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빈곤의 여성화’, 성산업 안의 여성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불처벌의 정치학” 기획연재⑥

김주희 | 기사입력 2025/01/30 [19:23]

‘현대적 빈곤의 여성화’, 성산업 안의 여성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불처벌의 정치학” 기획연재⑥

김주희 | 입력 : 2025/01/30 [19:23]

불처벌의 정치학은 성매매 문제에 여성주의적 개입을 촉구하는 매뉴얼이 아니라 화두다. 개인의 처벌에 집중해온 반성매매 운동은 어떤 시기를 지나면서 (아마도 뜻하지 않았을) 빈틈을 만났다.

 

처벌 중심 전략의 맹점

 

대표적으로, 젠더 기반 폭력은 성역할 수행과 연동하는 폭력을 문제 삼는 것이기에, 성역할을 위반한 피해자는 사건의 원인이 되기 일쑤다. 성차별적 사회에서 여성의 행위성은 가해적 ‘자발성’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에, 때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처벌되기도 하는 것이다.

 

예컨대 반성매매 인권행동 〈이룸〉 활동가 나나의 글(“여자가 원했다?…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사회” https://ildaro.com/10046)에서, 성매매알선행위등처벌법(광고죄)로 성매매 여성이 처벌받는 사례가 등장한다. 하지만 글쓴이는 여성이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의 신체조건과 섹스조건을 제시한 것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설정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불처벌의 정치학’ 기획연재는 바로 여성운동이 처벌 중심 활동에만 의존할 경우 만나게 되는 한계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여성을 둘러싼 범사회적 환경 변화를 통해 성매매 문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 2019 이룸 영화제 “절망을 감추는 욕망-욕망을 만드는 도시” 행사 중에서  ©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동은의 글(“성적 권리로서 ‘동의’를 말한다” https://ildaro.com/10082)은 형법 제297조 강간죄의 성립 요건이 폭행, 협박을 중심으로 정의되어 있기에, 피해자가 저항 불가능성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현실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여성의 동의를 중심으로 성폭력 문제가 재해석되기 위해, 여성이 동등한 위치에서 동의 혹은 거부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 이효린은 정부의 사이버 성폭력 피해지원 기준에서 탈락되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들에 주목한다. 이전 시대보다 디지털 성폭력 문제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은 높아졌지만, 정작 피해자들이 비난을 받거나 피해 해결을 지원받지 못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피해 촬영물이 음란하지 않거나, 혹은 음란하지만 그것이 ‘자발적’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지금 여성주의자들은 일찍이 만들어진 처벌 조항에서 발견된 빈틈을 ‘나중에’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지 않는다. 빈틈 자체가 해당 문제를 만들어낸 근본이라는 관점을 견지한다.

 

성판매 여성을 고립시키는 대중적 비난의 잣대

능력주의, 소비주의 사회에서 ‘현대적 빈곤의 여성화’ 분석 필요

 

이룸 활동가 혜진의 글(“‘여성에 대한 통제’를 기반으로 굴러가는 성매매 산업” https://ildaro.com/10061) 역시 최근 유명 여성 유튜버, N번방 피해자, 유명 여성 BJ 등 ‘자발적’으로 자신의 성을 전시, 판매하는 여성들에 대한 대중적 비난의 잣대를 문제 삼는다. 여기에는 최근의 능력주의 서사가 철저하게 성별 규범성에 따라 판단되는 상황과 맞물려, 이들은 정당한 경쟁이 아닌 일종의 반칙을 일삼는 이들이기에 사회적으로 보호될 필요가 없다는 평가로 귀결된다.

 

현재의 ‘젠더갈등’이라 불리는 불공정 담론의 과도한 폭증의 이면에는, 여성에 대해 ‘타고난 (몸) 조건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불공정한 불로소득자’라는 정의가 포함되어 있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몸(현재 노동시장 환경 변화와 맞물려 교환가치가 없는 몸)과 달리, 스스로 미래 수익을 발생시키는 자산으로 기능한다는 지점에 착목하여, 남성들은 자신들에 대해 투자 기회를 공정하게 얻지 못한 불공정 피해자라는 집단 인식을 하게 된다.(김주희, 2024) 이러한 성별화된 능력주의 서사가 최근 여성의 자발성에 대한 대중 비난의 한 축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지점으로 작동하고 있다.

 

광범위한 대중 비난의 서사에 여성들 역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현실에서 현재 ‘화류일’을 ‘결심’하는 여성들은 자신이 마주한 가난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자립’하고 ‘성공’하고자 성매매를 ‘결심’하는 여성들은 성별화된 능력주의의 잣대 속에서 필연적으로 (정상성에서 이탈하면서) 실패하고야 마는 악순환을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

 

동시에 여성들로 하여금 업소에 지속적으로 출근하기 어렵도록 만드는 폭력적인 환경들은 ‘자립’의 실패를 만들어낸다. 여성들은 스스로 “풀출(매일 출근) 동기부여” 방식들을 공유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번 돈은 성형산업이나 대부업체로 흘러간다. 혹은 이러한 여성들의 실패는 결국 ‘풀출’이 도무지 어렵다는 현실을 방증할 뿐이다. 여성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대중 비난의 서사는 여성들을 고립시키고, 스스로의 실패를 개인적 책임으로 귀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최근 능력주의 서사가 범람하는 현실에서 여성들이 호소하는 필요와 욕구에 대해, 기존의 대중 비난 서사의 문법을 떠나 새로운 해석을 마련해야 하는 필요에 직면해 있다. 자신의 빈곤을 해결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피해에 협력하는’ 여성들의 경험을 여성운동의 언어로 확장하는 일이 우리에게 급선무가 아닐 수 없다.

 

동시에 여성들이 직면한 어려움을 ‘소비를 통한 즐거움’으로 상쇄할 수 있다고 믿도록 만드는 자본주의적 환상에 대한 분석 역시 요청된다.

 

▲ 2024년 5월 1일 제134주년 노동절을 맞아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들도 ‘주거권-빈곤철폐 참가단’으로 집회와 행진을 함께했다.   ©이룸

 

혜진 활동가의 글(“성매매 산업에 왜 종사하고 있나요?” https://ildaro.com/10071)에서도 강조되듯이, 최근 여성들의 빈곤은 부족, 필요, 열망 등 기존의 빈곤을 설명하는 키워드와 다른 방식으로 경험되고 있다. 현대적 빈곤의 여성화된 모습을 어떤 정치적 주체로 해석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 역시 필요하다.

 

자발적으로 성을 판매하는 여성에 대한 ‘불처벌’을 제1의 원칙으로

 

여성주의 불처벌의 정치를 옹호하는 맥락에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결코 기존의 여성혐오적, 자본주의 체제유지적 문법체계 안에서 대항 담론을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능력주의적 공정 담론이 상식이 된 사회에서, ‘남자도 처벌하고 여자도 처벌하라’는 논리가 부쩍 증가했다. 이러한 논의는 얼핏 공정해 보이지만, 결국 여성 처벌만을 통해 성산업이 확대되는 경로를 만들어내고 있다. ‘남자-되기’ 자체가 스스로의 능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으로 해석되는 시혜적 관점에 의해, 대다수의 남성들은 성매수 행위(‘남자-되기’의 일환)로 인해 처벌되지도 않는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지식화하는 것’의 출발은 여성의 경험이다. ‘처벌을 무릅쓰고’ 업소에 종사하고, 성판매에 나서는 여성들의 삶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분석이 필요하다. 그간 토론이 부족했으며, 여성들의 다양한 차이에 주목하지 않았던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매매 문제의 여성주의적 해결을 위해 ‘빈곤의 여성화된 얼굴’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불처벌의 여성주의 정치는 빈곤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여성들의 의지를 외면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 2022년 페미니스트 주권자 행동이 주최한 집회-차별과 혐오, 증오선동의 정치를 부수자! 나는 페미니즘에 투표한다!-에서 한 참가자가 “성매매여성 처벌을 중단하라! 다양한 얼굴의 빈곤을 해소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이룸

 

여성주의 반성매매 운동을 통해 결국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중요하다. ‘성매매 문제가 여성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와 얽혀있다’라는, 간단하지만 복잡한 명제를 떠올려야 하는 이유다. 동시에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사회, 그야말로 ‘다시 만날 세계’에서 여성도, 비공식 노동자도, 빈민도 함께 해방될 수 있는지 돌아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 다양한 사회운동과 연대하는 이룸의 활동은 단순히 깃발을 하나 추가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새롭게 만들고자 하는 체제가 ‘여성’에게도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집요하게 질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효린 활동가는 ‘불처벌의 정치는 법과 제도, 사회에서 미끄러지고 배제되는 사람들, 음란과 자발의 기준에서 탈락된 사람들의 손을 잡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는 달리 말하면, 현실의 성차별적이며 폭력적인 세계가 추상화될 수 없는 외부의 구체적인 존재를 통해 지탱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성별화된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을 고려할 때, 남성과 여성은 동일한 욕구를 가졌다고 볼 수 없고, 그렇다면 남성이 경험하는 자본주의와 여성이 경험하는 자본주의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자발적으로 성을 판매하는 여성에 대한 ‘불처벌’을 우리의 제1의 원칙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끝]

 

[참고문헌]

-이룸 홈페이지 https://e-loom.org

-김주희(2024), “돈 되지 않는 몸을 가진 남성-피해자들”, 한국여성학회 기획,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 한겨레출판사.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2022), 『불처벌』, 휴머니스트. 

 

[필자 소개] 김주희: 여성학자, 덕성여자대학교 교수,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이사. 한국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동원해온 금융, 문화, 제도, 국제정치에 관해 연구한다. 『레이디 크레딧』의 저자이며 『불처벌』,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등을 함께 썼다. 황유나와 함께 번역한 『페미니즘으로 부채 읽기』가 곧 출판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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