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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 ‘부동산’, ‘로또 분양’, ‘갭투자’ 등으로 귀결되고 마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좀 다른 집 이야기-청년, 여성,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함께 고민해나갈 주거의 권리에 관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민달팽이유니온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였고, 현재는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수 님이 연재를 통해 화두를 던집니다. [편집자 주]
엄마 집에서 쫓겨나기
“나가. 내 집이야.” 태어나 처음으로 퇴거 통보를 들은 건 엄마로부터였다. “엄마 집이니 엄마의 규칙을 따라야지. 싫으면 나가서 따로 살아.”
나는 자라는 내내 ‘너 닮은 딸 낳아 어디 한 번 길러보라’는 말만큼이나, ‘네 집도 아닌 집에서 나가라’는 말이 지독히도 듣기 싫었다. 무력해지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이 집을 나가서 대체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인가. 더러운 성격은 나아지질 않고, 집 말고 따로 갈 곳은 없던 내가 할 수 있는 건 퇴거 통보를 듣고도 꿋꿋이 그 집에 머무는 일뿐이었다. ‘나가라니까 왜 못 나가냐’는 말에 대꾸할 것이 없었다.
공공임대에서 주거권의 맛 보기
공공임대는 본래 집이 갖고 있는 ‘공공성’을 극대화하는 장소다. 부동산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거처로서의 집이 무엇보다 절실한 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선택지가 바로 공공임대다. 오랫동안,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의 임대료를 내고 살 수 있다는 단 2가지 사실만으로, 내 존재 불안의 상당 부분은 평온을 되찾는다. 돈 없고 집 없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살 자리를 찾아 헤맬 때, 가장 쉽게 어딘가에 정주를 꾀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살게 된 공공임대는 쾌적하고 멀쩡했다. 계약 기간은 10년이었다. 임대료는 최저시급 수준을 받는 나도 부담 가능한 금액이었다. 이 집을 알게 해준 주거권 활동가는 내게 이것이 바로 “주거권의 맛”이라고 했다. 맛이 기가 막혔다. 일단 10년은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겠구나! 한숨 돌렸다. 10년도 빠르게 흘러가겠지만, 당장 2년마다 이사를 걱정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고, 계약서 없는 불안정한 관계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게 꿀맛이었다.
주거권은 일상의 여유도 줬다. 같은 건물 사람들과 반상회를 하고, 채소를 나눔 받고, 보드게임을 함께 했다. 공동체 관계는 이런저런 여유에서 온다는 걸 알았다. 주거권과 곁들이는 공동체의 맛도 기가 막히게 좋았다.
동네에도 관심이 생겼다. 아는 사람, 아는 가게, 아는 이야기가 쌓였다. 내가 최소 10년은 살 동네였다. 어쩌면 더 오래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 집’, ‘우리 동네’, ‘동네 친구’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들이 내게도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
공공임대라고 다 이렇게 조건이 좋지 않다는 것도 익히 보고 들어 알았다. 같은 건물 안에서 친구를 사귀고 동네 산책을 다니면서, 좋은 공공임대가 더 많아져서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아예 50년 공공임대에 여자들이 모여 산다는 소식을 들었다. 추석이 오기 전에 서울 생활하는 여자들 여럿과 함께 그들을 만나러 가기로 약속을 해두었다.
난데없는 국토교통부의 집주인 행세
별안간 국토교통부가 나의 맛 좋은 주거권 밥상에 찬물을 끼얹었다. 최근 공공주택특별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공공임대주택 계약서에서 임차인 의무조항으로 ‘임차인은 쾌적한 주거생활과 질서유지를 방해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것이다.
무엇이 쾌적함이고 질서유지일까? 구체적으로 △쓰레기를 무단으로 투기하거나 쌓아두는 행위 △소음, 악취 등으로 이웃 주민에게 불편을 주거나 고통을 주는 행위 △폭행, 폭언 등으로 이웃 주민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불안을 조성하는 행위 △그 밖에 공동생활의 평온과 질서를 현저히 방해하는 행위를 질서유지를 방해하는 행위로 규정한다.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다. 민간주택시장에서 벌어지는 흔한 일들이다. 어느 이주노동자는 향신료 냄새 풀풀 풍기는 요리를 하지 말라며, 창문 열고 요리하면 퇴거 시킬 것이라는 협박을 듣는다. 어느 사회 초년생은 자꾸 애인이 집에 들락날락하면 퇴거시킬 것이라는 협박을 듣는다. 주택임대차 계약 관계에서도 온갖 차별적 조치들이 벌어지곤 하지만, 집을 사유재산의 영역으로 취급하는 사회풍조 하에 이들 세입자가 처한 곤경은 개인의 몫이었다.
그나마 공공임대에 들어서야, 함부로 차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임대인의 횡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덕분이었다. 그런데 웬걸, 국토부가 공공임대가 가진 본연의 공공성을 해치고, 돌연 민간주택시장의 임대인들과 다름없이 굴 결심을 적나라하게 내보인 것이다.
지난 6월 16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해당 (임차인 의무) 조항은 ‘주거약자’를 겨냥한 차별과 배제의 근거가 될 수 있으며, 사회적 낙인과 혐오를 제도적으로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게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편안하고 안전해야 할 공간을 감시와 통제의 공간으로 전락시키며, 규범에서 비껴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불편하고 불안한 존재’라는 차별과 낙인을 제도화하는 시도’라고 비판하며, 개정안 철회를 요구했다.(참고: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성명서 “국토교통부는 주거약자 배제하는 ‘질서유지 의무’ 조항, 즉각 철회하라”)
지난 6월 20일에는 주거권을 침해하는 반인권적이고 반헌법적인 개정안 철회를 요구하며 38개 인권사회단체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공공임대에 살고 있는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학생회장 요지 님이 다음과 같이 발언하였다.
"저는 희귀난치질환과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집다운 집에 살고 싶어서 임대주택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혼자 하는 주거생활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몸이 떨리고 말을 듣지 않으니 밥을 해 먹을 수 없었습니다. 음식을 만들 수 없으니 매일매일 빵과 우유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너무 마르고 기운이 없어 밖에 나가는 게 두려울 정도였습니다. 청소나 빨래 같은 것도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장기요양등급을 받고 요양보호사 님이 저희 집을 처음 왔을 때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아, 나 여기는 못할 거 같아요’. 아마 그때 국토부 공무원이 저희 집에 왔었더라면 당장 방 빼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 저나 그이나 집만 주고 혼자 알아서 살라고 하면 사람답게 못 살았을 겁니다. 그러나 요양보호사, 활동지원사로부터 도움을 받으니 남들 보기 창피하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국토부가 시행규칙을 개정해 (공공임대주택에서) 내보내려고 하는 사람들도 저 같은 사람일 겁니다. 국토부에 이 한마디 꼭 하고 싶습니다. 저는 집을 더럽히고 냄새 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집에서 사람답게 사는데 돌봄이 조금 필요한 사람입니다."
38개 인권사회단체들은 본 개정안이 ‘목적의 정당성에 비해, 수단의 적합성과 침해의 최소성 원칙을 심각하게 위배하여 반인권적이며, 경제·사회적으로 취약한 입주민들을 위협하는 폭력적’인 개정안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공동의견서를 국토교통부에 제출하였다. 입법예고 기간이 끝난 현재, 개정안은 아직 공포되지 않았다. 단체들은 새 정부에 개정안의 조속한 폐지와 공공임대 주택 입주자에 대한 주거 유지 및 복지 지원을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돌봄의 공백’은 퇴거의 명분이 될 수 없다
‘남들 창피하지 않게 사는 집’은 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집에서 사람답게 사는데 돌봄이 조금 필요한 사람’은 우리 모두이다. 나는 셰어하우스에서 살며 갖은 돌봄을 받고, 배웠다. 온갖 여자들에게 민폐를 끼쳤다가, 어떤 여자들을 인내했다가를 반복하며 배웠다. 집을 둘러싼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는 여력은 돌봄 관계의 유무에서 결정된다. ‘집’으로 엮이는 관계란 마냥 청결하고 아름다울 수 없는 종류의 것이기에 그렇다.
어느 날이었다. 대변을 보고 물을 내리지 않았던 룸메가 어느 날 그 물을 대신 내려준 이들의 반려동물로부터 똥 봉변을 당했다. 그러나 룸메는 어김없이 그를 사랑해줬다. 어떤 날은 꼰대 상사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신 뒤 지하철역에서 기절하듯 잠든 룸메를 다른 룸메가 택시 타고 데려와 구토를 닦아내고 씻겼다. 또 어떤 날은 코로나에 걸린 룸메에게 과일을 사다 주었던 룸메가 바로 다음 주에 회사에서 코로나에 감염되어 왔고, 약과 간식을 품앗이 받았다. 또 어떤 날이었다. 종이봉투를 산처럼 쌓아 모아두는 룸메를 벼르고 있던 다른 룸메들이 장난스럽게 그를 놀리며, 더 질 좋은 종이봉투와 이제는 버려도 될 종이봉투를 솎아내 버려주었다. 그 종이봉투들은 모두의 공공재가 됐다.
국토교통부는 돌봄을 모른다. 가만 보니 국토교통부는 자신의 할 일이 오직 주택건설인 줄 아는 듯하다. 그러나 집에 관한 일은 돌봄 노동의 영역을 오간다. 그러니 국토교통부의 역할과 책임 또한 주택 ‘공급’에서 그쳐선 안될 일이다. 집이 본래 갖고 있어야 할 공공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지금은 공존의 방식으로서 ‘돌봄’을 기준으로 주거 정책의 방향을 바로 세워가야 할 때다.
국토교통부에 페미니즘이 필요한 까닭이다. 더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공공임대를 원하고, 공공임대에 살고, 공공임대에서 관계 맺으며, 공공임대에 관해 온갖 이야기들을 함께 해나가면 좋겠다. 국가의 가장 대표적인 주거권 보장 정책이 공공임대다. 집이 본래 갖고 있는 공공성이 가장 적극적으로 구현되는 장소가 바로 공공임대다. 동시에, 집은 돌봄을 주고받는 대표적인 장소다.
공공임대 정책을 후퇴시키는 시도는 민간주택시장에서 살아가는 우리 곁 동료들의 삶에도 함께 영향을 미친다. 부동산으로서의 집에 매몰되어 거처로서의 집조차 뒤흔들리는 여성들을 우리 어깨 뒤에 남겨두지 말자. 여성 홈리스가 살 수 없는 집, 저장 강박이 있는 내 동료의 어머니가 쫓겨나는 집,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질서유지 방해 운운하는 시비 걸리는 집, 그런 집들의 가능성을 함께 지워내자. 돌봄과 공존의 가치를 모르는 국토교통부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쳐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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