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정국이 혼란과 위험에 휩싸였지만,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한 시민들의 힘으로 내란 사태를 막아냈다. 7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됐으나, 여당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무책임한 불참으로 폐기됐다. 국회로, 광장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 탄핵의 목소리를 높였고, 14일 두 번째 탄핵소추안이 본회의에서 가결(총 투표수 300표 중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탄핵 그 자체’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시기 이미 대통령 탄핵 과정과 그 이후의 정치를 겪어보았다.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나아가길 원한다. 그러려면 윤석열 탄핵과 내란 책임자 처벌은 물론이거니와, 권위주의 정치를 청산해야 하고, 여전히 소수자의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는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 변화의 목소리를 더욱더 확장하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거리에서 나오고 있는 목소리-‘일단 탄핵 먼저’가 아니라 ‘탄핵과 함께’ 나오고 있는 목소리-를 기록한다. [편집자 주]
윤석열과 전세사기
“급박한 시기라서 이런 얘기하기가 좀 그렇지만… 임대인이 보증금 떼먹었어요” “급박한 시기지만… 도움 받을 곳이 없어… 조심스럽게 문의합니다.”
내란 혐의 대통령을 탄핵하는 일과 내 보증금 떼인 일 중에 무엇이 더 급박한 일일까? 윤석열을 탄핵해야 한다고 온 나라가 들썩이는 와중에, 서울시 ㅇㅇ구에 사는 세입자A는 보증금을 떼였다. 임대인은 보증금 전부는 못 주지만 일부 금액만이라도 우선 주겠다고 약속했다가, 이마저도 어겼다. 세입자A는 이사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게 됐다. 곤경에 처한 그의 상황이 내게도 전해졌다. 그 날은 탄핵소추안이 한 차례 폐기 된 이후 두 번째로 열리는 국회 본회의를 앞둔, 꽤 긴장감이 감도는 금요일,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 바로 전날이었다.
윤석열은 매번 이전 정부 탓을 했다. 십분 양보해서 모든 책임이 현 정부의 잘못은 아니라 할지라도, 지금 당장 최선의 조치를 하는 것이 현 정부의 몫일 테다. 윤석열은 그 몫을 내팽개쳤다. 출범 이후부터 줄곧 부자 감세와 복지 축소를 밀어붙이는 그에게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주요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탄핵 국면과 전세사기를 동시에 맞닥뜨린 세입자A에게 윤석열이 끼치는 영향은 거대하다. 세입자A는 윤석열 정권에서 제정된 전세사기 특별법의 규정에 따라,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일반적인 보증금 미반환’ 사고를 겪은 것으로 판단될 경우, 지금 내가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윤석열 정부의 의도다.
주거권 활동가들과 전세사기 피해 세입자들이 함께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운동을 하던 2023년 당시,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 규모를 일축하고 피해 지원 범위를 제한하는 수단 중 하나로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요건에 제한을 걸었다. ‘혈세 낭비’ 프레임을 앞세우며, 전세사기 피해 구제와 예방에 관한 국가의 책임을 최대한 축소시켰다. 전세사기 문제 해결의 책임자를 자처한 당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전세사기를 사회적 재난이라고 인정하지 않았고, ‘모든 사기는 평등하다’, 전세사기 피해를 ‘국민 혈세로 지원하는 건 아니다’ 라는 망언을 일삼았다. 세입자들의 눈에 피눈물 흐르게 했던 그는 윤석열 비호 아래 원하는 시기까지 장관 노릇을 한 뒤, 여당 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하며 전세사기 논의 테이블 위를 영영 떠났다. 세입자A를 비롯한 여러 세입자는 윤석열과 원희룡이 남긴 현행법에 따라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그 집에 남았다.
전세사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3만 명 가까운 세입자들이 전세사기 피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피해자로 승인 받지 못한 세입자들은 명단 바깥에서 홀로 헤매는 와중이다.
한동안 윤석열은 전세사기와 같은 범죄는 ‘강력한 수사를 통해 일벌백계’하겠다, ‘지구 끝까지 추적’하겠다며 이런저런 전세사기 대책을 발표했다. 언론보도는 그럴듯하게 뿌려졌다. 결과는 어떨까? 그 때로부터 2년이 지난 현재, 약 3000건의 전세사기 피해를 발생시켰던 ‘건축왕’ 일당 중 일부는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대법원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마저도 계엄령 선포로 인해 불법이 될 뻔했다. 전세사기범을 지구 끝까지 추적하라던 말이 두고두고 기가 막힌다. 추적당하는 건 윤석열, 본인이 됐다.
윤석열은 퇴진해도, 다음 대통령이 그 자리를 채운다. 우리를 대표하여 국정운영을 하겠다고 자원할 이가 누구든지, 나는 그 자리 한 켠에 전세사기 피해자의 이름을 적어두고 싶다.
지난 7일 탄핵 집회 시민발언대에서 줄 서 있던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안상미 위원장을 만났다. 줄이 길어, 앞에 두 명을 남겨두고 발언 순서가 마감됐다. 아쉬운 마음에, 만약 발언 기회가 왔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물었다. 안상미 위원장은 윤석열을 끌어내린 이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정권이 바뀌면 전세사기를 ‘사회적 재난’이라고 인정한 원내 정당들이 힘을 갖고 “전세사기 사각지대 문제에도 관심 가져주길 바란다”고 했다. 더구나 “피해 예방 대책이 사실상 전무하다시피”해서, 새로운 전세사기가 계속 터져 나오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전세사기를 사회적 재난으로 보는 인식”이 중요한데, “주택임대차계약은 ‘사적 계약’이라는 인식에 머물러 있으면, 전세사기 피해가 예방될 리 없다”고 강조했다. 또 “임대인이나 공인중개사”에도 관리감독과 처벌 체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많은 걸 바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집에서도 정의가 실현되길, 누구나 안전하게 집을 구하고 이사 다닐 수 있길 바라는 마음. 이 또한 윤석열 퇴진과 함께 전해져야 할 이야기들 중 하나임은 분명했다.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은 더 바뀌어야만 한다.
동자동 주민들의 떡과 집
14일 집회 때, SNS에서 동자동 쪽방 주민들의 떡 나눔이 화제가 됐다. “윤석열 즉시 탄핵!!! 우리는 소위 ‘쪽방촌’이라 불리는 가난한 동자동(용산)에서 왔습니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 떡을 조금 준비해왔습니다. 드시고 함께 힘을 내면 좋겠습니다.”
사실, 동자동은 진작 공공주택사업이 추진되어야 했을 곳이다. 2021년 쪽방 주민들의 안정적인 주거를 보장하기 위한 정부 사업이 발표됐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 공공주택사업이 지연됐다. 수 년이 흘렀다. 임대주택에 입주해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쪽방 주민들이 111명에 이르렀다. 다크투어를 안내하던 동자동사랑방 주민은 ‘우리 다 죽기를 기다리는 것 아니냐’며 농담을 던졌다. 그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윤석열 정부에 대한 원망이 쏟아져 나왔다. 산 자들의 소망, 죽은 자들의 원망이 담긴 공공주택사업이야말로, 윤석열을 끌어낸 자리에 우리의 집으로서 바로 서야 할 정의일 것이다.
윤석열과 주거권
윤석열이 당선된 그 해 여름, 반지하 폭우 참사로 여성, 도시노동자, 발달장애인, 빈곤층, 주거취약계층, 아동청소년이 사망했다. 기후재난 앞에서 ‘불평등이 재난’이었다. 누군가는 외제차 침수를 겪지만,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 180여개의 노동시민사회단체가 함께 “불평등이 재난이다” 재난불평등추모행동을 출범하여 △공공임대주택 확충 및 모두의 주거권 보장 △잇따른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죽음에 대한 국가 대책 마련 △기후재난참사 재발방지대책 및 기후위기에 대한 근본 대책 마련을 정부와 지자체에 촉구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에 대한 답변을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5조 7천억 삭감’하는 2023년 예산안으로 대신했다. 공공임대가 필요한데, 그걸 대폭 줄이는 행보를 감행한 것이다. 이에 맞서 같은 해 10월 17일 빈곤철폐의 날을 맞이하여 쪽방 주민, 고시원 거주자, 거리 홈리스, 청년 세입자 등 주거노동시민사회 운동단체가 모여 국회 앞에 천막을 치고 공공임대주택을 요구하는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을 69일간 지속했다.
하지만, 윤석열을 끌어낸 자리에는 과연 주거권의 자리가 있을까? 미리 짐작해본다면 역시 쉽지 않다. 윤석열 탄핵소추안 가결을 위해 민주당의 모든 국회의원들이 합심하던 12월 둘째 주, 세입자들이 함부로 쫓겨나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개정안 논의는 민주당 소속의 몇 의원들의 공동발의 철회로 무산됐다.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줄어든 채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못하고 통과됐다.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재건축 규제 완화를 강행하는 윤석열 정부에는 제대로 된 불만 제기조차 없었다.
12월 14일 탄핵 집회에서는 가수 이랑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우리의 방은 작고 시끄럽고’ 라는 노래구절이 국회 앞 광장을 가득 채웠다. 노래를 들으며, 내가 알고 있는 400명의 청년 세입자들을 떠올렸다. 평균 월급 245만원으로, 행복주택 입주 자격인 400여만원보다 한참 아래이지만, 최저시급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평범한 수준의 월 소득을 버는 우리들. 다행스럽게도, 평균 월세는 30만원대로, 공공임대와 사회주택에 거주하기에 소득 대비 주거비 부담이 18%대에 그치고 있는 우리들. 하지만 청년 공공임대 거주기간 10년을 지나고 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벌써부터 나이 듦을 걱정하는 우리들. 보통의 민간임대시장에서 집을 구한다면 0.9년마다 이사를 다니고, 월세 63.2만원을 지불하고, 전세사기 피해자 중 73% 가 청년인 걸 유념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들.
폭주하는 불평등과 차별과 폭력의 정치는 이제 그만 물러나고, 평등하고 안전한 삶을 위한 민주주의가 우리의 집에도 필요하다. 집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보장해야 하는 우리의 권리다. 광장에 모인 이들이 어떤 집에서 오고 가는 것인지 매일 궁금한 나는 광장에 앉아 집에서도 실현될 우리의 민주주의를 꿈꾼다.
[필자 소개] 지수: 주거권 활동가. 나무가 보이고, 노을볕 들고, 고양이가 우다다 해도 괜찮고, 같이 밥 먹을 친구가 가까이 살고, 저렴하고, 거주기간 보장되고, 전세사기 걱정 없는 집에서 살고 싶다.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를 출범하고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주택세입자 주거교육 및 주거상담을 해왔다. 청년주거단체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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