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하는 베트남 이주여성의 얘기 좀 들어볼래요?

[나의 노동기] 이주여성, 이주노동자를 돕는 통역사의 일

이현지 | 기사입력 2025/09/03 [10:45]

통역하는 베트남 이주여성의 얘기 좀 들어볼래요?

[나의 노동기] 이주여성, 이주노동자를 돕는 통역사의 일

이현지 | 입력 : 2025/09/03 [10:45]

베트남에서 태어나 스무 살이 되던 해에 한국에 온 이현지입니다. 스물이면 한국에서는 아직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경우가 많겠지만, 저는 그 어린 나이에 홀로 고향을 떠나 전혀 다른 나라에 이주해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마음속에는 항상 ‘새로운 나라에서 잘 살아가며 가족의 자랑이 되자.’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 나는 베트남에서 온 이주민이자, 한국에서 거주 중인 베트남 노동자, 이민여성, 유학생 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상담과 통역을 하며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병원, 경찰서, 노동청 등 다양한 현장이 내 일터이다. (경남이주여성인권센터 제공)


처음 한국 땅을 밟았을 때, 공항의 차가운 공기와 낯선 냄새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한글 간판들이 빼곡하게 늘어져 있었지만, 그때의 저는 그 글자들이 전부 그림처럼만 보였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마치 작은 섬에 홀로 떨어진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언어, 문화, 날씨, 음식… 모든 것이 새로웠고, 때로는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다행히 저는 한국의 좋은 가족을 만나 많은 도움과 격려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친밀하게 대해 주었고, 덕분에 점차 처음에 느꼈던 외로움과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 한 켠에는 ‘언젠가 나도 한국 사회에서 나만의 자리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당신 아니면 도와줄 사람이 없을 거란 그 한마디

 

한국 생활 2년째, 여전히 한국어가 서툴렀던 어느 날, 다니던 한국어 수업에서 선생님이 제게 뜻밖의 제안을 하였습니다.

“베트남 분들이 병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통역을 한 번 해보는 게 어때요?”

 

순간 저는 당황했습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제대로 못하면 어떻게 하지?’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아니면 도와줄 사람이 없을 거예요. 할 수 있어요.”

 

그 믿음 어린 한마디가 제 마음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렇게 저는 첫 통역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경남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근무하며 통번역과 상담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병원, 가정 내 갈등, 경찰서 등 다양한 현장에서 베트남 이주여성들과 이주노동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한 번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응급실에 실려 온 베트남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급박한 상황이라 의사는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고, 환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제 손을 잡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단순히 ‘말을 옮기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두려움과 불안을 덜어주는 다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경남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실에서 이주여성의 서류 작성을 지원하고 있는 필자의 모습. 지역 내 이주여성을 위한 상담 및 생활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활동이다. (경남이주여성인권센터 제공)


또 다른 날에는, 서류 작성이 복잡해 힘들어하던 한 결혼이민자와 만났습니다. 통역을 마친 뒤, 그녀가 제 두 손을 꼭 잡고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큰 걱정을 덜었어요.”라고 말했을 때, 제 가슴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이 번졌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때로 한쪽에서는 ‘빨리 통역하라’고 재촉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제가 하고 있는 통역은 특정 분야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의료, 문화, 법률, 행정 등 매우 다양합니다. 저는 전문 지식이 부족할 때가 많기 때문에, 매번 사전에 관련 내용을 찾아보고 열심히 준비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의료 통역이 필요한 날이면, 미리 해당 병명과 치료 방법, 관련 용어를 공부합니다. 법률 상담이 있는 경우에는 절차와 규정을 미리 확인합니다.

 

이렇게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지만, 한편으로는 덕분에 매번 새로운 지식을 얻고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만이 아니라 ‘문화’의 통역자

 

또한, 통역은 단순한 언어 전달이 아니라 ‘문화’의 전달이기도 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한국인과 베트남인이 받아들이기가 다르기 때문에, 말투와 표현을 조심해야 합니다. 때문에 저는 두 나라의 문화 차이를 더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로 이주한다는 것은 단순히 언어 문제뿐만 아니라 문화 차이도 함께 겪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센터에서 일하면서 여러 가정 내 갈등 사례를 접했는데, 그중 하나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한 베트남 여성이 결혼 후 한국에 온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때의 일입니다. 한국어가 서툴러 대화를 많이 하지 못했고,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었고, 산후조리원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기가 자주 울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아기가 자주 울면, 귀신이나 나쁜 기운을 쫓기 위해 칼을 수건에 싸서 베개 밑에 두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 분도 그 풍습대로 아기 베개 밑에 작은 칼을 넣어두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시어머니가 방을 정리하다가 그 칼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화를 냈습니다.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그렇지, 어떻게 며느리가 칼을 숨겨 두었냐”며 매우 불안해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베트남의 전통 풍습일 뿐, 누구를 해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는 점을 설명드렸습니다. 처음에는 그 시어머니가 “당신도 베트남 사람이니 며느리 편을 드는 것 아니냐”며 제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센터의 다른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해, 베트남 문화와 풍습에 대한 자료를 보여드렸습니다. 그제야 그 분은 며느리의 행동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지금은 그 베트남 여성분이 한국어도 많이 늘었고, 시어머니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 내가 하고 있는 통역은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의료, 문화, 법률, 행정 등 매우 다양하며,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사전에 관련 정보를 찾아보며 공부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고,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경남이주여성인권센터 제공)


부당하고 불리한 처우를 받기 쉬운 외국인들,

한국 공공기관에 인권 감수성과 다문화 교육 필요하다 느껴

 

통역 일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법이나 제도를 잘 몰라서 불리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는 통역사뿐 아니라, 공공기관의 직원들도 다문화 이해와 소통 방법에 대한 정기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편견 없이, 공정하게 공적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통역을 하며 만난 한 베트남 유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불법체류 신분이 된 후, 일을 하다가 임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후에 결국 체불임금을 받았지만, 다른 사람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그 돈을 모두 인출해 가버렸습니다.

 

그 학생은 우리 센터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저는 학생이 피해자이기 때문에 범인을 고소할 권리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체류 문제로 인한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함께 경찰서에 가서 사건을 신고했고, 저는 경찰에게 사건 내용을 통역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담당 경찰은 그 학생이 불법체류자라서 체포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학생은 매우 당황하며 저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학생을 설득하며 진정시켰고, 센터에도 연락하여 경찰서와 협의를 진행했습니다. 결국 그 학생은 체포되지 않았고, 범인을 찾기 위해 고소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을 통해, 단순한 통역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통역과 함께 법률 관련 문서나 근거 자료가 있어야 피해자가 안심할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안정성과 경제성을 묻는다면…

 

저는 지금 대학에 다니며 전공 지식을 쌓고, 한국의 법과 문화, 사회를 더 깊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언어 실력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이해를 갖춘, 신뢰받는 통역사가 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통역은 제 인생의 방향을 바꿔 준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저는 이 일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었고, 그들의 삶에 작은 빛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어서 항상 저에게 새로운 느낌을 줍니다.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희망과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리로 남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고, 이 일을 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여러 해 동안 일해 왔지만, 아직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지 못했고 여전히 아르바이트로만 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인 수입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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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ㅍㅍ 2025/09/13 [15:30] 수정 | 삭제
  • 뭉클해지는 글이네요.. 꼭 좋은 일자리 얻게되시길!
  • 최선 2025/09/12 [10:18] 수정 | 삭제
  •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이 인격도 성장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하게되었는데, 글쓰신 분이 그런 분이네요. 멋집니다. 하는 일만큼의 공정한 대우를 받고, 꼭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게 되길 바랄게요.
  • 응원 2025/09/12 [08:37] 수정 | 삭제
  • 이런 일은 머리가 무척 영리한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머리가 둔한 사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 곧 좋은 일자리가 생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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