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받는 노동이 질 높은 돌봄을 보장할 수밖에

[우리의 돌봄을 이야기하다] 돌봄노동자의 낮은 지위와 처우 개선해야

최영미 | 기사입력 2024/11/17 [08:22]

대우받는 노동이 질 높은 돌봄을 보장할 수밖에

[우리의 돌봄을 이야기하다] 돌봄노동자의 낮은 지위와 처우 개선해야

최영미 | 입력 : 2024/11/17 [08:22]

작년 유엔 총회에서 10월 29일을 “국제 돌봄 및 지원의 날”로 정했습니다. 올해 한국의 여성, 장애, 청년, 노동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 29개 단체들이 모여 ‘10.29 국제돌봄의날 조직위원회’를 꾸리고 10월 28일~11월 2일에 돌봄 공공성과 지속가능한 돌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폈습니다. 돌봄의날 주간을 기념하여, 조직위원회 참여단체의 활동가들이 ▲돌봄중심사회로 전환 ▲국가가 책임지는 돌봄공공성 확보 ▲돌봄노동 가치 재평가 및 처우개선 ▲돌봄권리 보장을 주제로 기고글을 연재합니다. [기획의 말]

 

늘어나는 돌봄일자리, 비정규직과 소득 양극화도 증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노동자의 규모는 100만을 훌쩍 뛰어넘는다. 인구 절벽이라느니 일자리가 부족하다느니 하는 와중에 고용을 견인하고 있는 것도 돌봄 일자리이다.

 

통계청의 2023년 연간 고용동향을 보면 경제활동 참가율 변화는 30대 여성(3.6%), 60대 이상 여성(1.5%), 50대 여성(1.2%)이 가장 많이 늘었다. 산업별로 보면 제조업, 도소매업 다음으로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종사자가 많았는데, 이 중 유일하게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이 5.8%나 증가했다.

 

동시에 비정규직 증가와 소득 양극화를 견인(?)하고 있는 것도 돌봄 일자리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23년 임금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의 비율은 37%였지만 여성은 45.5%에 이르렀다. 신영민-김태일(2022)에 따르면 한국 돌봄일자리의 비정규직 비율은 무려 76.6%에 달하고, 임금 수준은 전체 임금노동자 대비 64.1%에 불과하다.

 

▲ 10.29 세계돌봄의날을 맞아, 10월 28일 오전 10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돌봄이 필요한 국민, 돌봄노동을 하는 노동자 모두’를 위해 국가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를 담은 돌봄주간 행사 시작 기자회견이 열렸다.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 발언 모습. (출처: 한국노총 전국연대노조 가사‧돌봄서비스지부 홈페이지)


법제도 보호에서 배제, ‘그림자 노동’이었던 돌봄노동의 역사

무한경쟁과 고용불안…돌봄서비스의 ‘전문 직업화’ 늦춰

 

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돌봄노동자 생성의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기로 하자.

 

아직 농업인구가 80~90%를 차지하던 일제강점기에서 그밖의 산업, 직업군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것은 접객업에 이어 가사사용인이었다. 1930년 조선인 가사사용인은 116,751명이며 이 중 여성은 88,453명으로 접객업(여관·하숙업·음식업·기예·창기) 91,358명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당시 직업소개소 통계를 보면 가사사용인이 ‘부인’ 취업의 최대 직종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여성 취업의 중요한 일자리였는데도,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서는 ‘개인 가정에서 일하기 때문에 국가의 지도‧감독이 미치기 어려워’ 법 적용을 제외했다. 이 때부터 가사사용인, 지금으로 말하면 가정 내에서 일하는 돌봄노동자들은 모든 법제도의 보호에서 배제되어 ‘그림자 노동’, ‘비공식 노동’으로 남게 되었고, 사회적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돌봄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IMF 금융위기와 궤를 같이 한다. IMF는 한편으로 여성 비정규직을 급증하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전업주부였던 많은 중고령 여성들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가정 내 돌봄서비스에 종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003년에는 ‘재외동포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중국 동포들이 대거 유입되어 입주제 일자리에 진입하였다.

 

정부는 일자리 확대를 위한 고용정책 차원에서 사회서비스 부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2006년 ‘산모‧신생아 바우처 시범사업’을 필두로 장애인활동지원, 가사간병서비스 등 바우처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후 2021년에는 가사근로자 고용개선에 관한 법 제정까지 이른다.

 

한국의 돌봄서비스 발전 흐름은 민영화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사회서비스는 공공근로라는 개념을 원용한 정부의 재정지원 일자리, 그리고 ‘시장 가격보다 낮게 공급함으로써 고가의 사회서비스 산업을 발전시킬 마중물’이라는 전제에서 시작됨으로써, 최저임금체계에 묶이게 되었다.

 

사회서비스에 포괄되지 못하고 여전히 민간 영역의 직업소개소를 통해 공급되는 가사돌봄(가사도우미), 아이돌봄(베이비시터) 서비스는 최저임금과 사회보험에서 배제되어 가장 하위의 직업으로 고착되었다.

 

‘사회서비스 이용권에 관한 법률’과 노인요양보험법은 돌봄노동자의 근로조건이 아니라 ‘공급기관’의 최소요건만 정함으로써, 지금까지 무한경쟁과 돌봄노동자 고용불안의 원천이 되고 있다.

 

제공기관 “일자리는 많은데 일할 사람은 부족”하고

노동자 “일하고 싶은데 맞는 일자리는 부족”하고

이용자 “기관은 많은데 믿을 수 있는 전문 서비스가 부족”한 현상

 

2024년 현재 이러한 흐름 속에서 돌봄노동자의 규모는 100만 명을 상회한다. 돌봄노동자의 범위는 국제적으로도 해당 국가의 제도에 많이 좌우되므로 차이가 있지만, 협의의 돌봄으로 사회복지 관련종사자, 돌봄 및 보건서비스 종사자, 육아 및 가사도우미를 포괄한다. 남우근(2024)에 따르면 돌봄노동자의 규모와 현안은 다음 표와 같다.

 

▲ 돌봄노동자 현황. 돌봄노동자 규모는 백만 명을 상회하고 있다. (남우근, 2024)


표에서 보듯이 돌봄노동자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노동자성 부정, 시간제 호출 노동, 장시간 노동’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돌봄노동자들을 저임금 노동자로 고착시키고, 소득을 지속적으로 불안하게 만들며 이를 일부 상쇄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조차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다. 돌봄일자리는 늘어나지만, 불안정한 노동환경은 미스매칭과 노동시장 이탈을 불러와 인력 수급에 혼동을 야기한다.

 

근로조건을 조금 더 살펴보자. 민주노총(2024)은 아이돌보미, 노인생활지원사,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 보육대체교사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23년 12월 기준 세전 월급이 171만9,000원이었다. 월평균 근무일수 21일, 일평균 근무시간 6.2시간이므로 시급으로 환산하면 약 13,300원이 된다. 이는 주휴수당, 연월차수당, 휴일근로수당, 연말 상여금 등이 포함된 금액이기 때문에 기본급으로 따지면 최저임금이다.

 

근속에 따라 수당을 받거나 임금이 인상되는 경우는 21.5%였는데, 이는 정부가 3년 이상 일한 요양보호사에게 장기근속장려금을 지급하기 때문이며, 그밖의 돌봄노동자들은 대부분 근속수당이 없다.

 

심지어 2022년 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서비스 수요공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15~20%의 노동자들이 야간노동, 휴일노동을 해도 수당을 받지 못한다. 결국 정부 영역의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은 모두 ‘최저임금 노동자’라는 뜻이다.

 

민간 영역 역시 마찬가지이다. 서울지역의 경우, 일명 가사도우미라고 불리는 가사돌봄노동자들은 시급 15,000원 안팎을 받고 있으며, 베이비시터 등 다양하게 불리는 아이돌봄노동자들은 시급 13,000원 안팎을 받는다.

 

급여는 모두 이용자 부담이며, 이용자들은 이밖에 기업의 수수료로 더 많은 요금을 내게 된다. 정부 영역의 사회서비스 노동자들과 달리 처우개선비나 수당은 물론, 퇴직금조차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최저임금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 영역과 민간 영역을 막론하고 1년을 일하든 10년을 일하든, 평생을 최저임금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제 호출 노동’은 낮은 급여를 더 낮게, 불안정하게 만드는 독소이다. 이용자가 주문을 취소하면 짧은 시간에 대체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상 당장 급여가 삭감된다. 대체 일자리가 나오더라도 바로 전의 일자리에서 이동이 가능한 거리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선택이 제한된다. 내 사정이 아니라 이용자 사정 때문에 내 급여가 줄어들고, 한 달에 계산해놓은 생활비가 펑크 난다. 그래서 ‘급여 인상’과 이용자의 주문 취소와 관계없이 안정적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월급제’가 돌봄노동자 모두의 가장 절실한 요구이다.

 

2022년 사회서비스 수요공급 실태조사에서 관계자들이 사회서비스업이 발전하는 데 가장 필요한 1순위 정책으로 ‘제공인력 처우개선’을 든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듯 돌봄노동자에 대한 낮은 처우는 돌봄서비스의 ‘전문 직업화’를 늦추고, 인력의 이동을 격화시켜 제공기관 입장에서는 ‘일자리는 많은데 사람은 부족’하고, 노동자 입장에서는 ‘일하고 싶은데 맞는 일자리는 부족’하며, 이용자 입장에서는 ‘기관은 많은데 믿을 수 있는 전문적 서비스가 부족’하다고 하는 희한한 결과를 가져온다.

 

여성이 담당해온 가사노동=돌봄노동이라는 인식 바꿔야

돌봄노동자 교육훈련, 국가자격증, 업무 표준화 등 직업적 위상 높여야

 

돌봄노동자의 낮은 지위는 한국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여성이 담당해왔던 ‘가사노동=돌봄노동’의 낮은 지위에서 연유한다. 특히 가정 내 돌봄노동자는 지금까지 근로기준법 적용이 제외되고 있으며, 근로기준법이 원칙적으로 적용되는 사회서비스 영역은 최저임금에 묶여 있다.

 

그뿐 아니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고 하지만 지금의 근로기준법은 초기에 공장제 노동에 맞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호출노동을 포괄하지 못하는 측면이 강하다. 근로기준법이 외국에서는 초기에 ‘공장법’이라고 불렸듯이 거기에 맞는 업종을 하나둘씩 추가해 적용을 확대하는 방식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처음부터 모든 산업에 일률적으로 적용했기 때문에 그만큼 현실에 맞지 않는 사각지대가 많이 존재한다.

 

▲ “모두를 위한 돌봄”, “돌봄 중심 사회로 전환하라!“ 11월 2일 오후 2시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제대로 된 돌봄을 요구하는 돌봄시민 행진]이 있었다. 10.29 국제돌봄의날을 맞이하여 29개 노동‧시민‧사회단체, 120여 명이 행진자가 모인 가운데 ‘돌봄의날 주간’의 대미를 장식한 행진 모습. (출처: 가사‧돌봄유니온 홈페이지)


따라서 돌봄노동자의 처우개선은 일단 다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첫째, 월급제로의 전환과 적정 시급의 설정, 각종 수당이 보장되어야 한다. 최소한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인건비 가이드라인에는 맞춰야 한다. 이는 정부가 책임지고 있는 사회서비스 영역부터 시작하면서 민간시장을 선도해야 한다. 이것이 저출생 고령화 시대에 국가적 과제인 좋은 서비스 확대뿐 아니라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둘째, 돌봄노동자의 직업적 위상을 높여야 한다. 현재 돌봄서비스 가운데 국가자격증은 요양보호사 하나뿐이다. 20년 전부터 줄기차게 각종 연구기관에서 자격증 제도와 이와 연동된 교육훈련, 업무의 표준화를 제안했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가자격증, 업무 표준화, 교육훈련, 경력 인정과 처우 개선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루빨리 시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종종 문제시되는 이용자에 대한 학대, 비인격적 대응을 해결할 길이기도 하다.

 

셋째, 이용자에 대해서도 잠시 이야기하고자 한다. 돌봄서비스의 특징은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일종의 다품종 소량생산이다. 곧 그만큼 이용자, 이용자 가족, 가정생활의 특징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와 만족도가 제각각이고 노동자와 이용자의 상호존중이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만큼 이용자의 책임성이 낮은 국가도 드물다.

 

예를 들어 정부가 아닌 민간 영역에서 공급하는 가사돌봄과 아이돌봄의 경우, 홍콩, 싱가포르, 필리핀, 대만, 프랑스, 독일 등에서도 이용자가 최소한 사회보험에 가입하는 등 고용책임을 일부 지게 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그러한 인식이 없다. 정부 영역의 사회서비스에서는 비용 일부를 부담(자부담)하는 것으로 책임이 끝나고, 돌봄노동자에게 내가 원하는 모든 일을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돌봄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의 하나인 ‘이용자와의 소통, 변화’가 필수적이다.

 

[참고문헌]

-강석금, “가사노동자 노동주체와 노동성격 변화과정 연구”,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석사논문(2015)

-강이수, 『한국 근현대 여성노동-변화와 정체성』, 문화과학사(2011)

-남우근, “돌봄서비스업 외국 인력 도입 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 – 한국은행 보고서 비판을 중심으로”, 돌봄서비스 외국인력 도입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 자료집(2024)

-민주노총, 돌봄노동자 임금 실태조사 결과 및 총선 임금요구안 발표 간담회 자료(2024)

-박주영 외, “돌봄노동자의 노동권 실태 및 법제도 개선과제”, 민주노총 법률원 부설 노동자권리연구소(2022)

-신영민‧김태일, “돌봄 일자리 특성과 임금 수준에 관한 국제비교 연구”, 정책분석평가학회보 제32권 제4호(2022)

-윤자영 외, “돌봄노동 저평가 개선방안 연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2021)

-이만열‧김영희, “1930-40년대 조선 여성의 존재 양태”, 국사관논총 제89집, 한국사데이터베이스(2000)

 

[필자 소개] 최영미. 한국노총 전국연대노조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이며,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이사,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자공제회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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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르 2024/11/18 [22:31] 수정 | 삭제
  • 가사도우미 구인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이 여기 다 적혀 있네요.. 정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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