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누가 월급 밀려가면서 일을 해요?”

[나의 노동기] 당근 알바 구인을 보고 찾아간 세탁공장

이수연 | 기사입력 2025/04/10 [10:14]

“요즘 누가 월급 밀려가면서 일을 해요?”

[나의 노동기] 당근 알바 구인을 보고 찾아간 세탁공장

이수연 | 입력 : 2025/04/10 [10:14]

지난 겨울은 정말 춥고, 뜨거웠다.

나의 본업은 한여름과 한겨울에 각각 한두 달 정도 비수기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 시기에 단기로 일할 수 있는 구직을 하곤 한다. 그러다가 최근에 ‘당근’(당근마켓)에서 본 세탁공장 알바 구인에 제대로 낚였다.

 

세탁 일은 오래 전에 비슷한 곳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어서 방심했다.

세탁물 개키는 작업은 빨래가 다 된 것만 만지니까, 실 먼지는 조금 날리더라도 깔끔한 편이지. 건조기의 열기 때문에 (여름엔 끔찍하게 덥지만) 겨울엔 따뜻하다는 장점도 있다. 근무 시간은 오전 6시부터 12시까지 6시간. 요즘 비수기라 한가한데, 잘됐어. 오전 시간을 이렇게 활용하면 딱 적당하군. 집에서도 가깝고. 시급도 괜찮고? 하핫, 이거다 이거!

 

지원하기 버튼을 누르자, 업체 사장은 ‘당근챗’으로 언제부터 나올 수 있는지 물었다. 면접도 없다. 약속한 날 공장에 가니 바로 실전 투입. 이전에도 해본 일이라 시간도 휙 지나가고, 할만하네! 세탁공장 치고는 좀 지저분한 편이지만.

 

그런데, 뭐가 하나 빠졌다. 왜 근로계약서를 안 쓰지?

“반장님, 여긴 근로계약 없어요?”

“아, 그거 ‘사모님’이 와야 하는데. 며칠만 기다려 줄래요?”

 

당근으로 나를 채용한 ‘사모님’은 해외에 있고, 며칠 후에 온다고 한다. 그래? 기다려 볼까? 이런 멍청한 생각을 할 정도로, 세탁공장 일은 내가 원하던 조건과 딱 맞았다.

 

▲ 새벽녘 출근길. 본업이 비수기라 겨울에 단기로 오전 타임 일하기로 한 세탁공장은 집에서 가깝고 시급도 괜찮고 내가 원하던 조건과 딱 맞았다. (필자 제공)

 

구인공고와는 다른 급여 조건, 그마저도 체불된 임금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은 주로 중장년층 ‘언니들’이 많았지만, 연령대도 국적도 다양했다. 이주민과 한국어로 소통이 잘 되지 않아도 (자동번역의 세상!) 잘들 어울려 지내고 있었다. 낯이 익자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는 ‘언니’들이 있었다. 나도 여기 일 한지 얼마 안 돼, 할만 해?

 

-근데 저 사람들 있잖아? 월급을 못 받았대. 저 사람도.

-아, 정말요? 여기 어렵나?

-세달 치 밀려 있대.

-세달 씩 월급 밀려가며 다닐 일이 아닌데? 언니도 돈 못 받았어? 요즘 누가 월급을 밀려가면서 일을 해요? 안주면 노동부에 신고해요.

 

‘사모님’은 그로부터 며칠 후 등장했다. 근로계약서 안 써요? 물으니 그때서야 공장 한편에 정리도 안 된 구석에서 서류봉투를 꺼내 뭔가 찾는 척하더니, 지금 빈 양식이 없어서 ‘사무실’에 얘기한다며 내일 쓰자고 했다. 기다려줘 보기로 했다.

 

다음날 받아 든 ‘근로계약서’는 엉망진창이었다. 필요 없는 내용이 잔뜩 앞뒤로 붙어있었고, 막상 명시해줘야 할 항목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급여 부분이 제멋대로였다.

-구인 글 이렇게 안 올리셨잖아요? ‘수습’(당해 년도 ‘최저임금’의 90% 적용) 기간이 있어요?

-아니 아니, 안 그래, 수습 없어.

-그럼 수습 항목을 빼셔야죠. 그리고 급여(시급)를 왜 ****원이나 깎아서 표기하죠?

-응응. 서류상 그런 거고. 내가 주휴까지 넣어서 ****원 맞춰 줄 거야. 이래도 된댔어.

-누가요? 그럼 시급을 그렇게 (구인 공고에) 올리면 안 되죠, 주휴는 그렇게 정해지는 게 아니잖아요!

 

여기서부터 언성이 높아졌다.

-이렇게 구인 공고와 다른 계약서를 주시면 안 되고! 고치셔야죠.

나는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 들리도록 일부러 언성을 높였다. ‘다 들어봐, 다들 이런 거에 서명을 해줬던 거야?’

-계약서잖아요, 집 살 때 계약서에 일억 써놓고 이억 준다고 하지 않아요.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구요.

 

‘사모님’은 내일 얘기하자며 회피했다. 그리고 반장은 사람들 듣는 데서 심한 얘기(?) 하지 말라며 내일 쓰자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계약서를 계속 쓰자고 주장하는 내가 멍청한 거였다. (차라리 근로계약서 ‘미교부’ 상태인 편이 나았을 거다.) 하지만 그때는 그 다음에 이어질 일들을 예상하지 못했다.

 

식사 시간도 없이, 한밤중까지 일하는 ‘언니들’

 

근로계약서는 업주도, 나도 서명을 하지 않은 채 방치됐다. 내가 볼펜으로 박박 그어 [적용 안 함]이라고 적은 부분들은 결국 수정되지 않았다. 우선은 내버려두기로 했다. 암만 봐도 노동청행이 결정된 듯하다. 이렇게 된 이상, 좀 더 알아내고 싶었다.

 

-월급 나왔어요?

나는 다음달 말이 되어야 급여를 받을 수 있었지만, 다른 언니들은 얼마 전 도래한 급여 일이 지나 있는 상태였다. 못 받았다고 한다. 몇 달씩 밀려 있는 경우도 꽤 있었다.

 

▲ 출퇴근 카드. 나는 오전 타임만 근무를 해서 몰랐는데, 다른 언니들은 저녁때까지, 때로는 한밤중까지 출고 물량을 맞춰주며 일하고 있었다. 식사 시간도 별도로 주어지지 않았다. (필자 제공)

 

그뿐이 아니었다. 나는 점심 전에 퇴근을 해서 몰랐는데, 다른 언니들은 새벽이나 오전에 출근해서 저녁때까지, 때로는 밤 9시~10시, 한밤중까지 출고 물량을 맞춰주고 있었다. 식사 시간도 따로 없다고 했다.

-8시간, 10시간씩 일하는데요? 식사 시간을 무급 처리하는 것도 아니고, 아예 시간 자체를 안 준다고요?

원래는 20분씩 사모가 차려주는 점심을 먹었는데, 사모가 ‘하기 싫다’는 이유로 어느 날 없어졌다고 한다.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그럼 어떻게 해요?

-그래서 집에서 싸와.

‘언니들’이 바리바리 풀어놓던 간식들, 10분여의 휴게 시간 동안 허겁지겁 먹던 도시락이 다 그런 거였다. 나는 그냥 당 떨어져서 그런 줄 알았지.

 

-왜 이런 곳에서 일해요?

사는 형편은 다 달라도 비슷한 이유들은 있었다. 집에서 가깝고, 시급도 적당하고, 시간대가 적당하고, (또는 주6일 아침부터 밤까지 초과근무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쉽게 취직이 되어 일을 할 수 있다.

 

나처럼 비교적 가벼운 동기일 수도 있으나, 일자리는 모두에게 소중했다. 누군가는 너무나 절박했다. 역시 ‘당근’을 통해 여기를 찾아냈다는 유학생 친구는 여길 그만두고 싶지만 대안이 없다고 했다. 내게 다른 일자리를 소개해 줄 수 있는지 도움을 요청해 왔다. 이런 곳이어도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그런 절실함을 이 공장은 철저히 이용하고 있었다.

 

처음 직원들이 월급을 못 받고 있다고 들었을 때 대충 계산해본 체불 규모는 *천만원 정도였다. 그런데 알아갈수록 점점 더 액수가 커졌다. 한명이 천만원 넘게 못 받은 금액이 물려 있는 경우도 있었다. “OO는 한국말을 못해서 다른 곳에 취직도 안되고, 다른 데서 일할 수가 없어. 여기를 포기하질 못해.” 체불임금이 몇 달치 묶여있기는 한데 조금씩 주기는 준단다. 50만원 정도 선심 쓰듯 내킬 때 주고는 다음에, 다음에, 형편이 나아지면, 수금이 되면… 이러면서 직원들을 농락하고 있었다. 언니들은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는 듯, 매일을 일했다.

 

노동부에 임금체불 진정을 넣다 

 

내 급여 일이 다가오기 전, 반장과 사모에게 질문했다. 급여일이 휴일인데 그럼 언제 지급이 되나요?

“응? 나는 몰라.”

반장님은 월급 안 받아요? 어떻게 모르지? 반장은 내가 되묻자 당황했다.

“그때그때 달라.”

 

“사무실에 물어볼게.” 사모는 이렇게 말했다. 

“뭘 물어봐요, 사장님이 어떻게 모르죠? 업주면서.”

‘월급날은 그때그때 다르다’거나, 사장이 ‘월급을 언제 줄지 사무실에 물어봐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는 난생 처음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급여는 약속된 일자에 나오지 않았고, 나는 1원도 못 받은 채 일을 그만두었다. 알고 봤더니 그 알량하게 일부를 주는 것도 사람 봐 가며, 매우 선택적으로 하더라고. 그런데 ‘사람 봐 가면서’의 기준이 뭘까. 이쯤 되면 요즘 말로 사람 ‘긁고’ 싶어서 안달 난 것 아닌가? 아, 이래서야 일 더 못하겠네요. 그만둡니다! 언니들처럼 언제 줄지도 모르는 월급이 밀린 채 계속 매여 있을 수는 없으니까. 대신 이제 진짜로 한가해졌으니 우리 귀찮아져 보자구요.

 

‘똑똑, 급여 언제 줍니까, 명세표도 주세요. 월 마감 치고 한달이나 명세표 만들 시간 많았을 텐데 왜 안 줍니까? 안 준다고 밀린 월급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니까요?’ 내가 독촉을 이어가자 사모가 토스를 했는지, 실제 업장을 관리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사람에게 죄송하다며 연락이 왔다. 돈 드릴 테니 근무표를 보내 달라고 했다. 타임카드는 말일 지나자마자 싹 걷어 가지 않았나? 왜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당신에게 내가 일한 것을 입증해야 하지? 노동청에서 만나자.

 

▲ 체불임금에 대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었다.


그 사이 14일이 경과해 고용노동부에 온라인으로 임금체불 진정을 넣었다. 해당 팀은 업무가 과중한지 주말이 끼어 있어서인지 1주일이 넘어서야 답변이 왔다. 2주 후로 지급기일이 잡혔고, 업주가 금액을 전부 인정했으니 내가 지청에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 했다. 법적으로는 퇴사 후 14일 이내에 전부 정리가 되어야 하나, 노동부에서는 그들에게 몇주간의 말미를 주었다. 왜 내가 몇 주를 더 기다려 줘야 하는 것인지 의아했다.

 

-바로 내놓으라고 하면 업주들이 아예 째 버리는 경우도 나오거든요. 기한을 주고 그 일자가 지나면 다음의 조치들을 취할 테니 우선 기다려 보세요.

-그렇다면, 대지급(근로자가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경우, 국가가 사업주를 대신해 일정범위 체불임금을 지급하는 제도) 받고 싶은데, 업주가 금액 인정했으니 신청해도 돼요?

-업주가 급여대장 안 줘서 못해요.

-거기 급여대장은 왜 없대요? 아, 진짜!

 

약속한 날짜가 되었을 때, 내 계좌에는 미동도 없었다. ‘감독관님, 안 주는데요.’ 아침부터 근로감독관에게 전화를 하고 나서, 1/4쯤의 금액이 입금되었다. 두 번째 전화 통화에서 근로감독관은 당황한 눈치였다. ‘줬다는데요? 확인해보세요. 줬대요.’ ‘아니, 안 줬다니까요.’ 근로감독관과 통화가 오가고 그 사이에, 그들은 그제서야 슬쩍 입금을 했다. ‘입금한 시간이 다 표시된다고요, 뭐 이런 졸렬한 인간들이 있나.’ ‘어쨌든 받으셨으니까 종결할게요.’

 

열아홉, 스물셋 그리고 ‘언니들’의 나이

 

나의 기록이 [생각 없이 덤볐다가 월급 떼이고 어찌어찌 받아낸 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으나, 거기엔 나를 비롯해 여러 여성들의 현실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누군가는 그럼에도 계속 일하고 있고, 누군가는 월급이 밀려있는 채 일터를 떠났다. 그만두고 나선 업주에게 계속 독촉을 하거나, 아니면 ‘재수가 없었다’고 묻어버리거나.

 

어떤 여성들은 이런 권리침해에 더 쉽게 노출된다. 이주 노동자는 더한 사각지대에 몰리고, ‘언니들’처럼 나이가 들어갈수록 일자리의 기회는 점점 더 줄어든다. 나도 점점 ‘언니들’의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

 

최저시급이 얼마인 줄도 모르고 ‘알바는 이만큼 받을 수 있구나’하고 생각하던 열아홉의 나, ‘경영이 어려워진 건 너희 탓’이라며 직원들에게 행패를 부리던 사장의 욕설을 듣고 있던 스물셋의 나, 거기서 강산이 두 번 정도 바뀔 시간이 흐르고 난 후 나를 둘러싼 세상은 이렇지 않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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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anG 2025/04/15 [13:39] 수정 | 삭제
  • 와.. 이런 곳이 아직도. 그래서 외국인노동자들이 임금 떼먹히는 경우가 그리 많은 거구나.. 애초에 착취를 기준으로 운영하는 곳 같아서 끔찍하네요. 체불임금 받아내는 시간과 노력도 노동자 몫이라는 게 답답하고 화나요. 이주민에겐 너무 어려운 일일 거 같아요. 고용노동부 진정 넣는 것에 대해서 그게 큰 일이 아니고 당여한 권리 찾기라는 게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 서인 2025/04/14 [20:50] 수정 | 삭제
  • 노동부 규제가 지금보다는 훨씬 더 강해져야 한다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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