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도쿄의 세타가야구는 2015년 11월, 시부야구에 이어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한 곳으로, 올해 파트너십 제도 10주년을 맞이했다. 동성 커플의 공적 지위를 인정하는 일본의 파트너십 제도는 2025년 5월 31일 기준, 530개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인구의 92.5%를 커버하는 수준이다. 이 제도를 통해 파트너십을 등록한 건은 9,836건이며, 이는 2017년 96건이었던 것에 비해 102배 확대된 것이다.(참고: 공인NPO법인 무지개색 다이버시티 자료 https://nijibridge.jp/data/2500)
그런데 이런 일본조차 2019년 2월 14일, 삿포로, 도쿄, 나고야, 오사카 4곳에서 13쌍이 국가를 상대로 ‘혼인평등’ 위헌·국가배상 소송을 시작했다. 9월엔 후쿠오카에서도 소송을 제기했다. 〈모두에게 결혼의 자유를〉 소송은 현재 “동성 커플의 결혼을 법률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연이어 받으며, 일본에서 혼인평등으로의 길을 열고 있다. (관련 기사: 도쿄고등법원 ‘동성혼 인정’ 5가지 핵심 근거 https://ildaro.com/10092)
이번 도쿄 방문에서 소송 당사자들을 만났다. 혼인평등을 위한 소송을 시작한 이유, 파트너십 제도와 결혼할 권리엔 무슨 차이가 있는지, 또 이것이 성소수자로서 나이 들어가는 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들어보았다.
30년 넘게 함께한 동성 커플이 밝힌 혼인평등 소송 이유 결혼을 선택하냐 안 하냐가 아닌, 시민권의 문제
오에 치즈카 씨(大江千束, 1960년생, 65세)와 오가와 요코 씨(小川葉子, 1963년생, 62세)는 함께 한지 30년이 넘은 커플이다.
오에 씨는 20대 후반, 책 『여자를 사랑한 여자들의 이야기 - 일본 최초! 234명의 증언으로 엮은 레즈비언 리포트』를 접하고 몇 번이나 읽은 후 ‘레구미 스튜디오 도쿄’(1편 기사 참고: 70대 레즈비언의 삶 속에 담긴 역사 https://ildaro.com/10274)를 방문하면서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했다. 오가와 씨 역시 20대 후반, 벽장(성소수자임을 숨기고 사는 것)으로 고립감에 힘들어 하다가 아카(OCCUR)라는 단체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은 일을 계기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때 전화상담을 해주셨던 분이 ‘레즈비언이나 게이는 당신 혼자가 아니다. 세상에 정말 많다. 전세계 곳곳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전 그런 사람을 나 외에 본 적이 없는데요?’라고 하니까 ‘당신이 자신을 숨기고 사니까 그렇죠.’라고 약간 딱딱한 답을 듣긴 했지만.(웃음) 그 분이 30대 이상 레즈비언이 교류하는 모임이 있으니까 알려주겠다고 해서 거길 찾아갔어요. 그 모임을 주최하고 있었던 사람이 오에였어요.”
두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995년 6월, 당시 레즈비언 셋이 만든 공간인 ‘라우드(LOUD)’의 스텝으로 활동하다 1999년부턴 공간을 이어받아 대표, 부대표로 역임하기도 했다. 라우드는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 등으로 2021년 문을 닫았지만, 오랜 기간 퀴어여성들을 위한 공간으로 역할을 해냈다.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의 출입도 환영하는 공간이었다.
두 사람은 일본의 ‘모두에게 결혼의 자유를’ 소송 원고인으로, 재판을 시작한지 6년째가 되었다. 오가와 씨는 처음 변호사로부터 원고인단에 들어오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솔직히 망설였다”고 했다. “개인의 재판이 아니라 국가를 상대로 한 재판이기 때문에 좀 무겁게 느껴졌어요. 일본의 재판은 오래 걸리기도 하고요. ‘과연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하지만 나도, 오에도 지금까지 활동을 하면서 이름과 얼굴을 숨긴 적이 없어요. 숨어서 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소송 참여도 그런 활동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참여하는 게 우리의 목소리를 크게 내는 거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오에-오가와 커플은 사실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오에 씨는 “젊었을 때 결혼 제도는 없어져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살다 보니 “결혼이라는 선택조차 할 수 없는 건 이상하다”는 걸 느끼게 됐다. 오가와 씨도 마찬가지였다. “결혼이라는 게 과연 좋은 것일까” 의문을 가졌고, “레즈비언에게 결혼은 현실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만, 나이 듦의 과정에서 ‘결혼’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제 우리 둘 다 60대이고, 몸도 쇠약해지고 있어요. 죽음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게 보이죠. 그러니까 ‘공적으로 우리 관계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구나, 그것이 꽤 중요하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젊을 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에요.”
오가와 씨는 “결혼을 하든 안 하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지금 동성 커플에겐 그런 선택 자체가 없다.”며 “그런 선택권이 있는 시민과 없는 시민 사이엔 사회적으로 큰 차이가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혼인평등 권리를 마련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이고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파트너십 제도가 있어서 부모님께 커밍아웃할 수 있었어요”
한국과 달리, 일본에는 동성 커플의 지위를 공적으로 인정하는 ‘파트너십 제도’가 있다. 지자체에서 동성 커플인 두 사람이 관계를 증명하면 카드/등록증을 발급하는 행정제도다. 지자체마다 등록을 위한 세부 요건과 혜택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세타가야구 같은 경우, 재해구조법의 적용을 받는 재해가 발생하여 한 사람이 사망했을 경우 파트너십에 등록된 파트너가 조의금을 받을 수 있다. 어린이 청소년 교육 항목에서도 파트너십의 두 사람을 부모로 인정하고 등록할 수 있으며, 임신하지 않은 파트너가 대리인으로서 모자 건강수첩을 신청하고 받을 수 있다. 또한 아이의 학교 행사에도 보호자로 둘 다 참가할 수 있는 등 커플이 이용할 수 있는 행정 서비스가 있다.
오에 씨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주택인 시영/도영 주택의 가족용 넓은 방에 동성 커플도 신청하게 된 것은 큰 변화”라고 짚었다. 오가와 씨는 “예전엔 안 됐지만, 지금은 파트너가 수술할 때 보증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도쿄에서 만난 또 다른 퀴어 여성인 야마가 사야 씨(山賀沙耶, 1981년생, 44세, 야마나시현 거주) 역시 “파트너십 제도가 생긴 건, 정말 큰 변화”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동성 간 파트너십을 공적으로 인정’하는 제도가 만들어진 건, 사회의 인식을 크게 바꿨다고 생각해요. 그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할 수 있었거든요. 세타가야구에 살 때 파트너십 등록을 했고, 부모님한테 “파트너십 등록을 했다”며 커밍아웃을 했어요. 일본 사회에서 마련한 이런 제도가 있으니까 부모님도 반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죠.”
상속, 친권, 주택대출, 유족연금 등 이성 부부와 차등 대우
하지만 파트너십 제도는 각 지자체의 ‘노력’에 기댄 제도이며, 보장하는 권리도 지자체마다 다르고, 결혼한 부부가 갖는 상속권이나 친권, 외국인 파트너 재류자격 등을 인정받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파트너십 등록을 마친 커플들도 “혼인평등”을 외치는 것이다.
2009년부터 활동을 시작, 2011년부터 NPO법인이 된 ‘꼴라보’(Collabo)는 레즈비언과 다양한 여성을 대상으로 상담, 교육, 세미나, 모임 등을 하는 단체이다. 대표를 맡고 있는 하토가이 히로미 씨(鳩貝啓美, 59세)와 그의 파트너 카와치 시노(河智志乃, 53세) 씨는 도쿄 세타가야 구에 거주 중이며, 두 사람 또한 ‘모두에게 결혼의 자유를’ 소송 원고다.
“아동 청소년 교육 분야의 항목이 많긴 하지만, 저출산 문제가 있다 보니 자치단체에서도 그 부분을 신경쓰는 거고, 애초에 아이 입장에선 어떤 가족의 형태를 가졌든 차별받지 않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러니까 이걸 ‘메리트’라고 보긴 어렵다고 봐요.”
여전히 파트너십 제도가 닿지 않는 부분이 많다. 하토가이 씨는 “파트너십 제도를 활용해 주택 대출을 받았지만, 임의후견제도(성인이 질병, 장애, 노령, 그 밖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 있거나 부족하게 될 상황에 대비하여 자신의 재산관리 및 신상보호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미리 다른 이에게 스스로 위탁하고 그 위탁사무에 관해 대리권을 수여하는 계약을 체결하여, 그 계약으로 선임한 후견인으로부터 재산관리 및 일상생활과 관련된 사무에 대해 보호와 지원을 제공받는 제도) 계약을 조건으로 요구받았다.”고 했다. “이것은 결국 (이성 결혼 커플과 달리) 동성 파트너에 대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또한 파트너십 제도는 부부 한 쪽의 사망시 받을 수 있는 국민연금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고, 파트너십 제도가 있음으로써 성소수자가 가시화되며 사회의 인식도 변화하였지만, 그럼에도 “지자체가 할 수 있는 것엔 한계가 있다.”고 하토가이 씨는 지적했다. 때문에 “지자체가 아니라 국가가 동성혼을 법제화해야 하고, 그것이 혼인평등”이라고 덧붙였다.
세타가야구에서 거주 중인 50대 스즈키 씨도 이렇게 말했다. “결혼할 권리가 없다는 건 결국 차이를 만들어요. 그런 환경에선 많은 성소수자가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 가능성이 높아요.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겨야 하죠. 80세, 90세가 될 때까지 그걸 계속해야 한다면 정말 괴로울 것 같아요. 나라면 너무 힘들 거예요.”
이러한 이유로, 오가와 씨와 오에 씨, 하토가이 씨와 카와치 씨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고 국가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한국에서도 같은 이유로, 11쌍의 동성 부부가 2024년 10월 10일, 혼인평등을 위한 소송을 시작했다. (관련 기사: 우린 모모(母母) 가족, 이제 법적으로도 인정받아야죠 https://ildaro.com/10020, 우리가 사랑하고 돌보겠다는데, 국가가 왜 거부하지? https://ildaro.com/10021)
일본에서 만난 퀴어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혼인평등은 지금을 살아가는 동성 커플을 위한 것이라고 여겼던 생각이 바뀌었다. ‘이것은 미래를 위한 것이고, 성소수자가 나이 들어가는데 필요한 것 중 하나’라고.
이 기사 좋아요 13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관련기사목록
|
소수자 시선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