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작은 축제를 기획 운영하는 일의 크기와 강도

[나의 노동기] 지역에서 구슬 꿰는 사람

김병희 | 기사입력 2025/11/21 [21:07]

지역 작은 축제를 기획 운영하는 일의 크기와 강도

[나의 노동기] 지역에서 구슬 꿰는 사람

김병희 | 입력 : 2025/11/21 [21:07]

월요일 오전 9시 14분. 시간 될 때 전화 부탁한다는 문자를 받고, 점심시간 지나서 전화하겠다고 답을 보냈다. 연이은 주말 행사를 마치고 쉬는 날. ‘개인 시간이 좀 생기는 휴일일까’ 했던 바람은 뿌연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해당 문자를 받은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끈에 묶였다.

 

얼마 전 끝낸 일에 추가할 서류 작업과 내년 축제 이야기와 지역 관광 프로그램 기획서 등등, 아침에 문자를 보내왔던 시청 직원과 오후 1시 37분부터 2시간 가까이 통화했다. 전화를 끊고서 그사이 온 카톡 메시지에 답하고, 몇몇 사람에게 전화를 하고, 시계를 보니 4시가 가까운 시간. 쉬는 날 하나가 저물고 있다.

 

▲ 지역 청소년들과 함께 축제 준비를 했던 때, 퍼레이드에 나갈 ‘플라스틱 먹는 고래’를 손보는 중인 필자. 손끝으로 형태를 표현하는 일은 역시나 고되지만 즐겁다. (촬영-공기대)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일, 그러나 일에 치여 사는 시간

 

일에 치인다는 말이 뭘까, 새삼. 예전에는 일을 마치면 투덜댐을 포함하여 음미할 시간이 따로 있었던 것 같은데, 몇 년 전부터 일을 마친다는 개념이 없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일과 일 사이에 몸이 축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일찍부터 한 가지 일만 꾸준하게 하는 이력을 쌓지 않았다. 직장을 선택하지 않거나 선택받지 못한 과거에 후회나 아쉬움도 없다. 지금까지도 그 습성대로 일을 찾고 만나고 있다. 고맙고 신기하게도 일은 끊이지 않았고, 궁금하거나 재미있는 부분이 있으면 그 일을 했다. 한때는 뭔가 잘못 살고 있는 건가 불안하기도 했지만, 언제부턴가 대단하진 않아도 그간의 경험을 필요에 따라 도구로 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나. 뭐 하는 사람이라고 한마디에 잘 안 담아지니, 일단은 구슬 꿰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알록달록하고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구슬을 필요에 맞게 이렇게 꿰고 저렇게 꿰는 사람. 기획자? 디자이너? 일당 알바? 체험 강사? 지역 활동가? 그냥 나. 이 중 고른다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아무것도 아닌 ‘그냥 나’가 좋은데, 선명한 채로 유지하기 쉽지 않다.

 

▲ 아무것도 아닌 ‘그냥 나’가 좋은데, 선명한 채로 유지하기 쉽지 않다. (사진-김병희)


작은 축제 만들기

지역민과 직접 만나고 일할 기회, 그러나... 

 

재작년 아직 봄이 되기 전, 이대로는 일과 사람에 묻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되겠다 싶어 출퇴근하던 일터를 나왔다. 나를 선명하게 다시 보겠다는 결심으로 한해를 이어 나가려는 때에, 지역에 계신 지인으로부터 ‘축제를 맡아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다. 코로나를 겪으며 한동안 열지 못한 축제인데, 이번에 새롭게 만들고자 한단다. 추천자 중에 뽑히는 사람이 축제 전체를 도맡아야 하는 일이었다.

얼마나 고된 일일지 불 보듯 뻔했지만, 전에 들었던 그분의 인생 이야기에 사뭇 감동도 했었고, 내가 확정된 것도 아니니 일단 ‘알겠다’고 했다.

 

며칠 후, 축제를 맡아달라는 연락이 왔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지역에 살며 주로 귀농귀촌자들과 연결된 일을 했지, 다른 지역민과 직접적인 일을 한 적이 없다. 이번 기회로 경험해 보자고 나름의 의미를 두었다.

 

일은 시작과 함께 몰아쳤다. 축제를 기획하고 예산을 잡고 사전 회의를 하며 기획서를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낯설기만 한 주최 단체 회원들과 시청 관련 부서 담당자들 앞에서 축제 기획을 설명하고 질의응답을 했다.

공연, 먹을거리, 체험 부스 등 각 분야 담당자와의 회의와 연락이 이어졌고, 축제가 열리는 권역에 있는 진흥원과 박물관에 찾아가 함께하자고, 도움을 달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홍보물 시안을 잡고 한정된 예산 안에서 최대한 효과를 볼 수 있는 곳을 선별해 홍보하고 축제 취지에 맞는 개인이나 단체를 섭외했다.

자원봉사지원센터와 지역 자율방범대에 협조공문을 보내고, 필요하면 각 단체에 방문해서 관련 내용을 설명했다. ‘내가 예전에 해봐서 아는데,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알려주는 분도 있었다. 방식은 불편했으나, 그래도 약이라 여기며 준비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했다.

 

▲ 축제 준비부터 과정과 마무리까지, 많은 이들의 손길이 오간다. 그 손길에 ‘마음’이 담길 수 있게 헤아리고 조율하는 것. 중요한 나의 일이다. (사진-김병희)


많은 사람에게 연락과 안내와 설명을 해야 하는 매일이 이어졌다. 환청과 실제 전화벨 소리가 헛갈리고, 일과를 마무리하면 일은 꿈으로 이어졌다. 내가 선 바닥이 요동칠 때면 이 모든 것이 결국 흘러가는 시간에 속해 있음을 되뇌었고, 마음 중심은 잠시나마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드디어, 이른 봄부터 준비한 축제는 가을이 무르익을 무렵 이틀의 생을 살고 막을 내렸다. 수많은 사람이 동선을 따라 느리게 흐르는 풍경으로 흡족했던,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규모의 지역 작은 축제였다. 축제 후 두 달 정도 이어진 정산 과정 또한 고되었지만, 준비하는 시간에 비하면 귀엽다고 생각되는 시간이다.

 

나라는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크기와 양이 얼만큼인지 온몸으로 겪었던 축제. 내가 누구인지 찾겠다고 안정된 일터를 나와서 노예의 삶을 선택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안 해본 일이니 하겠다 했고, 해봤으니 이제 그만 되었다.

그랬는데, 이듬해에도 여지없이 축제를 맡았고, 역시나 영혼을 갈아 부어 두 번째 축제를 마쳤다, 이런. 세 번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할 즈음, 새로운 사업이 시작된 예전 일터로 다시 돌아가게 되어, 이제 물리적으로 축제를 맡아서 할 수 없게 되었다. 꿈속에서도 계속 열리던 축제, 꿈과 현실이 중첩된 날들에 안녕을 고했다.

 

도시 청년들의 지역 탐색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

 

두 번째 축제를 마친 작년 5월부터 지금까지 한 일은 지역 바깥에 사는 청년들이 우리 지역을 탐색하고 관계를 맺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하는 일이다.

 

▲ 작년 5월부터 지금까지 한 일은 지역 바깥에 사는 청년들이 우리 지역을 탐색하고 관계를 맺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하는 일이다. 일상을 잠시 멈추고 낯선 곳을 선택한 이들에게 낯선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 우리 지역에 와서 머무는 동안 조금이라도 더 즐거움을 누리기 바라며. (사진-김병희)


올해는 각각 2박 3일과 9박 10일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올 3월부터 11월 초까지 대략 15회 내외. 만 19세에서 45세 참가자를 모집하는 홍보물을 만들어 홍보하거나 개별 신청을 받았다. 20명 기준 프로그램의 경우, 신청자를 선별하고 선정된 이에게 전화를 걸어 몇 가지 질문과 답을 주고받고 안내 사항을 전한다.

 

청년들이 묵게 될 숙소는 2인 1실이라서 남녀 성비와 나이, 성향에 맞추어 방을 배정하고, 취소자가 생기면 추가로 선정하여 전화한다. 취소자가 몇 명이 나올지도 모르고, 신청했던 사람들은 그사이 다른 선약이 생겼을 수도 있다. 신경 줄이 내내 연결된 채 2주 정도 그 과정을 거치며 최종 참가 확정자에게는 두세 번 정도 안내 문자를 보낸다. 이후 프로그램 시작 전에 여행자보험을 들고 간식을 준비하고 숙소 이불 등을 세팅한다. 또 단톡방을 만들어 참가자를 초대하고 더 세세한 사항들을 안내한다.

 

프로그램 중에는 개별 성향과 전체 분위기가 어떤지 최대한 파악한다. 강사와의 최종 조율, 공간 재배치, 식사나 프로그램 전후 공간 정리 등 시간은 미끄러지듯 흐른다. 프로그램을 마치면 참가자들의 숙소를 점검하고 마지막으로 만족도 조사를 받고, 짧은 사이 공감대가 생긴 이들과 다음을 기약하는 인사를 나눈다. 다음 프로그램도 진행된다는 홍보와 설명도 중간중간 놓지 않는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모든 시간에는 온 신경이 펼쳐져 있다. 처음 만난 청춘남녀들이 너무 친해져서 날이 밝도록 술을 마셔 갈등을 빚거나, 혹은 술병이 난다거나, 프로그램 중간에 사라진다거나 등등,. 일어나는 일들로 마음이 붉으락푸르락할 때도 있지만, 내 표정은 밝고 말투는 친절하다. 세상 친절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 어쩌면 병일지도 모른다. 후후.

 

▲ 9박 10일 동안 외지에서 온 청년들은 상주를 탐색하며 사진과 영상을 찍고 글을 썼다. 그 과정에 필요한 자료나 정보를 제공하며, 그들이 스스로 길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사진-김병희)


숙소는 만들어진 지 1년이 안 된 모듈러 주택이다. 새집이지만 크고 작게 고쳐야 할 게 많았고, 수리 일정을 잡고 관리하는 데에도 많은 에너지가 쓰였다. 그래도 겉으로 보기에는 새집이니 최소한 그 형태를 유지하고자 했다. 이불과 조명, 탁자 등 예산 안에서 틈틈이 시간을 들여 비교하고 고민하여 마련한 물품은 소박하지만, 다행히 참가자 만족도는 좋은 편이다. 물품 상태와 청결을 잘 유지하는 게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숙소 청소는 사전에 섭외하고, 10동을 두 명이 이틀간 청소한다. 복층 다락이 있는 원룸 형태인 숙소 안에는 물품도 40가지 이상 되어, 관리하며 구석구석 청소할 곳도 많다.

 

청소자가 세탁까지 할 수는 없어서 프로그램을 마친 후 20채의 이불과 20여 명이 사용한 수건 등 세탁은 운영자의 몫이 된다. 어쩌면 빨래방에서 일하는 건가 싶게, 프로그램이 다시 시작되기 전 이불을 빨고 볕에 말리고, 날씨 예보를 미리 보며 세탁 일정을 짠다.

 

올봄부터 여름까지 함께 일했던 청년이 떠나고 얼마 전 다른 청년이 왔다. 어느 날 그 청년이 손걸레로 냉장고 위를 스윽 닦는 걸 보고 그만 감동의 손뼉을 쳤다. 몸집 차이가 노동력 차이가 되는 현장을 목격했달까. 아무튼 냉장고 위를 한 손으로 한 번에 닦을 수 있는 그 청년이 지치지 않고 제 속도로 일하기를.

 

▲ 외지 청년과 지역민과의 만남. 응원과 환대가 꽃피는, 서로 다른 인생의 교차점. (사진-김병희)


고되지 않은 ‘일’이란 게 있을까?

노동의 쓴맛과 단맛, 매운맛, 그리고 신맛

 

요 몇 년 가장 긴 시간을 들이고 에너지를 쏟은 일들을 반추해 보았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감이 생기면 어떻게 재미를 더할까 상상하고 계획하며 몸도 마음도 머리도 굴린다. 매번 할 때마다 지겹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걸 보면 지금 하는 일들이 제법 적성에 맞는지도 모른다.

 

다만 계속해서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지속되니 고유 감정과 일상이 뚝뚝 끊기는 아쉬움은 있다. 어떤 때는 아쉬움을 넘어 몸살 같은 우울이 온몸을 훑는다. 과연 나는 지금 어느 지점에 있는지 글을 쓰면 알게 될까 싶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저 멍하니 흘러가는 나뭇잎일 테니까. 한편으론 그저 흘러가는 나뭇잎이면 또 어떠한가 싶으니 답을 구하지 않아도 되겠다. 마음 하나 속에 물이기도 하고 불이기도 한 동시다발성 마음이 있다.

 

고되지 않은 ‘일’이란 게 있을까. 쓴맛과 단맛, 매운맛과 신맛이 비벼져 있는 게 일 아닌가. 여기서 일을 삶이라는 말로 바꿔도 이상할 건 없으니, 지금을 사는 나에게는 일이 곧 삶이라고 적어둔다. 사는 내내 여유와 풍요라는 단맛만 본다면? 그럴 리도 만무하지만, 한 가지 맛보다는 다양한 맛을 보고 싶다. 제대로 된 맛.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해도 또 다른 마음이 생기고 말 테니, 결국 지금은 지금 할 수 있는 걸 한다.

 

▲ 밖에 나가지 않고는 못 배기는 볕 좋은 가을날. 날씨나 감각에 맞게 일할 자리를 바꿀 수 있는 일터, 문득 고맙다. (사진-김병희)


엊그제는 새벽 찬 기운에 잠을 깼다. 다시 푸근하게 잠들지 못 하겠어서,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갔다. 뿌연 유리문 밖이 밝다. 휘영청 반가운 달님을 만나러 바깥으로 나갔다. 밝은 빛에 겨드랑이 근육까지 늘려 두 손을 펼쳐 들고 인사한다. 온몸에 빛 받으라고 달빛을 등지니 바닥에 선명하게 검은 그림자가 있다. 아, 나로구나! 옆에선 함께 나와준 고양이 식구들이 부드럽게 흐른다. 달빛 샤워를 한 새벽. 온몸에 묻은 달빛 부스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이불을 덮었다.

날 밝으면 다시 쌓인 일들 하나씩 하나씩 마무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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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25/11/24 [16:42] 수정 | 삭제
  • 볕 좋은 날 바람이 그 수고를 격려해주나 보네요..
  • 2025/11/22 [16:48] 수정 | 삭제
  • 내가 참여한 지역프로그램 행사의 간사(?)님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종종 그 행사의 느낌들이 떠올랐고, 지금은 아마도 내가 그 선생님(활동가?)의 나이 정도가 된 것 같은데, 내가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참 그 경험이 다르게 느껴지네요. 자기 앞가림밖에 모르는 참여자들에게 얼마나 신경을 많이 썼을까 싶고, 자잘한 사고들도 있었던 것이 떠오르고, 세상에서 사람들을 케어하는 일이 진짜 힘들고 섬세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타인을 생각하며 의미있는 일을 선택하고 경험하는 분들이 멋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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