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재사용한 글이다. 소로는 『월든』에서 ‘숲 생활의 경제학’을 펼쳤다. 일반적인 경제학은 자본으로 어떤 상품을 만들어서 어떤 가격에 얼마나 많이 팔아서 얼마나 큰 이윤을 남길지 계산하지만, 소로는 숲에서 얼마나 적은 비용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계산했다. 이를 통해 문명으로 얼룩진 삶이 아닌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주려 했다.
현대에 도시에 사는 한국인이 삶의 비용을 계산하는 일은 여간 복잡하지 않지만, 나는 일단 도시 생활에 드는 플라스틱 값을 계산하기로 했다. 2024년 1월부터 6월까지 지출한 플라스틱 값을 토대로 1년 치를 계산해 ‘도시 생활의 경제학’을 펼쳐보기로 했다. 글 곳곳에는 『월든』이 배어 있다. 소로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오기도 했고, 그 허세를 빌리기도 했다는 점을 밝힌다. [기획의 말]
살갗
지난번에는 내 몸을 씻는 이야기를 했다. 씻고 나와서는 가장 먼저 얼굴에 로션을 바른다. 여드름 때문에 로션도 최근에 새로 샀다. 언니가 이사 갈 때 대거 챙겨 온 로션 샘플 중 다행히 내 피부에 맞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같은 라인의 로션을 22,900원에 샀다. 아마 올해 두 번쯤 더 사지 않을까 한다.
다만 불행히도 이 로션을 바르니 이마의 여드름은 들어갔지만 볼이 메말랐다. 이에 다른 크림 샘플을 하나 꺼내 이마를 제외한 부분에 바르기 시작했다. 일단 큰 문제는 없어서 샘플을 계속 쓰고 있다. 사실 이마를 제외한 부위는 그다지 예민하지 않으므로 일단 언니가 준 여러 샘플을 소진할 생각이다.
다음은 바디로션이다. 지금 내 책상 위에는 바디로션이 두 통 있다. 한 통은 언니 회사에서 나온 것이다. 원통형 플라스틱 통이고 펌프는 없다. 내용물을 거의 다 썼지만, 뚜껑을 제거하기 어려워서 끝까지 쓰지는 못하고 있다. 그냥 뒤집어 두고, 툭툭 털어서 나오는 찌꺼기를 이따금 쓸 뿐이다.
주로 사용하는 바디로션에는 펌프가 있다. 언니가 이사 가면서 주고 간 바디로션이다. 펌프형은 끝까지 쓰기 정말 곤란하다. 내 돈으로 산다면 나는 항상 단지형으로 산다. 단지형은 끝까지 쓰기도 편하고, 분리수거하면 재활용되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기에도 좋다.
헤어에센스 다음에는 풋크림을 바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바디로션을 발에 바르지 않고 굳이 풋크림을 따로 산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습관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발꿈치를 촉촉하게 하기에 바디로션은 부족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작년에 사 놓은 풋크림이 있으니 관성으로 계속 사용한다. 이 풋크림도 고갈될 때쯤엔 반을 가를 셈이다.
풋크림을 바른 뒤에는 머리를 말린다. 머리를 말린 다음엔 립밤을 바른다. 나는 본래 립스틱처럼 돌려서 쓰는 립밤을 쓰지 않는다. 끝까지 쓰기도 힘들거니와 재활용도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손가락으로 덜어서 쓰는 단지형 립밤을 사용한다. 하지만 작년에 한 친구가 인도에 다녀오면서 스틱형 히말라야 립밤을 선물로 사 왔다. 선물로 받았으니 일단 쓰기 시작했고, 지금은 거의 바닥을 보인다. 바닥을 보인다는 말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입술에 바로 바르는 식으로는 도저히 립밤을 바를 수 없을 만큼 양이 줄어들었을 때부터 마치 단지형을 쓰듯 손가락으로 립밤을 발랐다. 이제 새끼손가락으로도 립밤을 긁어낼 수 없을 만큼 립밤이 바닥에 붙어 있다.
다음은 바세린이다. 사실 나의 루틴에 바세린은 원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템플스테이를 가려는데 바디로션을 챙기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급하게 올리브영을 들렀다. 안 그래도 가득한 가방에 커다란 바디로션을 사서 넣기는 부담스러웠다. 펌프가 있는 바디로션을 사기도 싫었다. 고민하던 중 바세린이 눈에 띄었다. 바세린은 작고 가벼우며 다 쓰면 분리수거하기도 편했다. 내용물은 석유 그 자체이지만 말이다. 결국 2,200원짜리 바세린을 선택했고, 템플스테이 동안 바디로션으로 잘 활용했다. 이제 바디로션 대용으로 바세린을 온몸에 펴 바를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되니, 팔자주름을 방지하는 용으로 입 주위에만 조금씩 바르고 있다.
이는 저녁 루틴이고, 아침에는 세수 후 로션을 바르고 선크림을 바른다. 선크림은 무기자차이다. 유기자차는 눈이 시려서 도저히 바를 수 없다. 유기자차 선크림은 해양 생물에 해를 끼친다니까 차라리 잘된 일이다. 지금 쓰는 선크림은 작년 여름에 원플러스원으로 샀다. 첫 번째 선크림을 이제 절반 조금 넘게 사용하였으니 올해는 새로 선크림을 살 필요가 없겠다.
이 선크림에는 ‘Vegan Formula’(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고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제품)라고 써 있다. 화장품이 ‘비건’인 것이 얼마나 유의미한 효과를 내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수많은 화장품은 오래 전에 동물실험을 통해 안전성을 인증받아서 다시 동물실험을 할 필요는 없는 화학약품을 주로 사용하지 않는가.
선크림을 바르면 기초화장은 끝이다. 색조화장은 하지 않는다. 화장품이 있기는 하다. 파운데이션 하나는 2021년에 산 것이고, 하나는 언니가 안 써서 나에게 준 것이다. 아이브로우와 아이섀도우는 언니가 학부생 때 쓰던, 아마 2014년쯤에 샀을 것들이다. 아이섀도우 하나는 내가 2018년에 산 것이다. 볼터치도 언니가 준 것인데, 정확히 언제인지는 몰라도 2018년 이전에 산 것이다. 아이라이너는 2021년에 샀는데 요즘 화장할 땐 거의 쓰지 않는다. 섀딩은 2019년에 사서 이제는 다 깨졌지만, 어떻게든 조각을 흘리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쓴다.
마지막으로 립스틱과 틴트가 하나씩 있다. 둘 다 2021년에 친구들에게 선물로 받았다. 화장할 일이 있을 땐 이 화장품들을 쓰나, 1년에 5번 이상 쓸 일은 없다. 자주 쓰지 않으니, 화장품이 유통기한을 지났더라도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화장품이 매립되든 소각되든 내 피부에 발리든, 나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똑같다.
[필자 소개] 초: 대학원생이다. 환경과 이주 문제에 관심이 있다. 이 두 문제와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전공에서 박사논문 주제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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