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가르며 느긋하게 앞의 날갯짓을 좇는 기분이 더없이 상쾌했다. 날개 끝에 닿을 듯 거대한 막대기가 숲처럼 빽빽한 곳을 지날 때였다. 저 아래 강가 주위로 사람들이 다닥다닥 끝도 없이 모여있었다. 해도 다 졌는데 참 이상하다 하는 순간, 휘-육 펑!!! 고막을 찢을듯한 굉음이 우리를 강타했다. 눈앞이 번쩍번쩍했다. 후끈한 공기의 떨림에 이어 부리 사이로 매캐하고 텁텁한 것이 마구 밀려 들어왔다. 다들 놀랐는지 격렬한 날갯짓 소리와 함께 괴성을 질러댔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었다. 방향 감각이 마비돼서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다 누군가와 부딪혔다. 연이은 굉음 속에서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만 같았다. 습지가 코앞이었다.”
‘새’가 불꽃놀이를 어떻게 느낄지 결코 정확히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 느낌을 열심히 상상한다고 해도 상상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새가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새의 오감과 자각(磁殼: 지구의 자기장을 보며 위치를 인식하고 방향을 탐지하는 감각)을 이해하려 애쓰며, 최대한 새의 몸과 마음이 되어보고자 했다. 그러자 위와 같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화려한 불꽃에 감탄하던 평소와는 다르게 다른 존재의 시선으로 불꽃축제를 바라보고 싶었던 건, 생명다양성재단과 창작집단 이동시(이야기와 동물과 시)가 기획한 ‘리와일딩 주간’ 행사에 참석한 후다.
9월 마지막 한 주간, 리와일딩(Rewilding, 재야생화)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하고자 리와일딩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아시아 리와일딩 포럼)와, 야생적 감수성을 회복하는 토크(이야기와 야생과 시), 몰랐거나 외면했던 자연의 감각을 맞이하는 전시(참을 수 있는[없는] 존재의 야생성) 등의 행사가 열렸다.
낯설면서도 마냥 낯설지만은 않은 이 관점에 궁금함을 느끼며, 필름포럼에서 열린 〈리와일딩 아시아〉(Rewilding Asia) 다큐멘터리 시사회에 참석했다. 〈리와일딩 아시아〉(기획 김산하, 작가 김자한, 감독 김도형, 제작 생명다양성재단 & 이동시)는 일본,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몽골 등 아시아 4개국에서 진행된 리와일딩 현장을 직접 탐방하며 만든 다큐멘터리다. 리와일딩의 시작은 1990년대 미국과 유럽이지만, 우리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프로젝트는 우리의 환경, 식생, 문화와도 더 접점이 있고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싶어 기대됐다.
다큐의 초반, 눈에 익은 풍경이 등장했다. 서울숲! 한동안 뚝섬역 근처에서 일했던 내게 특히 익숙한 곳이다. 매일 산책하며 보던 풍경처럼 스크린에도 초록빛이 가득했고, 키 큰 나무 잎사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다큐는 그런 녹음을 눈앞에 두고 이런 물음을 건네왔다. [주말에 자연과 벗 삼아 놀기] 가능할까? 계절마다 달리 피는 꽃, 연못에 무리 지어 헤엄치는 물고기들, 서울에선 드문 드넓은 흙길이 자연이 아니라고? 자연은 까다롭단다. 무엇이 자연인지 알기 어렵다면, ‘자연’(nature) 대신 ‘자연스럽게’(natural)를 붙여볼 것을 권했다.
-서울숲 나무들은 트럭에 실려 옮겨져 왔다. 자연스러운가? (아니오) -튤립정원과 수국길의 꽃들은 계절마다 심긴다. 자연스러운가? (아니오) -공원 한켠 울타리 안에는 사슴들이 살고 있다. 자연스러운가? (아니오) -때때로 제초 작업이나 방역소독이 이루어진다. 자연스러운가? (아니오)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처럼 까다로운 규칙과 조건에 맞는 이들만 입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큐는 서울숲 같은 공간을 ‘경기장’에 비유했다. (실제로 서울숲 자리는 옛 조선시대 말 목장과 임금의 사냥터였고, 1950년대부터 오래도록 뚝섬경마장이 있었다는 걸 떠올리면, 모습이 완전히 바뀐 지금도 경기장과 다름없다는 게 묘하다.) 무엇을 비추고 감출 것인지는 아주 자연스레 편집되고, 대개는 그걸 모르고 살아간다. 선별된 장면을 자연이라 느껴온 무감함에 서늘해졌다. 그래서 어떻게, 누구나 오가고 머물고 숨 쉬고 숨을 거두는 ‘광장’이 될 수 있는 걸까?
〈리와일딩 아시아〉에서 소개된 4개국의 리와일딩 현장은 각자의 방식으로 ‘야생의 귀환’을 실현해 간다. ‘일본 늑대협회’(japan-wolf.org)는 사라진 ‘회색늑대’를 다시 불러올 것을 제안한다. 포식자가 사라진 1세기 동안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사슴들은 풀을 모두 먹어 치우고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 민가에까지 내려왔고, 지반이 약해진 산에선 산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먹는 자’ 없는 세상이 ‘먹히는 자’에게 마냥 좋기만 할 수는 없다는 야생의 역설을 보여준다.
리와일딩 현장을 보다 보니, ‘한국에서라면?’ 하고 무수한 가정이 스쳐 간다. 남산을 누비던 호랑이를 지금 당장 불러올 수는 없어도, 어떤 동식물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상상해 보게 된다. 수달처럼 보통은 인간을 공격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만은 없는 야생의 존재들을 불러올 때, 우리는 어느 정도로 위험을 감수할 수 있을까, 어떤 모습으로 비인간 존재들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고 싶다.
〈리와일딩 아시아〉 상영 후 이어진 질의 시간, 김도형 감독이 몽골 촬영 에피소드를 들려준 것이 기억에 남는다. 숙소 근처를 10분 남짓 걷자 동물 사체가 발견됐고, 두세 시간 걷는 동안 100마리가 넘는 사체를 보았다고 했다. 난 아주 가끔 비둘기나 고양이의 사체를 본 것만으로 못 볼 것을 본 듯 고개를 돌리곤 했는데, 몽골에선 시선 둘 데가 없어 하늘을 보며 걸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렇듯 ‘사체가 그냥 널려있는 게 용납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생태적 원효대사’인 사체에 대한 인식과 문화가 바뀌고, 금기와 같은 물리적·정신적 경계를 허물어야 야생이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도시 생활자는 마트 정육 코너에 놓인 고기가 뜨끈한 콧김을 뿜는 커단 소였다는 걸, 닭알의 크기와 모양과 색깔이 제각각이라는 걸 잊고 살거나, 모르고 산다. 과일 껍질을 벗기고 정갈하게 잘라 포장한 ‘컵과일’에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샌가 과일의 원래 생김새도 잊게 될지 모르겠다. 리와일딩이란 우리가 감각하고 사고할 때 배제된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관점을 바꾸어보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정의 내려 보았다.
주말 어린이대공원에 갔다가는 옷에 앉은 벌레를 발견했다. 아주 작은 녀석이긴 하지만, 이전처럼 마구 소름이 돋는 대신 차분하게 살살 원래 있던 곳으로 날려주었다. 난 여전히 벌레가 무섭다. 그렇지만 내가 뭐래도 이들은 자연에서 제 역할을 묵묵히 해가고 있다. 이제는 꿀벌이 줄어 사람이 손으로 직접 수분(受粉)을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곤충을 비롯한 생물 종의 감소에 대한 심각한 징후는 세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실천이 무엇일까?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는 ‘나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곤충을 사랑하지는 않더라도 지나치게 거부감 갖지 않기’, ‘인위적으로 가꿔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 감탄할 줄 아는 것’ 등을 제안한 바 있다. (관련 기사: “종말적인 시나리오를 상상하기보다 자연과 나의 관계를 다시 설정해 보길”, 나라경제 2024년 09월호)
[참고 자료] -『새의 감각』, 팀 버케드 지음,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2015. -Birds Flee En Masse From Fireworks, 2015년 12월 31일자, Forbes
[필자 소개] 정이예슬. ‘함께 배우는 사람’. 나에게도, 지구에게도 다정한 삶의 방식을 배우고 지속해갈 수 있도록 돕고자 클라이밋(Climeet)을 창업했다. 청소년과 청년들이 지역사회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사회적경제·기후환경·ESG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교육 워크숍을 진행한다. 기후위기, 젠더, 불평등, 다양성, 시민정치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활동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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