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유엔 총회에서 10월 29일을 “국제 돌봄 및 지원의 날”로 정했습니다. 올해 한국의 여성, 장애, 청년, 노동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 29개 단체들이 모여 ‘10.29 국제돌봄의날 조직위원회’를 꾸리고 10월 28일~11월 2일에 돌봄 공공성과 지속가능한 돌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폈습니다. 돌봄의날 주간을 기념하여, 조직위원회 참여단체의 활동가들이 ▲돌봄중심사회로 전환 ▲국가가 책임지는 돌봄공공성 확보 ▲돌봄노동 가치 재평가 및 처우 개선 ▲돌봄권리 보장을 주제로 기고글을 연재합니다. [기획의 말]
‘공적 돌봄’의 퇴행을 겪고 있는 중요한 기로에서
2024년은 한국 사회의 ‘돌봄’ 정책에 있어서 여러 사건이 있던 해였다.
3월에는 한국은행이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이라는 이슈노트를 통해, 돌봄노동에 최저임금 적용을 회피할 수 있는 방안으로 이주노동자를 활용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5월에는 서울시민에게 공공돌봄을 제공하던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 해산되는 아픔을 겪었다. 아동, 장애인, 노인 돌봄 등에서 서비스 종사자를 ‘직접 고용’하여, 서울시 전체의 돌봄 수준을 향상시키려던 시도가 5년 만에 막을 내렸다.
8월부터는 가사‧돌봄 노동의 가치를 높이기보다는 돌봄 현장에 ‘값싼’ 이주노동력을 들여오겠다는 발상으로 문제가 되었던, 서울시의 이주 가사노동자 도입 시범사업이 강행됐다.(실제로 서울시는 올 1월 고용노동부에 시범사업에 최저임금 이하 적용을 건의하기까지 했다.) 24~38세 필리핀 국적 가사관리사 100명이 투입됐으며,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임금, 인권침해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동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다양한 노동/여성/이주/시민사회와 함께 ‘이주가사·돌봄노동자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현재는 ‘이주 가사돌봄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연대회의’로 재편)과,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폐지 저지와 공공돌봄 확충을 위한 공대위’ 활동을 통해, 돌봄 정책의 퇴행에 대응해왔다.
하지만 끝내 서울시의 이주가사노동자 시범사업이 시행 중이고,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의 해산을 막지 못했다.
모두의 삶의 존엄과 관련된 문제, ‘돌봄’ 사회 각 영역에서, 선주민과 이주민이 ‘함께’ 목소리 내야 할 때
상황이 우리 뜻대로 변화하지 않는다고 한들, 돌봄 문제에 대한 고민을 손 놓을 수 없었다. 오히려 우리는 목소리를 더 낼 필요가 있었다. 만약 가사‧돌봄 영역에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된다고 하면, 이주노동자와 선주민 노동자들이 ‘연대’하여 돌봄노동의 정당한 보상과 가치를 요구해야 한다. 또, 서울시사회서비스원과 같이 공공이 책임지는 돌봄은 앞으로도 계속 시도되고 확대되어야 한다.
돌봄은 시민 개개인의 삶의 존엄과 관련한 문제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돌봄 문제를 걱정해야만 하는 한국 사회의 지표들은 이미 어느 정도 공개가 되어있다.
정부 인력 추계에 따르면, 2027년 기준 요양보호사 필요인력 수는 755,454명인데 현재 공급 전망으로 볼 때는 2027년 75,699명(필요인력 대비 10%)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한다.(보건복지부, 2023) 또 한국은행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이슈노트에서는 돌봄서비스직 노동공급 부족 규모를 2022년에 19만 명, 2032년에는 38~71만 명, 2042년에는 61~155만 명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가족돌봄 청년의 우울감 유병률은 약 61.5%로, 일반 청년(8.5%)의 7배 이상이며, 주 돌봄자의 경우에는 일반청년의 8배 이상(70.9%)으로 심각하게 나타났다.(보건복지부 보도자료, “가족돌봄청년, 주당 21.6시간 가족 돌본다”, 2023)
정신질환자 가족 중 61.7%가 환자를 돌보는 부담이 크다고 응답하였으며, 최근 1년간 자살을 생각한 비율은 20.5%였다. 자살 생각의 주요 원인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양육, 수발, 돌봄 부담이라 응답한 비율이 51.0%였다.(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정신질환자 돌봄 가족 대상 처음으로 생활 및 서비스 수요 실태조사 실시”, 2024)
이러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올 하반기 공공운수노조에서는 노동/여성/시민사회에 돌봄에 대한 목소리를 모아보자고 제안하였고, 그것이 10.29국제돌봄의날 행사를 추진하게 된 배경이다.
돌봄 사회로의 전환, 밑그림을 그리다!
사실 돌봄 이슈는 참 복잡하다. 노동 영역에서 ‘돌봄의 사회화’를 떠올렸을 때, 일단 ▲이용자‧당사자 ▲돌봄노동자 ▲법과 제도라는 구성 요소를 생각해볼 수 있다. 돌봄이 법과 제도 안에서, 이용자/당사자와 돌봄노동자 상호 간에 이뤄지는 활동이라고 간주한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충분한 돌봄을 제공하는가? -지금 한국 사회는 돌봄노동자들에게 돌봄의 가치에 따른 정당한 보상을 제공하는가? -지금 한국 사회의 돌봄은 지속 가능한가?
이러한 질문들에 있어서 누구도 긍정적인 답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시민들이 법과 제도가 보장하는 충분한 돌봄을 제공받고, 돌봄노동자들이 안정적인 환경과 급여를 받으며 현장을 지킬 수 있으려면, 사회 여러 부분에서 개선이 필요하다.
이는 특정 계층이나 특정 분야에서만 목소리 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돌봄노동자들이 소속된 노동조합만이 목소리를 내거나, 돌봄서비스 이용자와 당사자들만이 목소리를 내어서는 풀기 어려운 문제다. 돌봄과 관련된 모든 이해 관계자들이, 좋은 돌봄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이번 10.29 국제돌봄의날 행사가 “한국에서는 2024년에 시작되었다.”라는 역사적 첫걸음으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위원회에 참여한 단체들이 결코 쉽지 않은 논의 과정을 거쳐서 돌봄과 관련한 ‘요구안’을 마련하며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에 합의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의 돌봄이 저임금 돌봄노동자, 이주노동자, 혹은 가족, 그중에서도 여성 등 특정 집단에게 그 부담과 책임이 떠넘겨지는 상황을 개선하고, 좋은 돌봄-지속가능한 돌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모으고 연대하길 희망하며, 조직위가 합의한 요구안을 간략히 소개한다.
첫째는 ‘돌봄 중심 사회로의 전환’이다. 민간 중심 돌봄체계를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 중심 돌봄체계로 전환할 것, 모두의 생애 권리기반 돌봄 체계를 구축할 것, 가구나 가족 단위가 아닌 개인을 기반으로 복지정책을 펼 것,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깨고 ‘보편적 돌봄제공자 모델’로 재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둘째는 ‘돌봄 공공성 확보’다. 돌봄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고 충분한 인력을 확보할 것, 국가와 지자체가 사회서비스 시설을 ‘직접’ 운영하고 투명성을 보장할 것, 국제노동기구(ILO)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189호)에 비준할 것을 요구한다.
셋째는 ‘돌봄노동 가치 재평가’이다. 무급/유급 돌봄노동의 가치를 재평가하여 사회적 인식을 개선할 것, 돌봄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할 것, 근로기준법에서 가사사용인을 제외한 조항을 폐기할 것, 이주 가사돌봄노동자의 평등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넷째는 ‘돌봄권리 보장’이다. 모두에게 좋은 돌봄을 받을 권리와 돌봄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돌봄기본법’을 제정할 것, 돌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할 것, 그리고 임신 유지와 중단, 출산, 양육의 전 과정에서 성평등한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필자 소개] 김호세아. 공공운수노조 조직쟁의부장. 현장에서 사회복지사 등 사회복지 노동자로 일했으며 현장에서 용산장애인복지관 회계비리 투쟁, 가족센터 이주여성 노동자 처우개선 관련 활동을 했다. 현재는 공공운수노조에서 채용상근자로 사회서비스 분야 조직들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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