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환경연대에서 주관한 제9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 “플라스틱으로 온 세상이 뒤덮이기 전에”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한 기사입니다. [편집자 주]
플라스틱의 대안은 바이오플라스틱? 재활용인가? 그 모두가 대안이 아닌 이유
오늘 저는 우리 몸의 건강을 이야기할 때 큰 연관성을 떠올리지 못하는, 그러나 실제로는 인간 건강과 지구 환경에 긴급하고 중요한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짐작하시겠지만, 플라스틱입니다.
지구는 온난화를 넘어서 열대화가 되어 가고 있죠. 그래서 2023년 UN 기후변화 회의에서는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아주 큰 한계가 있었습니다. 화석연료로 생산하는 에너지의 전환만 강조하고, 똑같이 화석연료로 만들어내는 플라스틱과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간 것입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어차피 트렌드는 재생에너지와 전기자동차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이미 휘발유, 경유의 상품가치는 떨어지고 있죠. 그래서 산유국과 정유회사들은 이제 화석연료를 정제해서 파는 데 그치지 않고, 플라스틱 생산에 직접 뛰어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익률도 더 높으니까요.
플라스틱은 무엇으로 이루어져있는지 아시나요? 네, 화석연료에 첨가제인 화학물질을 섞은 것입니다. 그런데 플라스틱은 의외로 단단한 분자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석연료에서 첨가된 유해화학 물질이 생각보다 잘 분리됩니다. 그 와중에 플라스틱의 수명은 500년이 넘죠. 썩지도 않고 유해물질을 계속해서 뱉어냅니다.
그럼 재활용은요? 다들 환경을 위해 열심히 분리 배출하고 계시죠? 안타깝지만 재활용은 우리가 믿고 싶은 것처럼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재활용을 답이라 생각하고 몰두했습니다. 그렇지만 전 세계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겨우 10% 미만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Bottle to Bottle(생산 후 폐기된 페트병을 재활용하여 다시 페트병으로 만드는 자원순환 구조), 혹은 닫힌 고리 재활용은 2%밖에 되지 않습니다. 플라스틱은 유리가 아니에요. 영원히, 몇 번이고 재활용되는 것이 아니고 최대 네 번이 다입니다. 그리고 닫힌 고리가 아닌 나머지 8%는 다운그레이드 되어서 한 번 사용되고 버려집니다.
자, 여기서 주목해주십시오. 재활용이 답이 아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2024년 연구 결과, 플라스틱에 첨가되는 화학물질의 종류는 밝혀진 것만 무려 16,325개인데요, 이 중에서 안전하다고 알려진 것은 161개, 즉 1%가 채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요? 26%는 발암물질, 돌연변이물질, 생식독성물질, 환경호르몬(내분비계교란물질), 특정장기독성물질 같이 듣기만 해도 유해한 것들입니다. 나머지 대부분인 66%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유해성이 입증되면 그때 돼서 규제를 시작하겠다는 건데요. 그 전까지는 이것들이 과연 안전할까요? 재활용하면 이게 갑자기 안전해질까요? 건강 차원에서 보면, 재활용은 유해물질을 순환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거기다 사실 많은 재활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닫힌 고리 재활용’이 아니라도, 페트병으로 패딩 솜을 만들고, 이런 것도 있죠? 이런 것들은 ‘물리적 재활용’입니다. 돈과 에너지가 많이 들지 않아요. 그런데 정부가 이런 데 투자할까요? 아니죠. 정부는 플라스틱 생산업계에 거대한 재활용 설비를 만들도록 지원합니다. 플라스틱에서 기름을 다시 뽑아낸다고 하는 뉴스 보셨죠? 플라스틱에 열을 가해서 다시 원료로 만드는 ‘화학적 재활용’이 이런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혐오하는 ‘소각’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고,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환경에 플라스틱 속 유해물질을 방출합니다.
기술적 해결이 아니라 플라스틱 생산 자체를 줄일 방법 모색하길
2021년 UN 환경계획은 지구가 직면한 세 가지 위기를 공식화하였습니다. 기후위기, 생물종다양성 감소, 그리고 환경오염입니다. 오래 전부터 UN은 각각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전문가 패널을 구성하여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 IPBES(생물다양성과학기구)를 만들었고, 위기의 원인과 현상을 분석하고 전망과 조언을 내놓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오염에 대한 마지막 패널이 만들어질 예정이고요.
그런데, 과학적인 조언만으로 괜찮은 걸까요?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세 가지 위기의 원인을 따지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셋을 상호 연결시키고 있는 원인이 떠오르지 않으세요? 네, 바로 플라스틱과 플라스틱이 만들어내는 오염입니다.
2022년 5월 UN 환경계획은 플라스틱 오염에 대처하기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을 2년 안에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보통 협약이 만들어지는 데는10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리는데요. 그만큼 중요하고 급박한 문제라는 것이죠. 협약이 아직 성안되지 않아서 이름이 없습니다. 지금은 대체로 Global Plastics Treaty(GPT), 국제 플라스틱 협약이라고 지칭합니다. 협약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각국 정부 대표단이 모여서 2년동안 네 번의 협상 위원회를 진행했고, 올해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부산에서, 마지막 협상이 되기를 바라면서 5차 회의를 합니다.
1) 대략 큰 뼈대만 합의하고 디테일한 것은 이후 의정서나 협정으로 넘기는 방법입니다. 이걸 Framework Convention, 뼈대 협약, 혹은 골격협약이라고 합니다. 2) 핵심 의무사항과 관련 조치를 결정하고, 부속서에서 세부 내용을 정하는 방법입니다. 이걸 Specific Convention, 특정협약이라고 합니다.
둘 중에 무엇이 나은지를 제가 말씀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인류의 건강과 지구의 3대 위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플라스틱을 규제하는 협약에 꼭 들어가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얘기할 수 있습니다.
-플라스틱 폐기물만이 아니라, 화석연료 추출, 원료 생산 등 플라스틱의 생애 전 주기를 다루어야 합니다. -대체물질 개발, 재활용 강화 같은 기술적 해결에 머물지 않고, 플라스틱 생산 자체를 줄여야 합니다. -플라스틱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을 물질 하나하나 따지지 않고 유해함이 확인된 물질은 그룹 단위로 금지하거나, 제한해야 합니다. -일회용이나 과대 포장에서 벗어나, 재사용, 다회용기, 지속 가능한 제품 사용을 촉진해야 합니다. -폐기물 관리자, 플라스틱 생산 시설 노동자, 극지방, 태평양 도서 지역 거주민 같이 영향을 크게 받는 커뮤니티를 꼭 지원해야 합니다.
2024년 지금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플라스틱에 잡아 먹힌 세상을 만들 것인가, 인간과 모든 생명체가 건강한 지구를 되찾을 것인가.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필자 소개] 김보연.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실험실과 분석장비를 갖춘 연구 기반 NGO인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유해화학물질을 연구합니다. 특히 아시아 각국에서 관련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국제적 연대를 통한 연구를 중심으로 한 협력 사업을 기획,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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