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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번역가의 세계에 들어선 지 22년
22년 전, 처음으로 영상번역을 시작했다. 주로 영어로 된 드라마나 영화, 애니메이션 등을 한국어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방송국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받아 와 플레이어로 영상을 재생시키며 작업했다. 리모컨의 스탑 버튼과 리와인드 버튼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누르며,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열악한 환경에서 번역을 했던 것 같다.
언어를 다루는 게 좋았고, 영어 대사를 맥락과 분위기에 맞게 한국어로 바꾸는 데에서 보람을 느꼈다. 특히 더빙 번역을 많이 한 편이라 성우들이 입 길이에 맞춰 연기할 수 있도록 대본을 만들어야 했다. 골방에서 1인극을 하며 대사를 고치고, 내가 한 어설픈 연기를 녹음해서 들어보며 번역을 했다. 한정된 길이를 맞추면서도 딱 알맞은 대사를 만들어 냈을 때는 나 홀로 깊은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단순히 재미와 보람 때문에 이 일을 택한 건 아니었다. 당시에 나는 여러 가지 조건에 맞춰 이 직업을 선택했다. 어느 정도 수입이 보장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으며,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고민 끝에 이 일을 택한 것이다.
오르지 않는 번역료
영상번역료는 천차만별이라 모든 번역가가 같은 조건을 적용받는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물가 상승에 비해 번역료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나는 다양한 경로로 다양한 채널에 방영되는 영상번역을 해 왔다. 그중 공중파 방송국은 비교적 번역료가 높고, 방송작가협회의 협상으로 매년 번역료가 조금씩 인상되는 편이지만, 케이블 TV나 OTT의 경우는 상황이 좋지 않다. 중간에 에이전시가 끼면 더욱 열악해진다. 나의 경우 공중파 작품을 번역한 경우를 제외하면, 22년간 번역료가 겨우 3, 4차례 정도 올랐다. 5년에 한 번꼴도 안 되는 수준이다.
게다가 경력도 거의 인정해 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경력 상관없이 무조건 1분당 얼마, 10분당 얼마라는 식으로 똑같이 번역료를 산정한다. 내 경우는 딱 한번, 딱 한 방송사에서만 10년차 이상의 경력을 인정받아 신입 번역가보다 번역료를 높게 산정받았다. 22년 프리랜서 인생의 유일한 승진(?)인 셈이다.
결국 내 수입은 경력이 차고 나이가 들수록,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기술은 숙련되고 경력은 많아지는데, 물가 인상도 경력도 반영되지 않으니 말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경기 침체와 유튜브 등 대체 플랫폼의 등장으로 OTT나 TV 채널에서 주는 일감이 줄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고민을 압도하는, 더 거대한 변화가 찾아왔다. 지난 2~3년 사이 급격히 발달한 AI가 그것이다.
유능한 번역가의 등장, AI
2, 3년 전쯤 같이 일하는 피디가 말하길, 요즘 젊은 작가들은 대본을 받으면 우선 AI를 이용해 초벌 번역을 돌린 후 번역을 시작한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당시만 해도 AI 번역의 질이 미흡해서 그렇게 전적으로 대본을 맡기는 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도움이 된다고 해도 전체 번역을 AI에 먼저 맡긴다는 게 비윤리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AI의 번역 실력은 급속도로 발전했고, 접근도도 순식간에 높아졌다.
아직 한계가 없진 않지만 유능하다. 한때,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번역 작업에는 맥락을 파악하고 숨은 뜻을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기에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맥락도 AI가 더 잘 파악한다.
얼마 전, 애니메이션 속의 캐릭터가 뜬금없는 대사를 하는 장면이 이해되지 않아 AI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알고 보니, 그 대사는 오래전에 출간된 소설의 제목을 살짝 비튼 것이었다. 나는 영어권 TV 쇼에 등장하는 유행어나 소설 속 문장, 서구권 인물들을 모두 알지 못한다. 이해가 안 되는 대사는 구글링을 하고 원어민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늘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AI는 그런 것까지 귀신같이 잡아채서 그 대사가 나온 배경을 설명해 주고, 한국 정서에 맞는 여러 버전의 대사까지 제안해 준다.
물론 최종 검토를 하고 대사를 다듬는 데에는 여전히 사람 손이 필요하지만, 솔직히 나보다 훨씬 유능한 번역가를 비서로 쓰고 있는 느낌이다. 도움이 되고, 번역의 질도 한편으로는 더 높아졌다. 하지만 쓰면서도 무섭다. 이걸 이렇게 써도 되는 건가? 쓰지 않으면 게으른 번역가 같고, 쓰면 쓰는 대로 스스로 번역가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 같다.
‘40대 이직’, ‘재교육’, ‘AI 시대 살아남는 직업’을 검색하며
사실 ‘나의 노동기’를 쓰면서, 앞으로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거나, 그래도 이 일은 가치 있는 일이니 계속해 보겠다거나, 그런 말로 마무리해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했다. 상투적이지만 그래야 건강한 직업인다워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지금 그냥 길을 잃은 느낌이다. 사실주의 화가 앞에 어느 날 갑자기 디지털카메라가, 그것도 전 세계에 공짜로 공급됐을 때의 느낌과 비슷할까.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번역에는 인간의 손길이 필요하고, 장인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게 맞는지, 언제까지 유효할지 잘 모르겠다.
물론,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으니 인간의 일이 사라져야 한다는 논리는 위험하며, 사회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있다. 기술 발전으로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직업을 재교육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개인으로서는 자꾸 주춤하게 된다. 예전 같으면 하루종일 걸릴 번역을 AI는 몇 초 만에 해낸다. 빠르고 효율적이며, 때로는 인간보다 오류가 적다. 더 유능한 존재가 있는데 굳이 내가 이 일을 해야 할까? 내가 존재할 이유가 정말 있을까? 계속 일하기를 원한다고 해도 과연 할 수나 있을까? 짧은 시간에 수많은 문장을 번역하는 기계 앞에서 나는 어떤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오늘도 AI와 대화를 나누며 번역을 했다. 여러 질문과 토의 끝에 원문의 뉘앙스를 살린 좋은 문장을 만들어 냈을 때는 여전히 기쁘다. AI가 예뻐 보이기도 하고, 고맙다고 인사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작업 중간중간에 40대 이직, 직업 재교육, AI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 이런 것들을 검색해 본다.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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