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소비하는 이미지들의 ‘효과’에 대해 고민해봐요논문 밖 인터뷰⑦ 「시각예술에서의 여성 재현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판…」 연구자 이충열(下)〈페미니스트 예술가의 실천이 예술과 운동의 경계를 넘나들게 되는 이유는 과거에 만들어진 남성 중심의 시각예술이 지금-여기에 미치는 악영향을 외면할 수 없고,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기 위한 예술 실천이 위계적 사고를 기반으로 형성된 미술의 경계와 제도에 순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억압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활동은 정상성의 규범에 대한 도전을 동반한다. 또한 일상에서 예술을 분리해낸 근대적 사고가 이론과 실천, 작업과 놀이, 예술과 운동을 구분하려 하지만 이 세계의 구조에 관심을 두고 교차적인 관점으로 사유하는 페미니스트는 이러한 구분선을 넘나들며 영역을 확장하고 경계를 해체하며 예술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회적 예술활동가, 구체적으로는 페미니즘 예술활동가가 된다.〉 -이충열, 「시각예술에서의 여성 재현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판 및 대안 실천 사례: 예술과 운동의 경계를 넘나드는 본인의 활동 분석을 중심으로」, 2025:144p
충열(화사)은 시각예술에서의 여성 재현에 관한 석사학위 논문에서, 페미니스트 예술가로서의 정체성과 실천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한다.
-현재는 ‘예술이 사회운동과 맞닿는 지점’에서 어떤 고민이나 실천을 이어오고 있나요? 또 더 많은 페미니스트 시각예술가들이 등장하고 시각문화를 바꿔나가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조건이나 제도적 변화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오히려 예술가가 너무 대단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겠다(웃음). 특별해서 예술가가 아니라, 기존의 언어 말고 어떻게 해야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를 열심히 고민하는, 그래서 자기 언어를 개발하고 발견하려는 사람이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해서 지금은 잘 지켜보고 있어요. 한 명의 시민으로서 관찰하고, 기억하고, 간직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느껴요. 예술가로서 뭘 대단한 걸 해야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그때 받았던 에너지를 꺼내 쓸 수 있도록 채워두고 싶어요.
논문에 쓰지는 않았는데, 2024년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 전시를 서울, 울산, 공주에서 진행했거든요.(한국다양성연구소 주최) 울산에서는 문화센터 같은 장소에서 전시했는데, 우연히 들어온 장년 여성 관람객들이 제 작업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며 놀랐어요. 어려운 개념 없이, 아주 쉬운 언어로 권력 지도를 함께 그려보는 방식이었거든요. 어떤 분은 그림을 보면서 ‘내가 왜 이런 기준에 길들여졌지?’ 하고 골똘히 생각하고 나가셨어요. 자기 정체성이나 소수자성만 고민하다가, 모두를 위한 화장실의 ‘모두’에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분들이나 돌봄을 주고받는 이들 등 자신의 경험 안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주체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피드백도 좋았어요. 앞으로도 제 전시가 다양한 방식으로 자극을 받고 사고를 확장하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그는 일상 속에서 관찰하고 기억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어폰을 끼지 않고 주변의 소리를 듣고, 사람들의 말에 현재의 시국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는 그에게 중요한 예술 실천의 연장선이다.
시각예술은 시각 중심의 문화를 뒤흔드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충열은 이렇게 말했다. 시각은 물리적 거리를 유지한 채로 대상을 소비하게 만든다. 이런 시각 중심주의는 근대 미술에서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방식과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페미니스트 시각예술가는 이 이분법적 감각 체계를 균열 내는 존재여야 한다고 말한다.
“익숙한 시각문화를 낯설게 만들고, 시각성의 문제를 알리는 게 페미니스트 시각예술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처럼 문제 의식을 가진 시각예술가나 페미니스트들이 많아진다면, 기존의 시각문화에 다양한 방식으로 균열을 내고, 이분화된 사고나 대상화하는 재현도 좀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요? 보기 좋다거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되돌아보고 다양한 기준을 받아들이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많아질 테니 더 좋다고 생각해요. 제가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그는 시각예술 자체가 공공적 가치를 품을 수 있다고 믿는다. 단지 산업화된 미술 시장이나 취미 소비로 환원되지 않도록, 그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적 조건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문화예술 지원 제도가 ‘멋진 이미지’만을 평가 기준으로 삼지 않고, 사회적 감각을 자극하는 예술 실천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술가와 활동가의 교차점이 바로 여기인 것 같아요. 예술은 원래부터 공공성을 가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사회에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넓어져서 문화예술운동을 하는 사람들, 문화예술을 통해서 이 사회를 좀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외모지상주의에 의해 여성청년이 겪는 어려움에 관해 제가 10년 전에 했던 작업을 보고, 어떤 분이 ‘지금은 시대가 달라지지 않았냐, 나도 이전보다 더 당당해졌는데, 작가님은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시냐?’고 하는 거예요. 맞아요. 저는 달라졌죠. 하지만 이후에도 그 작업이 전시에서 공감을 받고, 재작년까지도 여대생들이 기획하는 전시에 초대받았거든요. 그러니까 젊은 여성이 경험하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은 거죠.
그래서 각자가 자신의 위치성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시점들, 아직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대상화와 억압 같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의 시선이 어떤 관점에서 형성된 것인지 인식하고,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에 대해 인식할 수 있는 어른이 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질문은, 충열의 작업과 삶 전반을 투과하는 실천의 축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시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작업을 통해 끊임없이 되묻는다. 무엇이 새로운 시선이라고 정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보이지 못했던 것을 인식하고, 거리 두기를 통해 자신의 프레임을 자각하며, 경험을 통해 그 자리를 메워나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충열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워크숍과 교육을 꼽는다. 그는 어린이부터 청소년, 비예술 전공 성인 등 다양한 참여자들과 만남을 꾸준히 지속해왔다. ‘재현에 대한 부분은 교육으로 계속 균열을 만들고, 그림을 비롯한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예술 실천을 해야겠다.’고 그는 말했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히 교육 활동이나 전시를 넘어, 예술가로서 사회적 시선을 뒤흔드는 행위로 이어진다.
“페미니스트는 자신이 소비하는 이미지가 담고 있는 의미와 효과에 대해 고민을 했으면 좋겠고, 시각예술가들은 자신이 생산한 이미지가 어떤 효과와 영향을 줄 지에 대한 책임성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이미지를 생산해서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다면 더욱 그 이미지가 어떻게 소비될지 생각해야죠.”
“작년 공연을 통해 저의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진 것 같아요. 발달장애 청년예술가들과 짝을 지어서 무대를 옴니버스로 짧게 꾸리는 거였는데, 제 짝꿍을 통해 소리낼 때 입의 감각적인 즐거움, 유희를 알게 되면서 즐거움과 감각에 집중하며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왜 우리는 이렇게 다 쓸모가 있어야 하나, 자기를 착취해야 하나.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 착취하고 성공을 위한 도구로 삼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 다른 삶의 방식과 언어를 가진 분들을 더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충열이 말하는 ‘새로운 시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도 없던 전혀 새로운 시선을 상상하기보다는, 오히려 지금까지의 시선을 낯설게 만들고, 자신이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충열은 그 감각을 뒤흔들고 확장해나가는 어른, 그런 예술가로서 자신을 호명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가 만든 균열 사이에서, 나 역시 오래전부터 나를 불편하게 했던 감각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 본다.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감정일지라도, 그 감각을 외면하지 않기로. 지금, 여기서부터 다시 물어보기로. [끝]
[필자 소개] 홍열매(우주). 지역의 여성단체 활동가로 살다가, 조금 더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에 단체를 떠나 KTX를 타고 서울을 오가며 성공회대 시민평화대학원 실천여성학전공에서 공부했다. 석사학위논문으로 「여성단체 청년활동가의 몸 아픔 경험이 조직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현재는 다시 지역에서, 몸 아픔을 가진 존재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며 지낸다.
이 기사 좋아요 12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논문 밖 인터뷰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문화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