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여자들
석탄 산업이 흥했던 시절에는 지나가던 개도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풍문이 떠도는 옛 탄광 마을에서 몇몇 사람들과 글쓰기 공부를 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여러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버지 술값 대신 팔려가듯 결혼해서 탄광촌에 들어온 여자, 산골이 좋아서, 남편의 잘생긴 얼굴이 좋아서 미니스커트를 입고 온 여자, 일찌감치 술꾼에 ‘폐병쟁이’가 된 남편 대신 다방을 열고 여인숙을 열어 자식을 키운 여자들이 이야기!
어디에서나 그래왔듯이 그곳의 여자들은 이유 없이 억울하게 당하는 고통도 많았다. 여자가 아침 길거리에서 출근하는 광부 눈에라도 띄면 그날 그 광부는 재수 없어서 탄광에서 일하다 죽는다는 미신이 횡횡했고, 그래서 탄광촌 여자들은 온갖 금기와 모욕에 시달리면서도 숨죽여 일해왔다. 그러나 남자들이 집에 없는 사이, 여자들끼리 일하다 모여서 참으로 부침개 부쳐 먹고 냇가에서 디스코 추며 신나게 와하하 했기에 “최고로 재밌었다”고 말하는 여성 노인의 목소리에는 통쾌함이 묻어있다.
민주화운동이라거나, 항쟁이라는 말은 입에 올릴 수도 없던 그때, “선생님”이라고 불리던 대학 나온 남자들이 낚시하고 술 마시던 그 곁에서 혼자 신문 세 종류를 정기구독하던 또 다른 여자는 서점을 차려 날마다 노동법 책을 수십 권 팔았다. 신문에서 본 흐름과 필요를 바탕으로 사회과학책을 가져다 놓으면, 어찌 여기 촌마을에 이렇게 좋은 책이 있느냐며 알아보는 손님들에게 수십 권이 팔렸다. 그렇게 책을 팔아서 집안의 살림을 일으킨 그 여자는 일흔여덟이 된 오늘까지도 날마다 신문을 읽고 동네 도서관에서 하는 인문학 수업에 빠지지 않고 나간다.
글쓰기 공부를 하며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쓰는 사이, 자신은 여자라서, 가난해서, 영문을 모른 채 스스로를 미워해 왔다는 또 다른 여자는 자기 안에 칼 하나를 품고 벼리면서 억척스럽게 살아왔다며, 살아남은 스스로가 기특하다고 말했다. 이제는 꽤 살만하다고도!
칼과 거울을 든 여자아이가 있다. 그림책 『거울을 든 아이』(안나 회글룬드 지음, 최선경 옮김, 곰곰)의 주인공이다. 아이는 컴컴한 바다로 둘러싸인 작은 섬에 홀로 남겨져 있다. 아이의 아빠는 거인과 싸우겠다며 홀로 떠나버렸다. “얘야,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구나. 못된 거인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돌로 바꾸어 버리고 있어. 내가 가서 무찔러야겠다. 아빠가 없는 동안 혼자 있을 수 있지?”
아이는 날마다 깨진 컵을 붙이고 뜯어진 양말을 꿰매면서 아빠를 기다린다. 저녁이면 거울을 들여다보며 스스로에게 안부를 묻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돌로 바꾸어 버리는 거인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밤, 마지막 촛불마저 다 타버리고 지독하게 무시무시한 어두움이 아이를 둘러쌌다. 그 컴컴한 밤을 홀로 보내며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다음 장에서 아이는 칼과 거울을 들고 ‘시커먼 먹물을 풀어놓은 것처럼 어둡게 빛나’는 바다로 헤엄쳐 들어간다.
이 그림책은 비교적 작은 판형인데, 그림 장면마다 풍기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오감을 자극한다. 안나 회글룬드는 그림책을 만들 때마다 각각의 이야기에 어울리는 그림 작법을 찾아 시도하는 작가다. 이 이야기에는 동판화로 미세한 선들을 찍어서 독특한 질감을 만들었고 그 위에 수채물감 서너 가지 색을 절제하듯 엷게 입혔다.
아이가 밤바다를 건너는 장면 역시 검은 바탕 위에 가는 선들이 그어진 것처럼 섬세한 선들이 찍혀있다. 이렇게 그려낸 바닷물의 질감과 색감은 무표정한 듯 아닌 듯한 아이의 표정과 어우러져 묘하게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다행히 아이는 위험천만한 바다를 무사히 건너 육지에 당도한다. 숲과 오솔길을 지나고 오두막에서 만난 할머니의 도움으로 메마른 땅에 도착한다. 마침내 거인과 마주친다. 아이는 이 거인을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원제는 스웨덴어 Förvandlingen이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변신’이라는 뜻이다. 이 그림책에서 ‘변신’은 무엇을 가리킬까? 살아 있는 것들이 돌로 변하게 된 사건을 뜻하는 걸까? 아이가 거울을 보며 끄집어낸 내면의 용기와 지혜, 그를 통한 자아의 변신을 뜻하는 것일까?
나는 특히 아이가 혼자 무서운 밤을 통과하는 장면을 주목하게 된다. 그 장면에서 아이는 숨 쉴 틈 없이 꽉 찬 어둠 속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다. 이 그림책이 신화적인 특징이 있어서인지, 이 장면의 인물을 누군가는 나처럼 아이로 해석하지 않고, 미래에 만나게 될 할머니의 모습으로, 또는 외로운 순간 아이가 불러낸 신이나 친구의 모습이라고 읽기도 한다.
이 책을 한 여자아이의 변신과 생존투쟁기로 읽는 나로서는, 그 밤 아이가 지독하게 무서우면서도, 두려움과 외로움에 잠식당하지 않고 또 다른 자아로 변신한 것은 아닐까 상상한다. 그 장면 이후, 아이의 눈은 커지고 또렷해졌고 스스로 거인을 만나러 나서기 시작했다.
또 하나, 인상적인 장면은 깜깜한 바다를 건너 육지에 도착한 아이가 햇살에 젖은 몸을 말리는 그림이다. 나무 아래에 맨몸으로 앉아 옷과 몸을 말리는 아이 앞에는 숲으로 인도하는 길이 뻗어 있다. 축축한 몸과 마음을 뽀송뽀송하게 말리고, 아이는 햇볕 아래에서 저 멀리 나아갈 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칼을 벼리지 않았을까.
안나 회그룬드는 이 그림책을 엘사 베스코브의 동화 『트립, 트랍, 트롤과 거인 둠둠』에서 영감을 얻어 썼다고 한다. 그 동화는 세 자매가 나쁜 거인 둠둠에게서 아빠를 구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거울을 든 아이』를 보며 버려진 딸 바리데기가 저승으로 가서 아버지를 구해오고, 그 과정에서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신이 된 우리나라의 신화 ‘바리공주’가 생각났다. 그리고 내가 시골 마을에서 만난 여자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수용할 것과 변혁할 것을 구분하고, 몸을 바꿔가며 돌진한 여자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세상에 기댈 곳 없는 여자아이가 스스로 살아남고자 내면의 용기를 끌어 올려 변신하는 이야기로 읽는다. 그 고립과 두려움 속에서, 슬픔과 외로움에 잠식당하지 않고 거울을 똑바로 보는 일은 어쩌면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고, 수용할 것과 나아갈 것을 구분하는 시작점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아이만 혼자 남겨두고 떠난 아빠가 나는 몹시 원망스럽지만, 아이는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누구나 혼자서 치러야 하는 종류의 어두움이 있다는 것을. 『거울을 든 아이』는 막막함과 두려움, 외로움을 직면하고 수용하면서도, 거울과 칼, 우산을 들고 나아간다. 바다와 햇살을, 숲과 오솔길을 더욱 믿고 삶과 죽음을 새롭게 변신시킨 단단하고도 유연한 이 아이의 이야기를 살아남은 여자들, 거울을 들고 내면의 칼을 벼리고 있는 여자들과 함께 보고 싶다.
[필자 소개] 안지혜. 날마다 그림책을 읽는 사람. 그림책 『숲으로 간 사람들』을 썼고 여러 권의 그림책을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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