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령 대첩’ 이후, 여성과 소수자가 열어갈 세상

마포녹색당 x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시국집담회 〈광화문에서 남태령까지〉

박주연 | 기사입력 2025/01/04 [13:11]

‘남태령 대첩’ 이후, 여성과 소수자가 열어갈 세상

마포녹색당 x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시국집담회 〈광화문에서 남태령까지〉

박주연 | 입력 : 2025/01/04 [13:11]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한 시민들의 힘으로 6시간만에 계엄이 해제되었고, 국회가 두 번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14일 가결됐다. 계엄‧탄핵 정국을 맞이하여 전국 곳곳에서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였으며, 민주주의를 지키고 진전시키기 위해 목소리 내고 있다.

 

12월 21일과 22일에는 ‘남태령 대첩’이라 불리게 된, 기념비적인 시민 연대의 장이 펼쳐졌다. 21일 전국농민회총연합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 농민단체들이 모인 ‘전봉준 투쟁단’이 트랙터를 몰고 서울로 행진하다 남태령역 부근에서 경찰과 차벽에 막혀 고립되어 있다는 소식이 SNS를 통해 퍼져나갔다. ‘전봉준 투쟁단’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농업 4법(양곡관리법,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농어업재해보험법, 농어업재해대책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에 항의하며, 트랙터 대행진을 벌이던 중이었다.

 

▲ ‘윤퇴청: 윤석열 퇴진을 위해 행동하는 청년들’에서 만든 〈남태령 대첩 참여 후기〉 카드 뉴스 중 *출처: 윤퇴청 페이스북 @getoutyoon


이 소식을 들은 2030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시민들이 하나 둘 남태령을 향하기 시작했다. 응원봉을 들고 모여든 시민들은 밤새 도로 위에서 농민들과 함께하며 “경찰 차 빼!” 구호를 외쳤고, 남태령은 커다란 집회 현장이 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이 전농TV 유튜브 라이브 중계를 보며 응원을 보냈다. 22일 새벽, 지하철이 운행되기 시작하자 더 많은 시민들이 남태령을 찾아갔다. 결국 22일 오후 경찰은 차 벽을 해제하여 길을 열었고, 트랙터 시위는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까지 행진하였다.

 

‘남태령 대첩’은 계엄-탄핵 정국에서 ‘탄핵(큰일)이 먼저’라는 목소리에 묻혀 ‘나중에’로 밀려났던 농민, 노동자, 여성과 소수자의 의제가 함께 이야기되는 자리였고, 이전에는 서로 잘 알지 못했던 소수자들이 손을 뻗어 연대하며 강해진 힘을 발견하는 자리였다. ‘전봉준 투쟁단’은 남태령 대첩 승리에 대한 감사의 답례로 무지개떡 1만개를 만들어, 28일 광화문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4차 범시민대행진’을 비롯하여 전국 곳곳에서 탄핵 촉구 집회 참여자들과 나누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하원오 의장은 “혐오와 차별 속에 주류사회에서 배제되어온 여성, 성소수자, 청소년, 노인, 도시빈민, 농민이 만든 승리”라며 고맙고, 또 고맙다고 했다.

 

남태령은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우리가 거리에서, 광장에서 외치는 이유

 

소외 받는 목소리에 연대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시민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며, 그러나 탄핵만 원하는 것은 아닌’ 시민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2024년 12월 26일 저녁, 마포녹색당과 정의당 마포구위원회가 〈시국집담회 - 광화문에서, 남태령까지〉를 열었다. 장혜영 전 국회의원/현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지역위원장과 김혜미 마포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집담회엔 온/오프라인으로 참여한 시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주거권 운동을 하는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최근 기고한 글(“윤석열은 방 빼고, 나는 방 뺄 수 없고” https://n.news.naver.com/article/007/0000007815)에 악플이 쏟아진 일을 들려주었다. “‘왜 당신들 방 빼는 일에 윤석열을 끌어들이냐?’라는 댓글을 보고, ‘이거지. 이래서 내가 윤석열을 끌어들이지.’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며 크게 웃은 후, 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가 뭔가요? 누군가한테 자녀가 있는데, 1억원을 증여하고 싶어요. 근데 세금을 내야 한대요. 그래서 그들은 ‘내 자식한테 돈 주겠다는데 세금을 왜 내냐?’며, 그 주장을 관철시켰어요. 그게 정치입니다. 우리가 알바해서 돈 벌어도 세금을 떼 가는데, 1억원을 증여하면 세금이 없어요. 최근엔 또 어떤 제도가 만들어졌는지 아세요? 8억 이하의 빌라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아파트 청약 과정에서 무주택자로 취급된대요. 집을 분명 갖고 있는데, 무주택자라고 해준대요. 이게 정치입니다. 집 문제 절대 개인적인 문제 아니고요, 전세사기도 절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에요.”

 

▲ ‘윤퇴청: 윤석열 퇴진을 위해 행동하는 청년들’에서 만든 〈남태령 대첩 참여 후기〉 카드 뉴스 중 *출처: 윤퇴청 페이스북 @getoutyoon


지수 위원장은 “몇 달 전에도 전세사기 피해 여성청년이 희생자가 됐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 분은 ‘전세사기 희생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언론 보도도 안 됐고, 유가족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 죽음엔 어떤 이름표도 없고, 우리 사회는 또 한 명의 여성청년을 잃어버렸지만, 왜 잃었는지도 몰라요. 나는 이게 너무 억울합니다. 그 억울함을 참을 수 없어서 주거권 활동을 하는 거에요.”

 

원은지 추적단불꽃 대표는 “올해 8월부터 본격적으로 언론 보도가 되기 시작한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지난 6개월 동안 2030 여성들은 딥페이크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 그리고 가해자가 내가 믿고 지내던 친구나 연인, 제자, 동료, 가족, 선배, 후배 등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고, 큰 상처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어디에선가 표출해야 했었다”며, 그것이 “국회 앞과 광화문, 남태령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정누리 ‘청주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걔네’ 활동가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지역에 서 살고 있는 여성청년으로서 ‘한국에서 지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상 ‘우리가 쫓겨나고 있는 상황인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에서 하는 말들을 듣고 있으면 “우리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것 같다. ‘지금 이 한국 사회가 싫으면 그냥 네가 떠나라’고 하는 것 같다”고.

 

그럼에도 한국에, 청주에 계속 머무를 수 있는 건, 동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정누리 활동가는 “설사 작은 광장일지라도 내가 사는 곳에서 광장이 만들어지고, 함께 사는 사람들과 우리가 사는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문제점을 논의하는 게 되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자유롭게 나의 삶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학교 밖 청소년이라 밝힌 베라(닉네임) 씨는 “청소년들에겐 시위 자체가 일종의 해방의 창구이기도 하다.”라며 자신 또한 “청소년 기후파업에 처음 참여하면서 큰 해방감을 느꼈다.”고 했다. 최근의 탄핵 촉구 집회에서도 “여성 청소년의 한 명으로서 집회에 있으려고 노력했다”는 베라 씨는 “광장에 청소년이 있다는 것 또한 기억해 달라”고 강조했다.

 

▲ 2024년 12월 26일 저녁, 서울 마포구에서 마포녹색당과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주최의 〈시국집담회 - 광화문에서, 남태령까지〉가 열렸다. 장혜영 전 국회의원/현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지역위원장과 김혜미 마포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사회를 맡았다. ©일다


집담회 참여자들은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102030 여성들은 다양한 열망과 요구를 외치기 위해,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 광장으로 모이고 있다는 것을.

 

이주민도, 트랜스젠더도 ‘동료 시민’이 되어 서로를 지켜준 경험

“이미 자신감을 얻어버렸거든요”…남태령은 계속될 것

 

시국집담회 참여자들은 또한 ‘남태령 대첩’을 경험하며 느낀 것들, 체감한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남태령 대첩’ 현장에 있었던 다양한 존재들. 나이든 농민들과 청년들, 이주민 2세, 트랜스젠더/논바이너리, 성소수자, 노동자, 전세사기 피해자, 대학 비진학 청년, 동덕여대 학생… 서로의 다름을 인지하면서도 연대할 수 있음을 확인한 그 감각이 무엇을 남겼는지를 말이다.

 

남태령에서의 발언이 화제를 불러모았던, 그만큼 악플도 경험한 ‘위아더해군’(닉네임) 씨는 이주민 2세로서 “내가 누구인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집단적 배척을 경험하는 건 생각보다 무서운 경험”이라고 토로했다. “그 경험은 어느 한 국가를 원망하는 것으로 변질될 수도 있고, 부모를 원망하는 게 될 수도 있으며, 이렇게 태어난 나를 원망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며, “이런 우리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건, 사람들의 응원과 연대”라고 강조했다.

 

“같은 동료 시민이라고 인지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이 땅에 있는 편견이 사라진다면, 만족할 것 같아요. 나를, 우리를 어떤 틀 안에 숨게 만드는 건, 모두의 편견으로부터 시작되는 거거든요. 열악한 환경에서 부족하게 자랐고, 힘들게 버텨온 우리와 함께 해 주세요. 그 부탁뿐입니다.”

 

고태은 민주노조를깨우는소리 ‘호각’ 활동가는 여전히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는 상황 속에 있음을 이야기했다.(관련 기사: “노동자들은 이미 비상계엄 상황이었다” https://ildaro.com/10069) 사실 “이 광장이 끝나면 우리는 어디에 가 있을까 계속 생각했다. 그래서 야간봉이 흔들리는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도 자주 외롭다고 생각했다. 이후 소수만 남을 투쟁 현장이 더 외롭지 않을까 걱정됐다.” 하지만 ‘남태령 대첩’을 보며 “나의 비관적 생각을 비관하게 됐다.”고 했다.

 

“(남태령 대첩 이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이동권 시위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고, 현장에서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때 나와 닮은 인류들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달해도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죠. 차별 받고 착취 받는 존재들도 여전합니다. 싸움도 계속되고 있어요. 하지만 착취의 굴레만큼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그게 바로 단결과 연대, 투쟁이라고 생각해요. 해방을 꿈꾸며 새로운 세계로 가기 위한 가치들을 위한 것이죠. 최근 시위를 경험하며, 그 투쟁이 노동자들의 싸움 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요즘 만나고 있는 광장에도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뛰쳐나온 사람들이 서로를 지키는 경험은, 정말 사람들을 크게 변화시키거든요. 그 경험을 갖게 된 우리가 이제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고 생각해요. 그 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거든요.”

 

▲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네트워크’에서 제작, 배포한 피켓 이미지들


고태은 활동가는 “노동 의제를 가지고 싸우는 사람은 빨갱이도 아니고, 도깨비도 아니다”라며 웃었다. “어디에서든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냥 곁에 가셔도 괜찮습니다. 그 곳에서 자신을 이야기를 하면서 연대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억울해서 주거권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한 지수 활동가도 “어쩐지 이 광장이, 남태령이 저는 계속될 것만 같다.”며 “왜냐하면 이미 자신감을 얻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동안 위축되었던 감정을 ‘남태령 대첩’이 잊게 해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여자든지 남자든지 고양이든지 뭐든지 그런 걸 묻지 않고도 당연히 ‘집’이라는 게 마련되는 세상이 올 때까지, 광장에서 또 다른 남태령에서 함께 만나면 좋겠습니다.”

 

평등하게 살아갈 미래는 이미 와 있다

 

가장 많은 이들을 울린 발언은 전세사기 피해자이자 청년, 퀴어, 비건 등의 여러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한 이주연 씨의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과 달리 대학 비진학 청년인 동생뿐만 아니라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평등하게 함께 살아갈 미래를 꿈꾼다”고 했다. 그리고 “그 미래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평등한 관계가 어떤 모습인지 알아야 하고, 다양한 연대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같이 미래로 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국집담회에서 참여자들이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모습을 보며, 이미 우리가 꿈꾸는 미래가 코 앞에 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 순간 멈춰버리거나 오히려 과거로의 회귀를 말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사로잡히지 않을 시민들이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음을. 그 대열이 점점 길어지고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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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굥 아웃 2025/01/05 [02:33] 수정 | 삭제
  • 그 추웠던 겨울 날, 정치에 별 관심도 갖지 않을 줄로만 알었던 20·/30 세대가 그것도 여성들로 주축이 되어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뜨거운 열정으로 밤 세워 목청꿧 윤석열 체포를 외쳐댔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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