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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마다 다르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 말까지 미혼 출산을 이유로 아기를 입양 보내야 했던 여성은 몇 십만에서 몇 백만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를 ‘아기 퍼가기 시대’(Baby scoop Era) 또는 ‘강제 입양 시대’((Forced Adoption Era)라고 부른다.”
책 『입양으로 아기를 잃은 50만 명의 여성들』 출판사 서문의 일부다. ‘아기 퍼가기 시대’라니 대체 어떤 실상이었을까 싶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영국의 사례를 들어보자. 입양으로 인해 아기를 잃은 여성이 최소 50만명(1945년~1990년까지 입양된 아동 수 통계를 바탕으로 계산한 수치)에 달하며, 이는 여성 25명 중 1명이 아기를 입양으로 보낸 것이라고 한다. 상당한 숫자다.
여기서 ‘아기를 잃은’이라는 표현을 들여다 보게 된다. 보통 입양의 의미로 통용되는 건 어떤 사람/가정이 아이를 ‘얻는’ 과정이다. 입양으로 아이를 ‘잃은’ 사람이 있다는 개념을 들어본 적은 거의 없다. 아이를 포기한, 버린, 보낸… 등의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말이다.
“‘아기를 입양으로 잃은’이라는 표현은 1970년대 후반 서구에서 일어난 ‘진실한 입양 언어’(HAL: Honest Adoption Language) 사용하기 운동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 운동은 당시 입양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입양에 관련된 용어를 긍정적으로 바꾸자는 ‘긍정적 입양 언어’(Positive Adoption Language) 운동에 대한 저항으로 일어났다. ‘진실한 입양 언어’를 옹호하는 입장에 따르면, ‘긍정적 언어’는 입양으로 인해 헤어지게 된 미혼모와 입양인의 경험을 은폐한다. 따라서 이들은 ‘아기를 입양 보낸’이 아닌 ‘아기를 입양으로 잃은’이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입양이라는 과정에서 누군가 아이를 ‘얻게’ 된다면 누군가는 ‘잃은’ 것이다. 그럼에도 ‘잃다’는 표현이 적절한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지난 5일 저녁, 입양이라는 과정에서 철저히 가려진 존재인 친생모의 이야기가 담긴 책 『입양으로 아기를 잃은 50만 명의 여성들』 북토크가 열렸다. 공동 번역자인 권희정 ‘미혼모 아카이빙과 권익옹호 연구소’ 소장, 이태인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전세희 ‘더나은 입양을 실천하는 입양부모 네트워크’ 대표, 조소연 사회복지연구소 마실 대표와 감수자인 노혜련 숭실대학교 명예교수가 참석했다.
권희정 미혼모 아카이빙과 권익옹호 연구소장은 이 책을 출간한 안토니아스 대표이기도 하다. 사실 『입양으로 아기를 잃은 50만 명의 여성들』은 1992년 영국에서 출판됐다. 30년도 전에 출간된 책을 2025년에 번역하게 된 이유가 뭘까? 권 소장은 “2023년 『아기 퍼가기 시대: 미국의 미혼모, 신생아 입양, 강요된 선택』(캐런 윌슨-부터바우 지음)을 번역 출간할 때 이 책이 인용되어 있었는데, 제목이 무척 마음에 와 닿았다”고 했다. 이후 책을 구매해 읽은 후 번역서를 내기로 결심했다고. 책의 제목은 원제를 직역한 것이다.
타락한 여자, 정신적으로 아픈 여자, 이름 없는 여자… ‘아기 퍼가기 시대’ 미혼모 잔혹사, 한국전쟁 이후 한국에서 지속
입양으로 아이를 잃은 여성들은 이름조차 없다. 책의 1장에선 “아기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기르게 한 여성을 부르는 간단명료한 단어는 없다”며 “호칭의 부재는 아기가 입양된 후 아기 엄마는 조용히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사회적 기대가 있음을 보여준다. 즉 사회는 이 여성들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것”이라 짚는다. 이 침묵은 오랜 역사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권희정 소장은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영국의 미혼모와 입양의 역사를 설명했다. “16세기 청교도 윤리가 확산되면서 여성의 혼외 성관계, 임신, 출산엔 큰 낙인이 있었고 그 마을에 미혼모와 사생아가 있느냐 아니냐가 그 마을의 도덕적인지를 따지는 기준이었다. 이후 19세기 중반 빅토리아 시대가 되고 (보수적) 성윤리가 확립되면서는 결혼한 부부만 성관계를 해야 했고, 미혼모와 사생아는 사회 기강을 흩뜨리는 존재였다. 사생아가 태어나면 후견인이 지정되고 지방정부로 이관되는 법도 통과됐다. 그리고 20세기 초가 되면서 ‘결혼한 이성애 정상 가족’에서 아이가 잘 성장한다는 생각과 함께 1926년 근대적 의미의 ‘입양법’이 도입된다.”
여기서 입양은 친생모와 아기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것으로, 완전한 ‘비밀 입양’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권 소장은 “이후 20세기 중반 2차세계대전이 끝나면 도덕적 관점이 정신의학 관점으로 바뀌어 미혼모를 병리적으로 진단했다”고 설명했다. “그 전엔 타락한 나쁜 여자였다가 이젠 미성숙하고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여성으로 병리화했다. 이들은 ‘아픈’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판단으로 아이를 입양보낸 것이다. 그 이후 사회복지가 등장하면서 미혼모들은 시설로 입소시켜야 하는 존재가 된다. 아이를 출산하면 아이는 입양, 미혼모는 퇴소시키는 절차가 만들어진 거다. 이런 절차와 제도가 한국에도 한국전쟁 이후 들어왔다고 보면 된다.”
책이 발간된 1992년 즈음 서구사회에선 여성들의 비혼 출산이 점점 증가하고, 성적자기결정권이 높아지는 것과 동시에, 입양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친생모를 찾기 시작하면서 친생모의 목소리도 드디어 발화될 수 있었다.
“입양은 한시적 문제를 영구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
“정서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기혼모는 주변의 지지까지 ‘듬뿍’ 받는다. 반면 정서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이 극도로 취약한 미혼 임산부는 지원을 받기는커녕 가족과 사회로부터 ‘신뢰’조차 받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스스로도 자신을 믿지 못하고 아기를 키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장 필요한 순간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은 미혼 임산부는 마침내 양육과 입양을 결정해야 할 때가 오면 수동적으로 입양에 ‘동의’하게 된다.” (책 p.81)
이태인 제주한라대학교 교수는 학생들에게 ‘가난하면 애를 낳지 말아야 한다’는 말과 ‘애를 잘 키울 자신이 없으면 입양을 보내야 한다’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하고 토론을 하게 한다고 했다. “대체로 학생들은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한다, 키울 자신이 없으면 입양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학생이 용기내서 ‘그래도 전 낳고, 키우겠다’고 하면 분위기가 좀 바뀐다. 이 책이 그런 것 같다. 용기를 내서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또 해외입양인들을 인터뷰한 경험을 공유하며, 현재 한국 입양 제도의 문제를 짚었다. “입양인 중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입양은 한시적인 문제를 영구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거라고. 너무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사실 여러 사람이 그런 비슷한 말들을 했다.”
가난 혹은 어떤 취약한 위치, 주변의 시선 등은 한시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사회는 ‘한시적 문제’를 해결할 지원책을 마련하거나 대안을 모색하는 대신, 영구적 단절이라는 방식을 선택한다.
권희정 소장은 “최근 미국에서 나온 책 중 『Relinquished: The Politics of Adoption and the Privilege of American Motherhood 』(아이를 포기하다, 2024)가 있는데, 위기에 처한 임산부가 단 250달러만 있었으면 아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상황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도 지금 위기임산부가 양육을 하겠다 그러면 보편적인 지원 체계로 편입되어 한 110만원 정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위기임신보호출산제(2024년 7월 19일 시행,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숨기고 싶은 위기임산부가 익명으로 출산하게 하고, 아기는 국가 보호 시스템에서 관리되도록 함)를 선택하면, 그 아동이 소속되는 지자체장에겐 아동 1명당 100만원씩 3개월을 지원한다. 이건 너무 형평성에 어긋난 복지 체계이지 않나? 해당 여성에게 100만원씩 3개월을 준다면 어떨까?”라고 꼬집었다.
아이를 잃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묻어버리는 ‘침묵의 음모’ 친생모에게 전문적인 상담을 제공하는 입양 사후 지원 필요해
아기를 입양 보내기로 ‘선택’한 여성들의 삶은 그 이후 어떻게 될까? 놀랍게도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그 질문을 던진 적이 없다. 마치 입양이라는 일은 없었다는 듯이 그냥 덮어버린다. 책에선 이것을 ‘침묵의 음모’라고 표현한다.
“미혼모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을 털어놓고, 어떤 선택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지만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미혼모를 둘러싸고 마치 ‘침묵의 음모’를 벌이는 것 같았다. 자신의 감정을 터놓고 싶었지만 사람들은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중략) 아기를 입양 보내고 홀로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침묵은 계속되었고, 이후에도 아기를 낳은 적도, 입양 보낸 적도 없다는 듯한 태도가 계속되었다.” (책 p.105)
전세희 더나은 입양을 실천하는 입양부모 네트워크 대표는 책에서 언급하는 ‘입양 사후 지원센터’에 관해 짚었다. “1986년 런던에서 생긴 입양 사후 지원센터는 두 가지 면에서 좀 특별하다. 첫 번째는 ‘입양 삼자 모델’(입양인, 입양부모, 친생모) 모두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 두 번째는 평생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전문적인 서비스라는 점”이다. 센터에서 친생모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친생모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고통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말했다 하더라도 ‘이제 더 이상 그 얘기는 하지마’로 여겨져서 전혀 다뤄질 기회가 없었던 감정을 말할 수 있고, 복합적인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비로소 그렇게 감정이 해소되기 시작했고, 삶의 다른 부분에서도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전세희 대표는 “입양은 끝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전환점으로서의 시작이며, 친생모들의 일생에 계속, 죽을 때까지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사안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걸 묻어둘 게 아니라 오픈해서 끄집어 내고, 계속 이 이야기를 다루면서 상담도 제공해야 하며,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것.
여성과 아이를 위기에서 버려두지 말고, 함께 책임지는 사회를
현재 한국은 ‘익명 출산’을 허용하는 위기임신보호출산제를 시행하고 있다. 조소연 사회복지연구소 마실 대표는 이를 비판하며 “보호출산제의 가장 큰 문제는 친생부모의 정보가 아무 것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입양을 준비할 때 문제가 된다. 아이를 좋은 입양부모와 연결하려고 해도, 정보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건강에 대한 정보조차 없기 때문에 입양을 하는 부모로서도 굉장히 불안한 입양이 되는 것”이라 지적했다.
이태인 교수는 임신한 미혼 여성이 어떤 생각을 가질지는 우리 사회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그 여성들을 도우면서 아이를 함께 키울 것인지, 어떤 평가 잣대를 들이댈 것인지 우리 사회가 결정해야 할 때다.”
전세희 대표는 “책에서 ‘여성에 대해 결혼을 기준으로 상반된 평가를 한다’는 말을 하는데, 동의가 됐다”며 “미혼이 성관계를 하면 비난 받는데, 기혼은 (성관계를) 안 하면 비난 받는다. 임신과 출산도 마찬가지다. 입양 또한 안 하면 안 한대로 비난 받고, 하면 한대로 비난 받는다. 여성에게만 이런 잣대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 지적했다.
노혜련 숭실대학교 명예교수는 “미혼모는 창피하고 숨겨야 하는 존재이고, 아이 또한 숨겨서 버리는 게 낫다고 하는 메시지를 사회에서 전하는 게 맞는지” 질문하며, “입양이 입양인, 입양부모 그리고 친생모에게 평생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니까 입양을 보내면 끝, 그 이후의 일은 우리랑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권희정 소장은 “윤리적 입양은 ‘개방 입양’을 통해 친생부모의 권리를 보장하고, 입양 후에도 연결을 유지하는 방식을 모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방 입양은 친생부모가 입양 가정을 선택하고, 입양 후에도 사진, 전화, 직접 방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연락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개방 입양은 입양 아동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하고 버림받은 느낌을 줄여주며, 입양 가족에게는 아동의 병력 및 문화적 배경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등 모든 당사자에게 긍정적인 이점을 가져온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책 『입양으로 아기를 잃은 50만 명의 여성들』은 선택할 수 없는 선택에 내몰려 아이를 잃은 여성들의 억눌린 목소리를 통해, 지금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것들, 아니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묻어버린 것들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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