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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제작 분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현재는 마케팅 분야에서 다양한 실무를 경험하고 있다.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했고, 이직 시에도 휴지기 없이 지난 8년 쉼 없이 일했다.
적성에 맞는 분야를 찾아서, 몇 번의 ‘신입’을 거치다
영상 제작은 적성에 잘 맞았고, 지금도 매력적인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때 요구되는 속도와 업무량으로 계속 일하다가는 내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당시 나에게 가장 부족한 건 잠이었다. 늦은 귀가 시간, 그러나 제작 일정 상 출근 시간은 똑같았고, 주말에도 늦게까지 일하기도 했고, 휴일도 일이 생기면 나가야 했다. 그 정도의 고강도 업무에도 불구하고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노동환경 속에서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중고 신입’으로 입사한 이후, 다시 초심자의 마음으로 업무를 배우고 익혀 나갔다. 마케팅 업무는 기획 단계부터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지만, 적성에 맞기 때문에 쉽게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고 내 분야에서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다.
일의 특성상 콘텐츠 팀, 디자인 팀, 대행사, 물류팀, 상사 등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협업해야 하며, 프로모션 진행 과정에서는 의견 충돌과 감정적인 마찰도 발생한다. 특히 기획 의도와 다른 결과물이 나왔을 경우, 일정이 촉박한 상황에서 감정적 언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나는 감정을 섞지 않고 설득하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직장생활이 힘든 건 ‘업무 외적인 요인’이었다
지금에서야 이쪽 업무가 내 소질과 맞기도 하고, 성과에 대해 인정을 받기도 하지만, 신입 때는 그러질 못했다. 그런데 첫 직장에서도, 이직을 했을 때도 일하면서 가장 어려움을 겪은 부분은 ‘업무 외적인 요인’이었다.
사실 마케팅 쪽은 ‘여초’ 직업군이다. 대부분 실무 파트를 담당하는 건 여성들이다. 그런데, 그 위에서 수적으로 몇 명 안 되는 남성들이 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남성 직원들은 비슷한 시기에 입사했거나 심지어 후임으로 왔더라도, 그들의 승진과 연봉 협상은 여성들에 비해 훨씬 순탄해 보인다. 실제로도 좋은 위치에 더 빨리 올라서는 경우를 보아왔다.
나의 회사 생활을 정말 어렵게 만들었던 ‘업무 외적인 요인’은 이런 거다. 몇 안 되는 남성 직원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여성 직원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다르게 느껴지는 경우다. 여성 직원인 나는 사내에서 남성 직원과는 다른 감정노동과 서비스 정신을 요구 받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마케팅 분야로 이직하고서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의 경험은 최악이었다. 당시 남성 팀장은 나에게 ‘커피 타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고 나섰고, 손님이 방문했을 때 커피를 타오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는 이후로도 “넌 노력하지 않는다”는 말로 나를 자주 평가했다. 그가 ‘노력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일과 관련한 분야가 아니었다. 감정노동, 남성 상사들에게 해야 하는 서비스 정신, 혹은 친밀감의 표시 같은 것들이었다.
“퇴근 시간 후 회사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본 적이 없다. 같이 술도 마시지 않고, 친해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의 거듭된 질책에, 나도 ‘노력’해보려고 음주 자리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조차 “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느냐”는 질책을 받았다.
한번은, 그가 공적인 자리에서 나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며 공개적인 질책을 가했다. 내가 어느 날 먼저 퇴근하면서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기억이 없었다. 아마도 상사가 아직 퇴근하지 않았는데 먼저 퇴근하는 신입이 ‘죄송합니다, 먼저 퇴근하겠습니다!’라며 크게 외쳤어야 했던 모양이다. 난 싸가지도 없고, 눈치도 없는 신입이었던 게다.
‘네 문제가 아니야, 조직문화가 문제야’
이제 와서 되돌아보면, 그 모든 상황이 손바닥을 보듯 빤하다. 당시 남자 팀장은 자신이 원하는 여자 후배가 들어온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표에게도 나에 대해 좋은 평가를 보고했을 리 없고, 대표는 나의 말은 듣지도 않고 “너는 노력하지 않는다”는 똑같은 소리를 해댔다.
신입이라 미숙할 수 있는 일도, 팀장은 다른 직원들 앞에서 나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질책을 했고, 내가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며 비웃기까지 했다. 인신공격과 고성이 오가는 일이 그곳에서는 자연스러웠다.
결국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치료를 받는 과정에 외부의 도움과 조언을 청하면서, 그때야 알게 되었다. 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사내 조직문화가 문제이고, 내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팀장이 내게 하고 있는 언행이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을.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더이상 내 소중한 1분도, 그 어떤 에너지도 그 조직에 쓰고 싶지 않았기에 되도록 빨리 회사를 떠났다.
그런 신입 시절을 거쳐 이제는 일도 조금 익숙해졌고, 짠밥도 늘어 그런 일을 당하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업무 외적인 요인’, ‘사내 정치’같은 것에는 소질이 없다.
회사에 여성 신입이 들어왔을 때 그들이 겪는 어려움이 눈에 보이곤 한다. 한편으론 사내에 수적으로는 훨씬 열세인, 몇 안 되는 남성 직원들과 남성 상사들 사이에 형성된 ‘남성연대’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업무 외적인 요인, 사내 정치에는 소질이 없는 나는 이 일을 좋아하고 적성에도 잘 맞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얼마나 계속 일할 수 있을지, 앞으로의 비전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마음 속 깊숙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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