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환경연대에서 주관한 제9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 “플라스틱으로 온 세상이 뒤덮이기 전에”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한 기사입니다. [편집자 주]
〈케이팝포플래닛〉은 전 세계 케이팝 팬들과 함께 기후행동을 하는 온라인 플랫폼입니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케이팝 팬들의 목소리를 케이팝 산업계에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케이팝 팬들의 기후행동이라니, 무슨 연관이지? 그래서 처음 케이팝포플래닛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에 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케이팝포플래닛! “지구를 위한 케이팝 팬들의 선한 영향력”
사실 케이팝 팬들은 케이팝포플래닛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기후행동을 이미 하고 있었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선 지진, 홍수가 일어났을 때 인도네시아의 케이팝 팬덤들이 모여 일주일 만에 1억 원을 기부한 사례가 있죠. 한국에서는 산불이 발생했을 때 세븐틴의 팬덤 ‘캐럿’이 하루만에 400명 이상의 사람을 모아 700여만 원을 숲 복구를 위해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케이팝 팬덤이 가진 힘과 결집력은 굉장히 큽니다. 이 화력을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함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케이팝포플래닛이 시작되었습니다.
세계 기후환경단체은 여성들, 그리고 아시아의 사람들이 기후위기에 더 취약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의 목소리는 기후 커뮤니티에서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지 않습니다. 케이팝 팬이라는 정체성으로 모인 기후위기의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기후 커뮤니티 안에서 더욱 영향력 있고 커질 수 있도록 하는 것, 기후위기에 대해 함께 배우고 성장하며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케이팝포플래닛 캠페인에 참여하게 된 계기? “화력 강한 케이팝 팬들과 함께라면…”
케이팝포플래닛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제 첫 기후활동의 시작은 케이팝 팬의 정체성을 가지고 한 게 아니었습니다.
전 지금 20살 대학교 1학년입니다. 그리고 4년 전, 중학교 3학년 16살이었던 2020년 당시에 티핑포인트(균형이 깨지고 급속도로 특정 현상이 커져, 작은 변화로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태) 1.5도 상승까지 7년이 남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계산해보니 7년이면 제가 22~23살이 되더라고요. 아직 제대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지도 않을 시기인데 그 때 티핑포인트에 도달한다니, 정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당장 뭐라도 해보자 하고 〈청소년기후행동〉이란 단체에 들어갔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 활동을 하면서, 내 기대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기후행동에 참여하도록 할까 고민하던 중, 케이팝포플래닛을 알게된 것이죠. 글로벌하고, 이미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화력이 강한 케이팝 팬들과 함께하면, 내 고민도 해결하고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캠페이너가 되었습니다.
엔터사들에 ‘지속가능한 콘서트’, 실물 앨범 쓰레기 책임 묻고… BTS가 모델인 현대자동차, 음원플랫폼 멜론 등에 재생에너지 전환 요구
케이팝포플래닛이 지금까지 어떠한 일을 해왔는지 궁금해하실 것 같습니다. 3년간 케이팝포플래닛이 어떠한 캠페인을 진행했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짧게 소개하겠습니다.
가장 처음에 진행한 건 ‘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 캠페인입니다. 케이팝 전반의 산업이 지속가능할 수 있게, 엔터테인먼트사들에게 변화를 요구한 캠페인입니다. 과도한 실물 앨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것, 그리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콘서트를 개최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또한 많은 팬 분들에게 처치 곤란 앨범을 기부받아, 케이팝 엔터사가 생산자로서 앨범 생산부터 폐기까지 책임지라는 메시지와 함께 ‘처치 곤란한 앨범을 직접 반환’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당시에 앨범을 3주 만에 8천장 정도 기부받아 앨범을 만든 각 엔터사에게 전달하면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탄소맛’이라는 캠페인을 통해,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멜론이 데이터센터를 위한 에너지원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도록 요구해, 데이터센터 이전을 약속받았고요. BTS가 뮤직비디오를 찍은 삼척의 맹방 해변을 석탄화력발전소 건설로부터 지키자는 캠페인, 블랙핑크를 앰배서더로 하는 럭셔리 브랜드들에 재생에너지 전환을 요구하는 등의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케이팝포플래닛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크고 작은 캠페인 결과는 3년 만에 이뤄온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케이팝포플래닛은 숨겨져 있던 케이팝 팬들의 힘을 모으고 대표해 이야기하는 역할을 한 것인데, 처음 시작했을 때를 생각하면 이렇게나 성장했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습니다. 그만큼 팬들의 힘과 영향력이 강력했다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누구보다 강력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케이팝 팬들과 함께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플라스틱 앨범의 죄악’ 캠페인…“팬사인회, 포토카드, 버전 늘리기 등 앨범을 중복 대량 구매하게 만드는 마케팅 상술들 STOP!”
지금은 ‘플라스틱 앨범의 죄악’이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 캠페인을 진행한 이후, 4대 엔터사는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하고, 디지털 앨범을 만들고, 친환경 용지를 쓰는 등 여러 친환경 노력을 보였습니다. JYP는 한국형 RE100(기업이 필요한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원으로 충당하겠다는 것으로, 자율적인 참여 캠페인)을 약속하기도 했고요.
이는 엔터사들이 기후위기를 의식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지만, 우리가 문제를 제기했던 앨범 쓰레기를 줄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거의 모두가 시디(CD)를 듣지 않는 지금, 오히려 실물 앨범 판매량은 더욱 증가해 2023년엔 전년 대비 50% 증가한 약 1억 1,578만 장이 판매되었습니다.
그래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요구하며 두 번째 앨범 캠페인 ‘플라스틱 앨범의 죄악’을 시작했습니다. 이 캠페인에서 엔터사들을 향한 케이팝포플래닛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첫 번째는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이 시대에 팬들이 듣지도 않을 앨범을 중복으로 많이 사게 만드는 앨범 마케팅 상술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랜덤 포토카드입니다. 팬들은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의 포토카드를 소중하게 가지고 다닙니다. 앨범마다 한 장씩 랜덤으로 들어있는데, 사실 멤버가 한 명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내 최애를 뽑거나 아님 모든 멤버를 뽑으려면 어쩔 수 없이 여러 장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포토카드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버리죠. 포토카드를 제외한 실물 앨범의 소장가치가 없어졌고, 앨범을 사고 포토카드를 뽑는 일은 마치 도박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앨범 버전 늘리기입니다. 앨범 버전 늘리기는 하나의 앨범이 나올 때 멤버들 옷이나 사진 컨셉을 다르게 해, 기본 2~3장씩의 앨범을 발매하는 걸 이야기합니다. 팬들은 보통 앨범을 살 때의 기준이 앨범 버전을 전부 포함한 1세트입니다. 그런데 앨범 버전이 늘어나게 되면 자연스레 앨범을 더 많이 중복 구매하겠죠. 심지어 다른 앨범 버전마다 포토카드 종류도 다 다릅니다. 올해 초 컴백한 세븐틴의 경우엔 한 버전에만 포토카드 종류가 52장이 있었습니다.
또한 친환경을 위해 도입된 플랫폼앨범을 커버만 다르게 해 여러 버전을 출시해 오히려 앨범 버전을 늘리는 효과를 만들기도 합니다. 따라서 앨범의 중복 구매를 조장하는 상술이 없어지지 않는 한, 플랫폼 앨범과 엔터사들이 친환경적이게 앨범을 만들겠다고 도입하고 있는 FSC용지, 재생플라스틱을 사용하는 앨범 또한 불필요하게 생산되어 버려지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플리스틱 앨범의 폐기물, 탄소배출량 심각한 문제 “지속가능한 덕질”…케이팝 산업의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듣지도 않는 앨범이 무수히 버려지는데요. 올해 일본 시부야에 무더기로 버려진 것이 알려져 이슈가 된 바 있는 세븐틴의 앨범 더미 사진은 듣지도 않을 앨범을 과대 생산하고 전부 버려지는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를 보면 아무리 엔터사들이 친환경적인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플라스틱 실물 앨범은 폐기물 문제가 심각합니다.
CD는 폴리카보네이트라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CD가 자연분해되는 데엔 무려 100년이 넘게 걸리고, 이건 사실상 자연분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때문에 CD를 처리하기 위해선 매립지나 소각로에서 처리해야 하기에, 엄청난 유독 가스가 발생합니다.
또한 플라스틱 앨범은 기후위기 역시 악화시킵니다. 앨범을 만들 때 사용하는 플라스틱은 생산부터 폐기 전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입니다. CD 한 장당 제작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500g으로 추정되는데요. 올해 세븐틴의 베스트 앨범이 발매되고 이 앨범의 일주일간의 앨범 판매량인 초동으로 계산하면, 이 앨범이 만들어낸 탄소는 비행기로 지구를 114바퀴 돌 때의 탄소량과 맞먹는다고 합니다.
이는 탄소를 배출하는 절대량으로만 생각하면 다른 산업에 비해 적은 탄소량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전혀 사용되지 않고 버려지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탄소를 배출하고 그 양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은 명백히 큰 문제입니다.
케이팝포플래닛은 팬들에게 앨범 중복 구매를 조장하는 마케팅 상술을 중단하고, 앨범 관련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개하고 감축 계획을 세울 것을 4대 엔터사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9월 6일 자원순환의 날을 기념으로, 4대 엔터사 중 유일 대기업이자 ESG경영 성과 환경 부분 꼴찌인 하이브 앞에서 오프라인 액션을 진행했습니다. 글로벌 팬들에게 ‘당장 중단해야 하는 상술’을 온라인 투표로 묻고, 그 결과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엔터사들의 손아귀 아래 있는 이 상술을 직접 팬들이 끊어내겠다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우리는 케이팝 산업의 플라스틱 앨범을 과대 생산하고 폐기하게 만드는 시스템적인 문제가 실제로 바뀌도록 계속해서 목소리 낼 것입니다. 그리고 케이팝 산업 외에도 케이팝 아이돌이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다른 산업계가 더 지속가능하고 긍정적이게 바뀔 수 있게끔 계속 활동할 것입니다. 우리의 슬로건처럼, 말 그대로 죽은 지구엔 케이팝도 없으니까요.
케이팝 팬들이 만들어나갈 지속가능한 산업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플라스틱 앨범의 죄악’ 캠페인에 공감하고 바뀌길 원한다면, 케이팝포플래닛 홈페이지(kpop4planet.com)에서 간단한 청원으로 참여해주시길 바랍니다.
[필자 소개] 김나연. 중학교 3학년, 기후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고 ‘청소년기후행동’에서 활동하다 지금은 ‘케이팝포플래닛’ 캠페이너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케이팝 팬으로서 전세계 케이팝 팬들과 다양한 기후운동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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