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쓰레기통에서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것은

도시 생활의 경제학⑥ 플라스틱 물건을 사는 데 쓴 비용 총계

| 기사입력 2025/01/07 [12:18]

내 쓰레기통에서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것은

도시 생활의 경제학⑥ 플라스틱 물건을 사는 데 쓴 비용 총계

| 입력 : 2025/01/07 [12:18]

이 글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재사용한 글이다. 소로는 『월든』에서 ‘숲 생활의 경제학’을 펼쳤다. 일반적인 경제학은 자본으로 어떤 상품을 만들어서 어떤 가격에 얼마나 많이 팔아서 얼마나 큰 이윤을 남길지 계산하지만, 소로는 숲에서 얼마나 적은 비용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계산했다. 이를 통해 문명으로 얼룩진 삶이 아닌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주려 했다.

 

현대에 도시에 사는 한국인이 삶의 비용을 계산하는 일은 여간 복잡하지 않지만, 나는 일단 도시 생활에 드는 플라스틱 값을 계산하기로 했다. 2024년 1월부터 6월까지 지출한 플라스틱 값을 토대로 1년 치를 계산해 ‘도시 생활의 경제학’을 펼쳐보기로 했다. 글 곳곳에는 『월든』이 배어 있다. 소로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오기도 했고, 그 허세를 빌리기도 했다는 점을 밝힌다. [기획의 말]

 

매달 사는 쓰레기들

 

내 쓰레기통에서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쓰레기는 생리대이다. 일회용 생리대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나는 매달 36개입 생리대 한 봉지를 쓴다. 마트에서 2+1 행사를 할 때 사면 하나에 12,000원 정도 한다. 순면커버 생리대가 아니면 생리통이 생겨서 조금 비싸더라도 순면커버로 산다. 인터넷에서 사면 반값에 살 수 있지만 주로 오프라인에서 구입한다. 나만을 위한 택배 포장 쓰레기가 생기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만약 생리컵이나 면 생리대를 쓴다면 생리대 쓰레기는 단번에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기숙사에서 생리컵이나 면 생리대를 쓰기는 쉽지 않다. 생리컵을 소독하려면 냄비에 넣고 끓이거나 전자레인지에 돌려야 한다. 공용 취사실에서 실천하다가는 눈총을 받기 십상인 일이다. 면 생리대를 빨려면 바가지에 하루 정도 담가 두고 생리혈을 빼야 한다. 룸메이트가 유쾌히 받아들이지는 않을 일이다.

 

자기만의 부엌과 화장실이 없는 나는 1년에 적어도 144,000원을 내면서 쓰레기를 만들고 있다. 내가 얼굴을 붉히면서도 이처럼 약점을 밝히는 것은 독자들도 대부분 나와 똑같은 약점을 감추고 있으며 그들의 행적도 활자화하고 보면 나보다 나을 바가 없으리라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연구자의 식솔들

 

마지막으로 내가 대학원생이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 보자. 책과 필기구에 관한 이야기이다. 책은 물론 대부분 종이로 이루어져 있고, 재활용도 용이해 보인다. 하지만 대다수 책의 표지는 비닐로 코팅되어 있다. 코팅된 종이는 쉬이 재활용되지 못한다. 양장본인 표지는 더더욱 재활용이 어렵다. 책은 무해한 종이처럼 보이지만, 실은 종이가 아닌 수많은 부속물을 수반한다. 물론 이론적으로야 얼마든지 부속물과 종이를 분리한 후 재활용이 가능하겠으나, 현실에서 분리 작업이 철저히 이루어지리라고 믿지 않는다.

 

▲ 학회가 끝난 뒤, 행사 포스터 앞뒤로 붙어 있던 코팅을 직접 떼 보았다. 사진 속 포스터 같은 것은 종이가 아니라 포스터에 코팅되어 있던 비닐이다. 코팅된 종이는 비닐이나 다름없다. 물론 비닐로 분리 수거되지는 않는다. (사진: 초)


실무자들이 철저히 분리해서 재활용해준다 하더라도, 연구자의 책이 재활용될 것 같지는 않다. 읽지도 않을 책을 끌어안고 사는 연구자들이 재활용을 위해 책을 내놓는 일은 은퇴할 때나 일어날 법하다. 그러나 마침내 무엇인가 연구할 거리를 발견한 사람이 그 연구를 위해서 새 책을 장만할 필요는 없다. 여러 해 동안 도서관에 있으면서 먼지가 뿌옇게 쌓인 헌 책을 꺼내 읽어도 무방하다.

 

나는 웬만한 책은 새로 사지 않는다. 학교 도서관에 책이 없다면 지역 도서관을 찾아간다. 지역 도서관에 책이 없다면, 빌릴 자격이 주어지는 한 다른 도서관에 찾아가려 한다. 이렇게 도서관주의자가 되는 데에는 분명한 이점이 있다. 도서관에 있는 책에는 보통 낙서가 되어 있다. 낙서가 책 내용과 전혀 무관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내용에 밑줄을 긋거나 참고할 만한 내용을 적어 둔 경우가 많다. 지적으로 게으른 나로서는 낙서가 있는 책을 좋아한다. 머리에 힘을 빼고 책을 읽다가 낙서가 있는 부분에서만 집중해서 읽으면 되는데, 무엇 하러 낙서가 없는 책을 읽으면서 내내 집중하는 수고를 사서 하는가? 도서관 책에는 선학의 지혜가 담겨 있다. 도서관 책의 낙서를 읽는 시간 동안 우리는 세상의 모든 시대를, 아니 모든 시대의 모든 세상을 살 수 있다. 역사, 시, 신화 등 다른 사람의 경험에 대하여 읽어본 그 어떤 활자도 이만큼 경이롭고 유익하지는 않을 것이다.

 

▲ 선학의 경이롭고 유익한 지혜가 가득한 도서관 책. 나는 웬만한 책은 새로 사지 않는다. 학교 도서관에 책이 없다면 지역 도서관을 찾아간다. (사진: 초)


이런 나도 학교를 다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책을 사야 할 때가 생긴다. 도서관에 없거나, 이미 누가 빌려 가서 책을 구할 수 없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산 책이 올해 3권 있다. 하나는 『돈 후앙의 가르침』이다. 수업에서 2주 만에 서평을 내라는데, 어떤 도서관에서도 이 책을 찾지 못했다. 결국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배송비 포함 11,400원에 샀다. 책을 사고 배송이 시작된 후에야 이 책이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책은 육지에서 본래 주인에게 갈 때 한 번, 제주도에서 나에게 올 때 또 한 번, 적어도 두 번은 비행기를 타고 탄소를 배출했을 것이다.

 

또 다른 한 권은 『여섯 번째 대멸종』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계기가 된 수업에서 이 책을 읽어야 했다. 이 책은 도서관에 많았지만, 2014년 번역본만 있고 내가 읽어야 하는 2022년 번역본은 없었다. 겨우 한 권, 본가의 도서관에 있어서 본가의 스마트도서관에 상호대차를 신청해 두고 찾아갔다. 하지만 너무 옛날에 만든 도서관 회원증이어서인지 스마트도서관에서는 대출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이제 본가의 시민이 아니기에 어찌할 방도도 없었다. 결국 다시 기숙사로 오는 길에 용산역 영풍문고를 들러 새 책을 20,000원에 샀다. 양장본이었다. 대멸종이라는 주제를 논하면서 양장본을 찍어 내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양장본을 새로 살 바에야 차라리 조금 일찍 인터넷으로 중고책을 주문했어야 했다.

 

마지막 한 권은 외국 책이다. 한국에서는 틱낫한으로 알려진 Thích Nhất Hạnh 스님이 쓴 『Muốn An Được An』이다. 한국의 베트남불교 행사에서 구매했다. 원래 65,000동, 현재 환율로 3,500원 정도이지만 8,000원에 샀다. 이 정도 뻥튀기는 그들의 초국적 연결을 응원하는 마음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 책을 사고 집에 와서 검색하니, 이 책은 원래 영어로 쓰였다고 한다. 다행히 학교 도서관에서는 영어 원서를 구할 수 없다. 베트남어 번역본을 구할 수 있을 리는 더욱 만무하니, 헛되이 새 책을 사지는 않았다.

 

어쨌든 지난 반 년 동안 내가 책을 사는 데 쓴 돈은 39,400원이다. 40,000원도 안 되는 돈이면 박사과정 한 학기를 보낼 수 있다. 1년이면 80,000원. 1년 동안 200만 원어치 책을 사면서 교보문고 프레스티지 회원이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필기구에 관해 얘기해 보자. 요즘은 전자기기에 필기하는 일이 많지만 그럼에도 필기구는 계속 사용된다. “어차피 필기구는 있으면 쓰니까”라는 논리로 필기구를 선물하는 일도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소유한 필기구를 다 쓰지 못하고 죽는다. 필기구는 어릴 때부터 쌓이기 시작해 십수 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도 없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나는 2020년에 본가에 있는 필기구를 모두 한군데로 모아 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지고 있던 필기구가 전부 모여 15cm*18cm 바구니, 8cm*8cm 필통, 지름이 10cm인 원통형 필통을 가득 채우고도 넘쳤다. 놀랍게도 초등학교 1, 2학년 때 산 펜도 잉크가 아직 마르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필기구를 전혀 사지 않는다. 필기구를 더 사지 않더라도, 나는 숙명적으로 가야 할 거친 황야를 수많은 필기구를 팔뚝에 매달고 질질 끌면서 힘들게 가야만 한다.

 

▲ 나의 팔뚝에 끈질기게 매달릴 필기구 더미 (사진: 초)


플라스틱 도시에 항구적인 주름살은 없다

 

내 도시 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끝났다. 총계를 내자면, 나는 1년에 플라스틱이 들어간 물건을 사는 데 521,700원을 사용한다. 내가 계산에 미처 포함하지 못한 내역을 아우르기 위해 통 크게 두 배로 곱해 준다고 해도 1,043,400원이다. 소로는 이 금액을 듣고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2024년 기준, 출근길에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사 마시는 직장인이 1년 동안 커피값으로 쓰는 돈이 1,111,500원이다. 누군가가 일회용 플라스틱컵을 사는 데만 쓰는 돈보다 적은 돈으로 나는 생활 전반을 꾸려 나가고 있다.

 

소로는 1847년 9월 6일 숲 생활의 실험을 마치고 ‘월든’을 떠났다. 하지만 2024년 6월의 나는 도시 생활의 실험을 멈출 수 없었다. 누군가가 일회용 플라스틱컵을 사는 데만 쓰는 돈보다 적은 돈으로 생활 전반을 꾸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에게는 103벌 이상의 옷과 432개 이상의 일회용 생리대, 책 수십 권, 플라스틱 용기 수백, 혹은 수천 개가 남아 있다. 이 거대한 플라스틱들은 도시의 추악한 표면을 이루고 있다. 수많은 인간이 오고 갔지만 그것을 분해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돌로 깰 수 없는 거울이다. 그 거울의 수은은 영원히 닳아 없어지지 않으며, 도시인은 거울의 도금을 늘 손질해 준다. 무수한 잔물결이 플라스틱 도시에 일었지만, 나도 잔물결을 일으키고자 아우성치고 있지만, 항구적인 주름살은 단 한 개도 없다. [끝]

 

[필자 소개] 초: 대학원생이다. 환경과 이주 문제에 관심이 있다. 이 두 문제와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전공에서 박사논문 주제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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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25/01/09 [12:06] 수정 | 삭제
  • 1년에 플라스틱이 들어간 물건 산 게 521,700원밖에 안 된다니 대단하네요.
  • 라반 2025/01/08 [21:57] 수정 | 삭제
  • 선거때마다 공보물 쓰레기들 보며 전국 집집마다 꽂혀있을 거 생각하면 아찔해요, 그걸 또 뜯어보는 분이 계시구나. ㅎ 재활용 안 될 거 뻔히 보이고 찾아봤더니 일반쓰레기로 버리라고 안내되어있더라구요. 코팅종이 대체제가 아직도 안 나오고 있다는 거에 새삼 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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