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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는 대체 무엇일까요?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은 투표뿐인 걸까요? 누가 정치를 해야 할까요? 우리 일상에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멀게 느껴지는 정치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자 합니다. 정의당 소속의 제21대 국회의원으로 의정 활동을 펼쳤던 장혜영 전 국회의원, 현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지역위원장이 여러분의 질문에 응답합니다. [편집자 주]
Q. 요즘 인종차별과 배외주의가 큰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 사회가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갈수록 다양한 차별과 혐오가 가시화되고 여러 사회 문제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좀 다를까요?
A. 안녕하세요. 장혜영입니다. 최근 점입가경으로 노골화되는 ‘혐중 시위’로 인해 인종차별에 대한 경각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먼저 이 가운데 ‘한국 사회가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포착한 질문자님의 감각에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은 인종차별이 심각한 나라이지만, 우리 사회는 정작 그 심각성을 제대로 자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현재 정부가 작성하는 ‘외국인 주민 통계’를 보더라도, 한국 체류 이주민의 수는 꾸준히 증가해 2024년 기준 246만명, 국내 총인구의 4.8%입니다. 전국 평균을 넘어 지역을 들여다보면 우리 안의 다양성은 더 확연해집니다. 행정안전부는 이주민 수가 1만명 이상이거나 이주민 비율이 5% 이상인 기초자치단체(시군구)를 ‘외국인주민 집중거주지역’으로 분류합니다. 2006년 8곳에 불과했던 외국인주민 집중거주지역은 2016년에는 65개로, 2023년 기준으로 127곳으로 증가했습니다. 이것은 한국의 226개 지자체 중 절반을 넘는 숫자입니다.
공장 밀집 지역을 비롯해 한국의 농촌과 어촌에 이주 노동자는 필수 산업인력입니다. 농민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이주노동자 없으면 김 없는 김밥 먹어야 한다’, ‘이제 외국인 없이 농사 못 짓는다.’ 한국은 이제 분명한 ‘다인종 사회’이자 ‘이주 사회’이고 이 경향은 날이 갈수록 더 강화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한국은 단일민족이라 인종차별이 없다’는 말이야말로 한국 사회 내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문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현존하는 존재를 부재라고 멋대로 규정하고, 그 잘못된 믿음을 근거로 차별 자체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으니 정말 어디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차근차근 인내심을 가지고 이야기해보는 편이 좋겠지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현실에 걸맞는 새로운 보편적 인식이니까요.
혐중 시위, 이주노동자 착취와 조롱, 공권력의 인권침해까지
한국 사회 내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장면은 도처에 있습니다. ‘자유대학’이라는 이름의 극우단체 등이 주도하는 혐중 시위는 물밑에서 오랫동안 꿈틀대던 인종차별이 모두가 볼 수 있는 형태로 가시화된 것에 가깝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난 여름, 이재명 대통령까지 언급하며 대책 마련을 주문했던 전남 나주의 ‘이주노동자 지게차 결박 조롱 사건’은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명백한 인종차별이자 폭력이었습니다.
2020년, 캄보디아 출신으로 경기 포천의 농장에서 채소를 수확하는 이주노동자였던 속헹 씨는 한파에 비닐하우스에서 자다 사망했습니다.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위험의 이주화’라는 말이 손색없는 상황이지만, 2025년 현재 한국에는 사망한 외국인에 대한 국가통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분석 및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를 통해,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 사망률이 한국 국적 노동자에 비해 2.3배에서 3.6배 높다는 결과가 드러났습니다.
공권력에 의한 인종차별도 심각합니다. 지난 9월 16일에는 울산의 출입국사무소가 한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진행해, 50여명의 노동자에게 수갑을 채워 연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상은 물론 각종 인권침해가 발생했지만 출입국사무소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을 지으러 간 한국인 약 300명이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의해 폭력적으로 수갑과 족쇄가 채워져 구금된 지 불과 일주일 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일부 민간인이나 민간단체는 이주노동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멋대로 겁박하고 체포한 뒤, 이를 영상으로 촬영해 돈벌이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2024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제노동기구 협약에도 맞지 않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주장하며 요구한, 윤석열 정부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필리핀 여성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광범위한 노동권 침해로 귀결되며 올 초, 본 사업 전환에 사실상 실패했습니다.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봅니다. 만일 한국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상황이 지금과는 어떻게 달랐을까요? 정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저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미 차별금지법이 있는 나라들의 인종차별 상황을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먼저 1965년에 ‘인종관계법’을 제정하고, 2010년에 ‘평등법’을 제정해 인종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부당한 차별 금지를 법제화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 역시 인종차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합니다. 작년 6월, 한국의 손흥민 선수가 주장으로 있던 영국 프리미어 리그 토트넘의 한 선수가 ‘손흥민 유니폼을 구해달라’는 TV 생방송 진행자에게 “손흥민 사촌 유니폼을 가져다 줘도 모를 것이다. 손흥민이나 그 사촌이나 똑같이 생겼다.”라고 인종차별 발언을 해, 잉글랜드 축구협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영국의 전문가들은 브렉시트 이후 인종주의 정서가 강화되어 인종차별에 기반한 증오범죄가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EU 국가들에는 법적 효력을 가진 ‘유럽연합 기본권 헌장’이 적용되지만, EU기본권청이 2024년 발행한 〈EU에서 무슬림으로 산다는 것〉 보고서에는 EU 13개국 무슬림의 47%가 차별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차별 경험 응답률이 가장 높은 국가는 오스트리아, 독일, 핀란드입니다. 세 나라 모두 ‘연방평등처우법’, ‘일반평등처우법’, ‘차별금지법’이라는 각각의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나라들입니다. 차별금지법이 있는 나라들 역시 인종차별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참조할 때, 차별금지법이 있어도 인종차별을 막지 못한다면 왜 굳이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하는가?
이것은 중요한 질문입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로 제기된 지 20년이 넘은 지금, 차별금지법이 일종의 ‘차별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어떤 법도 그런 법은 없습니다. 형법이 있다고 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절도도 살인도 모두 중범죄이지만 지금도 대한민국 어딘가에서는 절도와 살인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형법을 만들어봐야 소용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형법을 끝없이 보완하며 조금이라도 우리 사회가 선량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애쓸 뿐입니다.
차별금지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한국 사회의 차별 문제가 하루아침에 극적으로 개선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긍정적 변화가 점진적이더라도 일관되게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몇몇 개별법과 국가인권위원회법의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 조항을 제외하면, 법으로 금지해야 할 차별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정의되어 있지 않습니다. 법적 금지대상인 차별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한 사회를 이대로 방치하는 대가는 우리 모두에게 돌아옵니다. AI 기술의 개발이 급속화되는 지금, AI에 의한 인간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법안을 만들려 해도 참조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이 없지요. 이러한 상태가 구체적으로 어떤 고도화된 차별의 일상으로 돌아오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고, 공존이 되기 위하여 우리 안의 선량함을 강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것
얼마 전 작고한 제인 구달 박사는 마지막 인터뷰 영상에서 ‘서로를 구분 짓고 공격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동시에 대부분의 사람은 선량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핵심입니다. 우리는 ‘차이’를 통해 무리를 구분 짓고, 이에 기반해 ‘차별’을 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다양한 차이를 가진 존재와 함께 공존하려는 선량함도 가지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을 비롯한 인권 관련 법제들이 지향하는 것은, 우리 안의 선량함을 구조적으로 강화하는 시스템의 구축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 사회는 다인종 사회, 이주 사회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국내의 인종차별은 심각한 수준이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문화적 대책은 한참 부족합니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누구와 살고 있는지, 누구를 어떻게 차별하고 있는지 배워야 합니다. 차별과 혐오의 행동을 스스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게 좋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라도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종차별 그 자체가 존재하는 한, 우리 모두는 인종차별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 어떤 종류의 차별이 존재하는 한, 우리 모두는 부당한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 하더라도 모든 인종차별이 일거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바로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지금 당장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합니다.
※[장혜영에게 정치를 묻다] 여러분이 궁금한 내용에 관한 질문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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