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권리’ 국가가 보장해야 할 보편적 인권

[우리의 돌봄을 이야기하다] 개인 의무가 아니라 공적 돌봄 시스템으로

김하나 | 기사입력 2024/10/24 [16:36]

‘돌봄 권리’ 국가가 보장해야 할 보편적 인권

[우리의 돌봄을 이야기하다] 개인 의무가 아니라 공적 돌봄 시스템으로

김하나 | 입력 : 2024/10/24 [16:36]

작년 유엔 총회에서 10월 29일을 “국제 돌봄 및 지원의 날”(International Day of Care and Support)로 정했습니다. 올해 한국의 여성, 장애, 청년, 노동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 29개 단체들이 모여 ‘10.29 국제돌봄의날 조직위원회’를 꾸리고 10월 28일~11월 2일에 돌봄 공공성과 지속가능한 돌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할 예정입니다. 돌봄의날 주간을 맞아, 조직위원회 참여단체의 활동가들이 ▲돌봄중심사회로 전환 ▲국가가 책임지는 돌봄공공성 확보 ▲돌봄노동 가치 재평가 및 처우개선 ▲돌봄권리 보장을 주제로 기고글을 연재합니다. [기획의 말]

 

▲ 돌봄의날 주간을 맞아 ‘10.29 국제돌봄의날 조직위원회’는 2024년 10월 31일 목요일 11시에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돌봄시민 증언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돌봄 권리’ 개념의 등장, 모든 사람이 누려야 마땅한 권리

 

현대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가족 구조의 변화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로 인해 돌봄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돌봄’은 생명체가 생존하고 일상을 유지하며 존엄성을 지키는 데 필수 요소다. 돌봄은 단순한 의학적 치료에 국한되지 않고,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안정을 보호하는 포괄적인 과정이다.

 

돌봄을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은, 사회적 구조로 인한 고통을 개인에게 부과하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돌봄은 사회적, 공적 권리로 자리잡아야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돌봄 권리’라는 개념이 등장하였고, 이 권리는 생명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삶을 위한 필수적인 권리로 인식되고 있다.

 

‘돌봄 권리’는 모든 개인이 필요한 돌봄을 받을 권리를 의미하며, 이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돌봄을 포함한다. 돌봄은 모든 인간이 생애주기 동안 필연적으로 경험하는 상황에서 필요하며, 사회적 약자/소수자에게는 더욱 필수적이다.

 

이 권리는 단지 개인의 안위와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UN은 이를 인권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특히 어린이,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돌봄은 그들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핵심 요소로 다루고 있다.

 

▲ 사회적돌봄센터봄돌 ‘청소년 마음돌봄 및 관계회복 지원’ 활동. (출처: 사회적돌봄센터봄돌)


또 최근 ‘기후정의’(Climate Justice, 기후위기의 책임과 그 결과가 대륙과 국가, 빈부, 성별, 도농, 인종 간에 불공평하고 부정의하다는 개념)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생태 돌봄 권리’를 포함하는 논의들로 확장되고 있다.

 

장애인의 25%가 돌봄 서비스 제대로 제공받지 못해

한국 거주 이주민 10% 미만만 사회복지 의료돌봄 서비스 이용

 

대한민국에는 ‘사회적 돌봄’을 위한 복지 시스템이 계속 등장했지만, 시스템에서 배제되거나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존재들이 있다.

 

독거노인과 노인 부부를 대상으로 한 통계(지표누리)에 따르면, 한국의 독거노인 인구는 2020년 기준으로 약 150만 명에 달하며, 그 중 상당수가 고립된 상태에서 돌봄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노인 돌봄 서비스가 부족할 경우, 이들은 몸과 마음의 살핌과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쉽다.

 

장애인 가구도 돌봄 사각지대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은 일상생활에서 지속적인 돌봄 서비스가 필요하지만,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이나 사회적 지원 부족으로 인해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20년 기준으로 한국 장애인의 약 25%가 돌봄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고 있고,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장애인 가구들도 실제로 일상을 지켜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돌봄 서비스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김철수. “한국의 장애인 돌봄 사각지대 현황과 복지 정책의 필요성”, 복지정책연구, 2020)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와 같은 경제적 취약계층 역시 돌봄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근로 환경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정기적인 의료 돌봄 서비스를 받기 어렵고, 이주노동자는 언어적, 문화적 장벽으로 인해 적절한 돌봄을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2021년 기준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약 230만 명의 이주민 중 10% 미만에 해당하는 사람만이 사회복지나 의료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김주영. “한국 시민사회단체의 이주노동자 지원활동의 현황과 특징”. 전북대학교 동남아연구소 정책연구보고서, 2021)

 

‘공적 돌봄’ 축소시키면 사회적 불평등 심화돼

 

돌봄이 권리로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돌봄은 생존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본적 조건을 제공한다. 돌봄이 부족할 경우, 개인의 몸과 마음의 안정성이 약화되거나 자립할 수 없게 되어 사회적 고립을 초래할 수 있다. 결국 돌봄의 부족은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게 된다.

 

UN의 인권 선언에서는 돌봄을 포함한 ‘건강권’을 명시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돌봄이 인권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현 정부에 들어서 ‘공적 돌봄’에 역행하며 돌봄을 민간화하는 정책 발표와 움직임이 강력하다.

 

▲ ‘10.29 국제돌봄의날 조직위원회’가 제작한 카드뉴스 중에서


돌봄이 민간화될 경우 발생하는 문제는 수없이 많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지역의 민간 돌봄 시스템을 들 수 있는데,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돌봄 서비스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민간화된 돌봄은 비용 절감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 결과 돌봄의 질이 하락하고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이 발생한 것이다. 이탈리아는 수많은 노인이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는 등 공적 돌봄 시스템의 부재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반면, 노르웨이와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하여 성공적으로 사회적 평등을 유지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경우, 공공 돌봄 서비스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며, 특히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포괄적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노인 인구의 약 90%가 공공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며, 이로 인해 노인의 건강 상태가 향상되고, 사회적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를 보고 있다. 스웨덴 또한 공적 돌봄 시스템을 통해 장애인과 만성질환자들의 자립을 지원하며, 이들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돌봄 권리’가 보장되지 않을 경우 발생하는 사회적, 경제적 비용은 매우 크다. 돌봄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건강이 악화되고, 이는 의료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영국은 돌봄 서비스가 축소된 결과로 노인들의 건강 악화가 심각해졌으며, 이는 국가 의료비 부담을 크게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돌봄이 개인(가정)의 책임으로 전가될 경우, 돌봄을 전담하는 사람들로 주로 여겨왔던 여성들은 경제적 기회를 상실하고 가정 내에서 돌봄 노동을 수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사회적 불평등, 성별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한국 성소수자 약 70% “의료기관에서 차별 경험했다”

낙인으로 인해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HIV/AIDS 감염인들

 

성소수자, 그리고 HIV/AIDS 감염인들은 돌봄 서비스에서 소외된 그룹 중 하나다.

 

한국의 성소수자들은 의료기관에서 차별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이들이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주요 요인이다. 한국 성소수자 약 70%가 의료기관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했으며, 이는 성소수자들이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심각한 장벽이 되고 있다. (이윤정, “한국 성 소수자 건강연구에 대한 고찰”. 동서간호학연구지 제28권 제1호. 67-74쪽. 2022)

 

▲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 전날 저녁,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차별과 혐오로 인해 몸‧맘의 돌봄으로부터 소외된 성소수자들과 함께하는 돌봄의 자리 ‘무지개 식탁’. (주최-무지개예수, 성공회 용산나눔의집‧길찾는교회, 큐앤에이, 사회적돌봄센터봄돌 소속 목사들이 함께했다.) (출처: 무지개예수)


HIV/AIDS 감염인들은 특히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정기적인 치료와 돌봄 서비스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UNAIDS의 “HIV/AIDS 글로벌 보고서”(Global AIDS Update 2021)에 따르면, 전세계 HIV 감염인의 60%가 적절한 치료와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공공의료 시스템의 문제로 지적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적 돌봄 시스템 내에서 이들을 위한 포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서울의 강동성심병원은 국내 최초로 성소수자 친화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성소수자와 HIV/AIDS 환자에게 안전하고 차별 없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성소수자 맞춤형 의료 서비스는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돌봄권리 보장 사례로 평가받는다.

 

해외 사례를 보면, 미국의 Trevor Project에서 성소수자 청소년과 HIV 감염인들을 위한 정신건강 지원 및 자살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성소수자들의 ‘돌봄 권리’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성소수자와 HIV 감염인들은 기존의 돌봄 체계에서 쉽게 소외될 수 있으며, 이러한 소외는 그들의 일상과 삶의 질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이들에게 ‘돌봄 권리’가 보장된다면, 당사자의 삶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통합도 촉진할 수 있다.

 

▲ 흔들리는 일상에서 매일을 살아내는 성소수자 길벗들과 엘라이(지지자)들의 마음돌봄 시간. (출처: 무지개예수)


돌봄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돌봄 권리’는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이다. 어린이,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회적 그룹은 돌봄을 필요로 하며, 돌봄이 보장되지 않으면 이들의 삶의 질은 크게 저하된다.

 

특히 돌봄이 민간화되고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될 경우,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공공 돌봄 시스템을 강화하고, ‘돌봄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개인의 안녕과 복지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안녕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소수자와 HIV/AIDS 감염인과 같은 소외된 그룹에 대한 ‘돌봄 권리’도 함께 보장해야 하며, 차별 없이 나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돌봄 권리’가 보편적 권리로 확립될 때, 우리는 더 평등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김주영. “한국 시민사회단체의 이주노동자 지원활동의 현황과 특징”, 전북대학교 동남아연구소 정책연구보고서, 2021

-김철수, “한국의 장애인 돌봄 사각지대 현황과 복지 정책의 필요성”. 복지정책연구, 2020

-이윤정, “한국 성 소수자 건강연구에 대한 고찰”, 동서간호학연구지 제28권 제1호, 2022

-지표누리 https://index.go.kr/unify/idx-info.do?idxCd=8039

-Trevor Project, 미국 성소수자 청소년 지원 보고서, 2021. thetrevorproject.org

-UNAIDS, “HIV/AIDS 글로벌 보고서”, 2021년 글로벌 AIDS 업데이트(Global AIDS Update 2021)

 

[필자 소개] 김하나. 반려냥 히로, 냥냥, 펀치 셋과 함께 사람 중심이 아닌 모두 함께 사는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인간.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목사이며, 2024년 사회적돌봄센터봄돌을 시작했다. 차별과 혐오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 교회에서 아무도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는 일상의 시스템을 만드는 길에 관심하고 길벗들과 함께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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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4/10/25 [18:19] 수정 | 삭제
  • 목사님 감사합니다. 돌봄이 곧 평등이고 사랑임을 알려주시고 실천해주셔서요... 예수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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