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노인’들도 커밍아웃할 수 있을까?

대만 ‘신베이시 가족 돌봄자 협회’와 ‘네이후 노인 서비스 센터’에 가다

박주연 | 기사입력 2025/12/20 [10:50]

성소수자 ‘노인’들도 커밍아웃할 수 있을까?

대만 ‘신베이시 가족 돌봄자 협회’와 ‘네이후 노인 서비스 센터’에 가다

박주연 | 입력 : 2025/12/20 [10:50]

2019년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법제화하며 대만은 성소수자 인권에서 선구적인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인 사회복지 서비스 현장에서 성소수자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제다.

 

특히 노년층 성소수자를 대면하는 종사자를 교육하는 일, 부모돌봄을 하는 성소수자가 고립될 위험에 놓이는 일 등에 관한 논의가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사회복지 현장의 상황은 실제로 어떨까?

대만 LGBTQ+ 핫라인 협회를 만난 후(관련 기사: 동성혼 법제화는 ‘노인 복지’에도 영향 미쳤다 https://ildaro.com/10340), 이 협회에서 성소수자 인권교육을 받으며 협력하고 있는 단체 ‘신베이시 가족 돌봄자 협회’와 ‘네이후 노인 서비스 센터’를 방문했다.

 

▲ 2025년 10월 29일, ‘성소수자 나이듦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들과 함께 대만 타이베이시에 있는 ‘네이후 노인 서비스 센터’를 방문해 황 준즈 책임 사회복지사(우측에서 첫 번째)와 량 야윈 사회복지사(우측에서 두 번째)가 사회복지현장의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KSCRC


‘신베이시 가족 돌봄자 협회’(New Taipei City Family Caregivers Association)는 1990년 5월 13일 설립된 후, 가족돌봄자들의 다양한 활동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여러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네이후 노인 서비스 센터’(Neihu Senior Center)는 타이베이시에 있는 총 12개 노인 서비스 센터 중 하나로, 노인들에게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시정부가 민간단체에 위탁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이고, 노인 및 인지증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가족돌봄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신베이시 가족 돌봄자 협회에선 장 카이제 부팀장과 이 후이원 사무총장을, 네이후 노인 서비스 센터에선 황 준즈 책임 사회복지사와 량 야윈 사회복지사를 만나 성소수자 친화적인 사회복지 현장의 변화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동성커플 혼인권 보장’의 나비효과는 노인 서비스 센터까지

 

가장 궁금했던 건 왜 사회복지 기관들이 ‘성소수자 친화적인 환경 구축’에 나섰는지였다. 노인 서비스 센터나 가족 돌봄자 협회에서 관심 가질만한 일이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답변은 예상 외였다.

 

네이후 노인 서비스 센터(이하 ’네이후 센터’)의 경우, 무려 “타이베이 시의 요청”으로 진행되었다. 2018년 타이베이시는 12개 구의 노인 서비스 센터들을 대상으로 ‘성별 친화성’에 대한 수용도를 조사했고, 이곳이 ‘가장 우호적’이라고 드러나 그 해 11월 센터 직원들이 ‘성소수자 우호 환경 최적화 계획’ 회의에 소집되었다.

 

그리고 시는 네이후 센터에 ‘성소수자 관련 정책’을 추진할 것을 요청했다. 시범 센터가 된 것이다. 량 사회복지사는 “그 회의 이후, 대만 LGBTQ+ 핫라인 협회와 본격적으로 협업하며 성소수자 친화적인 활동과 성평등 인증 등의 일들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동성혼이 법제화(2019년)되기 전이었지만, 2017년 5월 헌법재판소(사법원)가 동성 커플의 혼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사법원 석자 제 748호 해석」을 낸 후였다. 행정기관들은 그와 관련된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타이베이 시 또한 마찬가지였다.

 

▲ 2025년 10월 29일, ‘신베이시 가족 돌봄자 협회’를 방문했다. 이 후이원 사무총장(우측에서 두 번째)과 장 카이제 부팀장(우측에서 첫 번째)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KSCRC


네이후 센터가 지자체의 요청으로 성소수자 친화적인 환경 구축에 나섰다면, 신베이시 가족 돌봄자 협회(이하 ‘신베이시 협회’)는 다양한 돌봄인을 만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논의를 시작하게 됐다. 당연하게도 가족돌봄인 중엔 성소수자가 있었고, 신베이시 협회 내 사회복지사들은 “이 돌봄인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인해 겪는 문제나 감정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점을 파악”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 번은 돌봄을 받는 한 노인에게서 ‘내 아들이 동성애자인데, 그걸 받아들일 수 없다. 사회복지사인 당신이 아들을 좀 설득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어요. 사회복지사는 대만 LGBTQ+ 핫라인 협회(이하 ‘핫라인’)에 연락을 했고, 그 노인에게 핫라인 내 부모모임에 참여할 것을 제안했죠.”

 

장 카이제 부팀장은 다른 사례들도 설명했다.

“돌봄인이 트랜스젠더였는데 ‘가족에겐 절대 알려선 안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 분과 접촉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어떤 부분은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어야 했고, 그 주제를 건드리면 안 되는 상황이었죠. 또 다른 경우는 돌봄인이 자살예방 상담 서비스를 이용했던 경우예요. 처음엔 사회복지사가 그 분의 성정체성은 몰랐고, 돌봄 과정에서의 어려움 때문에 상담을 받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그 문제가 본인의 성소수자 정체성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걸 알기 전까지 지원 과정이 원만하지 않았거든요.”

 

신베이시 협회는 이런 일들을 통해 “아직 드러나지 않은, 말하지 못하고 있는 성소수자 돌봄인들의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느끼게 됐다. 그 고민은 “성소수자인 가족돌봄자를 위한 별도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다양한 소수 집단의 돌봄인을 연구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고, 성소수자 돌봄인 그룹을 포함하게 됐다.

 

▲ ‘신베이시 가족 돌봄자 협회’ 홈페이지(www.takecare880.org) 내 가족돌봄인에 대한 설명 중 일부. 1990년 5월 13일 설립된 협회는 가족돌봄을 하고 있는 돌봄인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당사자에게는 ‘돌봄 서비스가 성소수자 친화적인지’가 매우 중요

 

‘신베이시 가족 돌봄자 협회’와 ‘네이후 노인 서비스 센터’는 성소수자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점은 동일했지만, 그 과정과 대상은 달랐다. 협회는 돌보는 사람이, 센터는 돌봄을 받는 사람이 타깃이기에 세부적인 내용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신베이시 협회가 선택한 건, 성소수자 돌봄자 집단 면담을 통한 연구였다. 성소수자 돌봄인의 어려움을 인지한 후 그와 관련된 활동을 하고자 계획했지만, 돌봄인 커뮤니티 내의 성소수자 친화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소수자 돌봄인 프로그램을 갑자기 홍보하면 아무도 참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상황을 파악하기로 한 거다. 그렇게 6명의 성소수자 돌봄인(여성, 남성 각각 3명)의 경험과 이야기를 들었다.

 

장 카이제 부팀장은 “성소수자 돌봄인의 첫 번째 어려움은 ‘관계맺기’”라 설명했다.

“가족에게 커밍아웃하기도 쉽지 않은데,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도 가족돌봄인이라는 걸 얘기하면 공감받지 못한다고 해요. 또한 그들을 만날 물리적인 시간 자체도 줄어들죠. 한 참여자는 ‘원래는 소개팅도 나가고 만나는 친구도 많았는데 돌봄을 시작하면서 전혀 시간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또한 돌봄과정에서 ‘커밍아웃’은 중요한 요소였다. 장 부팀장은 “돌봄인이 커밍아웃을 한 사람인지 아닌지에 따라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고 했다.

“이미 커밍아웃을 했거나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각종 서비스 현장에서 당당하게 ‘제가 돌보는 사람은 제 파트너입니다’라고 밝혔어요. 그리고 ‘의료진이 성소수자 친화적이지 않다면 여기서 서비스를 받지 않겠다’고 말하고 실제로 병원이나 기관을 바꾸기도 했죠. 반대로 커밍아웃하지 않은 사람은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었고, 끝까지 말을 하지 못했어요.”

 

연구 과정에서 알게 된 점은 참여자 모두가 지역의 정신건강센터에서 상담을 받거나 상담 지원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중요한 부분은 “상담사가 ‘섹슈얼리티·젠더 다양성에 전문성이나 경험이 있는지, 얼마나 성소수자 친화적인지”였다.

 

정부·지자체나 의료기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무리 좋다고 한들 성소수자 친화적이지 않다면 성소수자에겐 접근성이 차단된다는 의미이다.

 

노인 서비스 센터가 성소수자 노인을 환영하기 위한 노력들

 

그런 지점에서 성소수자가 이용하게 될 돌봄 서비스 중 하나인 ‘네이후 노인 서비스 센터’의 노력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센터는 성소수자인 노인이 이곳에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고, 자신을 드러냈을 때 존중받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량 야윈 사회복지사는 대만 LGBTQ+ 핫라인 협회(이하 ‘핫라인’)와의 회의 후 “핫라인과 서로 연락 창구를 지정하고 어떤 교육을 진행할지 함께 논의했다”고 했다. 이후 과정은 준비기, 실행기, 조정기, 지속유지기의 단계로 진행됐다.

 

“먼저 센터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사람과 개별 상담을 진행했고, 성별친화성에 대한 생각을 파악한 후 교육 과정을 제공했어요. 새로운 직원을 뽑을 때도 면접 시에 이런 활동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질문했죠. 서비스 대상자인 노인들의 경우엔 아무래도 성소수자 이슈가 낯설고, 또 많은 오해를 갖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그들을 존중하며 온화한 방식으로 진행하며 그들을 ‘적’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했어요.”

 

▲ ‘네이후 노인 서비스 센터’의 안내데스크 뒤 벽면엔 성소수자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가 그려져 있다. ©일다

 

센터 공간도 변화시켰다. ‘무지개 장치’를 설계하고자 한 것이다.

“다만 깃발 게시 등 너무 직접적인 표현은 노인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무지개 이미지를 활용해 환경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추진”했다. “직원들은 무지개 명찰끈을 패용, 센터 건물 내에도 무지개 이미지를 곳곳에 배치”한 것이다.

 

실행기 및 조정기 기간 동안엔 직접 대면을 진행했다. ‘세대 간 화합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노인들이 가짜 뉴스를 통해 갖고 있던 성소수자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했다. 하나는 “요리대회”였다. 핫라인의 활동가 및 자원봉사자들이 노인층이 좋아하는 ‘옛날 방식의 음식’을 요리하고, 노인들에겐 권위와 재미를 주기 위해 심사위원 역할을 하게 했다. 요리를 만든 이들은 왜 이 요리를 만들었는지 설명하며 자신의 이야기도 공유했다.

 

“세 개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하나는 한 분이 ‘어릴 때 할머니가 자주 해주던 음식을 만들었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커밍아웃한 후로 할머니와 연이 끊겼다’고 했죠. 그럼에도 여전히 할머니를 그리워한다고요.

또 하나는 여성 참여자가 ‘아내와 함께 즐겨 만드는 요리’라고 설명했던 때였죠. 사실 옆에서 전 어르신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서 긴장하고 있었는데, 그냥 ‘아~ 그래?’ 이런 반응이더라고요.

마지막으론 예융즈(葉永志, 대만 성소수자 운동에 영향을 미친 인물. 2000년 중학생이었던 예융즈는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받았고, 수업 시간 중에 화장실을 이용했는데 쓰러진채 발견되었고 결국 사망했다. 예융즈의 어머니는 진상 규명을 위해 끈질기게 투쟁했다.) 어머니의 요리를 만든 일이었어요. 그 요리를 먹고 예융즈 어머니의 이야기가 담긴 다큐를 현장에서 상영했어요. 우는 어르신도 있더라고요.”

 

량 야윈 사회복지사는 이런 활동 외에도 “함께 소풍을 가는 ‘세대 공존 캠프’ 프로그램도 진행했다”고 했다.

“‘몸으로 말해요’ 같은 제스처 게임을 했는데 기억에 남는 문제가 바로 ‘트랜스젠더’였어요. 그 때 속으로 ‘어르신이 이걸 맞힐 리가 없어’ 생각했는데 어느 분이 맞추시더라고요. 놀랐어요. 또 버스에서 참여자가 자기 소개를 했는데 한 분이 ‘법적 성별은 남성이지만 전 긴머리를 하고, 여성적인 표현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어요. 전 또 긴장했는데, 한 어르신이 ‘어머, 너 너무 예쁘다.’고 하시더라고요.”

 

▲ 네이후 노인 서비스 센터에서 성소수자 친화적인 환경 구축을 위한 단계(준비기, 실행기, 조정기, 지속유지기)를 설명한 자료 중. 현재 센터는 성소수자와 나이듦에 대한 팟캐스트도 진행하고 있다. ©일다


성소수자 친화적인 환경이 ‘일상’이 되도록!

 

센터의 량 야윈 사회복지사는 자주 긴장했지만, 성소수자와 노인 간의 교류는 생각만큼 ‘문제’를 불러오지 않았다. 성소수자와 노인이 함께 삶을 공유하는 시간도 마련했고, 이 때 인연이 된 성소수자 자원활동가와 노인이 계속 연락하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

 

네이후 노인 서비스 센터는 이런 일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일상 문화’가 될 수 있도록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량 사회복지사는 “우리 센터의 사회복지사든 자원봉사자든, 서비스 제공이나 의사소통을 할 때마다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존중과 포용을 느낄 수 있도록, 그것이 태도와 습관이 되고 결국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환경이 마련되어야 “성소수자 노인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신베이시 가족 돌봄자 협회의 경우도 앞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기관 홍보물 등을 설계할 때 성소수자 친화적인 메시지로 담도록 할 예정이다. 그리고 성소수자 돌봄인을 위한 본격적인 프로그램도 만들어 볼 계획이라고. 또한 다양한 소수자 돌봄인(비혼여성, 형제자매 돌봄인 등)을 연구하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해 나갈 예정이다.

 

대만의 두 사회복지기관의 사례를 접하며 노년 그리고 돌봄이 성소수자와 연결되는 지점을 조금 더 뚜렷하게 그릴 수 있었다. 앞으로 한국 사회가 무엇을, 왜 준비해야 하는지도 알게 됐다. 우리 사회에서도 조금의 노력과 의지만 있다면 돌봄 현장에서의 무지개를 충분히 띄울 수 있지 않을까?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부럽 2025/12/27 [13:22] 수정 | 삭제
  • 한국도 언젠가는 가능한 일이겠지요.
  • 2025/12/21 [20:10] 수정 | 삭제
  • 와ㅡ 대만 왜 선진국이라 하는지 알겠다.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