 근사한 거실에 이어 어린이 거실까지 있어 놀랐다.

 

밝은 부엌이 있고, 가장 해가 잘 드는 방은 영유아를 위한 보육 룸. 통유리로 된 옆방에서는 어머니들이 카운슬링을 받고 있었다. 어머니와 자녀가 서로의 존재를 느끼면서 돌봄을 받는 모습에 감격했다. “일본에도 이런 집을 만들고 싶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집을 구하기 어려운 여성들이 ‘여기밖에 살 곳이 없다’가 아니라, ‘여기에 살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싶었다. 잘 회복하고, 배우고, 스스로 내디딜 힘을 기르는 집을. 마사이 씨의 생각은 그대로 ‘롯코위민즈하우스’의 이념이 되었다.

 

▲ ‘롯코(六甲)위민즈하우스’의 널찍한 공용 공간.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으며, 자립을 준비하는 여성들의 취업과 생활을 지원하는 세미나가 수시로 열린다. 그만큼 프라이빗 공간으로의 출입은 엄격히 제한된다. (촬영: 에리구치 아키코)


주거는 인권

 

‘생활공동조합 코프 고베’에서 여자 기숙사로 쓰였던 건물을 제공받았고, 가구와 집기, 공간디자인 등은 이케아 재팬이 맡아줬다. 거실에는 여덟 가지 유형이 있으며 전체 40실이 있다. 월세는 2만8천 엔에서 5만2천 엔 사이로 보증금이나 사례금, 보증인은 필요 없다.

 

입주할 수 있는 사람은 ①자립을 희망하며, 초중등의 자녀가 있는 싱글맘, ②취업·자립을 목표로 하는 약 18~20세의 청년 여성, ③배울 의욕이 있으나,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여학생·유학생, ④자격증 취득과 취업의 의욕이 있고 자립을 목표로 하는 독신 여성이다. 거주 기한은 원칙적으로 3년(학생과 유학생은 4년).

 

스태프 2인이 상주할 뿐 아니라, 취업과 생활을 지원하는 세미나를 수시로 개최한다.

 

공용 공간에는 지역 주민들도 찾아온다. 대신 그만큼 프라이빗 공간으로의 출입은 엄격히 제한한다. 그리고 자격증 취득을 위한 준비를 하는 공부방과 셰어오피스, 다양한 사람과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 카페, 어린이가 놀 수 있는 키즈 스페이스도 마련되어 있다.

 

개보수에는 2억 8천만 엔의 비용이 들었다. 국가 지원을 받고 운영하는 두 단체의 공동 출자를 더해도 부족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기업과 개인으로부터 기부금을 모았다. 또 월세 수입 등으로 운영의 안정을 도모한다. “월세를 불안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상담을 신청하고 같이 방법을 찾아 보자.”고 말하는 마사이 씨.

 

이 집의 웹사이트에서 입주 신청과 상담을 직접 받고 있다. 인터뷰가 이루어진 시기에는 모자 2쌍과 독신 1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7월 말 10개의 방에 입주자가 들어올 예정이다.

 

올해 11월 23~24일에 개최되는 ‘전국쉘터심포지움 in 고베’의 주제는 ‘여성 지원의 새로운 시대에-주거는 인권~하우징 퍼스트로 시작하는 여성의 회복 지원’이다. 민간 쉘터의 실천 사례로 마사이 레이코 씨가 발표에 나서며, 그 외에도 패널 디스커션과 의원 포럼, 롯코 위민즈하우스 견학(25일에 희망자 대상)도 예정되어 있다.

 

곤궁에 빠졌을 때, 누구도 혼자 일어설 수 없다. 안전하고 쾌적한 집에 살면서, 다른 사람과 이어지고, 시간을 들여 회복하는 일은 결코 ‘사치’가 아니다. 이 실천이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될 수 있도록 함께 응원하자. (자원 활동과 기부도 접수 중이다.) [고주영 번역]

 

-〈일다〉와 제휴 관계인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기사를 번역, 편집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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