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십니까. 상담사 김미경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평일 아침 9시,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 1350 상담사로서의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벌써 13년 차다.
그런데, 경쟁률이 장난이 아니었다. 울산으로 이전하는 첫 공공기관인 데다가 급여와 조건도 좋아서 지역 언론에서 ‘열풍’이라고까지 했다. 진로 코디네이터와 직업상담사 공부를 병행하던 나는 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다행히 합격했다.
1350 상담사의 주요 업무는 고용노동부에서 진행하는 고용 관련 제도와 노동기준 법령을 안내하는 것이다. 현재 울산과 천안, 안양, 광주 등 4개 센터에서 전화상담원 600여 명이 사용자들과 노동자들의 고용·노동 관련 민원을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는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근무 연차가 늘어나도, 상담원들의 업무가 수월해지지 않는다. 정책이 바뀌고 법령이 개정될 때마다 정확하고 빠른 안내를 위한 직무교육이 수시로 이뤄지고, 이에 대한 학습 부담도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AI와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할 수 없다.
의례적인 첫인사를 하자마자 나이 지긋한 남자 민원인이 대뜸 “AI입니까, 사람입니까⋯.”라고 물었다. 순간 기분이 좀 상했지만, “사람 상담사입니다!”라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다행히도 그분은 안심하며 질문을 시작했다.
휴게 시간에 동료들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제 우리 자리도 AI에게 뺏길 날이 온다.’는 걱정도 나왔다. 진짜 그럴까.
사실 우리 기관에서도 챗봇 상담, 모바일 ARS 상담, AI 상담이 도입되고 있다. 기본적인 법률 내용은 오히려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AI 상담이 더 정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가 해주는 상담보다는 긴 ARS 멘트를 들으며 대기해서라도 사람 상담사와 연결하려는 민원인이 아직은 많다.
어느 날, 주휴수당을 받지 못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상담 전화를 받았다. 민원인은 “편의점 일자리를 얻으려고 근로계약서에 주휴수당 안 받겠다고 해버렸다. 그래도 받을 수 있지 않냐?”고 반복해 물었다. 일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주휴수당을 받지 않겠다’고 근로계약을 해버린 것을 뒤늦게 후회하고 있었다.
민원인의 사정을 들은 후, ‘사업주가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위법’이라고 설명하며, “주휴수당 안 받겠다고 계약서에 적었다 하더라도, 주휴수당 요건이 충족되면 사업주는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라는 원론적인 답을 해주었다.
민원인이 듣고 싶은 답은 ‘받을 수 있다.’였을 것이다. 하지만 상담사들은 ‘된다, 받을 수 있다.’ 같은 확정적인 답변은 피한다. 민원인의 상황을 확인한 뒤, “말씀하신 대로라면 노동청 같은 관련 기관에서 조사 후 판단하게 됩니다.”라고 안내한다. 주로 금전과 관련된 상담이 많다 보니 불필요한 기대를 만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결국 “사업장 관할 노동청에 신고하고 구제받으세요.”라고 기계음처럼 잘라 말하며 상담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상담사가 전화기를 통해 듣는 민원인들의 언어는 대개 차갑고 이기적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인간적인 온기가 있다.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상담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알바비를 제대로 못 받은 청춘들은 내 조카가 되고, 저임금 체불노동자들은 나의 이웃이 되기도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기만 해도 ‘친절한 상담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매뉴얼은 친절한 상담사보다는 감정 없는 상담사를 원한다.
“왜 안 되는데, 니가 뭔데 안 된다고 해. 상급자 바꿔. 당장!”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것 같은 여린 목소리가 갑자기 야수처럼 돌변해 동료의 감정을 건드렸다. 동료는 법적 제도를 설명하며 민원인을 설득하려 했지만, 민원인은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자 반말과 욕설로 동료 상담사의 감정을 폭발시키고 말았다. 심지어 이를 빌미로 동료를 불친절한 상담사로 신고해 버리기까지 했다. 회사에 상담 과정을 소명하며 상처를 받는 동료를 지켜보며, “차라리 AI였으면 좋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전화상담원들은 감정노동의 대표 주자들이다. 2018년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성희롱과 욕설 등 악성상담의 경우 상담원이 매뉴얼에 따라 선 종료할 수 있거나, 감정을 추스를 수 있는 휴식 시간을 요청할 수 있게 됐다. 물론 큰 변화다. 하지만 사실상 사후 조치일 뿐, 예상치 못한 민원인들의 성희롱이나 폭언, 욕설을 온전히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우리 사무실 로비에는 노동조합에서 내건 “감정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푯말이 나앉아 있다. 그런데 관리자는 개별 상담사들의 콜 수나 콜 시간으로 성과 평가를 해서, 아주 잘 하면 포상하겠다, 하위 몇 %는 징계하겠다는 계획을 들이민다. 상담사를 괴롭히는 악성민원으로부터 보호해달라는 상담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지, 악성 민원인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화장실로 달려가는 상담사들을 본 적도 없는지, AI처럼 감정 없이 콜 수만 채우라는 것인지⋯.
또, 정부 정책이 바뀔 때 사전에 안내 자료를 제공해 전화상담원들의 상담 효율을 높여준다면 나의 노동도 견뎌내기가 나을 것 같다.
이 기사 좋아요 17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나의 노동기 관련기사목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