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가 ‘여성’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

[장혜영에게 정치를 묻다] 여성정치란?

장혜영 | 기사입력 2025/08/26 [11:11]

한국 정치가 ‘여성’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

[장혜영에게 정치를 묻다] 여성정치란?

장혜영 | 입력 : 2025/08/26 [11:11]

좋은 정치는 대체 무엇일까요?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은 투표뿐인 걸까요? 누가 정치를 해야 할까요? 우리 일상에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멀게 느껴지는 정치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자 합니다. 정의당 소속의 제21대 국회의원으로 의정 활동을 펼쳤던 장혜영 전 국회의원, 현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지역위원장이 여러분의 질문에 응답합니다. [편집자 주]

 

Q. 지난 겨울 그리고 봄, 뜨거웠던 광장을 지나 정권이 교체되었습니다. 광장을 채웠던 여성들, 다양한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잠시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 응답은 부재한 상황입니다. 새 정부의 인선에서도 여성의 얼굴은 매우 부족합니다. 또,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이는 ‘갑질’ 논란에다가, 여성운동계가 요구해 온 차별금지법, 비동의 강간죄, 생활동반자법 제정에 대해 아직도 ‘사회적 합의’ 운운하며 유보적 입장을 표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여성이 해야 할 정치, 여성으로 대표되는 정치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됩니다. ‘여성정치’는 과연 무엇일까요?

 

A. 안녕하세요. 장혜영입니다. 〈일다〉 독자들과 함께 이렇게 묻고 답하는 글쓰기를 통해 소통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그런데 첫 기고부터 아주 묵직한 질문이 저를 기다리고 있네요. ‘여성정치란 과연 무엇인가.’

 

제가 우선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남성 정치인들이 ‘남성정치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절대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여성 정치인들은 꼭 한번씩 ‘여성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마치 통과의례처럼 받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예비 여성 정치인들이 계시다면 이 질문에 대한 여러분만의 재치있는 대답을 준비해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남성에게는 남성정치를 묻지 않지만 여성에게는 여성정치를 묻는 이 대조가 의미하는 바는 정치의 영역에서 여성이 당연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연한 존재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남성 정치인들은 ‘남성정치’를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류의 긴 역사에서 정치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남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정치’는 곧 ‘남성정치’입니다.

 

한반도에서도 그렇습니다. 왕정 시대에도, 식민지 시대에도, 독재 시기에도, 민주화 이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대의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남성이었고, 이것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여겨져왔습니다. 봄에 꽃이 피고, 겨울에 눈이 오듯이 말입니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여성의 존재입니다. 여름에 폭설이 내리고, 겨울에 주황색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것처럼 말이죠. 여성정치는 낯선 일이고, 변화이며,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므로 설명이 필요합니다. 설명은 변화의 몫입니다. 역사적으로 남성의 세계였던 정치에 여성의 등장은 그 자체로 파격이고 난입이며 설명이 요구되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남성의 세계에 난입한 여성을 공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여성정치’에 관해 질문공세를 퍼붓지요. 하지만, 여성정치에 대한 질문이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설명을 요구하는 것은 지금까지 남성정치를 곧 정치 그 자체라고 여겨온 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 정치인들에게 숙명처럼 다가오는 ‘여성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은 정치의 역사가 살아있는 변화에게 던지는 진지한 질문입니다. 또한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잠정적 답변에서 중대하게 누락되어온 부분이 있음을 일깨우는 귓속말입니다.

 

▲ 2020년 4월 6일 정의당이 21대 총선을 앞두고 광화문에서 ‘텔레그램 n번방 방지 처벌법’ 제정을 외쳤다. (제공: 장혜영)


‘여성에 의한 정치’의 쟁점들

 

그렇다면 여성정치란 무엇일까요. 익숙한 두 가지의 대답이 있습니다. 하나는 ‘여성에 의한 정치’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을 위한 정치’입니다. 얼른 생각하면 이론의 여지 없이 분명한 답변인 것 같지만 조금만 곱씹어보면 의외로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에 의한 정치’부터 볼까요. 성별이 여성인 사람이 하는 정치는 분명 여성정치입니다. 그러나 성별은 여성인데, 여성들이 겪는 차별이나 불평등의 문제에는 무관심하게 방관하거나 역으로 문제를 조장하는 정치를 펼친다면 어떨까요? 즉, 여성에 의한 정치이기만 하면 여성을 위하지 않거나 심지어 여성을 해하는 정치라도 여성정치라고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요? 일단 여성에 의한 정치이기는 하니 여성정치가 아니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여기서 마침표를 찍기에는 뭔가 진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최소한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여성에 의한 정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여성정치의 한 단면일 뿐, 여성정치의 전부일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한편 ‘여성’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여성에 의한 정치’의 경계는 달라집니다. 저는 ‘여성에 의한 정치’라는 테두리 안에 당연히 트랜스여성의 정치가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에 의한 정치’의 범위는 논쟁의 대상입니다.

 

‘여성을 위한 정치’의 쟁점들

 

그렇다면 ‘여성을 위한 정치’는 어떨까요. ‘여성정치란 여성을 위한 정치다’라는 문장은 분명해 보이지만, 막상 구체적인 사안에서 여성을 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답하려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됩니다. 같은 사안에 관한 정반대의 주장이 모두 ‘여성을 위해서’라고 말해지기도 합니다.

 

여성할당제를 둘러싼 논쟁을 예로 들어볼까요. 한국에는 정치 대표성 영역의 구조적 성차별 개선을 위해 17대 총선을 앞두고 공직선거법상 비례대표 여성 공천 50% 의무할당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이전에 채 10%도 되지 않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13%로 올랐고, 이후 꾸준히 개선되어 22대 국회 현재 20%에 도달했습니다. 반면, 22대 총선 직전, 개혁신당의 비례대표 1번 여성후보로 당선된 이주영 현 개혁신당 국회의원은 총선 공약으로 공직선거법상 여성 할당제 폐지를 공약했는데요. “불필요한 여성할당은 여성에게 가장 해롭다”, “본인의 능력을 의심하게 만들고, 요행과 부당한 배려를 기대하게 만들고, 결과에 승복하는 연습의 기회를 잃으며, 결국 사회에서 준비되지 못한 자로 남겨지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뿌리 깊은 성차별이며 가스라이팅”이라고 말했습니다.

 

여성가족부도 뜨거운 감자입니다. 여성들을 위해 범부처 여성정책의 컨트롤타워로 설립된 여성가족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성가족부가 부문화되어 오히려 실질적 성평등을 실현하기보다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므로 폐지하고 각 부처가 관련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여성들을 위해 더 낫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어떻습니까.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성차별을 금지하므로 여성을 위한 법이라는 주장에 맞서, 트랜스젠더의 차별을 금지하므로 곧 여성을 공격하는 법이라는 새로운 주장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격돌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구체적 쟁점을 두고 서로가 여성을 위한다고 논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이렇듯 ‘여성을 위한 정치’의 구체적 내용은 생각보다 모호하며 광범위한 논쟁의 여지를 품고 있습니다.

 

또, 여성을 위한다는 것이 ‘여성만을’ 위한다는 것인지, 내용적으로 여성을 위하는 것이면 여성 아닌 다른 성별에 의해 이뤄지는 정치도 여성정치라고 부를 수 있는지와 같은 쟁점들도 있습니다. ‘여성정치란 무엇인가.’ 진지하게 생각할수록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 2024년 9월 5일 열렸던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 -정치, 이번에는 제대로 해결하자!〉 (제공: 장혜영)


당신이 상상하는 ‘여성정치’의 풍경은 무엇인가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 어려운 질문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여성정치란 ‘여성에 의한 정치다’, ‘여성을 위한 정치다.’ 이런 대답들은 결국 우리가 원하는 여성정치의 상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지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여성정치를 원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어떤 구체적인 풍경을 상상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와 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여성정치’라는 말을 떠올리며 이런 풍경을 상상합니다. 우리는 더 많은 여성들이 정치에 진출해 활동하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하나의 성별이 의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 않는 국회를 상상합니다. 이전까지 사람들이 정치적 주요 의제라고 여기지 않았던 여성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정치가 진지하게 다루며, 경청할 만한 해결책을 내놓고 시행하고 보완하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설령 그 과정에서 첨예한 쟁점이 불거져도, 민주주의와 인권존중의 틀 안에서 정면으로 토론하며 마침내 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아내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그 결과, 다양한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여러 차별과 불평등,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여성뿐만 아니라 과도한 성별 이분법적 사회규범에 갇혀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모든 성별/성적지향의 사람들이 보다 자유롭고 존엄한 삶을 자기답게 살아가는 사회를 상상합니다.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곳곳에서 울고 웃으며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그렇게 현재의 자연스러운 ‘남성정치’가 언젠가 역사의 유물이 된 사회를 상상합니다. 사실 이것은 성별로 누군가를 부당하게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존엄을 보장하는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헌법이 상상하고 약속한 세계입니다.

 

여성정치를 논할 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접근법은 이 단어를 통해 우리가 만들어가고자 하는 세상과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런 접근은 ‘좋은 삶’에 대한 우리의 공유된 가치와 감각을 일깨웁니다. 반면, 여성정치라는 단어를 마치 공인영어시험 점수처럼 특정한 조건을 달성해 따내야 하는 등급이나 자격처럼 간주하고, 그 합격과 불합격의 조건을 미리 정한 뒤 엄정하게 따지는 것이 여성정치를 논하는 좋은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조건이 엄밀하면 엄밀할수록 그 기준에 동의하는 사람과 그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적어질 수밖에 없고, 그런만큼 여성정치의 기반은 약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누구에게도 여성정치의 획일화된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 있는 권리는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현실에서 ‘여성정치’는 볼드모트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단어를 말하기를 꺼려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해리포터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볼드모트를 경외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여성정치는 경외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경시의 대상입니다. 현재의 대한민국 제도권 정치가 ‘여성’을 대하는 두 가지 대표적인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공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시하는 것입니다. 선거 때만 되면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제도적 조건 하에서, 여성들은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하는 일에 익숙합니다. 이러한 선택이 누적되며 여성정치의 쟁점들은 발전하기는커녕 점점 더 퇴행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여성정치인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22대 국회에는 그 어느 때보다 여성정치인이 많지만,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온 여성 의제들은 그 대표자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아직도 권력형 성폭력이 만연하고 2차 피해도 여전합니다. 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하루가 멀다 하고 신종 온라인 디지털 성폭력이 발생하는데, 고위 공직자 후보들은 인권과 과학에 기반한 세계의 스탠다드인 포괄적 성교육 도입에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 지난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 “성소수자 차별도 윤석열도 없는 사회로” 피켓을 들고 있는 장혜영 망원정x 대표 (제공: 장혜영)


여성정치의 퇴행과 함께 민주주의 그 자체가 퇴행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이들은 약자를 공격합니다. 가장 약한 고리를 끊고 차례차례 그 다음을 노립니다. 여성을 공격하고 성소수자를 공격하고 장애인을 공격하던 이들이 결국 불법계엄을 선포하고 민주주의 그 자체를 위험에 빠뜨린 일을 우리는 불과 얼마 전 겪었습니다. 내란수괴를 탄핵하고 정권교체를 했지만, 여성정치에 대한 공격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성 밟는 자, 나라 밟는다!” 지난 3.8 세계여성의날에 광장을 채운 ‘여성 1만인 선언’이 밝히듯, 여성정치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입니다. 그런데 지금 권한과 책임을 가진 이들 가운데 이 위기를 절감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정말 우려스러운 대목입니다.

 

‘여성정치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열린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접근하는 또 하나의 좋은 방법은 여성정치의 이름으로 지금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주한 정치적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이것이 우리 스스로의 노력 없이 저절로 나아지지 않을 것임을 자각하고,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다시 한번 전략을 세우고 동료를 규합하며, 새로운 실험으로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정치적 영토를 만들어내는 것, 최악 아니면 차악이라는 강요를 넘어 최선의 선택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지금 우리가 여성정치의 이름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이것을 ‘페미니스트 정치개혁’이라고 부릅니다. 상대의 실패에 기대는 정치를 구조화하는 이 제도적 한계를 뛰어넘어, 정치 그 자체의 지형을 바꾸는 패기 만만한 여성정치가 필요합니다. 반대로, 지금 여성정치의 이름으로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여성정치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포기와 절망은 여성정치와 별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성정치는 처음부터 절망 속에서 태어난 희망의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압도적 남성지배의 세계를 뚫고 기어코 동등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쟁취해온 인류 진보와 변화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제게 여성정치는 절망의 이름이 아니라 불굴의 희망이며 열린 세계로의 꿈입니다.

 

[필자 소개] 장혜영 1987년생 페미니스트 정치인. 21대 국회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일했으며 현재는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지역위원장이자 국회의장산하법인 ‘한국여성의정’의 이사, 비영리단체 망원정x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러닝크루 ‘다시 뛰는 여성정치’의 공동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썼다.

 

※[장혜영에게 정치를 묻다] 여러분이 궁금한 내용에 관한 질문을 남겨주세요!

https://forms.gle/ChadDMccSzHkwR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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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다우 2025/09/22 [15:41] 수정 | 삭제
  • 여성 정치를 물어보는 이유는 남성 정치인은 남성만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적지만 여성 정치인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만을 위한 목소리를 내도록 사회적으로 강요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여성 정치라는 단어가 금기시 되는 이유는, 여성을 위해 남성의 희생이 당연시 되는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상위층 (국회의원, 기업임원, 경영자)들의 경우 여성의 수가 확실히 적죠 그간 쌓아온 남성들이 서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니까요 그런데 일반적인 국민들의 상황을 보면 기업 전체를 기준으로 신입 직원들에 여자 수가 더 적나요? 아니면 9급 공무원에서 수가 더 적나요? 대체로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국민들에게 여자의 사회 참여를 위해 남성이 희생해라 100중에 51을 여자에게 줘라 라고 느껴지니 남성의 입장에서 불합리 하다고 느낄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여자 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의 표만을 신경쓸건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그냥 자기가 바라는 정치적 방향으로 가야할 뿐이죠 그게 국민의 뜻과 맞으면 재선을 하는거고 아니면 떨어지는 것 그렇게 가야 하나, 여자 표를위해 나를 버리면 망가진다고 생각 합니다. 여성 정치란 여성을 위한, 여성만을 생각한 정치가 아니라 그냥 국민과 나라를 위한 방향의 정치를 하는게 가장 여성정치인이 해야할 방향 아닌가 싶습니다.
  • ㅇㄴ 2025/09/22 [04:27] 수정 | 삭제
  • 윤석열은 가고 이재명이라는 더 큰 똥이 와버렸네. 어째 25만원 받아서 엄청나게 살기 좋아지셨는지 모르겠네
  • 2025/09/22 [04:26] 수정 | 삭제
  • 한국정치에서 여성은 칼일 뿐이지. 정적제거용으로 찌를때 쓰는 칼. 미투거리 하나 오래오래 묵혀놨다가 제거해야할때 뜬금없이 수년전 일 꺼내서 미투로 푹! 정작 자기편은 성범죄 저질러도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100차 가해 하면서까지 쉴드침. 혹은 정치인이 욕먹을만한 자리엔 여성 정치인 내보내서 여자니까 봐달라는 용도로 쓰고. 토론이 주제부터 개쳐발릴거같으면 여성 내보내서 억지떼쓰기와 감성호소로 무마하기. 정치인들 자체가 다 한심하지만 여성정치인은 참... 절래절래
  • 여름 2025/08/31 [15:40] 수정 | 삭제
  • 근데 여성정치인의 비율은 여성정치와 관련이 크지만, 여성정치인이 하는 정치가 여성정치는 아닌 것 같아요. 그렇게 기대하는 사람들만 실망하는 경우가 많고, 성별이 무엇이든 가치를 걸고 나오는 정치인들에게 평등한 정치를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류창욱 2025/08/29 [09:02] 수정 | 삭제
  • 관련 칼럼 https://blog.naver.com/ryu8689/223986529453
  • 센서 2025/08/28 [13:24] 수정 | 삭제
  • 여성정치 얘기가 낯설기까지 한 걸 보면 진짜 후퇴한 것 같기도 하네요. 근데 미국 같은 나라도 여성정치, 젠더정치 갈 길이 먼 것을 보면 한국만 그렇지는 않고. 다들 열심히 싸워가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절망 속에서 용감한 이들이 연대하여 희망을 만들어 가는 것이겠죠.
  • ㅇㅇ 2025/08/28 [12:12] 수정 | 삭제
  • 생각많은 둘째언니 유튜버 시절(?)부터 구독했었습니다. 가끔 장혜영 님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도 보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개인적으로 가난에 대하여 이야기한 영상 좋아했습니다. 정치인 장혜영도 많이 응원했고요. 한국 사회에서 쓰일 곳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치에 관한 리퀘스트 응답을 하신다니까 반갑게 읽겠습니다.
  • The우비 2025/08/26 [18:59] 수정 | 삭제
  • 실망시키지 않는 정치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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