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를 위한 장소와 지지그룹이 만들어가는 변화

“프라이드 하우스 도쿄 레거시” 방문기

박주연 | 기사입력 2024/12/21 [15:42]

퀴어를 위한 장소와 지지그룹이 만들어가는 변화

“프라이드 하우스 도쿄 레거시” 방문기

박주연 | 입력 : 2024/12/21 [15:42]

2018년 겨울,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진행됐던 “프라이드 하우스 평창”의 활동을 기억하는가? ‘프라이드 하우스’(Pride House)는 성소수자 선수와 코치, 관중과 스태프 등이 올림픽과 같은 큰 국제경기 기간에 서로의 존재를 응원하고 환대하는 공간을 만드는 운동으로, 올해 파리올림픽에서도 진행됐다. (참고: “우린 퀴어이고 여기 있다. 익숙해져라” https://ildaro.com/8132)

 

그런데 일본에서는 한국과 달리, 경기 시즌 때만이 아니라 거점이 되는 공간을 마련해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해 “프라이드 하우스 도쿄 레거시”에 방문했다.

 

▲ “도쿄 프라이드 하우스 레거시” 내 곳곳에 배치된 여러 자료 중 일부. 공익재단법인 일본수영연맹과 일본럭비풋볼협회와 협력해 만든 “스포츠계 내 지지자/앨라이를 늘리자”라는 팜플렛도 나와 있다. ©일다


팬데믹으로 고립된 성소수자 청소년을 위한 상설 장소로 오픈

회사원들이 ‘성소수자 인권 교육’을 받으러 방문하기도…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기점으로 시작된 ‘프라이드 하우스’의 일환으로, 2020년 도쿄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앞두고 “프라이드 하우스 도쿄”가 2018년 9월부터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이 연기되었고, 당시 LGBTQ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에서 ‘성정체성에 신경 쓰지 않고서도 안심하고 연결되는 장소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하여, 2020년 10월 “프라이드 하우스 도쿄 레거시”를 오픈했다.

 

“LGBTQ+ 선수와 가족과 친구, 그리고 관중 및 현지 참가자들이 다양성을 주제로 한 도쿄 올림픽을 즐기는 동안 자유롭게 자신이 될 수 있도록 하는 활동” 외에도 “차세대 LGBTQ+ 청소년들이 안심하고 모일 수 있는 상설 장소를 만들겠다는 목표”(홈페이지 소개)로 시작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운영 중인 “프라이드 하우스 도쿄 레거시”는 도쿄를 대표하는 부도심 중 하나이자 도쿄의 중심인 신주쿠에 위치하고 있다. 신주쿠는 또한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바와 클럽 등이 모여 있는 ‘신주쿠 니초메’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신주쿠공원 역에서 2분 거리, 큰 도로에 위치해 찾기도 무척 쉽다.

 

▲ “도쿄 프라이드 하우스 레거시”의 입구 모습. 간판과 무지개 플래그가 걸려있다. ©일다

 

공간에 들어가자, 자원활동가 중 한 명이 다가와 “이 공간이 처음이냐?”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하니 공간을 소개해 주겠다며 하나하나 안내해줬다. “도쿄 프라이드 하우스” 정보와 여러 활동을 정리한 팜플렛들을 보여줬다.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한국에서 왔고, 휴가 중”이라고 하자 “아, 그럼 이런 건 짐이 될 테니 안 가져가시겠네요”라고 하길래 “아니오, 다 가져갈 거에요!”라고 답했고, 서로를 보고 웃었다.


지금 프라이드 하우스 도쿄에서 진행 중인 이벤트와 모임에 대한 안내는 물론, 다른 여러 성소수자 모임 및 단체에서 가져다 놓은 홍보물도 접할 수 있었고, 다양한 연구 자료와 잡지, 책이 굉장히 많았다. 최근 발간된 책은 조금 더 잘 보이는 곳에 놓여 있었는데, 일본 또한 ‘포괄적 성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공간엔 크고 작은 테이블이 5~6개 정도 있고, 자유롭게 앉으면 됐다. 와이파이도 쓸 수 있고, 음료도 한잔 제공해 준다며 고르라고 하길래 조금 놀랐다. 자원활동가가 다른 방문자를 응대하고 있지 않는 한, 언제든 질문하면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는 점도 감동적이었다. 덕분에 ‘신주쿠 레즈비언/퀴어 여성 바 지도’도 소개 받았고, 가게도 추천 받았다.

 

일본에선 여-여 커플의 임신·출산이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는데 실제 그런지 궁금해 물어보았더니, 집권당인 보수정당 자민당이 ‘법적으로 결혼한 이성 부부’만 체외인공수정/보조생식기술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어서 큰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책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중년 퀴어커플이 와서 안내를 받는 모습도 봤고, 양복 차림의 남성 회사원 무리가 와서 이곳 활동가로부터 ‘성소수자 인권 교육’을 받는 모습도 봤다. 혼자 와서 편하게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이 모든 장면이 생경해서 조금 신기하고, 약간 부러웠다.

 

▲ 도쿄도에선 “나는 지지자/앨라이(Ally)!”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홍보물의 QR코드로 들어간 홈페이지에선 “여러분의 배려를 행동으로 바꿔보지 않겠습니까?”라는 문구와 함께, 앨라이(지지자)의 의미, 혼자서 할 수 있는 행동들을 설명한다. 앨라이가 되기 위해 참고할 수 있는 책과 세미나/교육도 소개하고 ‘도쿄도 앨라이 마크’ 핀뱃지를 수령할 수 있는 방법도 안내한다. 이 뱃지는 개인은 물론 단체로도 수령할 수 있다. 홍보물의 모델로 등장한 사람은 일본 유명 아이돌 그룹인 AKB48의 1대 캡틴이자 전 멤버, 현재 여러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타카하시 미나미다. ©일다


여성/남성 구분 짓는 스포츠 문화가 많은 사람을 배제한다

수영연맹, 럭비풋볼협회 “스포츠계 내 앨라이(성소수자 지지자) 늘리자”

 

“도쿄 프라이드 하우스”는 “프라이드 하우스 도쿄 레거시”만 운영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10월에 발행된 〈프라이드 하우스 도쿄 2024〉 보고서를 살펴보면, 학교와 기업들과 연계해 성소수자 인권 교육을 하고, 청소년들이 안전한 공간을 갖고 교류할 수 있도록 ‘유스(Youth) 데이’를 진행한다. 자살 예방, 상담도 하고 있으며, 성소수자로서 파트너나 친구 등을 잃은 이들을 위한 유족 지원 모임도 있다.

 

농인 성소수자를 위한 ‘데프 데이’(Deaf Day)와 수어 배우기 교실을 열고, 일본에 거주 중인 외국인/이주민 성소수자를 위한 모임과 일본어 교육도 한다. 더 많은 앨라이(Ally, 지지자)를 만들기 위한 교육도 다양하게 진행 중이다. 성소수자의 노후 불안에 대해서 조사한 보고서도 발간했다.

 

▲ “프라이드 하우스 도쿄 레거시”엔 많은 책과 잡지 등의 자료가 가득했다. ©일다


“도쿄 프라이드 하우스”의 시작이 스포츠계 내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목표로 했던 만큼 스포츠와 관련된 활동도 꾸준하다. 〈LGBTQ+ 청소년 체육현장에서의 경험에 관한 조사〉,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스포츠 환경을 만들기 위한 핸드북: SPORTS for EVERYONE〉, 〈청소년을 생각하는, 누구나 안심하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를 위한 컨퍼런스: SPORTS X LGBTQ+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는 9가지 액션〉 등 여러 자료를 발표했다. 공익재단법인 일본수영연맹과 일본럭비풋볼협회와 협력해 만든 “스포츠계 내 지지자/앨라이를 늘리자”라는 팜플렛도 나와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체육·스포츠에서 여성과 남성을 구분짓고 여성다움과 남성다움, 여성이 할 수 있는 운동, 남성이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무렇지 않게 쉽게 언급되는 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는지 설명한다.

 

이런 문제를 바꾸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로, 여성과 남성을 구분 짓는 유니폼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입을 수 있는 유니폼(수영복의 경우, 모두가 래쉬가드를 입는 방식), 개인이 쓸 수 있는 탈의실과 샤워실 마련, 성별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의지에 따라 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경쟁을 강요하지 않고 서로 협동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운동 환경을 만드는 것, 괴롭힘을 예방하고 성소수자 당사자가 안전하게 체육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을 제안한다.

 

▲ 〈프라이드 하우스 도쿄 2024〉 보고서에 담긴, 협력사 중 하나인 ‘meiji’의 광고엔 휠체어 사용자, 농인, 성소수자, 외국인, 노인 등 다양한 이들이 등장한다. 물론 기업의 이런 ‘지원’이 핑크워싱(Pink washing,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략이나 기업이 가진 여러 문제를 가리기 위해 성소수자 친화적인 태도나 마케팅을 진행하여 이미지를 ‘세탁’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이 되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하지만, 한국 기업들이 다양성을 배제하고 오히려 ‘집게손 논란’ 등 말도 안되는 차별 선동에 따라갔던 일들이 생각나 좀 씁쓸했다. ©일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에 놀란 한편, 사실 더 놀라웠던 것은 이 활동에 함께 하며 지지하는 단위가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이다. 비영리단체나 모임뿐만 아니라 지자체, 기업, 체육계 내 협회와 연맹 등이 협력하고 있다는 부분은 일본 사회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이 세계에 대한 분노를, 타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창조의 에너지로~

‘좌절과 우울과 어떻게 극복했나요?’ 질문에 70대 레즈비언의 한 마디

 

레거시를 떠나기 전, 한 행사를 추천 받았다. ‘파프 스쿨’(Paf School, 성소수자 관점에 서서 살아있는 지혜와 용기를 공유하고 배울 수 있는 장소라고 소개하고 있다)이라는 단체에서 진행하는 〈일본 L이야기 26번째 ~화를 창조의 에너지로~〉라는 제목의 행사였다. 게스트는 ‘이즈모 마로우’ 라는 분이었고, 소개는 이렇게 나와있었다.

 

“「석화한 공룡의 알을 봤을 때, ‘난 이거다!’라고 생각했다」라는 독특한 표현으로 말하는 마로우 씨. 지방도시에서 태어나, 젠더의 압박과 성소수자로서의 고립감으로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 세계에 대한 분노를 ‘미니코미’(197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레즈비언, 바이 여성들의 커뮤니티 중심에 있었던 모임)를 만들고, 극단 ‘아오이토리’, 펑크 밴드 ‘스미렌 밴드’, 퀴어영화론 집필 그리고 제1회 도쿄 레즈비언·게이 퍼레이드에서 제일 눈에 띄었던 ‘국제비언연맹’(일본에선 레즈비언을 ‘비언’이라는 용어로 부르기도 한다) 등의 활동을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것을 창조하는 에너지로 바꿔갔다. 동성 커플로서 공정증서를 일본에서 최초로 작성하기도 했다. 현재 호주에 거주하는 마로우 씨가 일본에 와 지난 50년 간의 파워풀한 활동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 ‘파프 스쿨’에서 주최하는 〈일본 L이야기〉 행사는 매회 정리되어 소책자로 발간되는 듯 했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20번째 이야기까지 담긴 소책자 1, 2권을 현장에서 구매했다. ©일다


‘이건 무조건 가야 한다’고 생각해 재빨리 신청서를 작성해 내고 참가비도 결제했다. 행사 당일, 참여자는 30여명으로 보였다. 다양한 연령대가 있었지만 중년 이상의 인원이 더 많았다. 알고 보니 마로우 씨는 1951년생, 70대 레즈비언이었고, 사회를 담당한 사와베 히토미 씨(파프 스쿨 대표)은 1952년생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본 나이든 성소수자는 60대인 ‘명우형’(윤김명우, 이태원에서 퀴어 바 ‘레스보스’를 운영)뿐이었는데 이렇게 70대 성소수자들을 보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두근거렸다.

 

행사는 마로우 씨의 삶에 대한 발표와 참여자들의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으로 채워졌다. 마로우 씨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이었다. 1950년대, 집에 수영장과 정원이 있는 굉장한 부잣집 딸로 태어났지만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며 남녀 구분이 매우 확실했던 아버지 아래 두 명의 오빠와 다른 대우를 받으며 점점 화가 쌓이기 시작, 학창 시절엔 성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으며 우울과 좌절의 시간을 보냈던 그의 삶이 변화해 가는 과정은 흥미진진했다. 대학에 간 마로우 씨는 ‘우먼리브’(1970년대 일본의 페미니즘 물결)를 접했고, ‘미니코미’ 활동을 비롯한 여러 예술 창작을 통해 사회에 자신의 목소리를 표출했다.

 

어린 시절의 좌절과 우울을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기로 결심했냐는 질문에 대해, 마로우 씨는 ‘그 좌절과 우울은 극복하지 못했고 여전히 함께 하고 있다, 그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마로우 씨는 전혀 슬퍼 보이지 않았고, 듣는 이 또한 결코 슬프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용기를 얻었다면 이상한 얘길까? 하지만 정말 그랬다. 평생 좌절과 우울을 반복해 겪은 70대 성소수자 여성이 여전히 살아있어서, 그가 해낸 일이 너무 많아서. 분노하면서도, 아니 분노했기 때문에 다양한 창작 활동을 이뤄낸 이의 삶이 이렇게 내 앞에 있어서 든든한 기분이었다.

 

▲ 지난 12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집회엔 ‘윤석열 퇴진 성소수자 공동행동’이라는 이름으로 ‘무지개존’이 만들어졌고, 많은 성소수자와 앨라이(지지자)들이 참여해 목소리를 냈다. (출처: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페이스북)


서울에 돌아와 바로 며칠 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 나갔다. 이날은 결국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고, 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했다. 그 순간 기쁘기도 했지만,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넘어야 할 장벽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을까? 이날 이후에도 분노와 불안, 좌절, 우울은 계속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변화를 만들어 내는 ‘우리’가 곳곳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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