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락되거나 부수적 피해이거나: 여성과 생태에 대한 전쟁범죄
러셀법정(The Ruseell Tribunal)은 미국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전쟁범죄를 국제법에 따라 심판하자는 취지로, 버트런드 러셀과 장 폴 사르트르가 주도하여 1966년 11월 13일에 구성한 최초의 민(民/people)들의 법정, 이른바 민간법정이다. 공식 명칭은 International War Crimes Tribunal for the Vietnam War이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러셀법정은 전시 성폭력과 에코사이드(ecocide, 생태학살)를 전쟁범죄로 다루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닌다. 페미니즘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참여한 자리에서조차, 미군이 사용한 집속탄 파편으로 머리에 부상을 입은 북베트남 여성의 흉터를 확인하는 일은 있어도 전시 성폭력은 쟁점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또, 집속탄으로 서식지를 잃은 비인간존재들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었다.
※그러나 ‘에코사이드’라는 개념어가 나오기도 전에, 이 법정에서 이미 생물학자 에드가 레더러(dgar Lederer)가 베트남전쟁 시기의 화학전을 문제 삼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고엽제가 베트남에 초래한 환경 파괴와 인간 고통에 대한 광범위한 개요를 제시했다. 그리고 미군의 ‘랜치 핸드 작전’(Operation Ranch Hand, 1961~1971년까지 베트남 마을들의 농작물과 삼림을 고사시키려고 막대한 양의 제초제를 살포함)이 미국의 남베트남 전쟁의 거의 모든 범죄적 차원, 즉 식별할 수 없는 적을 제거하기 위해 첨단기술을 아낌없이 사용함으로써 민간인과 적의 실질적인 구분을 무효화했다는 강력한 주장을 펼쳤다.(David Zierler, “The Invention of Ecocide: Agent Orange, Vietnam, and the Scientists Who Changed the Way We Think about the Environmen”, The University of Georgia Press‧Athens and London, 2011, p.20-21.)
베트남전 시기 고엽제 사용, ‘에코사이드’ 다룬 2016년 몬산토 법정
강간을 비롯한 전시 성폭력이 ‘인도에 반한 죄’에 독립적인 공소 요인으로 삽입되어 실제로 적용된 것은 1990년대 구유고 및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사례가 처음이다.
그리고 베트남전쟁 시기 고엽제 사용으로 인한 ‘에코사이드’를 다룬 민간법정은 2016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이른바 ‘몬산토 법정’(Tribunal international Monsanto)이다.(세계 최대의 종자회사이자 고엽제 제조업체인 미국의 몬산토를 피고로 세워, ‘기업’을 상대로 소를 제기한 민간법정이다. 2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법정이 열렸고, 400명이 넘는 청중이 15개국에서 온 24명의 증언을 경청했으며, 판결문은 2017년 4월 18일 공개되었다.) 보편적 인권을 유린한 범죄의 범주에, 여성과 생태에 대한 범죄가 국제 법정에 새겨 넣어진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셈이다.
다른 한편으로 몬산토 법정은 몬산토가 1962년에서 1971년 사이에 미국이 베트남에서 수행한 ‘랜치 핸드 작전’(고엽제 살포)에 공모한 혐의에 관련해서는 “본 법정은 현재의 국제법상 몬산토의 전쟁범죄 공모 혐의를 입증하는 특정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법정에 제기된 이 문제에 대하여 확정적으로 답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마리 모니크 로벵 지음, 목수정 옮김, 『에코사이드-생태학살자, 몬산토와 글리포세이드에 맞선 세계시민들의 법정 투쟁 르포르타주』, 시대의 창, 2020)라고 판단하였다. 즉, 전쟁범죄에 대한 기업과 국가의 공모와 그 책임을 제대로 추궁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2018년 베트남전 시민평화법정에서 과제로 남겨진 ‘전시 성폭력’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은 전후에 도쿄에서 열린 극동군사재판과 1966년의 러셀법정을 참조하였지만, 전시 성폭력과 식민지에 대해서는 침묵했던 두 법정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꾸려졌다.(양현아, 「식민주의의 견지에서 본 2000년 여성국제법정: 일본군 성노예제라는 ‘전시 성폭력’」, 『민주법학』 75, 민주주의법학연구회, 2021)
그리고 2018년,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은 2000년 여성국제법정을 롤모델로 삼아, 대한민국을 피고로 하여 가해국 수도 서울에서 열렸다. 그러나 피해생존자이자 증인석에 선, 같은 이름의 두 응우엔티탄이 여성이었지만, 전시 성폭력에 대해서는 다루지 못했다.
의도적으로 이 사안을 배제한 것도 아니고, 관련된 논의가 없었던 것도 아니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와 한베평화재단이 합동으로 청취했던 몇몇 증언도 녹취록으로 남아있었지만, 증인석에 설 수 있는 피해자를 찾아나서고 만나는 데에는 여러 제약이 있었다. 민간법정에 참여하는 법률팀과 조사팀 모두 자원하여 이루어진 팀이었고, 민간인학살이라는 하나의 사안에 집중하여 피해 학살지와 가해 목격담을 들려준 참전군인 사이를 오가며 법정에서 유효한 ‘증언’을 확보하는 과정에서도 갖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참전 미군들의 성폭력 증언에도, 전쟁범죄로 쟁점화되지 못해 1970년대 반전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의 분리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에 주력해온 한베평화재단의 아카이브 자료에 따르면, 한국군 학살 피해 자료에서 전시 성폭력 피해 현황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전시 성폭력 피해자의 숫자와 이름이 확인된 건 총 19개 사건으로 피해자는 79명(이름이 확인된 희생자 11명)이며, 희생자 숫자나 이름은 없지만 전시 성폭력이 언급된 사건을 총 27개”였다. 이 자료가 민간인학살 사건 자체에 맞춰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피해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관련 기사: 「‘전시성폭력’은 계속되고 있다, 연대도 계속 돼야 한다」, 〈일다〉 2022년 3월 8일, https://ildaro.com/9293)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전지(戰地) 강간을 비롯한 여러 폭력행위와 관련하여 주월한국군사령부의 공식 통계가 이미 공개되어 있다.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전지(戰地) 강간에 대해 유죄를 확정하고 처벌한 한국 대법원 판결도 찾아볼 수 있다.(전지강간교사,준강간추행,치상,전지강간,전지강간미수 [대법원 1970. 4. 28. 선고 70도449 판결])
제2 페미니즘 물결이 일렁이던 때와 같은 시기에, 미국의 병사들이 자행한 전시 성폭력은 미국 내에서 충분히 공론화되지 못했다. 왜일까? 이전의 전쟁들처럼 베트남전쟁 중에도 강간은 뉴스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전시 성폭력의 실상이 드러난 것은 1971년 2월, 100명 이상의 ‘전쟁에 반대하는 베트남 참전군인들’(Vietnam Against the War)이 모여 베트남전쟁 복무기간 동안 목격하고 행했던 잔혹 행위에 대해 증언하는 공개포럼을 통해서였다. 참전군인들은 이러한 말하기의 장에 ‘윈터솔저 조사’(Winter Soldier Investigation: 미국의 전쟁범죄 진실규명)라는 이름을 붙였다. 병사들의 증언 곳곳에서 전시 성폭력 가해 사실이 출몰했지만, 이를 범죄화하려는 시도는 당대에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수잔 브라운 밀러에 따르면, 윈터솔저 조사회가 시작된 “이 시기에 페미니스트 운동과 반전운동은 서로 분리되어 뚜렷이 다른 길을 가면서 상대방의 이슈를 배제한 채 자신들의 이슈에만 몰두하는 식으로 움직였다”고 한다. ‘전쟁에 반대하는 베트남 참전군인들’(Vietnam Veterans Against the War) 중심의 반전운동은 전시에 자행된, 강간을 포함한 젠더기반 폭력을 고유의 중요성과 가치를 지닌 ‘문제’로 여기지 않았고, 이는 페미니즘 운동과 ‘분리’의 계기가 되었다고 밀러는 지적한다.
유색인 페미니스트들 ‘다중쟁점 정치’ 제시 억압은 교차적 힘인데, 하나만 선택하여 저항할 수 없다
이로부터 3년 후 1974년, 단일쟁점 정치의 한계적 상황에 대한 타개책이 될 수 있는 움직임이 페미니즘 집단 내부에서 비판적으로 생겨났다. 미국 보스턴을 거점으로 ‘억압의 교차적 힘’을 폭로하면서 ‘다중쟁점 정치’를 주장했던 엔젤라 제이비스, 오드리 로드, 바버라 스미스 등이 만든 유색인 페미니스트 단체 ‘컴바히 리버 콜렉티브’(Combahee River Collective)가 등장한 것이다. 단체의 이름은 1863년 해리엇 터브먼의 주도로 진행된 노예해방을 위한 군사 활동을 칭하는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이들은 백인 중산층 여성 중심의 페미니즘운동이 유색인 여성에게 시급한 사안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을 비판하며 활동했다.
유색인 페미니스트 단체 ‘컴바히 리버 콜렉티브’가 제시한 다중쟁점 정치의 시좌(時座)는 베트남전쟁을 둘러싼 지금-여기의 분석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페미니즘/퀴어/장애학 이론에서 주요한 인물인 일라이 클레어는 자신의 정치적 교육이 바로 이들의 시도로부터- 가부장제와 백인우월주의와 자본주의가 서로를 정의하고 영향을 주고 강화하고 또 서로 모순되는 다양한 방식을 역설했던 유색인 페미니스트들과 함께-시작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1977년 ‘컴바히 리버 컬렉티브’가 발표한 성명문은 1970년대 반전운동과 페미니즘운동이 분리되었던 국면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고, 단일 쟁점화되었던 당시의 운동들에 대한 비판적 단서를 제공한다.
컴바히 리버 콜렉티브 집단의 문제의식은 “성차별주의 아니면 인종차별주의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다른 사람들이 편해지기 위해 우리 스스로를 분열시키라고 강요하던 단일쟁점 조직화를 격렬하게 거부하는 가운데 자라난 것”이고, “우리가 우리의 온전한 자아를 가지고서는 입장할 수 없었던 출입구에 서 있는 와중에 자라”난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에 이들의 다중적 입장과 가치는 그것들이 가진 풍부한 생성적인 힘을 인정받기는커녕 ‘반역’이라고 공격받았다.(일라이 클레어 지음, 전혜은/제이 옮김, 『망명과 자긍심-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 현실문화, 2020)
베트남전쟁에 대한 한국 사회의 논의에서, 민간인 학살과의 연계성을 짚으며 다뤄지지 못하는 문제군들을 상기할 때, 컴바히 리버 콜렉티브가 제기하는 다중쟁점 정치라는 관점은 하나의 참조점이 된다.
※이 글은 2024년 8월 29~30일 518국제연구소에서 열린 518국제포럼 ‘기억, 기념, 연대의 미래’와 제67회 전국역사학대회 ‘전쟁과 평화’에서 발표한 원고를 보완·수정한 것입니다.
[필자 소개] 심아정: 독립연구활동가. 동물, 난민, 여성, 가해자성을 키워드로 화성외국인보호소 방문시민모임 ‘마중’, 번역공동체 ‘잇다’, 국제법X위안부 세미나팀, 아카이브 평화기억에서 공부하고 활동한다. 동료들과 함께 실천적인 앎과 삶의 길을 내는 데 관심이 있다. 최근의 공저와 논문으로는 『폭력에 대항하는 법-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언어, 기억 그리고 연대』(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2024),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남성성 #젠더 #퀴어 #동물 #AI』(서해문집, 2024), 『수용 격리 박탈-세계의 내부로 추방된 존재들/동아시아의 수용소와 난민 이야기』(서해문집, 2024)이 있고, 「지금-여기 페미니스트의 서경식 다시 읽기-젠더적 관점으로 고마쓰가와 사건과 식민지주의를 묻다」(『사이間SAI』 37호, 2024)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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