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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에는 폭력이 넘쳐난다. 작년 12월 3일 충격적인 대통령의 계엄 선포, 그리고 극우 세력의 서울서부지방법원 점거 폭동과 극우 유튜버들의 대학 침입, 심지어 민중의 지팡이라 불리던 경찰들이 집회 참여자인 활동가, 농민, 시민을 가두고 화장실을 못 가게 막고 힘으로 제압하는 장면까지 펼쳐지고 있다.
국내 상황만이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발된 전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벌이는 대규모 학살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어린이가 몇 십명 아니 몇 백명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자괴감이 든다. 우린 어쩌다 이렇게 폭력이 가득한 세상에 살게 됐을까.
‘이런 폭력의 시기에 어떻게 평화주의자가 될 수 있나요?’ 평화주의를 선택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
『전쟁 없는 세상』(최정민 옮김, 오월의봄)을 쓴 마이켄 율 쇠렌센(Majken Jul Sørensen, 덴마크 출신 사회학자이며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에서 활동했고 현재 스웨덴 칼스타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은 평화를 연구하는 학자이자 평화주의자다.
이 책은 저자가 “평화주의에 의문을 제기하는 가상의 ‘회의론자’”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회의론자’는 이렇게 묻는다. “제가 알기로, 평화주의자란 모든 전쟁과 전쟁 준비에 반대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지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격에 맞서 벌이고 있는 방어 전쟁까지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이런 시기에 어떻게 평화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까?” 솔직히, 난 이 질문에 공감했다. 폭력의 끔찍함을 알고 전쟁에 반대하지만, ‘폭력에 맞서기 위한 폭력은 가능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완전히 지울 순 없었으니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시기에 어떻게 평화주의자가 아닐 수 있을까요?” 그리고 자신이 평화주의자인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다른 사람을 죽이는 건 그 어떤 경우에도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전쟁을 치르는 데는 엄청난 피해가 따릅니다. 사회 기반시설이 파괴될 뿐만 아니라 전쟁 중에는 인권과 같이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들을 수호하기 더욱 어려워집니다. 셋째, 오늘날 우리에게는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싸우는 것에 관한 많은 지식이 있습니다. 이런 지식을 무시하는 건 비합리적입니다.”
독재와 점령에 맞선 323건의 투쟁 역사를 분석한 결과, ‘비폭력 저항’이 폭력을 동반한 투쟁보다 성공 확률이 거의 2배 높았다
저자는 에리카 체노웨스와 마리아 J.스티븐이 쓴 책 『비폭력 시민운동은 왜 성공을 거두나?』(강미경 번역, 두레)와 그들의 연구를 언급한다. 이 연구는 1900년부터 2006년 사이 독재정권을 전복하거나, 분리 독립을 달성하거나, 점령 세력에 맞서 싸운 모든 캠페인, 총 323건을 분석했다. 결과는 예상 외였다. “통계적으로 비폭력 투쟁이 폭력 투쟁보다 성공할 확률이 거의 두 배나 높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비폭력 캠페인이 항상 성공하거나 폭력적인 투쟁이 항상 실패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매우 분명한 경향을 보여준다”고 말을 보탠다.
『전쟁 없는 세상』에 언급된 사례 중 하나는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던 노르웨이다. 당시 노르웨이 총리는 “반역의 대명사”로, “노르웨이에 나치 이념을 전파하고자 교회와 학교부터 나치화 하고자”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계획은 실패했다. “성직자, 교사, 학부모들이 하나로 뭉쳐 매우 조직적으로 저항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주교와 사제들은 공무원직을 사직하는 다소 ‘위험한’ 결정을 내렸다. 총 699명의 주교와 사제 중 645명이 사임을 선택한 것이다. 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치당 가입을 강요하거나 학교에 나치 선전을 도입하는 행동 등을 거부했다. “노르웨이의 교사 1만 4000명 중 90퍼센트가 이러한 행동에 참여”했다. 탄압과 처벌이 예상되었음에도 말이다.
저자는 비폭력 투쟁의 방법으로 보이콧, 파업도 이야기한다. 그리고 파업의 성공 사례로 “2분 파업”을 소개한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점령 하의 덴마크에서 일어난 저항운동이다. 저항운동 세력은 여러 차례 2분 파업을 선언하고, 실행했다. 어쩌면 별거 아닌 고작 2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사람들은 일을 멈췄다. 저자는 “시간이 아주 짧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한 형태의 저항이었고, 저항을 지지하는 거의 모든 사람이 쉽게 참여할 수 있었다.”며 그렇기에 “나치에게 저항운동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가 됐다.”고 분석한다.
책을 번역한 최정민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는 ‘옮긴이 해제’에서 현재 한국 사회도 곳곳에서 저항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짚는다. “공무원, 계엄군, 경호처 인원들이 항명, 태업, 의도적 외면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계엄에 저항한 것, 그리고 “직장에서의 행동(파업, 태업), 소비자로서의 행동(보이콧, 선택적 구매), 유권자로서의 행동 또는 직접적인 개입(발언, 전단지 배포, 집회, 봉쇄, 점거 등)”에 대해 소개했다. 그리고 이걸 시작하면 “변화는 필연적으로 일어난다.”고 강조한다.
비폭력으로 승리하기,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해
비폭력 투쟁의 성공 사례를 접하더라도, 여전히 질문이 남을 수 있다. 비폭력을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냐, 상황이 어쩔 수 없으니까-이미 전쟁이 발발해 버렸다거나, 누군가 공격을 시작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폭력일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 등의 이야기들. 책 속의 ‘회의론자’도 저자에게 똑같이 묻는다. 폭력이 사라지는, 전쟁 없는 세상이 가당키나 하냐고.
답변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그 질문에도, 저자는 차분히 하나하나 이야기해 나간다. 어떤 대답은 단번에 이해할 수 있고, 또 어떤 답엔 다시 질문이 생기기도 한다. 저자 또한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독자들의 고민과 상상력을 넓히고자 노력한다. 비폭력 투쟁이, 시민들의 저항운동이 어떻게 감히 전쟁에 맞설 수 있을지에 관하여.
때때로 권력자의 힘은 너무 거대해 보이고, 억압의 구조가 강고해서 좀처럼 쓰러지지 않을 것 같다는 무력감이 들기도 한다. 지쳐가는 요즘, 약자에게는 더 ‘강한’ 것이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했던 순간도 있었다. 앞으로는 그럴 때 저자가 소개한 이 이야기를 떠올리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독일 장교들은 폭력적인 저항은 쉽게 진압할 수 있었지만 비폭력 저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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