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받은 박카스와 알약, 너무 가까운 위협들[해도 되는 이야기] 여성에게 체화된 불안과 공포는 어디에서 왔을까대학원에 다니던 때의 일이다. 수업에 늦을 것 같아 서둘러 택시에 올랐다. 기사는 몇 마디 건네더니 갑자기 박카스와 알약 하나를 내밀었다.
“손님들 피곤하시니까 하나씩 드리고 있어요.” “와, 이런 걸 다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급히 학교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산만했지만, 이상하게도 말과 달리 손이 쉽게 가지 않았다. 남이 건네는 음료수를 함부로 먹지 말라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받은 것을 손에 쥔 채 가만히 있었다. 기사는 다시 말을 붙였다.
“안 드세요? 드시고 기운 회복하세요.” “아, 괜찮아요. 나중에 먹을게요.” “바로 드시면 좋을 텐데.”
그의 말투가 다소 집요했기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굳이 바로 먹으라고 재촉할까? 집에서 학교까지는 택시로 고작 10분 남짓. 한낮이었고, 도로도 한산하지 않았다.
차는 무사히 학교 안으로 들어섰고, 나는 평소처럼 기사에게 인사를 하고 내렸다. 손에는 여전히 박카스와 그가 영양제라고 얘기한 알약이 들려 있었다. 지금이라면 내리며 차 번호를 눈여겨보고 신고를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에는 내가 범죄 대상이 됐을 수 있다는 인식을 분명히 하지 못했다. 그저 손에 들린 음료와 알약이 불길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만약 그때 목이 말라 기사가 건넨 음료를 망설임 없이 삼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엄마의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기사에서 읽은 얘기를 괴담으로 흘려듣고 잊었다면. 한순간의 선택으로 내 삶은 전혀 다른 궤도로 흘러갔을지 모른다.
여성의 불안은 과장된 것일까?
성폭행과 죽음의 위협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2017년~2021년 전체 강력범죄 피해자 중 83.2%가 여성이며, 성폭력 범죄피해자의 87.3%도 여성이다. 이러한 통계는 내 경험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실제로 여성들이 느끼는 것들은 ‘사건’으로만 이야기할 수 없다. 지금은 플랫폼 택시 덕분에 걱정을 덜었지만, 전에는 박카스를 권하는 택시가 아니라도 택시를 탈 때는 언제나 긴장했다. 기사가 모르는 길로 들어서면 돈을 더 벌려고 길을 둘러 간다는 생각보다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조수석 밑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는 등의 ‘택시 괴담’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런 긴장감을 갖게 되는 것은 혼자 쉬고 싶은 장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혼자 캠핑을 했다. 텐트 앞에 자리를 깔고 책을 읽는데, 근처 남자들이 나를 1분이 넘도록 빤히 쳐다봤다. 심지어 내가 마주 쳐다보는데도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저 무례한 시선 속에는 무슨 생각이 담겨있을까. ‘여자가 혼자 캠핑도 하네. 텐트 속에 남자가 있나? 없나? 대담하네.’ 그런 생각들이 들리는 듯했다.
그들은 여자 혼자 캠핑을 오는 게 대담한 일이 될 수밖에 없는 사회에 대해서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자신들의 시선 자체가 상대 여성에게 위협으로 다가간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그날 밤 나는 휴대폰 긴급 신고를 설정한 뒤 휴대폰을 손에 쥐고, 호신용으로 가져간 면도칼을 머리맡에 두고 잤다.
편히 쉬어야 할 집안에서도 긴장감은 늘 함께했다. 빌라에서 자취할 때는 술에 취해 새벽에 우리 집 비밀번호를 누르는 사람 때문에 공포에 떨었다. 퇴근해서 방에 돌아오면 물건 위치가 퇴근 전과 미묘하게 다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머리칼이 바짝 곤두섰다.
혼자 있을 때만 불안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여성 동거인과 함께 새집을 구했을 때는 의뭉스러워 보이는 남자 집주인 때문에 셀로판지를 이용해 집안에 카메라가 있는지 검사했다. 택배를 받을 때는 종종 남자 이름을 적었다.
하루하루 밖에서 이동할 때, 남성의 시선을 마주할 때, 그리고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조차 느끼는 미묘한 긴장감과 불안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모든 남자가 강간범은 아니라는 사실이 요점은 아니야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보도되는 교제살인 사건들은 여성에게 실제로 닥칠 수 있는 극단적 위험을 다시 상기시킨다. 그러나, 남성의 여성살해 뉴스를 반복적으로 접하면서도 이를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보고 바로잡으려는 목소리들이나, 여성의 일상 속 공포감에 귀기울이는 사람들은 한정되어 있다.
오히려 여성으로서 일상적으로 느끼는 불안을 얘기했을 때, “모든 남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며 불편해하는 남성을 마주하는 일은 흔하다. 정말 많은 남성들이 ‘대다수의 문제 없는 남자들이 늘 손해를 본다’며 억울함을 표현하며, 페미니즘에 대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 ‘어디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여성들의 말을 피해의식이나 지겨운 넋두리로 치부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작가 리베카 솔닛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김명남 역, 창비, 2015)에서 이렇게 썼다. “여자들은 늘 강간과 살해를 두려워하며 산다. 때로는 그런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남자들의 안락함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책에서 솔닛은 ‘제니 추’라는 여성이 트위터에 쓴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물론 모든 남자가 다 여성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다. 그러나 요점은 그게 아니다. 요점은 모든 여자는 다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남성이 범죄자가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아니다. 어떤 남성이 범죄자이고 아닌지는 미리 알 수 없다. 박카스를 건넨 기사를 범죄자일 거라 생각하지 못한 것도, 그 상황과 분위기, 기사의 인상 등이 너무나 일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를지 알 수 없고, 내가 언제 어디서 성적 피해를 입을지 모르니 마음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불안이 생존에 대한 위협 그 자체에서 온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이를 남성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피해의식에 가까운 태도인지도 모른다.
여성의 일상에서 공포가 걷어지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할지 고민하길
새삼 의아해지곤 한다. 세계의 반이 여성인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생 고통을 겪는 문제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여성이 일상적으로 겪는 수많은 크고 작은 사건과 차별,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과 고민은 ‘살아남는 일’과 직결되어 있다.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들을 듣는 것이 지겹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궁금해해야 한다. 지겨워질 만큼 이야기되는데도 왜 여성들에게는 매일 같은 위험과 두려움이 이어지는지, 왜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지.
내가 10년 전 택시 안에서 손에 받아든 박카스와 알약, 그리고 모호한 위협의 순간은 오늘도 나와 당신의 주변을 스쳐 지나간다.
[필자 소개] 민바람. 자신의 경험으로 사회 구조를 비추는 글을 쓴다. 퀴어, 여성, 신경다양성, 빈곤, 지역 문제의 교차성 탐구에 관심이 많다. 『나는 ADHD 노동자입니다』(2025년 재출간), 『낱말의 장면들』(2023) 등을 출간 후, 퀴어 소설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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