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권리로서 ‘동의’를 말한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불처벌의 정치학” 기획연재④

동은 | 기사입력 2024/12/31 [19:09]

성적 권리로서 ‘동의’를 말한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불처벌의 정치학” 기획연재④

동은 | 입력 : 2024/12/31 [19:09]

성매매 여성에 대한 ‘불처벌의 정치학’과, 반성폭력 운동에서 쟁점이 되는 ‘동의’는 어떻게 여성주의 정치라는 연결선에서 만날 수 있을까? 여성의 동의와 비동의, 자발과 비자발이라는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성별에 기반한 차별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어떻게 살필 수 있을까? 그 폭력을 유지시키는 구조 자체를 문제삼을 수 있는 공동의 방법은 무엇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이, 언제나 끈질기게 따라붙는 ‘여자가 원했다는 논리’에 맞서 든든한 여성주의적 대항 담론으로 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해본다.

 

▲ 2019년 9월,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최한 10차 페미시국광장에서 “강간죄를 개정하라!” 외치며, 폭행협박 증명을 폐기할 것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사진: 혜영)


동의는 왜 중요한가?

 

반성폭력 운동은 ‘동의’의 문제에 집중해왔다. 많은 피해자들은 ‘동의하지 않은’ 관계이므로 성폭력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형법 제297조 강간죄는 동의가 아니라 ‘폭행 또는 협박’을 법의 구성요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한 판례에 따르면, 폭행 또는 협박의 정도가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 이를 ‘최협의설’이라 한다.

 

비록 판례상 폭행 협박의 판단 기준이 점점 완화되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피해자들의 경험, 해석, 언어가 법으로 인정받지 못하곤 한다. 실제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에서 강간 및 유사강간 사례를 분석한 결과, 60~70%의 사례가 명시적 폭행 협박이 없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피해자가 성폭력을 인정받으려면 저항이 불가능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단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여기에는 피해자가 일관되게 무력했는지, 취약했는지도 증명할 것이 요구된다.

 

어떻게 이런 법이 만들어지고 유지될 수 있었을까? 여성운동 단체들과 학자들은 1953년 형법제정 당시 존재했던 ‘정조에 관한 죄’의 법적 틀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해왔다. 여성은 순결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 저항해야 하고, 저항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여성에게는 국가가 보호의 의무를 철회하는 것이 ‘정조에 관한 죄’의 틀이다. 이는 성폭력은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라기보다는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 심지어 남성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죄라는 인식이기도 하다.

 

1995년, ‘정조에 관한 죄’는 ‘강간과 추행의 죄’로 개정되었다. 그와 더불어 ‘강간과 추행의 죄’의 보호법익이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변화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과거의 ‘폭행협박-최협의설’이 끈질기게 법에 남아있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동의를 구하지는 않았지만, 강간은 아니었다”라는 가해자의 주장 자체에도 당황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재판에서 공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이런 낡은 법 속에서, 성적으로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여성과 성폭력 피해자는 양립하지 못한다. 자신의 신체와 성적인 삶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는 여성은 성폭력 피해자로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폭력을 ‘동의’로 판단하자는 주장은 이 맥락에서 제기되었다. 여성들은 분명히 의지와 욕망을 가지고 성적 자율성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여성들이 움직이는 세계가 성차별적인 사회질서, 권력의 불평등에 기반하여 구성되어 있다. 피해자가 적극적이었거나 행위성을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피해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현행 법은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 ‘동의’는 성적인 시민으로서 개인의 자율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폭력을 문제 삼을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이렇듯 ‘동의의 부재’로 성폭력의 기준이 이동한다는 것은, 성폭력의 의미구성 자체를 변화시키는 일이 된다.

 

▲ 2022년 9월, 친밀한 관계를 위한 적극적 합의 건강검진(가장 확실한 성적 동의, 적극적 합의 맞춤형 워크숍 두 번째)에서, 참여자들은 ‘동의’를 둘러싼 다양한 경험, 질문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었다. (출처: 한국성폭력상담소)

 

‘보호할 만한 피해자’만 보호하겠다는 사회

 

이는 폭행협박 구성 요건이 유지시켜 온 ‘보호할 만한 피해자’라는 프레임의 균열과도 연결된다. 저항 유무에 따라 보호할만한 피해자인지 아닌지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동의의 권리가 있다’는 전제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위에 ‘동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었는지’ 조건을 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호할 만한 피해자’ 프레임은 성매매 현장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성매매 여성이 법적으로 피해자가 되려면, ‘위계 위력으로 강요 또는 의사 형성 능력이 없거나 미약한 사람’으로 취약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등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비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사람이어야 한다. 성매매/성폭력 현장에서 산업구조나 성차별적 현실을 보지 않고, 피해자가 행위성(자발성)을 보였다면 피해자의 지위를 박탈하는 이 구도 자체를 질문해야 한다.

 

또한 ‘동의’는 다음과 같은 가능성도 가진다. 성폭력을 성기 삽입 중심으로 보고, ‘부위’별로 성적 침해를 위계화해 온 남성중심적인 해석에 대응하여, 폭력이 특정 행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자원과 권력의 비대칭적인 배치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동의’로의 기준 변화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어떤 관계이든, 피해자가 어떤 직업, 상황, 조건에 있든, 어디까지 동의한 것인지 확인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바로 세우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자유주의적 동의 개념이 담을 수 없는 현실

동의할 수 있는/없는 조건인가?

 

그러나,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동의’의 문법은 현재 이분법의 함정에 빠져있기도 하다. 동의/비동의, 자발/강제가 이분법적으로 딱 떨어지게 구분된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이 경우, 동의를 자유롭고 합리적인 두 개인의 계약 관계로 인식하게 되어, 젠더 등 불평등한 권력 구조에 대한 인식과 맥락을 삭제하는 한계를 가진다. 개개인의 성적인 행위에 대한 자기결정에만 집중함으로써 그 행위, 그 관계에 개입하는 ‘불평등’을 보기 어렵게 하는 것이다.

 

동의를 관계나 맥락 내에서 살피지 않고, 개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능력’으로 보는 것도 우려할 만한 지점이다. 대표적으로 안희정 성폭력 사건 1심 무죄 판결에서 “고학력”, ”성년의 나이”, “사회 경험”을 근거로 피해자가 충분히 동의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사후적으로 번복하면서 상대방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스스로 부인하는 행위”라고 보았다. 성폭력의 발생 원인을 ‘충분히 능력이 있음에도’ 거부하지 않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않은 피해자의 문제로 돌리는 판결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문법이 작동하는 가운데, 성매매 현장에서 ‘동의’는 성매매 산업에 유입되는 여성이 놓인 차별적 현실, 취약성을 삭제한 채 ‘자발성’이라는 논리로 여성의 행위만을 문제 삼고 있다. 그리고 성매매 산업구조를 통해 이익을 챙겨가는 수많은 연루자들을 못 본 척하는 데에 활용되고 있다.

 

▲ 강간죄 판단 기준을 ‘폭행, 협박’이 아니라 ‘동의 여부’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성매매 구조 안에서 성매매 여성이 과연 무엇을 동의/비동의할 수 있는지, ‘동의’를 할 수 있는 환경은 어떤 것인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미지: pixabay)


동의를 초과하는 여성들의 질문들

사회문화적, 경제적 환경을 벗어난 자율성은 없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동의 중심 사회로의 이동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동의가 현재 쓰이는 방식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갖고 활동해왔다. Yes or No 이분법적인 동의가 아니라, 상호 간 합의에 이르는 구체적인 과정 안에서 ‘동의의 조건’을 강조해왔다. 나아가 동의가 전제되어 있다고 여겨지거나, 동의를 능력으로 사고할 때 쉽게 누락되는 존재들은 누구인지, 이들에게 동의는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논의해왔다.

 

그러한 문제의식의 일환으로, 동의가 쉽게 누락되거나 전제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친밀한 관계에서 동의’는 언제 쟁점이 되고, 어떤 것을 문제삼기 위해 등장하는지 살펴보고자 15명의 여성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모든 경험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표면적으로 수락 행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동의한 것은 무엇이었지?’ ‘나는 왜 그때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는데도 수락했을까?’ ‘그것을 폭력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그 피해의 내용은 그럼 무엇이지?’ ‘폭력이라고 판단되지 않으면 문제가 없을까’와 같은 성찰적인 질문들을 따라가며, 동의가 열어내는 고민을 듣고 적었다.

 

여성들이 동의를 질문하고 해석할 때, 그것은 언제나 ‘성적 선택’의 문제를 초과했다. 내가 선택하여 그 관계에 들어섰지만, 친밀한 관계 내 최초의 동의는 성행위 전반의 포괄적 동의로 받아들여지기 쉬웠다. ‘남성 특권’이 어떠한 견제 없이 적용되는 친밀한 관계 속 성적 관계는 여성들에게 ‘해야 하는 섹스’로 돌아왔다. 친밀한 관계와 섹스를 바랐던 사람들도, 성별화된 욕망의 행사 방식 속에서 기대와는 다른, 나의 욕망은 배제된 섹스 각본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때로는 고통의 경험으로 남기도 했다.

 

우리가 들은 이야기는 ‘남성됨의 내용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같기도 했다. 또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됨의 가치’를 개인이 받아들일수록, 성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현실과도 관련이 있었다. 또한 관계적, 경제적 빈곤 등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놓일수록 성이 자원화되기 쉽다는 것과도 연관되어 있었다. 어느 여성의 경험이든 동의/비동의라는 이분법의 세계에 딱 들어맞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 어떠한 사회문화적, 경제적 처지에 따른 영향을 받지 않는 자율적 개인의 모습도 아니었다. 자유주의적 동의 개념을 넘는 이야기들을 여성들의 경험에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황유나가 『남자들의 방』에서 지적하듯, 한국남성의 상당 수는 룸살롱, 노래방 등 각종 ‘방’에서 여성 접객원이 수행하는 ‘아가씨 노동’을 향유하면서 남자가 되어간다. ‘남자되기’에는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해 침범하는 폭력이 내재해 있다. 남성들의 유흥을 위한 여자들의 자리가 버젓이 법에 기입되어 공식화된다. 성매매는 이러한 남성문화가 산업화되어 있는 공간이라면, 성폭력 현장에서는 어떠한 상호성이나 관계맺음의 양식 없이 몸이 분절적으로 도구화되는 경험을 통해서 피해의 내용으로 등장한다. 성폭력에서 성별성과 ‘동의’의 과정을 적극적으로 연결하여 사유하는 것이 성매매 현장과도 관련되어 있는 이유이다.

 

▲ 2020년 6월,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 〈이슈대응집담회 : 의제강간 연령 상향에 부쳐 16세 미만의 ‘동의’ 가해자 처벌과 역량보장 사이에서〉가 진행되었다. (출처: 한국성폭력상담소)


동의 역량이 발휘될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는 ‘동의 보장 사회’

 

성적 권리로서의 동의는 명시적인 선택이나 장애 여부, 피해자의 나이 등에 따라서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다. 동의는 일상적이고 실질적인 권리로서, ‘능력’이 아닌 ‘역량’이다. 여기서 역량은 소유적 개념이 아니라,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행할 수 있는 실제적 기회의 총합이다. 국가와 사회는 구성원들의 동의 역량 증진을 위해 여러 조건들을 마련해야 할 책임을 갖는다. 동의 역량은 시민권 및 안정적인 노동권과 주거권, 포괄적 성교육에 대한 접근권 등 여러 연결된 권리의 맥락 속에서 비로소 구체화될 수 있다. 그렇기에 사회는 ‘동의 역량’이 발휘될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해야 한다.

 

성매매 여성의 ‘불처벌’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성적 권리인 동의의 조건으로서 매우 필수적이고 시급한 과제이다. 성매매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듯이, 성매매 여성들은 성폭력 상담 과정에서 법적 구성요건을 충족하기 어렵고, 성매매 처벌법에 의해 처벌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법적 해결로 쉽게 이어지지 못한다. 따라서 성매매 여성을 불법적 존재에서 해방하여, 성매매 현장에서 동의의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성적 권리 담론으로서 동의를 다룰 때, ‘빈곤’에 대한 질문을 누락시키지 않고 계속해서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매매 여성들이 마주한 현실은 비단 성매매 운동 현장에서만 국한된 현실은 아니다. 취약한 여성들의 성적 선택, 참여, 협력 등이 모두 ‘동의한 성적 행위’로만 좁혀지는 현실과, 법적 사회적 보호와 권리의 바깥지대로 밀려나는 현실을 타파해 가는 것은 반성폭력 운동 현장의 과제이기도 하다.

 

가부장적 성매매 산업 자체를 타격하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적 시장의 힘이 여성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덜 미치게 할 수 있도록-성매매 바깥에서도 충분히 삶이 가능하도록, 어떻게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변화시킬 것인가에 관하여 반성폭력 운동의 언어와 실천들을 엮어낼 필요가 있다.

 

[참고 문헌]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21대 국회토론회 폭행협박에서 동의여부로 형법 제297조 강간죄구성요건 개정 쟁점과 과제」, 국회토론회 자료집, 2023

-신상숙, 「성폭력의 의미구성과 ‘성적자기결정권’의 딜레마」, 『여성과사회 제13호』, 한국여성연구소, 2001

-황유나, 『남자들의 방: 남자-되기, 유흥업소, 아가씨노동』, 오월의봄, 2022

-김주희 외 『불처벌-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사회에 던지는 페미니즘 선언』, 휴머니스트, 2022

-한국성폭력상담소, 「16세 미만의 ‘동의’ : 가해자 처벌과 역량보장 사이에서」 이슈대응 집담회 자료집, 2020

-한국성폭력상담소, 「동의를 질문하며 위험너머 나아가기 : 친밀한 관계에서 여성들의 성적 경험을 중심으로」 인터뷰 자료집, 2023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달의 리뷰] 법에 갇히지 않고 법개정 운동하기: 한국성폭력상담소 X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불처벌〉 간담회

 

[필자소개] 동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반성폭력 운동이란 무엇일까? 활동가란 뭘까? 항상 고민하고 궁금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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