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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는 대체 무엇일까요?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은 투표뿐인 걸까요? 누가 정치를 해야 할까요? 우리 일상에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멀게 느껴지는 정치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자 합니다. 정의당 소속의 제21대 국회의원으로 의정 활동을 펼쳤던 장혜영 전 국회의원, 현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지역위원장이 여러분의 질문에 응답합니다. [편집자 주]
Q. 한국 정치권에서 또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고, 정당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2차 피해가 반복되는 등의 실태가 알려지며 큰 실망을 안겼습니다. 장혜영 위원장은 2021년 정의당 국회의원 시절에 정당 대표로부터 겪은 성추행을 문제 제기하여 당시 조직에 변화를 꾀하고, 큰 사회적 반향을 가져온 바 있죠. 한국의 정당정치가 성폭력 사건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해결 방법이 무엇인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장혜영: 9월 1일부터 7일은 양성평등주간이었습니다. 그 한가운데인 4일, 조국혁신당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과 2차 가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당직자였던 피해자는 가해자를 고소하는 한편, 당내 절차를 통해 자신과 다른 피해자들이 겪은 사건을 해결하려 애썼지만, 수개월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들이 하나둘 당을 떠나자, 기자회견을 통해 피해 사실과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밝히며 탈당을 선언했습니다.
“제가 마주한 것은 동지라고 믿었던 이들의 성희롱과 성추행 그리고 괴롭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외면하거나 모른 척하던 시선들이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지는 피해자의 기자회견을 보며, 정치권에 몸담고 여러 차례 당내 성폭력을 경험해온 한 여성으로서 익숙한 참담함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피해자의 탈당 기자회견 직후에 일어난 일들
놀랍게도 조국혁신당은 곧바로 반박 입장문을 내어, 사건 처리 절차에 문제가 없었으며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며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8.15 특별사면으로 사면복권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는 SNS에 ‘피해자 대리인의 서신을 받았지만. (당시 본인이 당적 박탈로) 비당원 신분이라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었다’는 입장문을 올리며 선을 그었습니다. 이러한 대응에 여론의 비판이 일자, 다음날 조국혁신당 지도부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피해자에게 사죄의 뜻을 전했으나 당의 결정과 조국 전 대표를 연관짓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피해자 대리인은 SNS를 통해 “조국혁신당은 좋든 싫든 조국의 당인데 당원 여부, 권한 여부를 말하는 것은 형식논리일 뿐”이라고 일갈했습니다. 조국 전 대표는 옥중에서도 당내 대선 방침을 비롯한 여러 정치 현안에 입장을 내고 책을 출간하는 등 적극적인 ‘옥중 정치’를 펼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날, 황현선 당시 조국혁신당 사무총장은 당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 “그게 죽고 사는 문제냐”고 폄하하며 문제 제기한 이들을 “개돼지”에 비유해 논란이 된 최강욱 당시 더불어민주당 교육연수원장의 발언을 “혁신당과 조국 원장을 걱정하고 응원했던 동지로서의 발언”이라며 두둔했습니다. 이규원 조국혁신당 당시 사무부총장은 언론사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성희롱은 범죄가 아니고 품위 유지 의무 위반은 되겠죠.”라며 성희롱이라는 위법 행위에 대한 안일한 인식을 드러냈습니다.
가해자는 간데없고 오로지 피해자를 비난했다가 사죄했다가 다시 선긋기 급급한 조국혁신당의 갈팡질팡이 이어지는 가운데, 문제를 드러낸 피해자들의 용기를 응원하고 연대를 표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이러한 폭로가 ‘당을 공격하는 행위’라며 피해자와 대리인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이들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사태가 커지자 조국혁신당 지도부는 결국 일괄사퇴와 비대위 전환을 결정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한국의 정당들이 성폭력을 다루는 익숙한 패턴
가장 문제적인 것은 이 사건의 가해자로서 당내 징계를 받아 제명된 김보협 전 조국혁신당 대변인이 내내 침묵을 고수하다 피해자의 기자회견으로부터 2주나 지난 시점에 SNS를 통해 갑작스레 “고소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성추행 성희롱은 없었다”는 입장을 밝힌 것입니다. 정당 내 성폭력 사건의 사실 관계를 두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대립하는 양상이 또다시 반복된 셈입니다.
그 다음날 조국 조국혁신당 비대위원장은 피해자 실명 거론 금지와 2차 가해에 대한 단호한 조치 등을 비롯한 공동체적 해결에 나서겠다는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공동체적 해결의 길을 천명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의아하게도 입장문 어디에도 이번 사건을 지칭하는 조국혁신당의 공식적인 표현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사안을 다루는 첫걸음은 그 사안을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국 비대위원장의 입장문 어디에도 ‘사안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저는 피해자의 기자회견으로부터 약 4개월 전인 5월 13일, 조국혁신당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본 것과 동시에, 조국혁신당 국회의원들이 ‘혁신당이 지킨다 이재명 1’이라는 카드뉴스를 공유하는 것을 보고서,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한국의 정당들이 당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다뤄온 대부분의 방식은 조직보위 논리 속에 피해자를 해당행위자로 몰거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며 구조적으로 고립시키고,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가해자를 방치하거나 조직적으로 두둔하며, 피해자를 끝없는 법적 진실공방과 2차 피해의 늪에 빠뜨리는 것이었습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 피해자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폭력 피해자도, 고 장제원 국회의원의 성폭력 피해자도 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안희정 전 지사의 측근이자 성폭력 폭로 이후 피해자의 편에 섰던 『몰락의 시간』 저자 문상철 씨는 고 장제원 의원의 사망 직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안희정 사건 이후 발생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재판 결과가 나온 뒤 가해자를 옹호한 많은 정치인이 온전히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선례를 남겼다면, 장제원 사건 피해자가 고소를 결심하기까지 10년 가까이 걸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시리도록 뼈아픈 지적입니다.
한국의 정당정치는 이 지긋지긋한, 잘못된 성폭력 대응의 굴레를 단호히 끊어야 합니다. 말로는 여성인권과 여성폭력 반대를 외치지만, 정작 자신의 조직 안에서 성폭력이 발생하면 조직보위를 앞세워 피해자의 인권과 존엄을 무너뜨리는 패턴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야 합니다. ‘다른 해결의 가능성’을 만드는 핵심은 다른 리더십입니다. 정당의 리더들은 피해자를 해당행위자로 공격하고 고립시키는 대신, 당과 지도부를 믿고 당을 더 나은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용기내어 피해를 밝히고 문제해결을 요청한 애당행위자로 인정하고 보호하며 그 회복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당의 형식적, 실질적 리더들의 단호함이 조직논리가 흘러가는 방향성을 좌우합니다.
문제가 가시화되는 과정에서 고통을 겪지만, 멀리 보아야 합니다. 문제를 문제라고 말할 수 있어야 개혁도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조직을 믿고 문제를 말하는 사람은 개혁을 돕는 사람입니다. 지독하게 오래된 조직보위 논리의 관성을 끊어내는 일이 결코 쉽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입니다.
또한 ‘다른 리더십’은 성평등과 성폭력 근절이라는 민주공화국의 보편 가치와 피해자의 인권보다 조직을 우선하는 폭력적인 조직보위 논리가 발디딜 틈이 없도록, 성평등의 가치를 당내 문화 깊숙이 뿌리내리게 하는 리더십입니다. ‘피해자다움’이라는 통념도 없고, 상대를 나와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하는 일에 실패하는 순간 누구든 성폭력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그러한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상대에 대한 존중을 언제나 지킬 수 있도록 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모든 정당의 구성원들이 인식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조직의 힘이 피해자를 보호하고 성평등과 성폭력 근절의 가치를 지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조직보위 논리를 믿고 피해자를 악마화하는 가해자의 패턴도 바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애초에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지만, 성폭력이 발생한 이후 바람직한 대응은 가해자가 피해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책임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두고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며 싸우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공동체적 해결의 기초입니다.
‘성평등 정치’가 답이다
당내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를 지키고 가해자의 책임을 인정하게 만드는 ‘다른 해결의 가능성’을 한국 정당정치의 기본 문법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직 수많은 사람들의 치열한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다시 만난 세계’로의 갈길이 멀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난 123일간의 내란 극복과 사회대개혁의 광장에서 이미 ‘광장의 힘으로 정치를 바꾸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한 걸음이 중요합니다.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당신의 결심과 실천이 소중합니다. 지난 3.8 여성의 날, 광장에 울려퍼진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여성 1만인 선언’을 다시 읽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여성가족부 폐지’를 외쳤던 윤석열의 정치, 학교의 불통에 저항하는 동덕여대 학생들과 서부지법 폭력사태의 극우 시위대를 등치시키며 여성혐오를 멈추지 않는 이준석의 정치, 권력형 성범죄의 피해자를 끝없는 2차 피해의 늪으로 밀어넣는 안희정의 정치, 남성 권력에 기대어 불법적 특권을 누리며 여성의 이름을 부패의 방패로 앞세우는 김건희의 정치, 이 모든 반여성정치와 단호히 결별하고 오랫동안 방치된 성평등 정치의 귀환을 선언할 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비로소 바로 설 수 있다.”
[필자 소개] 장혜영 1987년생 페미니스트 정치인. 21대 국회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일했으며 현재는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지역위원장이자 국회의장산하법인 ‘한국여성의정’의 이사, 비영리단체 망원정x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러닝크루 ‘다시 뛰는 여성정치’의 공동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썼다.
※[장혜영에게 정치를 묻다] 여러분이 궁금한 내용을 직접 질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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