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한국 드라마 시리즈 〈마스크걸〉은 동명의 웹툰이 원작으로,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주인공 김모미가 겪는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을 담고 있다. 드라마는 김모미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고 성형수술로 얼굴이 변한 후의 일까지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김모미가 겪는 언어폭력, 성폭력, 신체폭력 등도 담고 있다. 어떤 폭력 장면은 꽤 ‘쎄게’ 느껴진다. 사실 〈마스크걸〉 뿐만이 아니라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플랫폼에서 제작되는 많은 드라마에서 이러한 폭력 묘사를 담고 있다. 방송에서 다룰 수 없는, 그러니까 방송 심의에 걸리는 요소에 있어 제약이 없는 OTT 플랫폼의 폭력 재현은 쉽게 체감될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10월 24일 저녁, 이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로 〈납작하고 단선적인: 시민들과 함께 본 OTT 오리지널 K드라마 속 폭력 장면, 중고령 캐릭터 모니터링 결과 발표회〉가 열렸다. 정사강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이 모니터링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부교수, 이소현 상명대 초빙교수,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 그리고 시민모니터링단 참여자 산진 씨가 토론으로 함께 했다.
모니터링 결과 “총 43편의 드라마에 폭력 장면은 2천여장면”이었고, “폭력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은 없었다.” 왜 이렇게 폭력 장면이 많은 걸까?
정사강 연구위원은 OTT 플랫폼의 43편 드라마 관람 등급 중 ‘청소년 관람불가’가 44.2%나 된다는 점부터 짚었다. 그리고 2023년 6월 이후 ‘OTT 자체 등급 분류 제도’가 시행됐는데, “이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급격히 감소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OTT 전반에 걸쳐 선정성과 폭력성이 높은 콘텐츠가 다수 존재하는 걸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르로 봤을 땐 “스릴러 19.3%, 범죄 15.9%로, 전체의 3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폭력 장면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장르가 많이 제작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폭력의 유형은 “폭행 등 신체적 훼손 31.1%, 언어폭력 16.4%, 기타 11.8%, 10.4% 살인 등의 항목 순”이었다. 정사강 연구위원은 “폭력 유형 중 상대적으로 디지털(성)폭력 0.9%, 성폭력 0.8%, 데이트폭력 0.8%의 비중이 낮게 나왔다”고 했다. 이는 “실제 강력 범죄와 폭력 범죄(2023년 기준) 중 강간, 강제추행 등 성폭력 범죄가 약 8.3%라는 점에서, 재현의 측면에서 과소 재현”되고 있는 지점이다. 또 “OTT 드라마에서의 피해자 성별과 연령 분포를 살펴보니 남성이 70.8%, 여성이 28.1%”였는데, “현실(2023년 기준)에선 살인, 강도 등의 폭력 범죄 피해자 중 남성이 57%, 여성이 43%라는 점에서, 남성 피해자가 과잉 재현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어떤 폭력 재현은 ‘괜찮지 않는가’
너무 많은 폭력 장면이 재현되고 있는 문제, 하지만 이런 폭력 장면에 익숙해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폭력을 재현한 것 자체가 다 문제인 건 아니다.
정사강 연구위원은 “모니터링단의 49.1%가 드라마에서 재현된 폭력 장면에 대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답한 부분”과, “67.7%가 폭력 장면이 심각하지 않다고 답한 부분”을 언급하며 “폭력 장면의 자극적인 재현에 비해, 사소화 등의 요인으로 인해 폭력성 자체의 심각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또는 이미 폭력 장면에 대한 역치가 높아져서 어느 정도의 폭력적인 장면은 일상화가 되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모니터링단 산진 씨는 “정말 잔인하게 연출된 게 아니면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고 답변했던 것 같다”며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미디어의 폭력성에 길들여 진 건지 모른다는 점이 드러난 것 같아 씁쓸하고 부끄럽다”고 했다.
신진 씨는 “어떤 폭력은 그저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폭력의 재현이 폭력에 대한 긍정성이나 선망 같은 걸 재생산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콘텐츠 제작자들이 ‘폭력은 어쩔 수 없는 거고, 남성의 본능이고, 폭력은 폭력으로 막아야 한다는 등의 전제에서 벗어나, 왜 폭력이 일어나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좀 더 깊이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김수아 부교수는 그렇기에 “어떤 폭력은 재현되면 안 되는지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유형의 폭력이 문제인지 이야기해야 하고, 폭력이 재현되는 장면에서 ‘구조적 폭력의 문제를 제대로 묘사하고 있는지’, 그 장면에 어떤 고민이 들어가 있는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폭력을 재현하지 마라’가 아니라, 잔인하고 자극적인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폭력을 보여 줄 수 있는 방식을 (제작하는 이들이) 개발하라고 요구해야 한다”는 것. 또한 김 부교수는 제작자들에게 “어떤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것” 또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소현 상명대학교 초빙교수 또한 “이미 많은 수용자들, 특히 젊은 관객/시청자의 경우 폭력의 재현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게임도 있고, 청소년 관람불가 드라마라고 해도 요즘 편집본, 짤들도 다 돌아다녀서 볼 수 있다. 이런 걸 보고 자라면서 민감성이 점점 떨어지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고 설명하며 “이걸 어떻게 못 보게 할 것이냐가 아니라, 지금 콘텐츠 문화에서 폭력이 어떻게 쓰이고 있고, 어떤 식으로 기능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 좀 더 면밀히 이루어 져야 한다”고 짚었다.
중고령 여성 캐릭터, 모성으로 귀결…?
모니터링단은 폭력 재현뿐만 아니라 중고령 캐릭터가 얼마나 등장하고, 어떤 서사를 갖고 있는지 조사했다. 중고령 캐릭터가 (단역이 아니라 비중 있게) 등장하는 작품 21편을 모니터링 했다.
정사강 연구위원은 “OTT 드라마에서 재현되는 중장년/노년 캐릭터의 경우 남성 비율은 68.2%, 여성 비율은 31.8%로, 남성이 여성의 두 배 이상 재현되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특히 “주연인 경우엔 남성 비율이 87.5%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또한 직업, 직급을 봤을 땐 “남성의 경우가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직급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고, 여성의 경우는 직급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다수로, 여성의 직업 묘사가 남성의 직업 묘사보다 적게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디즈니플러스에서 제작, 방영한 〈무빙〉과, 넷플릭스에서 제작, 방영한 〈마스크걸〉에서의 중장년/노년 캐릭터에 대해선 질적 분석도 진행했다. 정사강 연구위원은 “〈무빙〉의 경우, 전체적으로 남성 캐릭터의 비중이 매우 높은 가운데 주요 인물들 중 여성 캐릭터인 ‘이미현’의 경우 남성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초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서사 전반에 걸쳐 전문적인 능력과 관련된 부분이 거의 묘사되지 않다가, 후반부 아들을 지키기 위한 과정에서 초능력을 비롯한 본인의 능력이 발휘하는 것으로 재현된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의 재현 방식에 대해 더 고민하길
민우회 모니터링단이 오랜 시간에 걸쳐 초단위로 드라마의 장면들을 쪼개고 분석한 것은 문제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멋진’ 액션 장면이 폭력을 미화하는 문제적 장면인지, 오락 영화에서 이 정도는 허용되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런 생각 자체가 미디어의 폭력성에 물들었다는 반증인 것인지 등등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기 때문”(모니터링단 후기 중)이다.
이번 모니터링으로 한국 드라마에서 폭력 재현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양적 통계가 드러났고, 반면 중장년/노년 캐릭터는 여전히 과소 재현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모니터링단의 문제 의식과 모니터링 결과를, 콘텐츠를 제작하는 이들 또한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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