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아이, 외국인이 ‘공생’하는 단지를 만들어요

일본 요코하마시 ‘기리가오카 플랫폼’ 공동대표 네기시 아스미

나카무라 토미코 | 기사입력 2024/11/12 [09:30]

노인, 아이, 외국인이 ‘공생’하는 단지를 만들어요

일본 요코하마시 ‘기리가오카 플랫폼’ 공동대표 네기시 아스미

나카무라 토미코 | 입력 : 2024/11/12 [09:30]

찜통더위 속 어느 날의 해 질 무렵, 인도인 어린이들이 길에서 놀고 있고 히잡을 쓴 인도네시아인 여성이 지나간다.

 

이곳은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의 기리가오카(霧ヶ丘) 단지. 반세기 정도 전에 산림을 깎아 만들어진 교외형 주거 지대의 한가운데에 있는 단지다. 개발 당시 자녀를 키우던 세대는 이제는 ‘노-노 케어’(老老 CARE)를 하는 몸이 되었고, 단지 주민의 30%는 외국 국적이다. 요코하마시가 인도의 IT기업을 유치한 영향도 있어 인도계 주민이 8백 명에 이른다.

 

▲ 네기시 아스미(根岸あすみ) 1984년 가나가와현 출생. 대학 졸업 후 입사한 광고회사에서 일하면서, 아이의 어린이집에서 만난 무사시 사치에 씨와 NPO법인 기리가오카 플랫폼을 설립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kirigaokaplatform.com 참조 ©오치아이 유리코(사진 작가)


일본 사회의 축소판 같은 이 단지 한구석에 비영리법인 기리가오카 플랫폼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 ‘문득 Kiricafe’(이하 키리카페)가 있다. 기리가오카 플랫폼의 공동대표인 네기시 아스미(根岸あすみ) 씨는 여기에서 제각각 살던 사람들과 문화를 잇고 있다.

 

네기시 씨가 자녀를 키우기 위해 자신이 나고 자란 기리가오카로 돌아온 것은 9년 전. 달라진 마을 모습에 놀랐다.

 

“지역 학교가 인도계 학교로 바뀌고, 딸들과 공원에 가면 인도 어린이밖에 없었어요. 그 아이들은 언어의 장벽 때문인지 일본 아이와 섞이지 않고 놀고 있더라고요.”

 

노인, 외국인, 어린 자녀를 키우는 세대. 서로 교류가 없는 가운데, 문제도 발생하곤 했다. 인도인 어린이가 어두워진 공원에서 놀고 있어 걱정이 된다, 밤늦게까지 음악을 틀어 시끄럽다, 등등.

 

“서로를 모르니 그렇게 되는 거죠. 가령 인도 현지의 생활 리듬은 일본과 두세 시간 차이가 나 저녁 식사가 9시쯤이에요.” 그런 차이를 알면 타협의 방식도 유연해진다.

 

“마을 축제 시즌에 인도분들이 베란다를 장식하는 전식도, 얼굴을 서로 아는 관계가 되면 ‘께름칙하다’에서 ‘예쁘네’로 표현이 바뀝니다.”

 

▲ NPO법인 기리가오카 플랫폼 공식 페이스북에 올라온 활동 사진들. https://www.facebook.com/kirigaokaplatform


네기시 씨는 다문화 교류 단체 KIC(기리가오카 인터내셔널 커뮤니티)를 발견해, 이 단체의 송년회에서 처음으로 인도인들과 건배를 했다. 그리고 일본 어린이든 외국 어린이든 언어 없이도 같이 뛰어놀 수 있는 이벤트도 기획했다.

 

한편으로 혼자서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를 키우는, 지칠 대로 지친 동료가 있었다.

 

“야근 때마다 나가노현에서 어머니를 불러서 아이를 맡아달라고 부탁한다는 간호사도 있었어요. 나는 무사시 사치에 씨(武蔵幸恵, 공동대표)와 만나면서 상부상조하는 관계가 됐으니, 그 범위를 지역으로도 넓히고 싶어 2019년에 임의단체 ‘마을플러스’를 세웠어요.”

 

그런 활동을 하다가, 노인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있는 단체 ‘복지의 마을 기리가오카’와도 만나게 됐다. 어느 날 그들이 “인도 카레가 먹고 싶다”고 하기에 “그럼 같이 기획하자”고 제안. 함께 준비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노인들과 인도의 육아 세대가 처음으로 어울리게 됐다.

 

이렇게 세 단체(다문화 교류 단체 KIC, 마을플러스, 복지의 마을 기리가오카)가 연결되어 지금의 비영리단체로 발전했다. 요코하마시의 지원을 받아 2023년에는 거점이 되는 ‘키리카페’를 오픈했다.

 

▲ 기리가오카 플랫폼에서 2023년 1월 커뮤니티 카페 ‘문득 키리카페(Kiricafe)’를 열었다. 출처: 문득 키리카페 공식 홈페이지 https://kirigaokaplatform.com/kiricafe


카페에는 다양한 사람이 모인다. 취재 당일도 직접 그린 그림을 걸기 위해 방문한 일요 화가 분이 있었다. 이런 곡을 만들었다며 들려주러 온 음악 애호가는 특기인 영어로 일본어 교사를 위한 자원 활동을 한다. 카페 카운터에는 영어 교사 출신인 일본인이 인도인 여자아이에게 보충수업을 하고 있다.

 

“그 친구의 아버지가 ‘딸이 일본 학교에 입학하면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묻길래, 처음에는 그냥 돕다가 말뚝을 박았어요. ‘하우머치’(얼마입니까?)라고 묻길래 ‘잇츠프리’(무료입니다) 했죠. 일본의 학교에 입학하는 데 소극적이었던 그 친구의 어머니도, 지금은 이곳에서 밥해주는 사이가 됐어요.”

 

기리가오카에는 최근 인도네시아인이 늘고 있다고. 그 중 다수는 돌봄 노동에 종사한다. “산업연수를 하면서 돌봄 노동 자격을 따는 게 쉽지 않은데, 다들 뛰어난 분들인 거죠. 제 딸의 가장 친한 친구도 인도네시아 아이인데, 딸이 똑같은 히잡을 갖고 싶어 하니까 친구 엄마가 선물해줬어요. 인도네시아인 모임에 초대받으면 종종 쓰고 나갑니다. 함께 아랍어를 배우기도 하고요.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라 기뻐요.”

 

▲ 기리가오카 플랫폼 홈페이지(한글 번역) 메인 화면. “세대와 국적을 넘어서 이어지는 장소”라고 소개한다. kirigaokaplatform.com


카페를 연 지 1년 남짓. 꿈꾸던 광경을 생각보다 금방 보게 된 점은 만족하지만, 동시에 앞으로의 과제도 무게로 느낀다. “정말로 곤경에 처한 사람은 여기에 오지 못하고 있을 거예요. 아직 내가 모르는 어떤 어려움을 떠안고 있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은 어릴 적과 똑같다.

 

“홈리스 분에게 도시락을 갖다주는 초등학생이었어요. 공원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집이 없다는 거예요.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을거리를 찾고 계시길래 ‘할아버지, 먹을 것도 없어? 그럼 내일 도시락 갖다줄게.’하고는 엄마한테 제 도시락과 함께 만들어달래서 가져갔죠. 그러다 어느 날, 그분이 자취를 감춰서 엉엉 울었어요. 지금도 기억납니다.”

 

대학에서 인도의 민주주의에 대해 배운 네기시 아스미 씨. 델리의 고아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는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서 그곳에서 일하겠다’고 지도교수에게 말했더니, ‘세계를 알기 전에 일본을 알라’는 소리를 듣고 취업. 불가사의한 인연으로 지금 여기까지 왔다.

 

곤경에 빠졌던 사람의 얼굴이 펴지면 자신의 마음이 충만해지니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그대로 ‘나 스스로를 위해서’가 된다. 네기시 아스미 씨는 그런 자신을 “여기(정수리)까지 사랑이 가득하고 사람을 믿으며 자라온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고주영 번역]

 

-〈일다〉와 제휴 관계인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기사를 번역, 편집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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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4/11/22 [12:04] 수정 | 삭제
  •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 2024/11/14 [11:57] 수정 | 삭제
  • 세 단체가 뜻을 모으니 고립된 마을에 생기가 도는군요.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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