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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과의 북클럽에서 출발해, 일본 마을만들기 답사까지
코로나19가 잦아들 무렵, 일하며 만난 인연의 동료들과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돌려라 돌림판’ 북클럽. 한 달에 한 번 만나 책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각자 한 권씩 책을 추천한 뒤 돌림판을 돌려 다음 달 도서를 정한다. 우리는 하는 일도, 관심사도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좋은 사회에 대한 바람을 품고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인가’ 고민한다는 점이다.
최근에 같이 읽은 책은 우치다 타츠루의 『무지의 즐거움』(박동석 역, 유유)이다. 책갈피 스티커를 빼곡히 붙이며 읽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인상 깊게 다가온 문구가 있다. 한국의 젊은 세대를 위한 메시지를 선물해달라는 부탁에, 그는 “당신의 마음과 직감을 따를 수 있는 용기”를 강조한다. 그런데 왜 “마음과 직감을 따르는 ‘일’”이 아니라, “마음과 직감을 따를 수 있는 ‘용기’”일까? 직감을 따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변의 반대에 부딪히고, 고립을 감내해야 하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우치다 타츠루는 이 ‘고립을 견디는 자질’을 곧 ‘용기’라 말했다.
‘직감을 따르는 용기’를 몸소 실천하는 이를 직접 본 적이 있었는지 곰곰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2013년, 일본 기타큐슈 취업박람회에서 처음 만난 마키타 다카시 씨다. 건설 중장비를 렌탈하고 판매하는 엔지니어링 회사의 대표였지만, 오래된 고민가(古民家)를 재생해 문화예술 공간으로도 운영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다양한 국적의 사원을 채용한 경험을 살려 다른 회사에도 외국인 인력을 연결하고, 지진으로 침체된 지역의 농원을 매입하고 농업 후계자가 부족한 지역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기계화 농업을 실험하며 농산물을 매개로 지역을 살리는 프로젝트를 지속해 오고 있다.
작년 8월, 마키타 씨로부터 반가운 초대 연락이 왔다. “이토시마에서 고민가(古民家)를 활용해 경영 중인 ‘코자이노모리’(古材の森)를 안내하고 싶은데, 와보시겠습니까?”
마침 독서모임 사람들도 지역창생(地域創生, 지역 안에서 창조성이 발휘되어 지역이 재생되는 것)과 마을 만들기에 관심이 많았기에, 이들과 함께 방문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이토시마 답사 준비가 시작되었다. 마을 만들기에 관한 책도 함께 읽고, ‘코자이노모리’가 위치한 일본 이토시마 마에바루 지역과 마을 커뮤니티에 대해 조사했다. 그렇게 우리는 2024년 11월과 12월 사이, ‘용기의 장소’를 찾아 이토시마로 향했다.
철거하려던 1901년생 민가 살려, 십여년 자금과 노력 쏟아부은 결과
이토시마의 중심부인 마에바루(前原) 지역은 에도 시대, 후쿠오카와 가라쓰를 오가던 사람들이 쉬어가던 ‘역참(驛站) 마을’로, 많은 사람과 정보와 물자가 거쳐 간 곳이다. 그런 마을 중심에 1901년 지어진 저택은 100년이 훨씬 지난 2005년, 더이상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처분될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건물을 살핀 마키타 다카시 씨는 “이 건물은 남겨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고 한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소중한 자산이자, 이토시마시 중심 지구의 경관을 보존하는 데에도 중요한 건물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소유주를 설득해 철거 대신 보존을 선택했다. 과거 부유한 상인이 지역 경제와 문화를 지원했던 것처럼, 이 공간도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조화를 이루는 장소로 만들고자 했다.
좋은 뜻으로 시작했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조차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곳에서 이런 공간이 유지될 리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일이 필요하다고 믿었고, 십여 년에 걸쳐 막대한 자금과 노력을 쏟았다.
그렇게 탄생한 ‘코자이노모리’는 처음에 카페로 시작했지만, 점차 발걸음하는 이들이 늘면서 이토시마 식자재를 활용한 식사 메뉴가 추가되었다. 이어서 지역 작가의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가 되더니, 문화 공연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2017년 즈음해서야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그 무렵 코자이노모리가 위치한 골목에는 공방이나 서점, 소규모 가게들이 하나둘 생겨나며 다시 활력을 찾았다. 오래된 것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문화가 흐를 수 있는 거리로 변모한 것이다. 고립을 견디며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해온 이들의 노력이 쌓인 코자이노모리는 그 자체로 용기를 얻는 장소가 되었다.
아무도 찾지 않던 마을이 활력을 찾고, 거주 인구 꾸준히 늘어
코자리노모리(古材の森)를 직역하면 ‘고재의 숲’ 내지는 ‘헌 목재의 숲’이라는 뜻이다. 코자이노모리를 운영·관리하는 곳은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에 본사를 둔 주식회사 유키엔지니어링이다. 마키타 씨가 설립한 회사로, 주로 건축물 철거 관련 일을 하지만 2005년 ‘코자이노모리’라는 부서를 설치하고 낡은 집의 철거 현장에서 재활용할 수 있는 들보, 기둥 등을 회수해 2차 용도로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고재의 숲’이라는 공간의 이름도 그에서 연유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주력 사업인 건설·철거 분야에서도 ‘환경’에 대한 고려가 중요해지고 있지만, 자원이 귀하고 재활용이 주류였던 시대의 건축물을 보존하는 것이 건설·철거 산업의 미래를 위한 소재로서 중요하다고 생각해 건물을 보존하기로 했다. 또한 이 건물의 목재와 건축 기술은 현대에 재현할 수 없기에, 과거 사람들이 축적해온 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정신도 담고 있다. 공간을 복원할 때에, 철거 현장에서 버려져 비축하고 있던 목재를 상당 부분 투자해 만들었다고 한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면서도 새롭고 개방적인 문화를 창조한다는 점, 옛 건축물을 보존하고 철거 현장의 목재를 재활용하는 노력 등에서 가치가 인정되어 2011년, 공익재단법인기업 메세나 협의회에서 예술문화 진흥에 기여한 기업 및 재단을 선정하는 ‘메세나 어워드 2011’에서 ‘해체신생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리타 가즈키 씨의 경우는 이토시마 출신이자 전직 박물관 학예원으로, 과거 손님으로 코자이노모리에 방문했다가 마키타 씨의 스카웃 제안을 받아, 초창기부터 이곳을 함께 일구어 왔다. 우리는 마을 지도를 펼쳐놓고, 이토시마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질문을 던졌다.
-질문: 코자이노모리는 처음에 어떻게 사람들에게 다가갔나요?
-아리타 씨: 당시엔 SNS 같은 게 없었기 때문에, 지역 신문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요. 광고를 실으려면 비용이 드니까, 마을을 위한 이벤트를 열어 신문 기사로 소개될 수 있도록 했죠. 이벤트에 대한 반응이 좋으니, 라디오와 TV에서도 관심을 가졌고요. 핵심은 우리만 직접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알리도록 하는 것이었어요. 다양한 이벤트를 열어 여러 취향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방문하도록 했고, 그들이 다시 밥을 먹으러 오거나 다른 사람을 불러오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질문: 이토시마가 외부에 개방적인 분위기를 갖게 된 데에는 어떤 배경이 있나요?
-아리타 씨: 이토시마는 외부인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굉장히 열려 있어요. 과거부터 한국과의 교류가 활발했고, 언어도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지리적으로는 바다와 연결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열린 구조를 가지게 되었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도쿄에서 후쿠오카와 이토시마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이전부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오고 교류할 수 있었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이주민과도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소농이 소비자와 직접 연결되는 구조…‘지속가능한 경제모델’ 구축
이토시마의 거주 인구는 198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원격 근무 방식이 확대되면서, 일주일 중 며칠은 도쿄에서 일하고, 나머지는 이토시마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늘었다. 주중에는 도쿄에서 근무하고, 주말에는 이토시마에서 농사를 짓거나 창작활동을 하는 이들도 있다. 아예 이주해 빈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있는데, 마을 전체가 이를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모습이었다. 마을이 외부인을 환영할 때 생기는 변화다.
이토시마에는 여러 지역 신문이 존재하는데, 마을에서 오랫동안 함께한 반려견의 부고 소식까지 실릴 정도로 공동체의 유대감이 깊다. 이러한 요소들이 새로운 사람들도 쉽게 지역사회에 스며들 수 있도록 돕고, 마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힘이 되고 있다.
공동체의 유대를 유지하면서도 개방성을 지니는 이토시마의 문화는 마을을 걷다 발견한 리모델링 주택에도 묻어나 있었다. 한 주민은 자신의 집을 개조할 때 비용이 더 들더라도 마을 미관을 해치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했다. ‘내 집’만이 아니라 ‘우리 마을’의 풍경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인식이, 지역 전체의 정체성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었다.
넓은 농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이토시마에서는 자연스럽게 소규모 농업이 발달했다. 이에 따라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농장도 부담 없이 농산물을 출하할 수 있도록 유통의 문턱을 낮췄다. 그 결과, 직매장을 통해 다양한 농산물이 유통되며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이러한 장점이 알려지면서 인근 지역에서도 일부러 찾아와 장을 보는 사람들이 늘었고, 생산자들은 대형 유통망을 거치지 않고도 소비자와 직접 연결되는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지금도 이토시마에서는 정원에 작은 밭을 일구거나, 집 앞에서 직접 농산물을 판매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자칫 ‘한계’로 여겨질 수도 있었던 자연적 조건이 오히려 다양한 농산물 생산과 경제적 성공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고, 넓은 소비층을 형성하며 지속 가능한 경제 모델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참고자료] -「油機エンジニアリング株式会社 メセナアワード受賞から広がる「メセナ活動」その先へ」, 美里茉奈, Association for Corporate Support of the Arts, 2023년 2월 28일자 -유키엔지니어링 주식회사 홈페이지 https://www.yukieng.co.jp/csr/csr-004
[필자 소개] 정이예슬: ‘함께 배우는 사람’. 나에게도, 지구에게도 다정한 삶의 방식을 배우고 지속해갈 수 있도록 돕고자 클라이밋(Climeet)을 창업했다. 청소년과 청년들이 지역사회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사회적경제·기후환경·ESG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교육 워크숍을 진행한다. 탈성장, 젠더, 불평등, 다양성, 시민정치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활동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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