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민족 여성’과 ‘코끼리를 탄 군인’이 찍힌 한 장의 사진

겪지 않은 자들의 베트남전쟁➂ 목격의 정치성

심아정 | 기사입력 2025/02/04 [10:49]

‘소수민족 여성’과 ‘코끼리를 탄 군인’이 찍힌 한 장의 사진

겪지 않은 자들의 베트남전쟁➂ 목격의 정치성

심아정 | 입력 : 2025/02/04 [10:49]

베트남전쟁과 관련하여 법정 혹은 국가가 주도하는 기념과 애도에서 소거되어온 존재들의 경험은 무엇일까. 2023년 2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베트남 중북부와 남부 답사를 하던 중, 예기치 않은 목격을 통해 그 문제의식의 지평이 확장되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여기서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몸으로’ ‘함께’ 감각한 목격이란 무엇이며, 베트남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의 사람들이 뒤늦게 조우한 전장에서 전쟁의 역사 뿐아니라 동시대성을 고려하며 제기해야 할 쟁점들은 무엇인지, 그로부터 확보할 수 있는 공동의 시좌(視座)가 있을지, ‘목격의 정치성’이라는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논의해보고자 한다.

 

▲ 숲에서 커다란 코끼리를 타고 총을 든 베트남 군인의 모습과, 그 아래 짐 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지나가는 소수민족 여성들의 모습이 함께 담긴 사진. (출처: 케산 전투기지 전쟁기념관)


누구의 안전을 위해 누가 위험을 감수하는가?

인간의 전쟁에 동원되어 희생된 수많은 비인간존재들

 

숲에서 커다란 코끼리를 타고 총을 든 베트남 군인의 모습과 그 아래 짐 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지나가는 소수민족 여성들의 모습이 함께 담긴 사진 한 장. 위의 사진은 복구되어야 할 전후(戰後) 시공간의 안전이 오로지 ‘국민’과 ‘인간’만을 위해 여러 위험 요소가 잔존하는 상황 속으로 또다시 ‘비국민’과 ‘비인간존재’를 밀어넣어 위험을 감수하게 함으로써 확보되었다는 이면(裏面)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안전을 위해 누군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전후’라는 시공간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물을 때도 이제껏 비국민, 비인간존재는 소송의 주체나 보상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국민’과 ‘인간’으로 국한된 전쟁 경험만을 기억하고 애도해 온 전후의 시간대가 놓쳐온 것이 무엇인지 되묻는 단서가 되었다.

 

인간이 하는 대다수 활동이 그래왔듯이 동물은 수천 년 동안 강제로 전쟁에 동원되어 온 역사가 있다. 여러 동물 중에서도 개는 말과 함께 오랜 세월 동안 전쟁을 수행하는 자리에 놓여 군사노동을 강요당해 왔다. 특히, 인간보다 몇 십 배 뛰어난 후각을 가진 개들은 지뢰에 포함된 폭발성 물질과 금속, 플라스틱을 감지하는 용도로 동원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많은 개가 훈련을 거쳐 지뢰 제거 등 ‘강제군사노동’에 본격적으로 투입되었다.

 

미국 미시간 군견기념관에 따르면, 베트남전쟁 중에 4,234명(命)의 군견이 전장에 배치되었다다. 개들은 전쟁 기간 중에 1만여 명에 달하는 군인의 생명을 구했지만, 전쟁이 끝나고 내려진 철수 명령에는 ‘불필요한 군 장비’로 분류된 개들을 두고 떠나라는 지시가 포함되어 있었다. 개들을 남겨두고 귀환한 조련병들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충격과 안타까움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미시간 군견기념관 홈페이지 참조. mwdm.org)

 

▲ 1967년 베트남 Fairfax 작전 중 휴식 중인 병사와 군견. (출처: US WAR DOGS ASSOCIATION 공식 홈페이지)


지금까지 전쟁이나 재난 상황에서 동물은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 혹은 ‘재산상의 손실’로 간주될 뿐 사상자로 셈해지지 않았다. ‘부수적 피해’는 전쟁에서의 ‘피해 허용 가능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표현이다. 전쟁에서 흔히 ‘민간인 학살’이 전쟁 수행을 위한 ‘부수적 피해’로 취급되는 동안, 폭격이나 서식지 파괴로 죽어 나간 동식물의 죽음은 피해-가해의 구도에조차 놓이지 않는다. 허용될 수 있고 정당화될 수 있는 피해를 판단하는 분계선은 어디인가를 묻기 전에, 이를 가늠하는 것 자체에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부수적 피해’라는 개념은 배제되어도 마땅한 존재들의 외연을 넓혀가는 무시무시한 발상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법정과 민간법정을 포함한 대부분의 법정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못하는 문제군(群)에는 ‘피해자’로 셈해지지 않는 비국민과 비인간존재들의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베트남 여성도 ‘다 같은 여성’이 아니다

소수민족 여성의 전쟁 경험은 어디서,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셈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의도적인 은폐일 수도 있지만, 상상력의 결여에서 비롯된다. 베트남전쟁 관련 전시관이나 기념관에서 소수민족 여성은 주로 ‘전통 복장’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재현은 그들이 전시에 게릴라전을 위한 물자 운반이나 길 안내에 동원되거나, 전후 복구에 있어서 불발탄 제거 등에 동원된 사실, 또는 거주지로 돌아오지 못하고 태국 등지의 난민촌을 전전하다가 디아스포라가 된 이들의 삶이 소거되어 있다. 이들은 그저 전쟁에서 승리한 영광을 함께 누릴 존재들로만, 민족 ‘통합’과 국가 ‘통일’의 구색을 맞추어 전시되어 있을 뿐이다.

 

1945년 베트남이 이른바 8월 혁명에 성공한 직후인 9월 2일, 하노이의 바딩 광장에서 열린 독립선언식에서 호치민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자유, 평등, 박애’의 깃발을 든 프랑스 식민자들의 만행을 구체적으로 폭로하였고 새로운 공화국의 국가가 울려 퍼졌다. 그때 국기 게양을 담당했던 두 여성 중 한 명은 북부 산악지대 소수민족 출신으로, 여성 유격대원을 대표했다.

 

▲ 북부 산악지대 타이족 출신 여성 해방군인 Dam Thi Loan(담티로안) (출처: 위키디피아 베트남) 우측은 1946년 베트남민주공화국 헌법 (출처: 베트남 과학기술부 공식 사이트)


또 1946년 말에 통과된 베트남 최초의 헌법에는 “여성은 남성과 어떤 영역에서도 동등한 권리를 지닌다”(제9조)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심주형은 베트남민주공화국을 향한 열정 속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아시아의 신생 독립국 중 매우 진일보한 성평등 선언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한 바 있다.(심주형, 2019년 2월 27일 수요평화모임 기획특강 ‘프랑스 식민지 시기 베트남 여성운동의 태동과 발전’ 강연록)

 

그러나, 이러한 진일보한 시도 속에서도 ‘베트남 여성’은 ‘다 같은 여성’일 수 없다. 베트남 여성과 소수민족 여성, 국민과 비국민이라는 경계로 전쟁 경험을 구분하여 다루는 일은 여성들의 고통을 비교하거나 그들 사이의 분열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비국민과 소수민족 여성이 베트남전쟁을 어떻게 살아냈는지, 전쟁 이후 그들의 삶은 어떠했는지에 대해 박제되지 않은 상상력을 요청하기 위함이다.

 

베트남 하노이의 여성박물관 전시장 한 켠에는 전쟁 수행을 위해 강제이주를 당한 소수민족이 마을로 돌아와, 쫓겨난 마을에서 살겠다며 눌러앉아 저항했다는 기록도 볼 수 있었다. ‘여성’이라는 범주 안에서도 ‘비국민’에게 전쟁은 다른 층위의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때 경험의 다름은 그 경험에 작동하는, 그 경험과 연동된 여러 억압체제를 분석함에 있어서 ‘다중쟁점’의 관점으로 논의되어야 한다.(다중쟁점 정치 관련 기사 “누락되는 전쟁범죄, 강간 피해와 에코사이드” https://ildaro.com/10098)

 

그렇다면 ‘베트남 여성’으로는 뭉뚱그려질 수 없는 소수민족 여성의 전쟁 경험은 어떻게 말하고-듣고-기록하고-전달될 수 있을까. 가까스로 질문이 시작된 자리에서, 함께 고민해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고무나무 숲의 비명 속 호주 참전군인 위령비

 

두 번째 사례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호주군 위령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조우한 고무나무 농장에 대한 이야기다.

 

▲ 롱탄(Long Thanh) 지역에서 마주한 고무나무 숲. (사진: 박상환)


롱탄(Long Thanh)을 향해 가는 차 안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고무나무 농장을 마주하게 되었다. 가지런히 줄지어 선 나무마다 깊은 홈이 패여 있었고, 고무진액을 추출하는 장치들이 매달려 있었다. 차 문을 열고 나와, 새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 속에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와 같은 고무나무 농장 한가운데에서, 고무나무 진액이 뿜는 낯설고 지독한 냄새가 육박해 왔다. 글이나 사진 혹은 영상이라는 매체가 담아낼 수 없는 ‘현장성’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후각’적인 것임을 절감했다.

 

나무들이 온 몸으로 지르는 비명 속에서, 호주 참전군인을 애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백 년이 넘도록 식민지주의와 군사주의의 ‘자원’으로서만 존재한다는 것, 대대손손 고무진액을 생산할 목적으로 플랜테이션 농업에 동원된 고무나무 숲은 서식지를 빼앗겼다기보다는 강제로 살게 하는 삶에 가까운 광경이었다.

 

호주 전쟁기념관(Austrailian War Mwmorial) 공식 사이트(awm.gov.au)에는 베트남전쟁에서 호주군이 가장 큰 손실을 입은 전투로서, 그러나 자랑스럽게 기억해야 할 승리의 현장으로서 롱탄 전투를 기록하고 있다. 1966년 8월 18일, 롱탄 고무농장에서 108명의 고립된 호주의 제11보병중대와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을 포함한 2,500여 명의 북베트남군이 벌인 전투에서, 호주군 18명이 사망하고 북베트남군 245명이 전사했다.

 

다수의 부상자를 냈다는 점에서, 이 전투는 이후로도 누군가의 몸에서 지속될 전장(戰場)을 초래했다. 그리고 롱탄 전투를 다룬 영화 〈댄저 클로즈 : 롱탄 대전투〉(Danger Close: The Battle of Long Tan, 호주, 2019)에서 하얀 스콜이 말해주듯, 고무나무 숲은 전장 한복판에서 하얀 피를 쏟아내면서도 후경화(後景化)되고 만다. ‘전투’로만 상상되는 경험이 전쟁이라면, ‘전장’은 전투에서 후경화되거나 생략된 존재들이 계속 살아내야 할 장소이자, 몸에 아로새겨진 기억이라 할 수 있겠다.

 

▲ 롱탄 전투를 다룬 영화 〈댄저 클로즈 : 롱탄 대전투〉(Danger Close: The Battle of Long Tan, 호주, 2019)의 한 장면.


롱탄을 비롯한 베트남의 고무농장은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플랜테이션 농업으로부터 지금의 상업적 이용에 이르기까지 고무의 단일경작지로 점철되어온 역사를 갖는다. 베트남 남부 고지대의 기후는 고무나무가 자라기에 이상적인 조건이었기 때문에, 식민지 관리들은 실제로 스티엥족과 같은 수많은 준유목민 소수민족이 살고 있었음에도, 이 지역을 사람이 살지 않는, 그래서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는’ 지역으로 간주했다. 프랑스 식민지 정부는 유럽 기업들이 농장을 시작할 수 있도록 광대한 산림을 제공하면서 필요한 교통 인프라를 구축하고 재정 지원을 제공했다.

 

1889년에 창립된 프랑스 타이어 제조업체인 미슐랭(Michelin)이 소유한 베트남 고무농장의 노동환경은 열악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두 차례 세계대전의 전간기(戰間期) 20년 동안 고무 타이어를 생산했던 미슐랭이 소유한 한 고무농장에서는 1만 7천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20세기 초 남부 및 중부 고원지대에 대규모 농장이 설립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에는 연간 6만 톤 이상의 고무가 생산되었다. 베트남의 고무나무 숲은 프랑스, 일본의 식민지를 거쳐 미국과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수탈당하고 훼손되었다.

 

미국은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 베트남 정글을 고사시키기 위해 미군이 사용한 고엽제 중 하나의 암호명)를 사용하여, 적의 고무 공급망과 군대의 피난처를 노출시키고 방해하기 위해 광활한 고무농장을 황폐화시켰다. 전쟁에 반대하는 베트남 참전군인들(VVAW)에 따르면, “우리는 미셸린 농장 소유주에게 우리가 훼손한 고무나무 한 그루당 600달러를 지불한 반면, 사망한 베트남 어린이의 가족은 목숨값으로 120달러밖에 받지 못했다.”고 한다.패전 후 미군이 철수했을 때 고무농장은 피폐해졌고, 거주민들은 독성 화학물질로 가득 찬 땅에 살아야 했다.(“베트남 고무농장의 참혹한 역사” 〈사이공이어〉 2019-09-07 참조.)

 

▲ 고무에 대한 수요가 거의 1세기 동안의 베트남을 둘러싼 전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 미치다케 아소의 책 『Rubber and the Making of Vietnam: An Ecological History, 1897-1975』(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18)


전쟁과 식민지로 ‘이윤’ 챙긴 기업들에게 책임 묻지 않는 세계

 

전쟁과 식민지는 언제나 누군가의 ‘고통’과 누군가의 ‘이윤’을 동시에 양산한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수탈과 가해의 책임 주체를 국가에만 한정할 수 없다. 국가에 대해서는 책임을 추궁하면서도, 전쟁과 식민지를 지탱하며 적극적으로 이윤을 극대화한 전범기업에 대해서는 ‘불처벌’로 일관되어 온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 법정에서도 베트남전쟁 시기 고엽제 피해를 비롯한 에코사이드(생태학살)에 대한 전범기업의 책임을 묻는 것이 번번이 좌절되고 있다.

 

베트남전 고엽제 제조사 14개 기업들을 상대로 2013년부터 프랑스 법정에서 소송 투쟁을 해온 쩐또응아(83세)의 항소심 판결이 2024년 8월 22일 또다시 기각되었다. 프랑스 국적의 베트남인 고엽제 피해자이자 베트남전 당시 종군기자였던 쩐또응아는 고엽제에 노출되어 당뇨병과 암 등의 후유증을 앓았고, 딸이 심장질환으로 생후 17개월 만에 사망했다.

 

1심 소송에는 독일기업 바이엘에 인수된 몬산토,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우케미컬 등 14개 회사가 피고석에 섰는데, 이들 대다수는 ‘다국적기업’이며 바이엘과 다우케미컬은 프랑스에도 법인을 두고 있다. 2021년 1심 패소의 가장 큰 이유는 주권면제 원칙(국내법원이 외국에 대한 소송에 관하여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법상의 원칙)이었다. 프랑스 재판부는 “미국 전시작전 명령에 따라 고엽제를 만든 기업에 대해, 프랑스에 재판 권한이 없다.”라고 밝혔다.

 

사실 주권면제는 19세기에나 절대적인 규칙이었지 더이상 고정불변의 가치가 아니다. 주권면제가 적용되지 않는 ‘예외’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상행위 예외, 불법행위 예외, 인권 예외 등이 생기면서 ‘상대적 주권면제’ 개념이 만들어졌다. 2021년 1월 8일, 일본국을 피고로 하여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의 원고 승소 판결은 ‘인권 예외’에 해당한다. (관련 기사: 심아정, 「‘위안부 소송, 국가면제와 여성인권의 충돌-젠더적 관점에서 조명하는 ’위안부‘판결의 의미」, 2021-02-02, https://ildaro.com/8956)

 

그럼에도 쩐또응아(83세) 소송에 대해 프랑스 법원이 1심과 항소심에서 ’기각‘ 결정한 사법적 현실은, 에코사이드에 대한 국가와 기업의 가해 책임을 묻는 것이 더더욱 요원한 길이 될 것이라는 불안한 징후가 아닐 수 없다.

 

목격의 윤리, 애도할 대상과 피해의 범주를 재설정하라

 

비판적 동물연구학자 캐서린 길레스피는 자신이 필드워크에서 겪는 ‘목격의 정치성’에 대한 의문을 아래와 같이 제기한 바 있다.

 

“폭력과 사회적 불의를 기록하는 정치적 행위로서의 목격은 인간과 비인간존재들의 관계라는 맥락 안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말한다. 폭력과 고통을 목격하고 가시적인 기록을 창출함으로써 근거를 제시하고, 사람들의 인식을 높이고, 가능하다면 정치적 변화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목격은 그저 지켜보고 기록하는, 말 그대로 목격일 뿐 폭력의 피해자를 위해 상황을 바꾸는 행동에 나서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목격은 윤리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고, 목격하는 과정에서 정서적 트라우마를 겪을 수도 있다.” (『1389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 생각의 길, 2019, 158-159쪽)

 

‘목격의 윤리성’에 대한 캐서린 길레스피의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고,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한 호주군의 위령비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마주한 고무나무 농장의 내력이 목격자에게 제시한 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애도해야 할 대상과 전쟁의 한복판에서 겪은 피해의 범주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과제임을 절감한다. 가해의 자리를 자각하는 ‘감각의 각성’은 뜻밖의 존재들에게서 육박해 온다.

 

목격의 정치성은 ‘본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목격 이후’의 ‘연쇄적인 앎’ 속에서 국가에 의해 국민으로서, 기업에 의해 소비자로서 강요되어 온 것과는 다른 관계를 비인간존재들과 맺어나가려는 실천적 사유가 동반되어야만 가까스로 미미한 정치적 가능성이나마 확보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글은 2024년 8월 29~30일 518국제연구소에서 열린 518국제포럼 ‘기억, 기념, 연대의 미래’와 제67회 전국역사학대회 ‘전쟁과 평화’에서 발표한 원고를 보완·수정한 것입니다.

 

[필자 소개] 심아정: 독립연구활동가. 동물, 난민, 여성, 가해자성을 키워드로 화성외국인보호소 방문시민모임 ‘마중’, 번역공동체 ‘잇다’, 국제법X위안부 세미나팀, 아카이브 평화기억에서 공부하고 활동한다. 동료들과 함께 실천적인 앎과 삶의 길을 내는 데 관심이 있다. 최근의 공저와 논문으로는 『폭력에 대항하는 법-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언어, 기억 그리고 연대』(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2024),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남성성 #젠더 #퀴어 #동물 #AI』(서해문집, 2024), 『수용 격리 박탈-세계의 내부로 추방된 존재들/동아시아의 수용소와 난민 이야기』(서해문집, 2024)이 있고, 「지금-여기 페미니스트의 서경식 다시 읽기-젠더적 관점으로 고마쓰가와 사건과 식민지주의를 묻다」(『사이間SAI』 37호, 2024)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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