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 서사를 2개의 언어에 담아서…

이중언어 극단 ‘달오름’ 대표이자 배우, 연출가 김민수

시미즈 사츠키 | 기사입력 2024/11/04 [08:23]

재일조선인 서사를 2개의 언어에 담아서…

이중언어 극단 ‘달오름’ 대표이자 배우, 연출가 김민수

시미즈 사츠키 | 입력 : 2024/11/04 [08:23]

작년 12월, 김민수(金民樹) 씨가 연출한 연극 〈우토로〉를 관람했다. 무대는 1941년 전쟁 중에 군용 비행장 건설에 소집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합숙소 터에 형성된 교토의 우토로 마을. 큰 꿈을 가진 젊은이와 개척자 기질의 어머니, 열정적인 할머니 등 개성 있는 인물들에게 사로잡혔다.

 

도쿄의 조선제4초중급학교 체육관에서 진행된 공연의 객석과 무대는 손으로 직접 만든 느낌이 물씬 났고,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높은 천장을 울렸다.

 

▲ 이중언어 극단 ‘달오름’의 마당극 〈우토로〉(김민수 작, 연출) 2020년 오사카 공연 포스터.


극단 ‘달오름’ 김민수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올해 7월에 발표한 신작 〈섬 아저씨〉의 공연 직후였다. 오카야마현의 나가시마 아이세이엔(愛生園)이라는 한센병 요양 시설에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오갔던 김 대표의 실제 경험에 기반한 작품이다.

 

“당시 아이세이엔(한센인 요양 시설)에는 이 연극에 등장하는 ‘아키’라는 아저씨가 있었어요. 모두에게 ‘아키’라고 불리지만, 본명(한국어 이름)을 굳이 감출 생각은 없었던 재일조선인입니다. 인간미도 있고 힘도 세서 많은 사람들이 아저씨를 찾아와요. 그런 아키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쓰면 (일본 사람들이) 재일조선인에게 친근감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눈앞에 살아있는 배우가 이야기를 펼치는 연극만의 묘미도 있으니까요.”

 

대본을 쓰기 위해 취재를 하다가, 어릴 적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환자들은 한센병 요양 시설에 입소하면 일본 이름으로 불려요. 재일조선인이 이런 통칭을 쓰는 것은 차별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지 위해서였지만, 한센병 환자는 가족까지 차별받을까 걱정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불렸죠.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을지, 할 말을 잃었습니다.”

 

▲ 극단 달오름의 연극 〈섬의 아저씨〉 포스터.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한센병 요양 시설에 오갔던 김민수 대표의 실제 경험에 기반한 작품이다.


달오름: 재일(在日) 청년에게 ‘밤길을 비추는 달빛’ 되고 싶어

 

김민수 대표가 연극에 매료된 것은 조선학교에 다니던 중학교 2학년 때였다.

 

“한국어의 울림이 좋아서, 한국어 시와 소설을 낭독하는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그런데 학교 선생님이 당시에 막 창단했던 극단 ‘아랑삼세’(1988년에 창단한 재일조선인 극단, 아리랑 전설의 주인공 이름 ‘아랑’과 재일조선인 3세의 합성어)의 공연에 데려가 주셨어요. 제일 가운데 자리에서 무대를 보는데, 제 안에서 뭔가가 번쩍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연극 할래요’라고 선언했죠.”

 

한국어는 학교(조선학교)에서 배우는 말이었다. 생활언어(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로 사람을 웃고 울리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

 

재일조선인의 희로애락과 분노를 마음껏 표현하고 그 삶의 모습을 연극으로 만들고 싶어, 서른 살에 극단을 창단했다. 대사는 한-일 이중언어다.

 

“일본 사회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 어려운 재일조선인 젊은이들에게 ‘밤길을 비추는 달빛’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극단 이름(달오름)을 지었습니다.”

 

▲ 김민수(金民樹) 극단 달오름 대표. 배우-연출-극작을 한다. 1974년 오사카 출생. 고향은 한국의 제주도로 재일조선인 3세이다. (사진: 다니구치 노리코)


재일조선인의 희로애락, 마당 정신에 담아 공명할 것

 

김 대표가 만드는 연극의 밑바탕에 흐르는 주제는 자이니치(在日, 재일조선인)의 삶과, 고향인 제주도이다.

 

배우이기도 한 김민수 대표는 TV 아침드라마 〈호랑이에 날개〉에서, 전후 암시장에서 주인공에게 신문으로 싼 닭꼬치를 건네는 여성을 연기하기도 했다. “NHK에서 ‘식민지 시대의 치마저고리를 갖고 있냐’는 문의가 온 것이 계기가 됐어요. 당시 암시장에는 분명히 조선인이 있었을 거라고 얘기하시더라고요.”

 

달오름 연극의 특징 중 하나는 ‘마당극’이다. ‘마당’이란 시장이나 광장이라는 의미로, 떠돌이 예인 주변에 사람들이 원으로 모여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한반도의 민중문화이다. 〈우토로〉도 말 그대로 마당극이었다.

 

“잠깐만요, 아버지~ 이런 데 있었어?”라고 말하며 다가온 배우 손에 이끌려 나가 연극에 휘말린다. 그 반응이 다른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고, 이끌려 나간 사람 역시 상황을 즐긴다. 무리수 같지만 배우가 관객을 관찰하며 말을 걸고, 높은 무대에서가 아니라 관객과 같은 눈높이에서 연기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한국의 전통연희는 일본의 식민지배 시기에 금지되었다가 1970년대 한국의 민주화 투쟁 시기에 부활해 사람들의 마음을 고무시킨 역사가 있다.

 

“마당 정신이 살아있는 제주도에서 극단원과 함께 배워왔습니다. 배우와 관객의 거리가 가깝고, 함께 공명하고, 서로를 자극하죠. 배우도 관객도 어떤 반응이어도 즐깁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그런 거겠죠.”

 

▲ 올해 4월 제주에서 공연한 〈바람의 소리〉 포스터. 제주 4.3 당시 오사카로 건너간 쌍둥이 자매의 삶을 그린 소설 『바람 목소리』를 연극화한 작품으로, 일본 제1회 간사이연극대상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원작자는 김민수 대표의 어머니 김창생(金蒼生, 재일조선인 2세) 작가이다.


올해 4월, 제주도에서 〈바람의 소리〉라는 작품을 공연했다. 1948년에 제주도에서 일어난 4.3사건(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군과 경찰에 의해 주민들이 학살당한 사건)이라는 폭력의 폭풍우가 불어닥치는 가운데, 일본 오사카에 당도한 쌍둥이를 그린 장대한 드라마다. 원작은 김 대표의 어머니인 김창생(金蒼生, 재일조선인 2세) 씨의 소설 『바람 목소리』. “엄마의 소설은 눈물을 흘리며 읽었지만, 〈바람의 소리>는 몸이 저릿할 정도로 재미있으니 꼭 달오름이 공연으로 만들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 작품입니다.”

 

극단 달오름 창단 2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두 가지 계획이 있다.

 

“첫 번째는 1970년대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유학갔다가 남파 간첩 용의로 사형 판결을 받은 재일조선인 가족에게 초점을 맞춘 작품을 만드는 것, 두 번째는 조선학교의 어린이들에게 공연을 보여줄 기회를 늘리는 것. 최근에는 일본 학교로부터의 공연 의뢰가 늘어났습니다. 일본인 학생들에게 재일조선인의 존재를 전하는 것도 의미 있는 활동이지만, 공적 지원금이 중단되어 어린이도, 학부모도 힘들어하고 있는 조선학교에서 연극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달오름의 주요 작품은 온라인에서 볼 수 있다. 〈섬의 아저씨〉는 12월에 도쿄의 조선학교 두 곳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고주영 번역]

 

자세한 내용은 극단 홈페이지 참조.(한글) https://dal-o-reum.com/ko

 

-〈일다〉와 제휴 관계인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기사를 번역, 편집한 내용입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