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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가장 주목받는 에코페미니즘 사상가이자 생태문학-기후SF 비평가인 그레타 가드의 저서 『비판적 에코페미니즘』이 출간되었다. 에코페미니즘의 최신 이론들과 새로운 상상력을 담은 『비판적 에코페미니즘』의 세계를, 이 책의 공동번역자인 여성환경연대 부설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 달과나무’ 연구원들이 안내한다. [편집자 주]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폭염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기후재난이 닥치면, 정부는 의료 시스템을 발동해 최대한 인명 피해를 줄이고 재정적 지원을 통해 재난의 고통을 완화시키고자 한다. 기후재난은 특히 취약층에게 더 가혹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지원과 돌봄 정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하지만 재난 지원 정책에서 소외되거나 심지어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사회적 약자도 있다.
이성애/시스젠더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지원에서는 퀴어(queer)들이 소외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재난 대피소에서 트랜스젠더가 화장실 사용이 어렵거나, 동성애 커플 중 한 명이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도 파트너가 그의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의료/장례 절차에서 배제되는 경우다. 2020년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확진자가 이태원 클럽에 다녀갔다는 소식이 미디어를 통해 게이 혐오를 확산시킨 것처럼, 사회적 불안정이 퀴어 혐오를 강화할 수도 있다.
에코페미니즘을 퀴어링하기
기후재난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성소수자는 사회적, 경제적, 법적 불평등으로 인해 더 큰 위험과 차별을 겪을 수 있다. 그레타 가드는 『비판적 에코페미니즘』에서 ‘기후를 퀴어링하기’를 주장한다. ‘퀴어링’(queering)은 ‘퀴어’(queer)의 동사 형태이며 ‘퀴어리딩’(queer reading)의 축약형이다. 이성애 규범에서 벗어난 섹슈얼리티와 관련해 ‘퀴어’가 긍정적인 용어로 사용되면서, 퀴어 이론에서 퀴어링은 이성애 규범성과 성정체성 이분법에 도전하는 분석 방법으로 활용된다.
따라서 기후를 퀴어링하기는 기후 문제에 퀴어의 관점을 가져오자는 의미다. 이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기후재난에서 퀴어가 겪게 되는 차별을 생각해 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기후 문제에 퀴어 관점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가드는 이미 1997년에 쓴 “퀴어 에코페미니즘을 향하여”라는 논문에서 에코페미니즘은 퀴어 에코페미니즘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여성의 인권과 평등을 위해 페미니즘이 생겨났고,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이어도 인종과 계급에 따라 다르게 차별된다’는 교차성 이론을 발전시켰다면, 에코페미니즘은 억압과 차별의 문제를 인간뿐 아니라 동물과 물질적 자연 존재에까지 확장한다. 가드는 여기에 더해, 퀴어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양한 역사적 자료를 가져와 그 이유를 설명한다.
가드의 이론적 기반이 된 플럼우드의 마스터 모델은 서구 사회가 인간과 자연, 문화와 자연, 남성과 여성, 정신과 육체 등의 이분법적 가치체계를 통해 자연, 여성, 육체, 동물 등을 비하하고 차별해왔음을 강조한다. 가드는 이 이원론에 이성/성애(에로티시즘), 이성애주의/퀴어라는 이분법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애와 퀴어 역시 역사적으로 억압되고 차별되었기 때문이다.
마녀사냥과 원주민 탄압 역사 속 ‘성애’와 ‘퀴어’ 억압
가드는 특히 종교재판이나 마녀화형, 그리고 식민주의 역사 속에서 성애와 퀴어가 어떻게 억압되고 차별되어왔는지 여러 사례를 가져온다. 1233년 그레고리 9세의 칙서 〈라마의 목소리〉를 통해 이단 탄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이 칙서의 타깃이 된 루시퍼주의라는 종교 집단이 악마를 숭배하고 성적으로 문란한 의례 의식을 행하며 동성애적 난교 행위를 벌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문명과 야만을 나누는 이분법은 식민주의 시대 북미 원주민 탄압을 통해 볼 수 있는데, 이때 퀴어 또한 박해를 받은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식민주의자인 마사코 누녜스 데 발보아(1495-1519)는 현재의 파나마 지역을 지배하면서 원주민의 동성애 행위를 잔인하게 탄압했다. 그는 ‘두 영혼’(Two Spirit)으로 구별되는 원주민들이 남색이라는 ‘죄악’을 행했다며 사냥개를 풀어 물어뜯어 죽게 만든다. 실제로 나바호 인디언 원주민 사회에서 성별은 적어도 네 가지 이상으로 분류되는데, 영어로 ‘두 영혼’이라고 번역된 성별 Nadleeh는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모두 가지거나 두 성별을 넘어서는 존재로, 원주민 사회에서 영적인 지도자, 치료사의 역할을 하는 존경받는 이들이다.
퀴어 에콜로지
동성애나 젠더 일탈적인 퀴어를 탄압하기 위해 근거로 제시된 것이 ‘자연스럽지 못함’이었는데, 1990년대 중반~2010년 사이에 형성된 퀴어 에콜로지라는 신생 학문의 연구 결과는 ‘자연 또한 상당히 퀴어하다’는 사실이었다. 대표적 연구서로 브루스 배게밀의 『생물학적 풍요』(1999/한국판 2023)나 조안 러프가든의 『진화의 무지개』(2005/한국판 2010/개정판 『변이의 축제』 2020)를 보면, 동물 세계의 섹슈얼리티와 젠더가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둥오리는 암컷 수컷 모두 동성애를 하며, 아메리카노랑솔새(hooded wabler)는 암컷이지만 수컷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수컷처럼 노래를 하는 경우도 있다. 많은 물고기들이 평생 성전환을 하기도 하고, 오세아니아의 섬나라 바누아트의 돼지는 일곱 가지 젠더가 있다고 한다. 수명이 20년인 회색 기러기 수컷은 15년 이상 동성애 파트너와 지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차별받고 억압된 퀴어가 어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 기후 운동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이 두 번째 관점에 대한 답으로 가드는 ‘생태 남성성’과 ‘에코 젠더’, ‘에코 섹슈얼리티’, ‘에코 에로티시즘’이란 개념을 발전시킨다.
가드는 서구에서 구성된 남성의 젠더 정체성이 이분법적 가치체계를 유지하면서 불평등과 차별을 초래하고, 결국 기후위기를 가져왔음을 강조한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지배적인 남성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반생태적이고 반생명적으로 지배와 정복을 특징으로 하고, 경쟁과 관계에서의 독립을 통해 자아정체성과 자존감을 유지하며, 육식을 통해 남성성을 과시한다. 이 같은 남성성은 여성과 아동을 종속시키고자 하며, 남성적 젠더 정체성을 주장할 수 없을 때 폭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대규모 살인과 테러 공격 가해집단에서 백인 남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며, 극단적 폭력은 남성성의 지배력을 재확인하려는 병리적 현상이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에서 생태적 남성성으로
가드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대안으로 ‘생태적 남성성’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생태 남성성’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그 사례를 구할 수 있을까.
가드는 퀴어의 다양한 섹슈얼리티와 젠더 다양성에서 생태적 남성성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예를 들어,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남성적 젠더 정체성를 띤 여자남편 트리바데스(tribades, 19세기 레즈비언을 일컫는 말), 20세기의 부치(butch, 레즈비언 커플 중 남성적 태도나 스타일을 한 사람), 드랙킹(남성적 특성을 과장하거나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여성 퍼포머)의 남성성은 다르지 않을까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것이다.
또한 모두가 평등하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기후 운동을 하는 사례로, 퀴어와 퀴어 집단의 활동을 들고 있다. 여기에는 트랜스페미니즘 단체, 1960~1970년대 영성적 활동을 추구한 게이 해방운동 단체가 포함되고, 플루토늄 생산 시설을 정화하여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바꾸어내는 데에 기여한 드랙퀸의 활동도 예시된다.
생태적 남성성을 실현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사례도 제시되는데, 단순하고 생태적인 삶을 살며 생태주의적 철학이 담긴 노래를 만들거나, 환경과 건강의 연관성에 관한 교육과 비평 활동을 하거나,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성함을 감각적으로 일깨우는 예술 작업도 여기에 포함된다.
에코 젠더, 에코 섹슈얼리티, 에코 에로티시즘
인간 세계와 생태계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모습은 차별받거나 억압되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은 그 다양성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 다양성이 창의성과 혁신을 증진시키기도 하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좀더 평화롭고 조화로운 사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구를 사랑하는 에코 섹슈얼리티, 혹은 에코 에로티시즘은 어떻게 상상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가. 가드는 “타자와의 열정적이고 우연한 만남에서, 바람직한 몸과 자아의 재배치”를 통해 “관계적 자아”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넘어서 비인간 동식물과 물질적 존재와의 ‘에로틱한’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경험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관계적 자아의 경험은 충만함과 기쁨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생태공동체 안의 다양성의 미학을 회복하고, 호혜적 흐름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기후를 퀴어링하기’는 기후재난에서 퀴어가 겪게 될 차별을 얘기하면서 동시에 기후위기의 원인인 이분법적 가치체계에 도전한다. 퀴어 그 자체가 이분법적 젠더 규범을 해체하는 ‘젠더 무법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퀴어적 상상력은 자연을 더이상 비하하고 도구화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관계적 자아’의 상대로 볼 것을 요청한다. ‘자연 사랑’을 넘어서 ‘에코 웨딩’까지 하자는 제안이 나오는 기후위기 시대, 우리는 어떻게 ‘관계적 자아’를 만들어 갈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 소개] 황선애. 독일 뮌헨대학에서 독일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번역가로,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 ‘달과나무’의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생태여성주의, 독일생태공동체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고, 에코페미니즘, 퀴어,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성소수자부모모임 운영위원,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로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공저), 번역서로 『여성 상징 사전 1, 2』(공역), 『비판적 에코페미니즘』(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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