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혼 법제화는 ‘노인 복지’에도 영향 미쳤다

대만 LGBTQ+ 핫라인 협회, 초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20년 여정

박주연 | 기사입력 2025/12/12 [13:10]

동성혼 법제화는 ‘노인 복지’에도 영향 미쳤다

대만 LGBTQ+ 핫라인 협회, 초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20년 여정

박주연 | 입력 : 2025/12/12 [13:10]

타이베이 프라이드 퍼레이드 기간 중이었던 지난 10월 27일, 대만 ‘LGBTQ+ 핫라인 협회’ 사무실을 방문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동성혼이 법제화된 나라인 대만에서 이후 성소수자 인권에 어떤 변화가 있고, 그것이 ‘노년됨과 나이듦’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핫라인은 대만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규모도 큰 성소수자 단체로, 1998년 설립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20~30대였을 때였던 2005년부터 ‘노년, 나이듦’에 관심을 갖고 소모임 활동을 시작했다.

 

대만 LGBTQ+ 핫라인 협회(이하 핫라인) 사무실에서 펑 지류 부사무총장과 정 즈웨이 사회복지국장을 만나 성소자들의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대만 중앙 및 지방 정부의 성평등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핫라인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왔다.

 

▲ 대만 LGBTQ+ 핫라인 협회 정 즈웨이 사회복지국장과 펑 지류 부사무총장 ©일다


다양한 소수자와의 연대가 노년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

 

핫라인에게 가장 궁금했던 점, “어떻게 20년 전인 2005년부터 ‘성소수자의 노년과 나이듦’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질문했다. 정 사회복지국장은 세 가지 이유를 꼽았다.

 

“첫 번째 이유는, 당시 핫라인 내엔 사회복지, 복지정책, 사회학, 심리상담 등을 전공한 자원활동가와 스텝이 많았어요. 저와 펑 부사무총장도 그렇고요. 대만에선 2000년대 이전부터 사회복지 관련 교육에서 ‘대만이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거든요. 우리에겐 그런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많았고, ‘성소수자 운동 또한 고령화 문제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는 남성 동성애자로서의 ‘노화’에 대한 두려움이었어요. 늙는다는 것에 대한 압박이 심했거든요. 당시 주변 친구들이 농담처럼 했던 말이 ‘나 30살이 되면 죽을 거야.’였으니까요.

 

사실 마지막 이유가 가장 중요한데요. 1998년 설립 당시엔 성소수자 운동이 크지도 않았고, 프라이드 퍼레이드 같은 큰 행사도 없었죠. 우리가 계속 활동하기 위해선 다른 사회운동과의 연결이 중요했어요. 성노동자 운동, 노동운동, 환경운동, 장애운동 등 다양한 이슈와 연대하면서 약자나 소수자에게 우호적인 단체와 서로의 지지 기반을 넓혀가는 방식을 택한 거죠. 노년복지 단체는 대만의 복지 분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 영역과 연결하는 자연스러운 전략이었어요.”

 

내부적, 외부적 요인이 맞물려 핫라인은 일찌감치 ‘나이듦’에 관심을 가졌고, 전문성이 있는 활동가들이 점점 더 많은 접점을 만들었다. 또 이런 활동 소식이 점점 알려지면서 노년됨, 노년의 삶, 장기요양 등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자원활동가로 더 들어오게 됐다. 

 

이젠 돌봄 및 요양 영역에서 일하는 종사자들 또한 핫라인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자신들의 기관에 핫라인 활동가를 초청해 직원 교육을 하기도 한다.

 

사회복지기관들 ‘우리 기관도 동성혼 커플에게 서비스하게 되겠구나’

 

성소수자의 노년과 관련하여 핫라인의 초기 활동은 당사자를 직접 만나는 일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결과를 책으로 발간하며 이야기를 가시화했다. 지금은 장기요양 시스템 및 제도 변화, 교육 기관과의 연계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활동에 변화가 일어난 건, 일단 대만 사회 전체가 ‘성소수자가 실제로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20년 전 대만 사람들에게 ‘주변에 성소수자인 친척이나 친구가 있나요?’ 물으면 10명 중 9명은 ‘없다’고 했겠죠. 하지만 지금은 30~40%가 ‘그렇다’고 할 거예요. 젊은 층에선 더 높게 나올 거고요.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유명인이 커밍아웃하고, 동성혼도 법제화되면서 이제 ‘우리 사회에 성소수자가 없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됐어요. 이런 인식 변화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리고 2019년 동성혼이 법제화된 후, 사회복지 기관이 바로 생각하게 된 건 ‘앞으로 우리 기관도 결혼한 동성 커플에게 서비스를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었어요. 실제로 2019년 이후 장기요양을 포함한 각종 사회복지 기관이 적극적으로 성소수자 단체를 초청해 LGBTQ 교육을 받으려고 했어요.”

 

▲ 타이베이시 정부 민정국에선 “모두는 결국 늙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나요? #노년 성소수자라는, 아주 특별한 노년 집단을. 그들의 처지와 필요는 늘 쉽게 지워지고 있습니다.”라며 함께 노년 성소수자의 삶을 들여다보자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https://loveislove.tw


특수할 수밖에 없는 노년 성소수자의 삶 이해하기

 

동성혼 법제화는 단지 ‘결혼’과 관련된 분야의 변화뿐 아니라, 결혼을 할 수 있게 된 성소수자의 생애주기와 관련 있는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 사회복지국장은 “사실 70세 이상인 성소수자와 접촉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토로했다.

 

“핫라인 활동이 20년이 넘었는데요. 과거 50~60대였던 형, 누나가 이제 70~80대가 되었어요.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이런 사례들을 접했어요. 예를 들어, 어떤 분이 지병으로 집에서 자녀의 돌봄을 받게 되었어요. 그 분은 이성애 결혼을 했고 평생 가족에게 커밍아웃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린 이제 그의 소식을 알 수 없어요. 집에 전화를 할 수도, 방문을 할 수도 없으니까요.”

 

지금 노인이 된 성소수자의 다수는 반강제로 이성과 결혼해야 했기 때문에 평생 성정체성을 숨기며 살아왔고, 당연히 이들의 이야기는 비가시화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여전히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

 

그렇기에 핫라인은 활동 방향을 바꾼다. 어쩌면 성소수자일지도 모르는 노인들을 접하고, 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을 교육하기로 말이다.

그리고 ‘성소수자 노인’이 마주하고 있는 또 다른 문제를 발견했다.

 

“돌봄 인력 교육을 가면 대체로 ‘LGBT를 알아가 봅시다’ 같은 아주 기본적인 교육밖에 할 수 없는데요. 사실 이걸로 충분치 않아요. 대만은 계엄시기(1949년 5월 19일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1987년까지 약 38년 간 이어짐. 많은 이들이 정치적 이유로 체포, 투옥, 처형됨)가 있었고, 당시 성소수자들은 정부, 경찰, 군대, 학교로부터 폭력을 입었어요. 그 시절을 겪은 이들이 지금의 노인들이죠. 이들이 국가가 제공하는 돌봄 서비스를 바라보는 방식은 우리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지금의 젊은 종사자들은 그런 역사적 배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단순하게 ‘난 성소수자 친화적인데 왜 이 분이 나한테 커밍아웃 안 하지?’라고 생각하곤 해요. 하지만 그 노인들은 성장 과정에서 ‘국가’가 언제든 자신을 해칠 수 있는 위험한 존재였던 일을 경험했어요. 그러니 (국가가 보낸) 돌봄 종사자가 다가올 때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역사적 인권 교육도 필요하다고 봐요.”

 

펑 부사무총장은 사회복지사 대상으로 강의할 때 “성소수자가 겪어온 차별과 배제 경험을 정말 오래 설명한다.”고 했다. “다수의 젊은 사회복지사들은 ‘나는 모두를 평등하게 대해. 성소수자여도 마찬가지야.’라고 생각해요. 그 생각 자체는 좋지만, 그렇게만 한다면 성소수자가 겪은 경험을 이해할 수 없거든요. 사회복지사는 성소수자가 살아온 환경이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해요. 그래야 서비스 과정의 상호작용도 달라지죠.”

 

정 사회복지국장은 구체적인 예를 들며 설명을 보탰다.

“이성 커플 사이에 가정폭력이 있을 때 경찰이나 사회복지사가 ‘원가족을 부르겠다’고 하면 큰 문제가 없을 수 있어요. 하지만 동성 커플 사이에 가정폭력이 있을 때 ‘원가족을 부르겠다’고 하면 문제가 될 수 있죠. 커밍아웃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다수의 경찰과 사회복지사는 ‘가족을 부르는 게 당연한 절차’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성소수자에 미칠 위험이 있다는 걸 모르고요.”

 

▲ 대만 LGBTQ+ 핫라인 협회에선 대만의 장기요양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곤 한다. (출처: 台灣同志諮詢熱線協會 페이스북)


중년 성소수자 위한 활동, 부모돌봄을 할 때 필요한 정보 나누기

 

핫라인은 중년 성소수자들의 ‘부모돌봄’과 관련된 활동도 하고 있다. 실제로 부모돌봄 자체가 중요한 이슈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노년의 삶에 대한 그림을 쉽게 그리지 못하는 성소수자들에게 ‘부모돌봄’이라는 이슈를 통해 장기요양 시스템에 대한 정보, 미래 노년생활 준비를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핫라인은 부모돌봄 자조모임 등을 하는데, 그를 통해 알게 된 건 부모돌봄을 하는 성소수자가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커밍아웃의 문제’라는 점이다.

 

“커밍아웃을 안 했을 경우, 형제자매들은 그 사람을 ‘결혼 안 한 사람’, ‘시간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당연히 네가 부모를 돌봐야지.’라고 떠넘길 가능성이 커요. 또 부모와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이 생겨요. 장기요양이 필요한 시점은 곧 죽음과 직면하는 시기이기도 한데, 커밍아웃을 안 한 상태에서는 부모와 삶, 죽음, 관계에 대해 속깊은 대화를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 문제를 함께 나누는 건 물론, 부모돌봄을 해야 할 때 필요한 정보도 나눈다. 많은 성소수자가 이런 정보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핫라인은 정부의 장기요양 서비스 등급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접근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정 사회복지국장은 이런 활동엔 확실히 여성 성소수자의 참여가 높다며, 이는 “대만 사회의 돌봄 노동 불평등을 반영하는 것”이라 지적했다.

 

핫라인은 앞으로 더 집중해야 할 활동 중 하나로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을 꼽는다.

대만은 성평등교육법에 교육기관에서 성적지향·성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고용성별평등법에서도 성적지향·성정체성과 관련된 평등권을 확보하고 있지만,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핫라인은 법안 제정에 주력하고 있다.

 

“대만의 장기요양 서비스 제공기관 중 상당수가 종교단체에 의해 운영되고 있어요. (우리는) 그런 기관이 성소수자를 배제하지 않고 우호적일 수 있도록,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때 종교 배제 조항이 생기는 걸 막고자 하고 있어요.”

 

더불어 핫라인의 활동가들의 정부·지자체 위원회 참여 비율도 더 높이고자 한다. 동성혼 법제화 이후 이 비율이 늘어나 여러 활동가가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성평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위원회 내에서 이들은 성소수자 대상 사회복지정책 추진에 힘쓰고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을 방문해, 정부의 돌봄 서비스 개선에 대한 의견도 전달한다.

 

정 사회복지국장은 “향후 10년, 대만의 돌봄 서비스가 더욱 더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우호적으로 변하길 꿈꾼다.”고 했다.

 

그런 꿈을 향해 핫라인은 내년 대대적인 조직 변화를 진행할 예정이다. 13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나이듦, 노년됨’ 문제가 앞으로 가장 중요한 이슈로 뽑혔기 때문이다. 노년 성소수자와 장기요양 서비스 관련 업무 비중을 점차 늘리기 위해 단계를 밟을 예정이라는 핫라인 활동가들의 말에서 단단한 포부가 느껴졌다.

 

초고령화 사회, 노인이 되어 가는 이들 중엔 당연하게도 성소수자도 있다. 한국 사회도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일단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듣는 게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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