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에서 번역, 소개하는 일본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기사를 볼 때마다 놀라곤 했다. 뉴스로 접하는 일본의 경직된 정치 소식과는 사뭇 다르게, 일본 시민사회는 흥미로운 움직임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인재(人災)’로 규정하며 도쿄전력 주주대표들이 경영진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가 하면(기사: “원전 사고는 자연재해 아닌 ‘인재’…경영진이 책임져야” https://ildaro.com/9521), 사고 발생 10년 후, 피해실태 조사연구자들이 여성의 관점을 담은 재해에 관한 이론과 철학이 필요하다는 문제 의식을 담아 ‘재해 여성학’을 주창했다.(기사: 일본 여성들 ‘재해 여성학’을 만들다 https://ildaro.com/9066) 1970년대 여성해방운동을 했던 노년 여성들이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해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기사: 일본 노년 여성들이 만든 ‘다세대 공생형 커뮤니티’ https://ildaro.com/9465)도 인상적이었다.
일본의 비영리사단법인 ACC21(Asia Community Center21)과, 한중일 시민활동가와 재일 외국인과 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아시아 커먼즈’(Asia Commons 아시아 시민의 길) 협동 사업으로 2019년 시작된 ‘한일미래청년지원사업’ 참여자들이다. 이 사업은 재일동포를 포함한 일본의 청년들이 한일 관계와 역사에 대해 배우고, 한국의 청년들과 공통된 역사관을 갖고,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여 나아갈 수 있기를 지향한다.
일본의 청년 참가자들은 지난 5년간, 학습모임을 통해 양국 역사 교과서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분석해 보고, 일본 각지의 음식, 도자기, 석인상 등 한반도와 관계가 깊은 문화를 살펴보기도 하고, 〈일다〉 기사를 읽고 의견을 교환하며 페미니즘에 대해서, 그리고 한국의 시민 활동에 대해서 다양한 정보를 접했다. 그러다 2023년부터는 실제 한국을 방문해 역사적 현장을 보고, 한국의 청년/활동가들과 만나 교류하는 ‘한일미래스터디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11월 투어는 「한국시민·학생과의 대화와 실지(實地) 체험으로부터 배운다 –식민지 시대, 남북분단, 시민활동과 현대사회」라는 제목으로, 11월 1일~5일 진행됐다. 식민지역사박물관 전시 해설과 DMZ(비무장지대) 투어, 다양성 워크숍, 한국 대학생들과의 교류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활동가가 함께했다.
한국의 시민사회 활동을 엿볼 수 있는 셋째 날 일정을 따라가며 듣고 나눈 이야기들을, 〈일다〉 독자들과도 공유하고자 한다.
‘다양성 워크숍’을 통해 배우는 차이와 이해, 그리고 평등
2024년 11월 3일 일요일, 항공비와 체류비 등을 자비 부담하며 한국 시민사회를 알아가고자 방문한 ‘한일미래스터디투어’ 참가자 5인과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만났다. 모두 20대 여성이었다. 2월 투어에 참가한 이후 배움을 지속하고 싶어서 온 사람, 유학 때 사귄 한국인 친구와 한일 간 역사 인식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공부해 보고 싶었다는 사람, 케이팝을 좋아했지만, 한국인 팬이 애국심이 담긴 발언을 하거나, 일본인 팬이 한일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보지 않으려고 할 때 느낀 위화감이 대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고민해 보고 싶다는 이도 있었다.
이날의 첫 프로그램은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이 진행하는 ‘다양성 워크숍’. 칠판에는 장애인/비장애인, 여성/남성, 저학력/고학력 등 ‘억압그룹’과 ‘특권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듣는 말들이 빽빽이 채워졌다.
이어서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이 적혀 있는 시트에서, 자신이 현재 속해 있는 정체성에는 동그라미를 그리고, 이전에 속한 적이 있거나 앞으로 속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정체성에 세모를 그리는 활동이 이어졌다. 동그라미만 그렸을 때보다 세모까지 채우자 훨씬 많이 포함된 정체성 칸을 보면서,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들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가자들은 ‘나라는 한 사람 안에도 특권그룹과 억압그룹에 속한 다양한 정체성이 있다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내가 억압그룹에 속해 있을 때는 그것을 아주 잘 느끼지만, 특권그룹에 속해 있는 정체성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잘 인지하고 있지 못하더라’ 등 스스로에 대해 발견하거나 느낀 점을 들려주었다.
-참가자 B: 다양성에 대해 말할 때, ‘포용’(包容)이라는 말을 쓰곤 한다. 언뜻 들으면 평화롭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내가 너그럽게 받아준다’는 허용, 허락의 의미가 있기에 포용은 사실 위로부터의 시선이며, 본래의 평등이 아니라는 점이 새로운 배움이었다. 나만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기 좋은 사회야말로 평등한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나 법적인 개혁, 모두의 의식 개혁이 두루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참가자 C: 관공서에서 일하며 시민들을 만나다 보면, 서류의 성별 확인란에 체크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 워크숍을 하면서 그때가 떠올랐다. 자신이 살기 힘들다고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그와 같거나 다른 부분에서 살기 힘들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참가자 D: 다양성은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갈등하고 논의하고 실천에 옮겨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는 것이 당연하고, 많은 갈등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그 과정의 괴로운 시기나 생각은, 언젠가 만날 같은 괴로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공감의 경험이 된다.
군사독재 시절, 일본에서 먼저 출간된 『전태일 평전』
오전 일정이 예상보다 길어져서 점심 식사를 미루고, 급히 ‘전태일기념관’으로 향하는 버스에 탔다. 스터디투어로 한국의 몰랐던 면모를 접해서인지, 이미 한국에 대여섯 번은 와봤다는 참가자도 흥미롭게 창밖 모습을 관찰했다. 일본은 정치 홍보 포스터를 골목이나 건물 벽에 붙여 알리는 것이 보통인데, 한국은 길가 곳곳에 정치인 현수막이 눈에 확 띄게 걸려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확성기로 무언가를 알리는 음성을 크게 틀어놓고 다니는 트럭이나, 곳곳에 있는 농성 천막을 보고도 ‘역시!’라며, 한국은 무엇이든,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곳 같다고 했다.
1960년대 한국의 노동환경은 생각지도 못할 만큼 처참했다. 평화시장의 8평 남짓밖에 안 되는 좁고 어두운 방, 그것도 창문조차 열 수 없어 천 먼지가 가득한 방을 위아래로 나누어 닭장처럼 사람들을 채워 넣고 하루에 15~16시간씩 일하게 했다니! 대부분 어린 여성노동자였던 ‘시다’들이 그토록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일하며 받던 일급은 고작 50원, 당시 물가로도 커피 한 잔 값 정도로, 교통비를 제하면 점심값도 안 나오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전태일은 집에 돌아갈 차비로 어린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매일 3시간씩 걸어서 귀가하곤 했지만, 결국 개인의 위치에서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근로기준법을 배우고, 노동청 근로감독관이나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내는 등 구조를 바꾸고자 갖은 시도를 했단다. 마지막으로 준비했던 ‘근로기준법 화형식’조차 실패로 돌아가자,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재봉틀이 아니다!” 외치며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는 대목에서는 다들 숨을 죽였다.
여러 가지 마음의 여운을 안고 남은 전시를 둘러보다 내려가자, 안내 데스크를 지키던 해설사가 우리에게 다가와 전태일이 한국 노동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전태일기념관 외벽에 쓰인 글씨에 대해서도 안내를 해주었다. 외부에서 시선을 확 잡아끄는 기념관의 외벽 글자는 전태일이 1969년 12월 19일 근로감독관에게 남긴 편지 형태의 진정서를 임옥상 화가가 재해석하여, 윤정원 건축사와 하우건축사무소에서 설계, 시공한 것이라고 한다. 전태일의 필체 그대로이다.
또 청계천을 걸으며 볼 수 있는, 길바닥에 깔린 노동에 관한 문구가 새겨진 동판의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다. 청계천을 따라 1.8km 이어진 ‘노동인권의 길’은 노동조합, 시민단체, 그리고 시민들의 마음이 담긴 8,013개의 동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념관을 나와서 청계천 일대를 산책했는데, 도심 틈새에 서려 있는 역사를 느끼며 동판을 따라 걷는 기분이 묘했다.
우리는 서울 시내를 좀 더 걷기로 했다. 큰 빌딩 숲 사이를 20분쯤 걷자, 벌써 2주기를 맞이한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공간 ‘별들의 집’이 나왔다. 마침 이날 이후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고 했다.
나는 최근 출간된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씀, 창비)에 실린 내용과, 희생자 유가족 인터뷰(“자고 일어나니 아이가 사라져 있었다”, 씨리얼, 2024년 11월 1일)를 바탕으로, 159명의 희생자를 낸 10.29 이태원 참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투어 참가자들은 잠시 이곳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잊지 않겠다’는 의지와 추모의 분위기가 전해져온다고 했다.
서울시의회 옆에 자리한 세월호 기억공간 ‘기억과 빛’에 다다랐다. 손바닥만 한 액자 속 수많은 이들의 모습이 세 벽면에 걸쳐 걸려있었다. ‘용기’, ‘나를 잊지 마세요’와 같은 꽃말을 가진 꽃장식으로 꾸며진 얼굴들. 슬픔이라 불러야 할지, 무어라 알 수 없는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기억공간 입구 쪽에는 안내 책자와 함께 색색의 리본이 걸려있었다. 노란 리본의 의미는 알고 있지만, 다른 리본들은 무슨 의미냐고 누군가 물어왔다. 2014년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노란색, 2017년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 사고’는 주황색, 2022년 ‘이태원 참사’는 보라색, 2023년 ‘오송역 지하차도에서 일어난 참사’는 초록색, 그리고 2024년 6월 ‘화성 아리셀 공장 참사’는 하늘색 리본을 만들어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답하면서도 마음이 갑갑해져 왔다.
시민들은 참사와 희생자를 잊지 않고,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목소리 내고 노력하고 있지만, 미리 막을 수 있었을 참사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발생하는 한국 사회를 생각하니 숨이 턱 막혔다. 리본 몇 개씩을 챙겨 공간을 나오며, 모두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낯선 존재를 환대하는 진료실
이날 마지막 프로그램은 ‘게스트 시민활동가와의 토크’였다. 강동성심병원 LGBTQ+ 성소수자 진료센터를 설립한 김결희 성형외과 전문의를 만났다. “PPT에 수술 사진이 다수 들어있는데, 괜찮겠습니까?”하고 모두에게 동의를 구한 뒤, 그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혈관이나 신경을 잇는 미세수술을 배운 뒤,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하며 가자지구에서 총 맞은 사람을 수술하기도 하고, 나이지리아에서는 ‘노마병’(비위생적인 환경이나 영양결핍, 면역력 부족으로 얼굴에 구멍이 나고 눈이 내려앉는 등 안면에 영구적인 손상이 남고,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90%가 사망에 이름)에 걸린 아이들의 재건 수술도 했다고 한다.
2019년 코로나19로 국경이 닫히자, 예전 같으면 태국에 가서 성 확정 수술을 하던 사람들이 미세 재건수술을 하는 결희 님의 진료실에 오게 되었다. 환자들을 만나면서, 외국에서 수술받고 와서 합병증이 생겨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진료 거부를 당하거나, 의사가 성소수자 진료를 잘 알지 못해 오히려 환자가 더 설명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이들이 겪는 고통은 그뿐 아니었다. 성별 분리된 화장실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집 밖에서는 아예 물을 마시지 않고, 방광염 같은 질병도 잦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소수자 진료는 수술뿐 아니라, 진료실 밖 일상의 변화가 필수적임을 절감했다고 한다. 이에, 김결희 님은 연구나 포럼을 통해서도 성소수자 진료에 대해 알리는 한편, 성소수자를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Q+(큐플러스) 유튜브 채널과 다양한 활동으로 범주를 넓혀가고 있다. 이제는 성소수자 외에도 다양한 마이너리티, 지구, 비인간동물까지도 아우르고 배우며 세상을 넓혀가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국경을 넘어 ‘연결된 우리는 강하다’
닷새간의 투어를 마치고, 한일미래스터디투어 참가자들은 일본으로 돌아갔다. 누군가는 여전히 케이팝을 듣고, 또 누군가는 관공서로 출근할 테지만, 이제는 한국의 역사나 정치에 대해서 같이 공부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생겼을 테다.
투어 후, 보름 쯤 지나서 들은 소식이다.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이사장으로서 ‘국제앰네스티 2024 편지쓰기 캠페인: WRITE FOR RIGHTS’을 위해 일본에 방문했다. 앰네스티는 자유와 인권을 위해 싸운 세계 인권운동가 9인을 위한 편지쓰기 형식의 탄원을 진행해오고 있는데, 14년여 만에 첫 한국 사례자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선정되었다. 앰네스티는 한국 정부와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불법적인 강제 조치를 중단하고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한일미래스터디투어 참가자들에게도 그 소식이 전해져, 일본에서 열린 캠페인 행사에 참여한 사람도 있었고, 국제앰네스티 일본지부 사람들과도 교류가 이루어졌다.
몰랐던 세계를 배우고 알아가는 데에는 끝이 없다. 때로는 출발점이나 방법을 알 수 없는 어려움과 난감함, 위화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러한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이야말로 나아갈 방향을 확인하고 내딛는 용기의 원천이 된다. 투어 소감을 나누며 공통적으로 나왔던 말이 있다. 바로 ‘공감’이라는 키워드. 민족문제연구소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의 이야기처럼, ‘어떤 분야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과 공감으로부터 우리는 기꺼이 정치적인 것을 이야기하고 운동을 일으키거나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이번 한일미래스터디투어를 기획한 ‘아시아 커먼즈’ 아소 미오 대표가 일본 사이타마 지역에서 ‘월간 페미니즘 독서 모임’을 발족할 계획이라며, 게스트로 참여해달라고 제안해왔다. 이렇게 연결되는 과정을 통해, 앞으로 또 무엇을 같이 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세 번째 한일미래스터디투어는 어떤 모습으로 누구와 함께하게 될까. 더 상상해 보고, 더 연결되고, 주변에서부터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가고 싶다. 그 소식을 여러분들에게도 종종 들려 드릴 수 있기를.
[필자 소개] 정이예슬: ‘함께 배우는 사람’. 나에게도, 지구에게도 다정한 삶의 방식을 배우고 지속해갈 수 있도록 돕고자 클라이밋(Climeet)을 창업했다. 청소년과 청년들이 지역사회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사회적경제·기후환경·ESG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교육 워크숍을 진행한다. 탈성장, 젠더, 불평등, 다양성, 시민정치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활동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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