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재사용한 글이다. 소로는 『월든』에서 ‘숲 생활의 경제학’을 펼쳤다. 일반적인 경제학은 자본으로 어떤 상품을 만들어서 어떤 가격에 얼마나 많이 팔아서 얼마나 큰 이윤을 남길지 계산하지만, 소로는 숲에서 얼마나 적은 비용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계산했다. 이를 통해 문명으로 얼룩진 삶이 아닌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주려 했다.
현대에 도시에 사는 한국인이 삶의 비용을 계산하는 일은 여간 복잡하지 않지만, 나는 일단 도시 생활에 드는 플라스틱 값을 계산하기로 했다. 2024년 1월부터 6월까지 지출한 플라스틱 값을 토대로 1년 치를 계산해 ‘도시 생활의 경제학’을 펼쳐보기로 했다. 글 곳곳에는 『월든』이 배어 있다. 소로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오기도 했고, 그 허세를 빌리기도 했다는 점을 밝힌다. [기획의 말]
배달음식 먹지 않은 지 몇 년째…그러나
지난번에는 내 몸에 바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제 먹는 것에 대해 얘기해 보자면, 나는 주로 학식을 먹는다. 애초에 요리를 싫어해서 기숙사에 들어왔다. 기숙사에 살면 요리를 따로 하지 않고도 매 끼니 다른 식단을 먹을 수 있다. 소분된 식재료를 살 때 생기는 온갖 쓰레기를 줄일 수도 있다. 배달음식을 자발적으로 시켜 먹지 않은 지 이미 몇 년이 되었으니, 배달음식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다만 학교를 다니다 보면 비자발적으로 배달음식을 먹게 되기도 한다. 공상력이나 상상력이 빈곤한 국민들의 학교를 다니다 보면 생기는 일이다.
학식을 먹을 때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나는 중노동을 하지 않으니 대식(大食)할 필요가 없고, 학식 값으로 아주 적은 돈만 지출하지만, 학식은 대식을 전제로 다량의 음식을 제공한다. 학식으로 나온 밥을 다 먹으면 졸리고, 반찬은 짜고 달아서 다 먹을 수 없다. 음식에 과도한 양념을 치면 바로 독이 된다. 진수성찬을 만끽하며 지내는 삶은 바람직하지 않다. 학식을 만들고 먹는 이들은 이러한 사실을 잊고 있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못난이 채소를 사서 샐러드 파스타를 요리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숙사 취사실은 더럽고, 방에 있는 싸구려 냉장고는 작으며, 곰팡이 포자가 날아다니는 방에 식기를 보관할 공간은 없다. 비용도 학식이 싼 편이다. 아무래도 소박하고 깨끗한 음식을 마련하려면 어느 정도의 돈과 자기만의 부엌이 필요하다.
방에 둔 식기가 몇 가지 있기는 하다. 텀블러가 대표적이다. 나는 원래 2018년에 공짜로 받은 텀블러를 작년까지 사용하였다. 계속 쓰다 보니 냄새가 조금 나기도 했지만, 가끔 탄산수소나트륨으로 씻어 주면 쓸 만했다. 그러던 중 작년 여름에 석사 졸업 기념으로 연구실 사람들에게 텀블러를 선물받았다. 선물을 방치해 둘 수는 없으니, 지금은 선물받은 텀블러를 쓰고 있다.
다행히도 나는 오랫동안 음료수로 거의 정수기 물만 마셔 왔다. 텀블러나 개인 컵에 받아 마시는 정수기 물이야말로 현자를 위한 유일한 음료이다. 술은 물론, 탄산음료나 페트병 안의 생수 같은 음료는 그다지 고상한 음료가 아니다. 그런 음료는 사람을 편리함에 취하게 하고 쓰레기를 만들어 낸다.
텀블러에는 다회용 빨대도 딸려 있었지만 쓰지 않는다. 빨대 세척용 솔을 따로 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설거지할 때는 수세미만 쓴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수세미가 아니라 식물 수세미이다. 작년에 기숙사에 입주하며, 식물 모양 그대로 말린 수세미를 새로 샀다. 4분의 1 정도 크기로 잘라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식물 수세미는 플라스틱 수세미와 달리 거품이 잘 난다. 거품을 낼 때는 유학생 선배가 내용물을 4분의 1 정도 남긴 채로 나에게 준 퐁퐁을 사용한다. 1년 반가량 지난 지금, 퐁퐁은 여전히 5분의 1 이상 남아 있다.
최근에는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는 칫솔을 올리브영에서 원플러스원으로 샀다. 포장재가 플라스틱이 아니라 종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플라스틱이 아예 사용되지 않은 칫솔은 적어도 내가 간 올리브영에는 없었다.
내 입은 칫솔만큼이나 치약에 대해서도 까다롭다. 아무 치약이나 쓰면 입이 붓고 틀 때가 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치약의 성분을 확인하면 언제나 탄산수소나트륨이 있었다. 사실 다른 성분이 문제의 원인일 수도 있지만, 일단은 탄산수소나트륨이 들어 있지 않은 치약을 산다. 치약은 모두 튜브형이다. 치약 가격도 대략 3,000원 정도이고, 1년에 네 개 정도 쓰는 것 같다.
치약 튜브는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작년 겨울에는 고체 치약을 사 보았다. 매일 고체 치약을 쓰니 입술이 텄다. 성분을 확인하니 탄산수소나트륨이 있었다. 인터넷에서 다른 고체 치약의 성분도 살펴보니, 대체로 탄산수소나트륨이 들어 있었다. 결국 남은 고체 치약은 가끔 사용하면서 느리게 소진하고, 주로 튜브형 치약을 쓰고 있다. 다 쓴 튜브형 치약은 반을 갈라, 남은 내용물로 화장실을 청소한다. 이렇게 내용물을 비우면 조금이라도 재활용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 본다.
[필자 소개] 초: 대학원생이다. 환경과 이주 문제에 관심이 있다. 이 두 문제와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전공에서 박사논문 주제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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