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압을 받은 직후에 ‘다음에 또 부탁드릴게요.’라는 문자를 보낸 건 걸림돌이 될 수 있겠네요. 성추행을 당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한 건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큽니다.”
지압원에서 겪은 성추행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던 때, 법률상담에서 들은 말이 그랬다. 한동안 자다가도 깨어 그 말을 떠올리며 자책했다. 나는 대체 왜 그런 문자를 보낸 걸까.
가해자는 노년의 남성 지압사였다. 사실 성추행이 있기 이전, 치료 중 나는 ‘그 부위에 손을 대는 것은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압사는 내 의사를 무시하고, 큰 목소리로 ‘치료이니 네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다가 다른 손님이 없던 어느 저녁, 치료 중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치료와 전혀 관련이 없는 신체접촉을 해오는데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목구멍에서 말이 걸려 나오지 않았다. 당황해서 경황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그가 다시 큰 소리로 내 뜻을 억누를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른, 특히 남자 어른에게는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어려서부터 들어온 아버지의 입버릇 같은 말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감정과 의견을 솔직하게 말할 때 그것을 강하게 억압하며 부정하곤 했다. 성추행을 당하면서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던 순간, 나는 지압사의 얼굴을 아버지의 얼굴과 겹쳐보고 있었다. 무의식 속에 박힌 ‘자기주장은 곧 갈등유발’이라는 생각, 그리고 자신의 느낌과 판단보다 관계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강박이 내 입을 막았다.
나의 인생에서 반복된 침묵
살아온 시간을 되짚어보며 내 인생에서 비슷한 경험이 반복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대 초반 일본에서 1년여간 교환유학을 하던 시절, 동네 떡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장은 가게에 딸린 방에 혼자 사는 70~80대의 남자였다. 그는 나에게 무척 잘해줬다. 차를 대접하고,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며 세심하게 배려했다. 내 유학생 친구들에게도 잘해줬다. 우리는 자주 다 함께 한식당이나 가라오케에 갔다.
가라오케에 갔을 때, 그는 손가락으로 내 브래지어 후크를 짚었다. 그가 가만히 뭔가 느끼는 것이 느껴졌다. 허리께에 슬쩍 손을 대기도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속을 끓였다. 하루는 가게가 쉬는 날 차를 마시러 오라고 불러서 별생각 없이 갔다가 끈적하게 다가드는 손길에 도망치듯 나온 적도 있었다. 유학생 친구들은 내게 말했다. “일본 남자들 다 스케베(색마)야.” “언니, 좀만 참아. 한국 들어가면 볼 일 없잖아.” 그 말들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게 무척 잘해주는, 그리고 내가 일하는 곳의 사장이었던 그에게 감히 어떤 표현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귀국한 후에도 몇 년간 그가 보내는 이메일과 선물에 답장과 답례를 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너무 오랫동안 관계의 관성에 매몰되어 있었다.
그와 연락이 끊어진 후로도 10년이나 지났지만, 그가 읽기만 한다면 내가 겪은 일을 마음에서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쓰던 주소로 이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메일은 곧바로 되돌아왔다. 없는 주소라고 했다. 일본에서는 휴대전화에서 문자메시지 대신 주로 이메일을 통해 메시지를 보냈으니, 메일 주소가 사라졌다는 것은 그가 그 휴대전화 번호를 쓰지 않게 됐다는 의미다.
혹시 죽은 게 아닐까? 15년 전에 이미 70대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구글 지도에서 그 떡집을 찾아봤다. ‘있어야만 해. 있어야만 해.’
하지만 그 가게는 지도상에 없었다. 대를 이어온 떡집이었는데 사라졌다는 건 계속 운영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즉, 그는 세상을 떠났을 가능성이 높다. 들어야 할 말을 듣지 않고, 자기가 성범죄자라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맘 편히 가버렸다는 생각에 무척 속상했다. 살아서 요양원에 있다 해도 그를 만날 방법은 없었다.
갈 길을 찾지 못한 화는 나 자신을 향했다. 유학 시절에는 어려서 그랬다 치더라도, 15년이 지나는 동안 가해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감정을 무시하고 화를 억누르도록 설계된
성폭력 생존자들을 위한 책 『아주 특별한 용기』(엘렌 베스‧로라 데이비스 공저, 이경미 번역, 동녘, 2012)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아니오’라고 말하기가 쉽지는 않다.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의 요구를 우선시하도록 교육받은 여성들의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다.”
성역할 고정관념은 여성의 분노를 억압한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활동가이자 비평가 소라야 시멀리는 『우리의 분노는 길을 만든다』(류기일 번역, 문학동네, 2022)에서 이 점을 자세히 파헤쳤다. “나이가 많건 적건 여성들은 갈등과 긴장을 완화하고 우리와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을 피하거나 대치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분노를 한쪽으로 제쳐두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언제나 어딘가 잠재하는 남성 폭력의 가능성에 적응하려면 어쩔 수 없이 화내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납득하게 된다.”
여자아이는 성폭력 속에서 자란다. 돌아보면 내가 자라온 과정도 수많은 성폭력을 통과해오는 일이었다. 아이스께끼, 항문을 찌르는 장난을 치며 다른 곳을 찌르던 것, 단체로 수영장에 갔을 때 중요 부위를 향해 끊임없이 닥치던 남자애들의 손길, 시내버스를 타면 겪게 되던 성추행, 공중화장실 옆 칸에 숨어 거울로 나를 비추던 남자, 학교 앞에서 당당하게 바지를 내리고 자위하던 남자들, 떼지어 하교하는 우리 옆에 차를 붙여 따라오며 나를 부르고 자신의 하체를 보게 한 아저씨.
그때는 누구도 그런 일들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여자아이들끼리만 어디어디에 가면 조심해야 한다는 말들을 속삭였다. 우리는 분노를 느끼지 않는 게 아니었다. 표현하는 법보다 삭히는 법을 먼저 배웠을 뿐이다. ‘여자니까’ 그런 일을 당하는 거라고 여기는 분위기에서 자라고, 더 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몸을 사려야 하는 위험 앞에, 때로 신체적 힘의 우위라는 벽 앞에 가로막혔다. 우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참았던 것이다.
가정과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학습된 무력감은 권력적 우위에 대해서도 똑같이 작용했다. 20대 후반 대학원에 다니는 동안, 나는 노래방에서 남자 교수들이 여자 제자들과 블루스 추는 모습을 ‘대학원 생활이 다 그런 거지, 뭐.’하며 보아넘겼다. 그리고 치료 권력과 신체적 힘을 모두 가졌던 지압사에게 성추행을 당했을 때는 서른여덟이었다. 뒤늦게 그것이 명백한 성폭력이었음을 인지했을 때, 그 나이 되도록 자신을 보호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을 많이 자책했다.
내 탓이 아니었음을 이해하기
자책에서 나를 끌어올린 것은 성폭력상담소 상담사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선생님은 내게 18살 때의 기억에 집중하라고 했다. 그 많은 성폭력 피해 경험 중 단 하나, 스스로 만족스럽게 여기는 기억이었다. 그때 나는 시내 번화가 서점의 화장실에서 옆 칸의 누군가 거울로 나를 비춰보는 것을 발견했고, 화장실에 있던 여자 중학생들에게 그 칸 앞을 지키고 있어달라고 당부한 뒤 카운터로 가서 치한이 있다고 알렸다.
직원과 함께 화장실로 돌아왔을 때 치한은 중학생들을 밀치고 달아난 뒤였다. 결국 범인을 잡지는 못했지만,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는 와중에도 침착하고 용기 있게 대응했기에 후회는 남지 않았다. 쉽게 꺼내쓸 수 없었을 뿐, 내 안에는 언제나 부당한 폭력을 바로잡으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경험이 없다고 해도, 결코 그가 나약하거나 무력했다는 뜻은 될 수 없다. 지나간 경험을, 성폭력 피해의 역사를 돌아보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말하고 싶다. 우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애써왔다. 우리에게는 분노라는 건강한 씨앗이 있지만, 그것을 싹 틔워 자신을 위한 나무가 되도록 해줄 토양도, 수분도 이 사회에서는 얻을 수 없었을 뿐이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도, 우리의 대응도, 그 결과도 우리 탓이 아니다.
한번은 아버지에게 내가 성추행에 저항하지 못한 원리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그때 ‘공경해야 할 사람과 아닌 사람을 스스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어른’이라는 아버지의 대답은, 내게 또 다른 상처가 되었다. 그러나, 촌철살인의 페미니스트 비평가 리베카 솔닛조차도 저서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창비, 2021)에서 성추행에 저항하지 못한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은 바 있다. 몇 주 동안이나 자신을 뒤에서 붙잡거나 끌어안은 직장 동료에게 아무 말 못 하고 별일 아닌 척 넘어가려 애썼던 경험을 말이다.
[필자 소개] 민바람. 자신의 경험으로 사회 구조를 비추는 글을 쓴다. 퀴어, 여성, 신경다양성, 빈곤, 지역 문제의 교차성 탐구에 관심이 많다. 『나는 ADHD 노동자입니다』(2025년 재출간), 『낱말의 장면들』(2023) 등을 출간 후, 퀴어 소설을 써왔다.
이 기사 좋아요 14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