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환경연대에서 주관한 제9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 “플라스틱으로 온 세상이 뒤덮이기 전에”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한 기사입니다. [편집자 주]
〈생로병사의 비밀〉 만든 PD로서 알게 된 사실 “우리나라 곳곳에 ‘암 마을’이라 불리는” 곳엔 늘 환경 문제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KBS 김가람 PD입니다. 저는 KBS 소속 14년차 직장인으로, 오랫동안 시사교양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만들었습니다. 2021년에는 tvN의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여행 PD로 출연했고, 여행 에세이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나름 성공한 교양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PD지만, 저를 딱히 반기는 곳은 없었습니다. 제가 만든 프로그램에 나온다고 엄청난 출연료를 받거나 광고를 찍을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이런 제가 꽤 환영 받을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런 곳들입니다. “우리 동네에 시멘트 공장이 들어선다는데 취재 좀 해줘요.” “물 맑고 공기 좋은 마을에 소각장이 웬 말이냐?”
제가 이런 분들을 만난 곳은 다름 아닌, 바로 건강정보 프로그램 〈생로병사의 비밀〉 촬영을 할 때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맡게 된 때는 코로나19 때문에 국경이 전부 닫히고, 개학마저 미뤄지던 2020년 초반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병원을 출입하거나 환자를 섭외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고, 방송 시기는 다가오니 되도록 병원에 가지 않고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런 집단 암 발병이 일어난 곳들에는 약속한 듯 환경 문제가 있었습니다. 보여드리는 사진은 제가 〈생로병사의 비밀〉 촬영을 할 때 찾은 시골 마을인데요. 주민의 3분의 1이 암에 걸려서 ‘암 마을’로 불리는 곳입니다. 시골 마을 반경 2km 이내에 소각장 3개, 하루에 500t의 쓰레기가 소각되는 곳인데요. 개발도상국 모습이 아닙니다. 2020년 한국이에요.
소각장 굴뚝의 핑크색 연기를 보며 깨달았습니다. ‘지구가 넓어서 어디선가는 잘 처리될 줄 알았더니 아니었구나. 기술이 발달해서 어떻게 잘 사라질 줄 알았더니 아니었구나. 지금처럼 만들고 지금처럼 버려서는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게 되는구나. ‘내돈내산’이라며 큰 소리치면 안 되겠구나.’ 타인의 건강과 자연을 회복하지 못할 만큼 망치는 대가로 ‘제대로 된 값’을 치렀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가난한 나라로 쓰레기를 배설하고 있는 우리
저는 더러운 곳들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공장과 화장실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그러면서 냄새 나고 지저분하다고 손가락질까지 당하는 곳들로 향했습니다.
지난 4년간 제가 만든 프로그램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우리가 버린 헌 옷이 지구 반대편으로 가서 쓰레기산을 만드는 참상을 담은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식품 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세계적 불평등을 다룬 〈먹다 버릴 지구는 없다〉, 친환경 IT 산업의 이면과 수리권(Right to Repair) 문제를 다룬 〈아이를 위한 지구는 없다〉, 생수 산업의 환경 문제와 공공 음수대의 필요성을 다룬 〈탄소 해적〉을 만들었고, 가장 최근에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 없는 재활용의 민낯을 폭로한 〈재활용 식민지〉라는 환경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가나로 헌 옷을 보내 커다란 쓰레기 무덤을 만든 건 미국, 독일, 영국, 우리나라와 같은 선진국들입니다. ‘친환경’을 이야기하는 국가들이 수출하는 것은 옷뿐만이 아닙니다. 유럽에서는 더 이상 운행할 수 없는 노후 경유차, 고장난 전자제품, 오염된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이미 수십 년째 국경을 넘어왔습니다.
인도네시아 소녀 니나, 지금도 “플라스틱 쓰레기 수입 멈춰달라” 시위 한국에서 온 햇반, 파스 껍질, 호주 정부 출처의 코팅된 문서들∙∙∙
플라스틱 쓰레기의 경우, 2017년까지는 중국이 세계 폐플라스틱 거래의 절반 이상을 오염 여부와 관계없이 군말 없이 받아들여왔기 때문에, 아무도 그 문제의 크기를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죠. 하지만 경제가 발전해 더 이상 폐자원의 수입이 필요 없어진 중국이 폐기물 수입을 중단하자, 갈 곳을 잃은 쓰레기들은 동남아시아 국가들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플라스틱 쓰레기 수입이 국제적인 갈등으로 비화되었을 때 세계적 환경운동가로 떠오른 인도네시아 소녀가 있어요. ‘니나’라는 10대 소녀인데요. 미국 트럼프 대통령, 캐나다, 독일 총리 등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쓰레기 수출을 멈춰달라며 호소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언론인의 환경 문제 관련한 취재에 극도로 민감한 것을 알기에,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혼자 출국했습니다. 현지에서는 히잡을 쓰고, 현지 플라스틱 쓰레기 수거인처럼 위장해서 마스크를 쓰고 다녔습니다.
니나가 사는 인도네시아 마을에는 수입이 합법인 폐지에 섞여서, 또는 ‘재활용 연료’라는 이름으로 선진국에서 플라스틱들이 수입되고 있었는데요. 오직 수입된 플라스틱 쓰레기로만 이루어진 쓰레기산들이 있습니다.
거기서 발견했던 물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햇반 껍질, 파스 봉지와 같은 것들이 보입니다. 호주 재무부의 사무실에서 사용한 코팅된 ‘인쇄기 사용법’ 문서도 보이네요.
니나가 사는 마을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는 나무 땔감보다 싸다는 이유로, 두부 공장에서 연료로 사용됩니다. 시멘트 공장에서 연료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무분별하게 소각되어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었어요. 베트남의 고엽제 피해 지역 다음으로 높은 다이옥신 검출량을 기록할 정도로요.
눈치채셨겠지만 인도네시아의 수입 플라스틱 쓰레기산에서 투명 페트병은 찾을 수 없습니다. 색상이 없고 거의 같은 소재로 만들어져 있어 재활용 업계에서 몸값이 높은, 우리가 정성껏 분리 배출하는 그런 플라스틱은 국경을 넘지 않습니다.
팔랑팔랑하는 과자 껍질, 코팅된 종이, 신용카드, 치약, 마스크 포장처럼 플라스틱이기는 한데 이거 재활용될까 싶은 것들, 우리나라에서도 결국은 돈을 주고 열분해 시설로 보내거나 소각해야 하는 ‘재활용하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것들이 운 나쁘게 브로커를 만나면 국경을 넘죠.
같은 이유로 친환경 선진국 독일 플라스틱 쓰레기의 3분의 1이 터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같은 나라로 수출됩니다. 그런 것들도 독일의 재활용률에 포함이 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죠.
게다가 플라스틱의 99%는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로 만들어집니다. 지구 기온이 1.5도 이상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 감축이 가장 시급한 일임을 감안하면, 플라스틱의 진짜 문제는 ‘폐기’가 아니라 ‘생산’부터 시작되는 셈입니다. 모든 나라가 각자의 플라스틱을 스스로 잘 재활용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온다 해도, 플라스틱을 만들면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것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죠.
‘재활용 식민지’, 선진국 플라스틱 쓰레기 뒤져 먹고 사는 사람들 플라스틱에게 이별을 고해야 할 때
재활용은 전 세계적으로 60조 가치가 있는 ‘친환경 미래 먹거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지난 여름 제가 목격한 세계 재활용 산업의 실체는 이러했습니다. 60조 규모의 재활용 산업의 바닥에는 ‘재활용 식민지’라 불리는, 선진국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뒤져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이 없이 친환경 선진국들이 자랑하는 재활용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재활용만 잘하면 플라스틱을 실컷 써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헌 옷 수거함에 깨끗한 옷만 내놓으면 누가 잘 입을 거라고 여기는 사람들, ‘내돈내산’이니 전용기 타고 일반인의 3개월치 탄소를 15분만에 다 배출해도 ‘어쩌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질문할 겁니다.
계산, 제대로 하셨나요? 지구 기온을 3도, 4도 올려서 도시들이 물에 잠기고 식량난이 오고 분쟁이 나서 수 억 명이 집을 떠나 떠돌 때, 그 피해를 전부 보상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건 잘못된 계산입니다.
저의 이야기를 듣고 계산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여러분도 함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재활용만 잘하면 지구를 살릴 수 있다는 기업 캠페인에 악플보다 무서운 무플로 대응하면 좋겠습니다. 여성환경연대를 비롯한 환경 단체의 서명에 열심히 참여하고 퍼 나르고, 환경 행사에 머리 수를 채워주면서 이거 표 되는 일이라는 걸 높으신 분들이 빨리 눈치채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2050년에 지구가 터진다면 저도 욜로(YOLO, 현재를 즐기자)를 하겠죠. 그러나 당연하게도 지구는 앞으로도 몇 억 년이고 지속할 겁니다. 화성에 갈 돈이 없는 우리의 안온한 삶만이 지속 가능하지 않겠죠. 그래서 저는 삶을 간소화하고, 덜 쓰고, 쓰레기를 떠넘기지 않는 방식을 따르고자 합니다. 미래 세대를 걱정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아닙니다. 이미 아픈 제가 늙어서 조금 편하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플라스틱과 이별해나가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필자 소개] 김가람: KBS 환경 전문 PD로 전 세계의 폐기물 현장을 취재하며 과잉 생산, ‘책임 없는 폐기’의 문제를 알리고 있다. 다큐멘터리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지속 가능한 지구는 없다〉, 〈아이를 위한 지구는 없다〉를 만들었고 책 『걸어갑니다, 세계 속으로』, 『카메라로 지구를 구하는 방법』(공저)을 썼다.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민주언론시민연합 올해의 보도상, 방콕다큐멘터리어워즈 여성감독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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