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편견을 넘어

일본 인지저하증 당사자 활동가들이 전한 메시지

박주연 | 기사입력 2025/08/27 [19:43]

‘치매’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편견을 넘어

일본 인지저하증 당사자 활동가들이 전한 메시지

박주연 | 입력 : 2025/08/27 [19:43]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셋째 아들의 등교 시간을 모르게 되거나, 잘못된 시간에 등교를 시키는 일이 있었어요. 회사에선 다른 부서지만 친하게 지냈던 사람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거나, 고객과의 약속을 잊어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세 자녀를 키우고 있는 48세의 야마나카 시노부 씨는 2017년부터 조금씩 이상한 증세를 느꼈다. 집 근처 뇌신경외과 그리고 내과도 가서 검사를 받았지만, “특별한 문제는 없다. 우울증인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2018년 12월, ‘초로기 알츠하이머’(65세 미만인 ‘젊은’ 사람들에게 치매/인지저하증이 나타나는 것)를 다룬 드라마를 보며 ‘안타깝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같이 드라마를 보던 첫째 아들이 생각지 못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저 드라마 주인공이 엄마랑 좀 비슷한 거 같아.” 그렇게 2019년 2월, 야마나카 씨는 초로기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당시 42세였다.

 

▲ 2025년 8월 12일, 서울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인지저하증(치매), 익숙하고 낯선 신세계〉(주최-다른몸들, 협력-메이지가쿠인대학교 사회학부부속연구소) 강연과 대담이 열렸다. ‘다른몸들’ 조한진희 대표가 사회를, 메이지가쿠인대학교 사회학부부속연구소 김원경 교수가 통역을 맡았다. ©일다


야마나카 씨는 이런 자신의 경험을 지난 8월 12일 서울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린 〈인지저하증(치매), 익숙하고 낯선 신세계〉(주최-다른몸들, 협력-메이지가쿠인대학교 사회학부부속연구소) 강연에서 공유했다. 야마나카 씨뿐만 아니라, 도요타 자동차 회사에서 영업직으로 일하다가 39세에 초로기 알츠하이머를 진단받은 탄노 도모후미 씨도 함께했다.

 

온라인 줌으로도 진행된 이번 강연과 대담은 ‘다른몸들’ 조한진희 대표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인지저하증인 가족을 돌보고 있는 돌봄자, 요양보호사, 연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강연을 듣기 위해 참여했다.

 

인지저하증 진단 이후의 두려움과 우울

 

야마나카 시노부 씨는 사실 진단 직후엔 “불안했다기보다 왜 몸이 안 좋았는지 알게 되어 안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곧 불안과 두려움이 음습해 왔다. 인터넷에 인지저하증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면 ‘길을 잃게 된다’, ‘시설에 가야 한다’, ‘아무 것도 모르게 된다’ 등 중증에 대한 이야기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우울증이 점점 심해졌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거의 할 수 없었다. 주변에서는 힘든 일이 있으면 상담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런 친절 앞에서도 ‘저 사람들이 내 기분을 어떻게 알겠냐’는 생각에 마음을 닫아버렸다.

 

하루 종일 이불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던 어느 날, 인터넷 검색을 통해 탄노 도모후미 씨의 이야기를 접했다. SNS를 통해 탄노 씨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의 책 『그래도 웃으면서 살아갑니다』도 읽어보았다.

 

야마나카 씨는 “같은 인지저하증을 갖고 있더라도 이렇게 웃으면서 지내는 사람도 있다는 걸 느꼈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나도 이제 웃으면서 살아가야겠다, 더 이상 울지 말아야겠다고 마음 먹게 되었다.”고 밝혔다.

 

▲ 〈인지저하증(치매), 익숙하고 낯선 신세계〉 강연에서 야마나카 시노부 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일다


누구든 혼자라고 느끼지 않는 ‘이바쇼’(居場所)를 만들다

 

2021년 야마나카 씨는 도쿄에 있는 한 시설로 견학을 갔다. 인지저하증을 가진 이들이 ‘데이 서비스’(재가노인복지대책 사업의 하나로 일본에서 1979년부터 실시되고 있다. 고령자가 낮 동안 시설에서 식사, 목욕, 레크레이션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를 하는 곳이었다. 야마나카 씨는 “참여자들과 시설 스텝이 평등한 관계에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또 참여자들이 시키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친구/동료들과 같이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게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참여자들과 함께 동네를 돌아다니며 우편함에 홍보물을 넣는 일을 했는데요. 어떤 분이 방문했던 곳에 또 홍보물을 넣으려서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아까 거기 넣었잖아.’라며 웃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사는 지역에도 이런 공간을 만들고 싶어졌어요.”

 

야마나카 씨는 자신이 여러 사람에게 도움 받았던 일들을 떠올리며 “이젠 내가 나설 차례”라고 결심했다. 그렇게 2022년 4월, 법인회사 ‘세컨드 스토리’를 설립했다. “인지저하증이 된 이후 인생 2막이라는 의미를 담아서” 만든 이름이다. 같은 해 10월에 데이 서비스 시설인 ‘해피’를, 2024년 4월에는 2호점 ‘오오츠’를 열었다.

 

일본어로 ‘이바쇼’(居場所)는 단지 내가 있을 수 있는 공간이라기보다 나 자신으로서 존중 받을 수 있는 곳,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말한다. 야마나카 씨는 인지저하증 진단 이후 ‘이바쇼’를 찾아다녔고, ‘세컨드 스토리’를 만들고 데이 서비스 시설을 설립한 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이바쇼’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누구든 나 혼자라고 느끼지 않는 그런 ‘이바쇼’를 만들고 싶었어요.”

 

자동차 영업왕에서 ‘동료 지원 활동가’로

 

야마나카 씨보다 먼저 초로기 알츠하이머를 진단받고, 올해 세 번째 책을 낸 탄노 도모후미 씨는 인지저하증 당사자 활동가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39세이던 2013년, 두 딸을 둔 아버지이자 도요타 자동차에서 영업직으로 영업왕에 뽑히기도 할만큼 열심히 일했던 탄노 씨 또한 “진단 이후 불안과 공포로 매일 밤 울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다른 당사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또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불안이 해소되기 시작했다고. 탄노 씨는 “치매를 원망하는 게 아니라,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탄노 씨는 다른 나라 당사자들도 만났는데, 당시 느꼈던 건 “나라와 환경은 다르다 하더라도 인지저하증 진단 이후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같다는 것. 편견이 무서워 집 안에서 틀어막혀 지내게 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또한 “인지저하증과 관련된 정보가 대부분 중증에 관련된 것이고, 당사자를 지원하는 제도가 별로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 인지저하증 당사자 활동가인 탄노 도모후미 씨가 ‘피어 서포트’(Peer Support, 동료 지원)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일다


탄노 씨는 당사자로 직접 목소리를 내는 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피어 서포트’(Peer Support, 동료 지원)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피어 서포트’는 알츠하이머 진단 이후 집에 갇혀버린 사람들은 상담이나 자조모임조차 나올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후 만든 활동이다. 진단 직후, 병원에서 바로 당사자 그리고 당사자 가족을 만나 상담을 하는 일이다. 탄노 씨는 “병원에서 이런 활동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당사자가 은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당사자이기에 아는 정보나 어려움을 공유한다.”고 했다. 이런 활동은 “당사자에게 불안이나 공포가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하는데 도움을 주고, 결국 그것은 그 사람을 돌보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치매’라고 해서 자유, 자립성을 뺏지 말아달라

 

탄노 씨는 자신의 경험과 ‘피어 서포트’ 활동을 하며 800명 넘는 당사자들을 만나온 걸 기반으로 인지저하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특히 강조한 부분은 “당사자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그들의 남은 역량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전히 인지저하증이라고 하면 중증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고,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가 스스로 결정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많은 보호자나 가족이 당사자의 지갑, 핸드폰, 교통카드를 뺏고 외출을 금지시킨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당사자에겐 지배, 독립성이 뺏기는 걸로 여겨지고, 당사자가 무언가를 할 의욕을 잃고 포기하게 되어 우울이나 불안을 더 가중시킨다.”

 

탄노 씨는 “당사자가 할 수 있는 것을 빼앗지 말라. 시간이 걸려도 기다려 달라. 한번 못 하더라도 다음에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지저하증의 사람이 실수한다고 뭐든지 대신해주면 당사자는 오히려 살아갈 방법을 모색할 기회조차 못 갖게 된다. 그것은 자립을 방해하는 일이다. 자립은 모든 걸 스스로 다하는 게 아니라, 도움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립할 수 있게 해 달라.”

 

그 예로 몇 가지 사례를 공유했다. 집 열쇠와 교통카드, 지갑을 자주 잃어버리는 할아버지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방에 세 개의 끈을 달았다. 빨강 끈엔 집 열쇠를, 파랑 끈엔 교통카드를, 노랑 끈엔 지갑을 연결했다. 이후엔 그 세 가지를 잃어버리지 않게 됐다. 또 한 할머니는 자꾸 무언가 잊어버리게 되는 자신을 위해, 식탁 위에 큰 종이를 깔아놓고 거기에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불안도 사라지고 무언갈 잃어버리는 일도 줄었다는 것이다.

 

“저 역시 핸드폰을 자꾸 잃어버리기 때문에 작은 가방에 넣어 항상 메고 다닙니다. 근데 이런 가방도 그냥 가족이 사다주는 경우가 있어요. 당사자도 분명 취향이 있고, 갖고 싶은 게 있을텐데 말이죠. 그렇게 가족이 사다준 건 기억에 남지 않아요. 자신이 고심해서, 자기가 직접 고른 건 기억에 남습니다. 마지막까지 꼭 본인이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지했으면 좋겠습니다.”

 

▲ 탄노 도모후미 씨의 첫 번째 책 『그래도 웃으면서 살아갑니다』(민경욱 옮김, 아르테)


인지저하증 가진 사람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사람’, 우리의 편견이다

 

인지저하증과 함께 살아가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탄노 씨는 ‘사람’이라고 답했고, 야마나카 씨는 ‘우리의 마음’이라고 답했다.

 

탄노 씨는 인지저하증을 가진 사람은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걸림돌이라며, “걱정이 되는 건 알지만 조금 믿어줬음 좋겠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때문에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때문에 성공을 체험하게 된다. 성공을 체험하면 자신감을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당사자가 자신감을 회복하고 긍정적이게 되면, 결국 돌보는 사람들도 덜 힘들게 된다. 당사자가 실수할 권리를 뺏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야마나카 씨는 “나 또한 인지저하증에 대한 오해와 편견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인지저하증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에 따라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진다.”고 했다. 그리고 “환경이 제일 큰 약”이라며, “당사자에게 가족/보호자 외에 ‘이바쇼’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족 간 갈등이 생겼을 때 또 다른 곳에 의지할 수 있다.”고 했다.

 

당사자를 돌보는 이들에게도 한 가지를 당부했다. “오늘 제 이야기를 듣고,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면 그게 앞으로의 걸림돌이 될 거예요. 저는 당사자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으세요. 그 마음을 알고자 해보세요.”

 

한편, 탄노 씨는 “인지저하증은 사실 예방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준비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금 주변 사람들과 친해지지 않으면, 인지저하증이 걸리고 나선 더 어렵습니다. 지금 파트너와의 사이가 좋지 않다면, 인지저하증에 걸렸을 때 바로 이혼 당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을 소중히 여기세요. 그것이 인지저하증을 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탄노 씨는 여전히 도요타 자동차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직원이다. 이제 영업 대신 인지저하증에 대해 알리는 강연과 세미나 등의 활동을 한다. 회사가 탄노 씨의 일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선 어떨까? 인지저하증을 가진 사람이 여전히 노동하며 임금을 받고 자립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일본에서 온 두 활동가가 우리에게 질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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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5/08/31 [12:45] 수정 | 삭제
  • 내가 인지저하증에 걸린다면 동료지원가나 동료상담가가 있다면 굉장히 든든하고 신뢰가 갈 것 같다. 멋진 분들이다.
  • 2025/08/28 [14:33] 수정 | 삭제
  • 치매 조기 증상에 대해 더 많이 연구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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